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4법 개정으로 충분하다는 당신에게 묻는다.
2023년 5월 11일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아동학대 면책’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일부 교원단체가 ‘교사 아동학대 면책 법안 발의’를 요구했고, 학부모, 시민 단체 등이 이를 규탄하며, 날카로운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2023년 7월 18일 2년 차 교사가 근무지에서 스스로 생을 놓아버렸을 때 모든 억눌렸던 것들이 폭발했다. 뉴스마다 넘쳐나는 과도한 학부모의 요구와 욕설, 폭행, 그리고 이어지는 교사 자살까지, 이 역사를 어떻게 담아야 할지 참담함에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그렇게 매주 주말을 반납하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서서 얻어 낸 것이 ‘교권 4법’ 개정이다.
‘아동학대 면책’이냐는 논란을 만들었던 ‘초중등교육법’은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보호자의 의무 신설 제18조의5(보호자의 의무 등) ① 보호자는 교직원 또는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보호자는 제20조의2제1항에 따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를 존중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③ 보호자는 교육활동의 범위에서 교원과 학교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하고 교육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2. 교장의 임무 개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
3. 정당한 생활지도 관련 조항 신설 :신체 학대, 정서 학대, 방임로 보지 않음 제20조의 2(학교의 장 및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①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교원의 정당한 학생생활지도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제17조 제3호, 제5호 및 제6호의 금지행위 위반으로 보지 아니한다.
4. 교원 개인정보 보호 조항 신설 제20조의3(교원 개인정보의 보호) 학교와 학교의 장은 교원의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개인정보 보호법」 및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등 관계 법률에 따라 보호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
사실, 살펴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무엇 하나 과한 것이 없다. 비정상적인 현실의 추를 다시 정상화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너무 부족한 내용이다. 그걸 이제야 겨우 이루어 냈다. 그리고 교사들은 ‘아동복지법’ 제17조제5호의 정서적 학대의 모호성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서 학대의 모호성에 문제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죄형법정주의 합헌 결정을 내린 바가 있지만, 동시에 “어떠한 행위가 정서적 학대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는 아동에게 가해진 유형력의 정도,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우, 피해아동의 연령 및 건강 상태, 행위자의 평소 성향이나 행위 당시의 태도, 행위의 반복성이나 기간 등에 비추어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하여 구체화될 수 있다.”라는 해석을 추가(현재, 2015. 10.21, 2014헌바266)하였다.
2015년에 내려진 이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사법 당국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변화가 생겼는가?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런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는가? ‘아동보호서비스 매뉴얼’을 구체화하거나 아동학대 사례 판정시 중복 학대가 아닌 정서 학대 신고인 경우 피해아동의 연령, 건강 상태, 행위자의 평소 성향이나 행위 당시의 태도, 행위의 반복성이나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어떤 지침이라도 내렸는가?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그런 변화는 없었다. 그 증거는 2015년 헌재 결정 이후에도 학계에서는 정서적 학대의 모호성, 사법적 판단의 비일관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동 정서학대 및 방임에 대한 구체적 행위나 빈도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이세원,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새로운 사법적 지향. 교정복지연구, 50, 2017).
“아동복지적 관점과 형법의 법적, 처벌적 관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아동학대 관련 법원의 판례는 형법상 학대의 개념보다 아동복지법상 학대의 개념을 넓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정념, 아동학대의 유형에 대한 새로운 정의, 저스티스, 166, 2018)
“정서학대 및 방임이 중복학대 포함하여 전체 학대발생 건수에 차지하는 비율에도 불구하고 수사와 사법과정에서 정서학대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의가 분명하지 않은 측면들로 인한 혼선이 존재한다” (이세원, 정서학대와 방임에 대한 사법적 판단, 교정복지연구, 53, 2018)
“아동 정서학대 및 방임에 대한 규정은 모호하고 불분명하여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의 이에 대한 수사나 판결에서도 일관성이 부족한 것이다.” (이세화 외, 국내외 아동학대 관련법과 처리절차에 반영된 아동 정서학대 및 방임의 정의, 아동복지연구, 18(1), 2020)
그런데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9월 20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대해 이미 교권 4법 개정으로 피해가 최소화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관련 기사) 이런 상황이라면 이번 회기에서 ‘아동복지법’ 개정은 물 건너 간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신발 끈을 묶어야 할 때인가?
다음은 아동권리보장원이 제시한 아동학대 체크리스트이다. 이 중 하나만 ‘예’로 체크되어서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신고하라는 매뉴얼이다. 이 모든 체크리스트의 항목은 가정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체크리스트를 교사의 정서적 학대 행위를 중심으로 수정한다면 4번, 13번 정도일 것이다.
4번. 아동이 교사에게 언어적, 정서적 위협을 당한다.
13번. 교사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보이고,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항목에 빈도나 강도를 구체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4번. 아동이 교사에게 (지속적으로) 언어적, 정서적 위협을 당한다.
13번. 교사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보이고, 학교에 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이렇게 빈도나 강도를 넣어보는 것은 ‘정당한 생활지도’의 ‘정당성’을 도대체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 정당성 여부를 갖고 지리한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것이 너무나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아동학대 면책이 아니다. 정당한 생활지도도 아동학대로 신고하여 삶을 망가뜨리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변화를 위해 보건복지부 소관 법률로 정서적 학대의 모호성 문제를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라도 규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률에 근거하여 정서 학대와 정당한 생활지도 판정의 구체적 판단 기준들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과한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는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이다. 일반인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내용이다. 2011년에 개정되었다.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서도 아동학대로 신고하여 몇 개월에서 몇 년을 시달리게 하는 이 현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면책은 아니더라도 ‘정당성’ 여부를 아동학대 신고 전에 생각해 볼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그렇게 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