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9992C9375FA382472E)
28.
퇴근길에 운전중이던 루나가 지나치던 길거리에서 익숙한 얼굴을 스치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집어 들어 전화를 거는 루나.
“여보세요?”
“어디야?”
“일하고 있지.”
“일? 아.. 아직 가게야?”
“응. 퇴근했어?”
“어... 지금 퇴근하는 길이야.”
“그럼 안전운전하고, 집에 도착해서 연락해.”
“알았어.”
분명 운전 중에 루나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우석이었다. 낯선 아리따운 여자와 다정히 걸어가며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한 얼굴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루나와의 통화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뱉어내는 모습을 확인하고, 루나는 본의 아니게 우석을 향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방금 내가 본 건 뭐니... 현우석. 결국 너도 다른 남자들과 다를바 없는거였던 거야...?’
* * * *
“귀찮게 왜 불러낸 거야?”
“친구 좋다는게 뭐냐. 한번만 도와줘라. 아무래도 남자인 나보단 여자인 네가 루나 마음을 더 잘 알거 아냐.”
“그래서 뭐, 뭘 어떻게 해주면 된다는 건데?”
“일단, 내가 프러포즈를 계획 중인데, 여자들은 막 레스토랑 하나 크게 빌려서 으리으리하게 꾸며놓고 노래불러주고, 보석 건네면서 해주는 거 기대하고 그래?”
“뭐, 그런 프러포즈를 꿈꾸는 여자들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론 부담스러워 하지.”
“그럼?”
원하는 답의 길을 찾지 못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느낌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선 우석을 향해 장난스럽게 한쪽 입 꼬리를 스윽 올리며 미소 짓던 여자는 예를 들어 ‘이런 것들’ 이라면서 행동으로 대신해서 표현을 해 보였고, 그 모습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면서 답답해하던 얼굴이 풀어지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순간의 모습을 루나가 스쳐지나가며 보게 된 것이다.
* * * *
[프러포즈-D.DAY]
과하진 않지만 특별한 날인 듯 해 보이는 차림의 우석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운전석에서 초조하게 루나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얼굴빛이 어두운 루나가 조수석 쪽으로 다가서서 차문을 열고 몸을 안으로 들인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
우석은 느낌상으로 알 수 있었다. 루나가 지금 무언가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만 갖고 더 캐묻지 않고 일단 계획해둔 장소로 핸들을 감아 돌리며 장소를 벗어난다.
한참을 달렸고,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공터에 도착한 우석. 영문을 모르는 루나는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우석이 그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뭐 어디 아는데 데려가는가 보다 싶어서 시선도 맞추지 않고, 차창 밖만 응시하고 앉아있다. 그 순간 루나의 생각이 복잡해지게 만드는 우석의 손길이 느껴져 애써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움찔거리는 행동을 우석에게 들키고 만다. 꼿꼿하게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애쓰는 루나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자신과 마주하고 앉도록 자세를 틀어주는 우석. 루나는 못이기는 척 우석의 손길을 따라 마주하고 앉는다.
“말 안할 거야?”
“...뭘...?”
“내가 이루나를 몰라? 왜 그러는 거야? 진짜 말 안할 거야?”
“...다 봤어.”
“어? 뭘?”
“어제 너.”
그제서야 우석은 애써 서프라이즈하게 이벤트를 하려고 둘러댔던 자신의 말 한마디가 루나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단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런 상황으로 자신에게 오해를 하고 보이는 행동이 이제 루나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커져 질투라는 감정을 갖기도 하는구나 싶어 내심 기분이 좋아지는 우석.
“이런 상황에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란 건 알지만... 나 왜 기분이 좋지?”
“뭐?”
“거짓말해서 오해한 거지?”
“.......”
“다 오늘을 위해서 놀래켜 주려고 그런 건데, 에휴... 어쩔 수 없네. 사실은 이루나한테 어떤 방법으로 프러포즈를 해야 받아줄까... 요 며칠 동안 나 엄청 고민이 많았거든. 그래서 조언 좀 구하려고 만났던 친구야.”
되묻진 않았지만 이미 루나의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이 우석을 향해 되묻듯 보고 있었다. 우석은 그제야 루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루나의 양쪽 뺨을 자신의 손으로 스윽 감싸듯 쥐다가 긴팔을 둘러 루나의 목을 감고 한참을 말없이 안은 채로 앉아있는다.
닿아있던 서로의 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계획했던 바의 프러포즈는 아니지만 진심을 다해 루나에게 마음을 전하는 우석.
“사랑하는 우리 자기. 사랑하는 내 사람 이루나. 내 말 한번만 진지하게 들어봐 줄래?”
“.......”
“어어?! 대답이 없으면 안 되는데?! 들어줄 거에요? 네?”
대답대신 조심스럽게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루나. 씨익 입꼬리를 울려 웃어보이던 우석이 생각을 정리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말을 이어나간다.
“호화롭게 살도록 해준단 말은 못하겠지만,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사랑받고 있단 생각이 들도록 평생을 내가 아끼고, 사랑해줄게. 남들보다 많이 부족할 수도 있고, 어쩌면 남들보다 많이 뒤처지는 위치에서 시작하게 될 수도 있지만 나 현우석을 믿고 내 여자가 되어줄래 이루나?”
긴장을 많이 한 듯 진정성 있게 말 한마디, 한마디를 끝까지 다 뱉어낸 우석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선뜻 대답을 내뱉지 못하고, 우석을 응시하고 있던 루나가 조심스럽게 우석에게 다가가 양팔을 뻗어 우석의 목을 감싸 안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고마워... 그동안 자기 맘 알면서도 밀어내고 외면해서 미안해. 나, 자기 믿고 한번 살아볼게. 사랑해...”
끝까지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듯 프러포즈한 당사자가 울컥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만다. 루나의 품에 안겨있는 우석은 ‘끅, 끅’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울음을 참아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터져버린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나온다.
“에그... 우리 자기가 이렇게 마음이 여렸었나? 왜 자꾸 울어...”
그치지 않는 눈물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내주면서 루나도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만다. 그런 루나의 눈을 보고 우석이 다시 루나를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아 한참을 토닥이다 나란히 마주하고 앉는다.
“손 줘봐.”
“응?”
우석의 말에 별 생각 없이 선뜻 손을 내밀어 보이고, 루나의 손을 잡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면서 조물거리던 우석이 재킷 주머니에 넣어둔 자그마한 상자를 꺼내들고 안에 들어있던 반지를 꺼내 루나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준다.
나눠 낀 반지가 차안 실내등에 빛을 내고, 서로를 마주하고 바라보는 눈빛속에 각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우석과 루나.
* * * *
우석의 프러포즈가 있고 그 후로 둘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우석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던 루나는 솔직하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털어놓는다. 결혼이란 것은 남녀 둘만 좋아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루나는 집안과 집안이 하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고, 그런 틀 안에서 원하지 않는 상황을 억지로 받아들이며 강제적으로 형성되는 가족은 의미 없다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가 됐건 우석의 가족이 반대를 한다면 자신이 힘들게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더라도 접어야 한다는 각오와 함께 늘어놓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잘 자란 것 같네. 루나씨 어머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인 것 같은데?!”
“네?! 가... 감사합니다.”
“우리 우석이가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있는 줄 오늘에서야 알았네. 마냥 막내둥이인줄만 알았더니... 기특하네.”
잔뜩 긴장하고 찾았던 우석의 부모님의 모습에 루나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인연을 맺고, 가족이 된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은 생각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