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영원한 해탈계로 인도하는 칭명염불
부모님의 인연을 잘 만나 관음태교를 받고 세상에 태어났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출발을 한 인생이다. 이제 관음태교로 막 돋아난 행복의 싹을 더욱 잘 키워나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나온 후에도 얼마간은 부모님의 보살핌이 불가피하겠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나는 착한 염불행자로서 내 스스로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 남섬부주 교주이신 불세존을 믿고 성호를 부르는 칭명염불에 매진해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피를 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업장을 소멸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통을 소멸시키고 행복을 가져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10년 걸려 가야 될 길을 한 시간 아니 1분도 안 걸리고 갈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길을 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이제 이 길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자 한다.
Ⅰ. 불교 수행의 본질과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
1. 영체를 정화해 가는 과정이 수행의 본질
불교 수행의 출발은 기본적으로 우리 중생들이 다겁생 동안 지은 죄업으로 인해 우리 영체에 태산만한 업덩어리를 짊어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행해서 없애야 하는 것은 영체가 짊어지고 있는 이 태산만한 업덩어리다. 태산만한 업덩어리를 떼어내고 대신 그 자리에 더 큰 복덕의 덩어리를 달아야 하는 것이다. 영체에 달린 태산만한 업덩어리를 깨끗하게 떼어내어 청정한 빛 덩어리 영체만 남겨두면서 우주만한 복덕 덩어리를 완성하면 여기가 바로 붓다의 자리다.
이 업의 장애, 즉 업장으로 인해 우리의 모든 고통은 시작이 된다. 물론 업을 짓는 원인은 탐욕이고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진리에 대한 무지인 무명無明이다. 그러므로 탐욕을 없애고 무명을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은 수행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영체에 심어져 있는 죄업의 뿌리를 하나도 뽑아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씻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그 죄업의 과보를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아무리 수행을 해도 자력만으로는 지옥보, 아귀보, 축생보의 업보를 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삼악도에 떨어지는 과보를 끊지 못하고서는 여섯 세계의 행복을 논할 수 없다. 그래서 업장 소멸이 우리 수행의 실체적 본질이 되는 것이다. 업장 소멸을 통해 영체를 청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이것이 불교의 수행인 것이다.
그러면 업장 소멸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인연법의 인과응보 논리에 따라 내가 지은 업은 내가 받아야지 어느 신적인 존재나 다른 누가 와서 대신 받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대신 받아줄 수 있다면 그건 우주 이법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에겐 너무나 기쁜 소식이 있다.
그것은 업장 소멸이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종교의 어느 성자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부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이때만큼 불자된 것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다. 인연법에 조금도 상처를 내지 않고 업장 소멸을 하실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위대하신 위신력이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광이란 가공할만한 위신력을 가진 빛을 쏘아 우리 중생들의 업장을 소멸시켜 주신다. 물론 업장 소멸의 정도는 우리가 지은 공덕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 중생들이 수천 수만 년을 수행만 하는 삶으로 산다고 해도 자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업장소멸을 부처님께서는 인연이 되면 언제라도 해주신다.
부처님께서 무량 겁 전에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수많은 불보살님들을 길러내실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부처님께서 업장 소멸이라는 엄청난 위신력을 발휘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난 외도의 공격과 방해를 막는 일 등 수행 단계 단계마다 필요한 불가사의한 위신력과 지혜도 함께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부처님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 안 계시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업장 소멸은 우리 영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 영체가 없다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대상으로 업장소멸을 하자는 것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부처님과 영체의 실존을 믿지 않으려는 작금의 세계 불교계의 현실을 통탄해마지 않는다.
이런 불교의 교리와 수행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서야 우리는 가장 이상적인 수행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부처님께 업장을 소멸해 달라고 그냥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처님의 장삼 자락을 부여잡고 매달릴 수는 없다. 무조건 부처님께서 계심을 믿고 부처님의 성호를 간절히 간절히 불러야만 한다.
그리고 업장 소멸을 발원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칭명염불수행법이다. 부처님께서 그 간절함에 감동이 되어야 업장 소멸이라는 가피를 내리신다.
