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8:1-13, 우상의제물, 제사음식은
오늘은 우상의 제물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서,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다시금 살펴보고 주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아멘
아가야의 지방에 있는 고린도시에는 큰 신전이 3개가 있어, 그 신전에 바쳐진 고기 중 일부는 제단에서 제물로 태워졌고, 일부는 사제의 몫이 되었고, 나머지는 제물을 드린 사람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제가 자신의 몫을 받지 않을 경우, 그 고기는 시장으로 유통되어 일반 시민들에게 판매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는 거의 신전 제사에서 사용된 것이고. 고린도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거리낌 없이 고기를 사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바울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한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1-3절을 다시 읽으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바울은 먼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우리가 다 지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이미 예루살렘교회가 우상과 관련하여 결정을 내렸고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행15: 19-21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그렇다면 바울은 왜 그들이 우상의 제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그들을 교만하게 한다고 말했을까요? 그것은 우상의 제물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단편적인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야고보가 멀리하라고 권면한 네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에도. 지극히 적은 지식으로 형제자매를 마구 비판하고 정죄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지식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으로 얼마나 악을 자행했는지 우리도 뒤돌아 보아야 회개의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화해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성경의 지식과 이 세상의 지식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은 지식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3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이 알아 주시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사랑이며 이웃사랑입니다. 그리고 지식이라 하십니다.
또한 이세상에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 입니다.
4-6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아멘.
한마디로 바울은 우상에 대해서 4절에 단호하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은 사람들의 생각이 만든 것이고,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씀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에 대해서 구속을 받거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대할 수 있다는 사상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신이라고 섬기는 것들은 쇠 부치, 금은을 도금한 형체, 나무나 돌덩어리 같은 것입니다.
5절에는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실상을 ‘많은 신’‘많은 주’라는 말로써 표현합니다. 사람이 만든 신이기에 시대마다 신의 모습과 숫자는 늘어나서 그 숫자가 엄청났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한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당신을 진리로 계시로 나타나셨기에 시대, 나라 혹은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한분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입니다.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당시는 로마황제 가이사를 주라고 호칭하고 또 특정한 지역에서 지배권을 사용하는 군주나 신들을 주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는 사람들에게는 한분의 주 만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믿음 즉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분뿐이라 는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상에 대한 습관을 가지고 최근에 개종을 한 사람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정말로 하나님이 허락한 것으로 생각지 않고 실제로 우상 신의 제물로 여기고 먹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태도는 양심에 거리낌과 스스로 떳떳치 못함으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위축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것이 그때만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고 달나라를 가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리석게도 미신적인 생각과 우상에 붙잡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점쟁이들과 무당들이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는지? 첨단 미디어와 또 운세카페, 수많은 신문에 오늘의 운세가 납니다. 현대에도 귀신을 많이 찾고 믿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당이 하나님을 만나고 간증을 하는데 제사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제사는 수 많은 귀신을 부르는 행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개업을하면 돼지머리놓고 절하고 고사를 지내는 것을 보면 귀신을 믿는 것은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여전한 것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다행인것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절) 아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절) 아멘
그런데 조심하여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⑴ 조심할 것(9-11절)
“그런즉 너희 자 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8:9-11)
나의 신앙의 자유가 약한 자들을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연약한 사람이 그것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거나 넘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을 때 그것은 그 사람 책임이니 나는 상관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거치는 것이란 ‘프로스콤마’(πρ?σκομμα)라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데 그 원인이나 이유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고, 나로 인해서 약한 사람이 죄를 짓는다면 나는 나의 행위를 조심하고 절제해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중심의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약한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10절에 밝히고 있는데 내용인즉 믿음 있는 자가 거리낌 없이 신전에서 우상제물을 먹고 있는 경우를 들어서 말합니다. 믿음 있는 자의 거리낌 없는 행위를 보고 우상과 미신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없는 자가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도 그를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에 거리낌을 가지고 제물을 먹는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되고 그런 행위를 가능케 한 먼저 믿는 자도 도의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① 믿음이 강한 자가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문자 그대로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약한 자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감수 하고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지식이나 생각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믿음이 약한 사람이 높은 신앙을 이해하고 그 수준에 올라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을 내세워서 자기의 주장이나 고집대로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자신이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신앙을 주장할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하나님과 문제이기 대문에. 그래서 성경은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② 성도는 지식보다 사랑을 취해야 합니다.
지식은 사람에 따라 그 지식의 폭과 생각이나 이해가 다를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랑은 누구에게나 통하고 유익을 줍니다. 이론과 지식은 사랑을 동반할 때 빛을 발하지만. 사랑이 없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지식은 교만 하게 되고. 무슨 지식이든 아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판단하고 분별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무시하고 어리석게 보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차가운 것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사랑은 따뜻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자신을 세우고,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지식이 빛을 발하고 날개를 다는 것은 사랑이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아는 것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
엘리나 라는 78세 된 화란 출신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평생소원은 담배를 끊는 것이어서. 50년간 담배를 끊기 위해 클리닉에도 가보고 약도 먹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어느새 78세가 되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엘리나 할머니가 79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뒤늦게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이슨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은데 단 한 가지 때문에 당신과 결혼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오. 당신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거 같소.”라고 하자. 할머니는 “그래요? 그러면 제가 담배를 끊지요”라면서 그 순간부터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녀의 50년간 이루지 못한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줄에는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랑의 힘은 의지의 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할머니의 멋진 고백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오늘 우리도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 나를 양보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면 가정이나 직장이나 일터에서 지금보다 훨씬 다툼의 빈도가 줄어듭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