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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과 명품 계곡길이 어우러진 구룡계곡 탐방기
1. 일 시 : 2016. 08. 27(토)
2. 목적산 : 지리산 구룡계곡(525m)
3. 산행코스 : 내송마을→개미정지→솔정지→구룡치→삼거리→회덕심터→천룽암→구룡사→구룡폭포→비폭등→지주대→유선대→영포교→챙이소→춘향묘→육모정(도상거리-약 12km, 산행시간-휴식시간 포함 4시간 8분소요)
4. 참석자 : 고성윤, 고영호, 곽순옥 외 1명(주평철), 구모신 외 1명(김정욱), 김민정, 김종기, 박상태, 박유현, 박태용, 박해성, 서명화, 서영준, 송우형, 양종호, 이귀혜 외 1명(조동제), 이영배, 이우득, 임민철, 전창기, 조귀정, 조현정, 최홍구 등 이상 25명
5. 탐방후기
9월 중순의 이른 추석이 있어서 대부분의 회원들이 조상님의 산소에 벌초하러 가는지 산행일 4일 전인 23일까지 참가 신청한 회원이 10명도 되지 않았다. 박상태 고문은 카페 산행신청자를 보고 ‘이런 상황에서 산행이 되겠느냐?’고 하며 걱정을 태산같이 한다. 나는 ‘회원들이 곧 참가신청을 하겠지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거는 마찬가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참가신청을 해놨던 김필성 부회장마저 학생교육원에서 우리 산행날 국궁대회가 열린다고 참가가 불가능하다고 카페 산행신청 란에 댓글을 달아 놓았고, 양경자, 서명화 교감이 건강상 이유로 불참을 카톡으로 통보해 왔다. 나는 서 교감에게 참가를 신청한 회원이 적다고 가급적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고 치아를 뺀 서 교감은 고심 끝에 혼자라도 참가하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지인들에게 참여를 요청했지만 모두가 일정이 잡혀있어 함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나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회원이 참가하도록 임원들에게 회원들의 참가를 독려하도록 부탁하고 개인적으로도 연락을 취해 봤지만, 대부분 회원들의 대답과 반응은 냉담했다. 개인적인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거나 선약이 있어 안 된단다.
마음이 돌아선 원로 회원들은 물론이러니 와 젊은 회원들 역시 우리 산악회의 정기산행을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개인 여행일정을 잡아 여행을 가기 때문에 참여가 어렵답고 당당하게 말을 한다.
예전 우리 때는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다. 물론 세상이 많이 변했고 개인의 의사도 존중되어야하는 동호회 활동인지라 서로가 이해해고 양보해야 한다지만 마음은 썩 편치 않았다.
원로 회원 중에서도 몸에 이상이 있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참여해 주는 박상태, 이우득 고문과 회장 못지않게 회를 아끼며 애쓰고 있는 박유현 산행이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동호회 회원으로서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무척이나 아쉽다.
김진형 총무는 가족들과의 휴가일정이 정기산행일과 중첩된다며 저번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빠지게 됐다며 무척 미안해하며 산행계획이 게시되자마자 연락이 왔다. 하기야 결혼한 새댁이 가족여행에 혼자 어디 함부로 빠질 수가 있겠냐? 나도 결혼해 봤는데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 외의 지부장들을 비롯한 젊은 회원들은 카톡으로 몇 차례에 걸쳐 참가를 독려하였지만 반응이 없다. 내가 직접 전화를 하면 그제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참여할 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나름대로 바쁘고 사유는 있겠지만, 예전 나의 초창기 회원 때는 생각지도 못할 대답들이다.
전화를 하다 회의를 느껴 그만두려다 그래도 하는 마음에 김민정, 양종호, 서영준, 구모신 회원에게 연락을 하니 고맙게도 긍정적 반응이 돌아왔다.
