|
|
13 |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
14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
15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 |
| |
|
|
|
|
하나님의 신적 치유 (Divine Healing)은 현대 교회의 중요한 이슈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치유하십니까? 저는 오늘날도 주님이 허락하시면 신적 치유가 일어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치유를 밥 먹듯이 남용하는 입장에 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치유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왜곡된 견해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왜곡된 견해 중 하나는 ‘믿음이 좋으면 병이 없다.’ ‘치유가 안 되는 이유는 환자의 불충분한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몰아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만 충분하다면 치유 받을 것이다. 너무 이렇게 세게 나가는 것도 겸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봅니다.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모든 병은 죄 때문에 생긴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죄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삶 가운데 부족한 죄 때문에 어쩌면 병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러한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반성하는 것도 겸손한 자세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기준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치유를 육체적인 치유로만 제한하지 말고 치유는 전인격적인 치유이다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는 육체적으로 치유가 안 되어도 인격적으로 치유가 되는 온전함이 일어납니다. 이 치유라는 것을 육체의 치유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치유는 전 인격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전 인격적인 치유가 일어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 영적인 치유입니다. 우리 각 사람들은 용서받아야 할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서로 고백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이미 얻었습니다만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치유는 영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치유(Emotional Healing)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에 반항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상처 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내적 치유자이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가 치유 받아야 할 것은 육체적인 치유(Physical Healing)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육체적 특성을 아십니다. 주님은 내 몸의 신묘막측한 모든 기능을 아십니다. 내 모든 기관을 주님보다 더 잘 아는 분이 없습니다. 실제적인 치유도 주님이 원하시면 하실 수가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치유는 사회적인 관계적인 치유(Interpersonal Healing)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의 짐 때문에 병들어 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용서하고 관계의 치유를 받아 얼굴이 환해지면 육신의 아픔까지도 치유되는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깨어진 관계는 우리를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계속 깨어진 관계를 가지고 아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섯 번째로 주님은 우리의 기억도 치유(Memory Healing) 하십니다. 새롭게 출발하려면 반드시 과거의 아픔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과 심리적인 상태가 우리를 더 이상 질질 끌고 가지 않도록 치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적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적용입니다. 먼저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신실한 목자 야고보 사도는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 문제가 영적인 문제인지, 감정의 문제인지, 관계의 문제인지를 알아차리고 제대로 진단하면 처방이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살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지금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알게 해달라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두 번째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프고 질병이 일어나면 나 혼자서 짊어지고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지지 마십시오. 병과 아픔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사도는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줄지니라. 우리는 남보다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한 번 두 번 상처받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상처받은 그리스도인으로만 남겨놓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상처받은 도우미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만큼 상처를 많이 받은 분은 안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는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치유된 상처는 남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자가 됩니다. 그러나 치유 받지 못한 상처는 남의 상처를 치유하는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적용은 치유의 과정인데 모든 치유는 주님의 이름으로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14절에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할지니라. 모든 치유는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치유는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내 신뢰를 옮겨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치유해 주십니다. 영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육신적으로든 관계적으로든 과거의 기억에서든 주님이 반드시 치유해주십니다. 이 시간 주님의 품으로 나아가십시다. 주께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주께서 반드시 치유의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오늘 주께서 필요한 치유와 능력을,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7.2.11)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