2. 수행자는 계율을 생명처럼 지켜야
칭명염불은 업장 소멸이라는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을 받기 위한 최상의 수행법이다. 이러한 부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번뇌를 끊고 더 이상의 악행을 짓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계율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정진하라는 유교遺敎를 남기시고 대열반에 드셨다. 따라서 ‘계율은 제2의 스승’이라고 할 만큼 수행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규범이다. 생명처럼 지켜야 할 덕목이다.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와 하나로 되신 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은 곧 우주의 이법으로서의 윤리 규범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라의 법을 어기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듯이 우주의 규범을 어기면 우주 이법에 따라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나라의 법도 우주 이법의 일부를 이룬다. 물론 우주이법에 맞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면 우주의 규범을 지키는 것이 된다.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수행에 진전이 없다. 번뇌・망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당연히 깊은 선정이나 삼매에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가 계율을 잘 지키고 청정한 생활을 해야 업장 소멸이라는 크나큰 구원의 선물을 내려주신다.
그리고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하여는 진심으로 참회를 해야 한다. 우주 규범을 범하지 않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 이법을 적극 실천하는 것도 부처님의 구원을 받는 길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두 인연법의 우주 이치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경우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수행자들을 예뻐하시며 업장 소멸이라는 엄청난 포상을 내려주신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여러 선행을 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는 말은 모든 계율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지금 불교계에서는 계율에 대한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불교계도 계율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깨치면 막행막식 해도 괜찮은 것으로 크게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승들에게는 특히 음계가 생명이다. 수행승이 음계를 파하면 무간지옥행이다. 설사 깨쳐서 보림 중인 수행자라도 단 한 번의 음행을 저지른다면 이는 마치 한 컵의 청정수에 똥물이 한 방울 떨어져 그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악도로 퇴전하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중이 죽으면 내가 친국하리라’고까지 말씀하실 정도로 계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산천초목이 벌벌 떨어야 할 만큼 무서운 선언이다.
많은 계율 중에서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의 네 가지가 근본이 되는 계율이다. 여기에 불음주를 추가하면 재가불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가 된다.
출가 수행자가 지켜야할 중대한 네 가지 계율로는 대음계大婬戒, 대도계大盜戒, 대살계大殺戒, 대망어계大忘語戒의 사바라이계가 있고 보다 세부적으로 비구는 보통 250계, 비구니는 348계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음계가 가장 앞에 나온다는 데 특히 유의해야 한다. 스님이 사바라이계를 범하면 승려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그리고 보살이 되고자 하는 자가 지켜야 할 십중대계十重大戒가 있다.
죄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죄는 부처님과 그 법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죄다. 부처님께서는 우주 이법, 즉 진리와 하나 되신 가장 위대한 우주의 성자이시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무서운 죄는 오역대죄五逆大罪이다. 이것은 아버지를 죽인 죄, 어머니를 죽인 죄, 아라한 이상의 성자를 죽인 죄, 정법의 화합 교단을 파괴한 죄, 붓다의 몸에서 피를 내게 한 죄를 말한다. 불상이나 불탑, 전각을 심하게 방화・파손하는 행위도 포함이 된다.
세 번째로 무서운 죄는 승려가 짓는 사바라이죄이다.
네 번째로 무서운 죄는 십악업죄이다. 열 가지 악행을 행하면 10악업죄가 된다. 열 가지 악행이란 생물을 죽이는 살생殺生, 도둑질하는 투도偸盜, 간음하는 사음邪婬, 거짓말하는 망어忘語, 교묘하게 꾸미는 말하는 기어綺語, 이간질하는 양설兩說, 욕하거나 험담하는 악구惡口, 욕심을 못 벗어난 탐애貪愛, 노여움으로 증오하는 진에瞋恚, 그릇된 견해에 빠지는 사견邪見 또는 우치愚癡를 말한다.
그리고 이 열 가지 악행 각각에 대하여 남을 시켜 그 악행을 하게 하거나, 그 악행을 칭찬하거나, 그 악행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기뻐하거나 하면 그 모두가 악행이 된다. 그래서 모두 40가지 악행이 되는 것이다.
출처 : 관음태교에서 부처님 천도까지(2쇄)
펴낸곳 : 현지궁 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