격국 서영준 회원은 영도여고에서 같이 근무하는 송우형 과장과 함께 참가해 주었고, 구모신 회원은 도서관의 근무일까지 바꿔가며 사모님과 참가해 주었고, 오랫동안 산을 타다가 근래 들어 무릎관절이 안 좋아졌다며 정기산행에도 자주 빠지는 이우득 고문은 친구들에게 산행동참을 권해 보겠노라고 하더니, 고등학교 동기 박해성, 박태용 님과 같이 참가해 주어 정말 고마웠다.
거학초 양경자 교감과 항상 함께 참가신청을 하여 참석하던 서명화 교감은 양 교감이 건강에 이상이 있어 검진과 치료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본인도 평소 말썽을 부리던 이빨을 뽑고 산행에 참가를 하지 않으려다 신청인원이 너무 적다는 말에 고맙게도 성치 않는 몸 상태에서도 참가해 주었다. 또 서 교감은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남편과 시누이 등 주위 분들에게 같이 오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다른 약속 등으로 호응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 오게 됐다며 서운해 했다. 곽순옥 부회장 역시 벌초하러 가려던 부군의 일정을 한주 연기하도록 하여 함께 참석해 주었다.
그런데 서부 이수곤 지부장 같은 경우에는 산행 날임에도 개인적으로 1박 2일 일정으로 놀러간다며 동참할 수 없다는 말에 왜 그리 서운한지.
버스는 출발시간 거의 다 되어서 도착한 회원이 있어 8시가 넘어서 연산동 출발해 고영호, 김민정, 박은영, 서명화 교감이 세연정에서, 고성윤, 김종기, 박상태, 박태용 회원이 만덕에서 태운 뒤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를 막힘없이 신나게 내달렸다.
추석을 앞둔 벌초시기임에도 고속도로는 전혀 혼잡하지 않았다.
산행입구 내송마을에는 10시 40분경에 도착하여 회원들이 이 마을의 금두꺼비 전설에 관해 설명을 해놓은 안내판 앞에서 산행준비를 하는 동안 동네 사람에게 물어봐도 될 건데 사람을 못 봤는지 박유현 산행이사는 산행초입을 찾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둘러보고 있었다.
이귀혜 교장샘과 조동제 사장님 부부는 내송마을회관 앞 평상에 앉아있는 동네 할머니에게 산행초입을 묻으니 할머니는 마을회관 옆 골목길로 손가락으로 가리켜며 알려주었다.
두 분은 조용히 박유현 이사를 불러 산행초입을 알려주었고 이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10:50)
마을회관에서 2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에 주택 울타리와 붙어있는 큰 바위덩어리가 보인다.
모양새가 흡사 입을 벌리고 있는 두꺼비 형태로 다름 아닌 이 동네의 수호신 두꺼비바위란다.[두꺼비바위 이야기 – 안솔치마을(내송)은 1390년 한양 조 씨가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우물을 팠는데 우물이 마르지 않고 후손 대대로 번영을 이루라고 금으로 만든 두꺼비를 우물에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안솔치의 높은 봉오리(비리골)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구룡폭포에서 용이 나와 선녀를 희롱하며 놀았는데, 우물을 지키던 금와(금 두꺼비)는 용을 부러워했고, 어느 날은 우물 밖으로 뛰쳐나와 용처럼 날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게 된다. 기도를 한지 101일 재 되는 날 금와는 드디어 날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고, 온힘을 다해 비리골로 뛰어 오르는데, 이때 뒷다리가 미끄러져 너럭바위에 닿아 현재의 자리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금와가 너무 서러워 엉엉 울고 있는데, 이때 조경남 장군의 혼령이 나타나 “금와야 너무 슬러하지 마라. 너는 이제 내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켰듯이 이 자리에 앉아 마을을 지키고, 너를 보고 기도하는 사람마다 목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 후로 두꺼비 바위는 지금까지 마을의 수호신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두꺼비 바위를 만지고 우물을 마시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앞서 출발한 사람들은 금두꺼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올라갔고, 뒤따라 올라가던 나와 고영호, 전창기, 이영배 회원은 금두꺼비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인천에서 온 인천산악회 회원들이 4~50명이 무리지어 우리를 앞질러 걸어갔다.
우리는 내송마을에서 개미정지, 솔정지, 구룡치와 삼거리를 지나 회덕심터에서 구룡계곡으로 방향을 틀어 춘향묘가 있는 육모정 쪽으로 내려오는 구룡폭포 순환코스로 산행하기로 계획했는데, 두 산악회는 지리산둘레길 탐방이 목적인 것 같았다. 물어보니 역시 운봉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보다 먼저 내송마을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한 경기도 부천에서 온 산노을산악회 회원들과 엉키게 되었고, 곧이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게 됐다.
우리의 산행길이 지리산 둘레길 1구간과 겹친다지만 우리가 걸은 구룡치까지는 평탄하지만은 않은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 굴곡이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있는 코스다.
평탄한 산길을 걷는가 싶으면 계곡길 경사구간이 나오고, 앞이 좀 트였나싶으면 굴곡이 이어지는 길이 펼쳐지기를 반복되곤 하여 덕분에 땀도 좀 흘릴 수 있었다.
인천산악회와 산노을산악회 회원들과 뒤엉켜 산행을 하다 보니 나중에 점심 먹을 자리가 걱정되었다.
일차로 개미정자(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을 잇는 14km의 지리산둘레길 주천-운봉구간은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면서,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6개 마을을 잇는 숲길과 제방길로 구성되어 있다. 엣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길이 지금도 남아있는 구간으로 남원장을 오가던 큰길이었단다. 개미정지, 솔정지는 조경남 의병장군의 전설이 서린 곳이자 장꾼들의 쉼터이다. 거리는 내송마을에서 개미정자는 300m, 개미정자에서 솔정지는 1.9km, 솔정지에서 구룡치까지는 300m이다)에서 상황을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으나 인천산악회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쉬고 있는 관계로 우리는 좀 더 걸어 올라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속도를 빠짝 높여 걸었다.
속도를 높이니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산행 맛을 더해 주었고,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계곡바람은 땀을 식혀주기엔 충분했다.
땀이 온몸에 배일정도로 흘리며 구룡치에 도착하자마자 안쪽 널찍한 자리를 확보하고는 혹시 자리가 부족할지 몰라 뒤따라 온 고성윤 회원에게 입구 쪽에도 자리를 확보하도록 했다.
회원들이 다 도착하고 식사자리를 펼치니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안쪽에만 모여앉아 회에서 구입한 술들을 반주로 곁들어 도시락을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구모신 회원은 귀한 문배주를 가져와 한잔씩 돌렸고, 기분이 좋은지 다음 산행 때도 문배주를 가져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가진 후 출발하여 삼거리에서 지리산둘레길 쪽으로 가서 회덕마을 입구 전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이정표에서 계곡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구룡사 밑 사거리로 바로 내려오고 말았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 쭉 뻗은 흙길이 어우러져 걷기도 보며 즐기기에도 좋았다. 당초 예정된 코스를 벗어났지만 걷을 거리가 줄었고 시간이 단축된다고 회원들은 오히려 더 좋아한다.
우리는 구룡정과 구룡폭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다른 등산객들의 산행코스의 도움을 받고는 구룡폭포로 향했다.
구룡계곡으로 내려오는데 코스는 만만치 않았다. 깎아 지르는 내리막길에 철제계단이나 길옆 안전손잡이가 없었다면 과연 정상적인 걸음걸이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다. 꼭 심심산천의 계곡과 능선의 한 중간에 있는 듯하다.
위험하고 힘든 아슬아슬한 코스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전망을 더불어 선사해 주고 있었다.
넘어질 듯 아찔한 계단 길을 내려와야 만나는 구룡폭포! 계곡 한 모퉁이에서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물소리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함마저 선사하고, 능선으로 이어지는 철제계단과 탐방로는 찾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는 손색이 없다.
좌우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협곡의 아찔함은 긴장하게 하면서도 감탄을 멈추지 않게 한다.
몇 년 전에 우리 산악회에서 특별산행을 다녀온 중국의 산동·산서성의 태항산의 일부를 보는 듯하다. 태항산은 스케일이 큰 웅장하고 광활하다면 구룡계곡은 자그만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수려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답다할 수 있는 협곡이다.
상류에 있는 구곡경의 구룡폭포는 남원 8경 중 제1경으로 바로 밑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용소라는 소가 있다.
구룡폭포 아래쪽엔 장군바위가 있고, 그곳을 지나면 누가 말하기 전에 스스로 추락을 주의할 만큼 가느다란 칼날능선에서는 모두가 엉검엉검 걸을 수밖에 없었다.
칼날능선을 내려오면 큰 바위와 함께하고 있는 비폭등이 있다.
구룡폭포 위에서부터 비폭등, 지주대, 유선대 등으로 내리뻗은 계곡, 아니 협곡은 빼어난 절경과 아름다운 자태로 우리를 즐겁게 하였고, 특히 반반한 바위 위에 금이 많이 그어져 있어 선인들이 바둑을 두며 즐겼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유선대 주변의 병풍처럼 쳐놓은 절벽은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깎아지른 협곡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암벽을 온통 숲으로 뒤덮어 놓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바삐 걸으면 아름다운 협곡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이곳을 찾을 때에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고, 단풍이 물들고 난 뒤 낙엽과 나뭇잎이 지고나면 한층 더 시원스럽게 협곡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 때를 맞춰 다시한번 찾아오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노라니 좋은 경치에 쉽게 탄복하는 권정순 교장 샘이 갑자기 생각났다. 물론 함께 참가했더라면 무릎이 안 좋아 계곡을 내려가며 무척 힘들어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구룡계곡은 남원 읍내에서 30리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어, 그 옛날 남원에서 내로라하는 시인묵객이나 남원부사, 관원들이 자연과 더불어 음풍농월하는 유희의 장소였단다.
계곡을 따라 사랑교, 영포교, 챙이소, 구시소를 지나면 자연을 즐기며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며 지역주민들을 선도하는 장소가 있는 육모정에 도착했다. 남원 읍내에는 광한루가 있다면 광한루와 지리산을 잇는 연결고리가 육모정이란다. 광한루가 시내에 자연을 옮겨놓은 누각이라면, 육모정은 자연 속에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정자란다. 육모정 바로 옆에는 용호서원이 있고, 그 옆에는 춘향의 묘가 있다.
육모정 앞 계곡에는 평평하고 넓게 퍼진 너른 바위가 있고, 그 앞을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8월 하순인데도 계속되는 더위 탓인지 계곡에는 가족단위의 피서객이 많았다.
또 계곡이 얕고 피서하기 좋은 곳이라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물놀이를 많이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그늘이 진 좋은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뜨거운 뙤약볕이 내려쬐는 너른 바위에는 앉을 수가 없었다.
박유현 산행이사와 계곡을 가로 질러 물가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소주, 안주를 내놓고는 뒤따라 온 고영호, 구모신, 조동제 회원을 불러 한 순배의 술잔을 돌렸고, 그 뒤에 도착하는 회원들에게도 술잔을 돌리다보니 술이 금새 동나고 말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남자 회원들은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땀을 씻었고, 여자 회원들은 얼굴과 손, 발만 씻었다.
몸을 씻은 뒤에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옷을 갈아입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시야가 가리는 맞은편 갈대 뒤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지만, 박유현 산행이사는 옆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용기가 대단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니 기분이 한결 상쾌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계곡을 빠져나와 뙤약볕 밑 춘향의 묘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포즈를 잡으니 금방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회원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사진을 다 찍은 뒤 춘향묘 바로 옆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남원시가지를 벗어나기 전에 약간의 술과 안주를 구입해서 회원들과 달리는 차 안에서 한 잔하면서 즐거움을 나누고는 휴식과 숙면을 취하다보니 어느새 두 번째 휴게소인 진영휴게소다.
부산에 들어서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만덕에서부터 회원들이 내렸고, 나는 연산동까지 온 김필성, 박유현, 전창기, 구모신 회원들과 함께 국밥집을 찾아 오늘 있었던 즐거운 산행 이야기로 하루를 마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