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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에 대한 성경적 증거
<계20:1~6>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엄밀히 말해서 천년왕국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다만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리라’는 구절에서 유추해서 천년왕국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만일 천년왕국이 있어야 한다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천년왕국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할 수가 있어야 한다. 왜 하나님의 구속사에 천년왕국이 있어야하는지, 왜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천년왕국을 도입해야 하는지를 성경 전체에 비추어 그 존재 이유가 부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지가 않다. 나름 목적성에 대해 설명하지만 오히려 난해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본문에서 이런 부분을 같이 다루고자 한다.
성경 전체가 비밀한 책이다. 문자로 읽는다고 이해되는 게 아니다. 성령에 의해 쓰여진 영의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해석이 되어진다. 그래서 택한 자에게만 열려지는(해석) 책이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니라(마13:11)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 받은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고(마11:27)
-안팍으로 쓰여진 일곱인으로 봉해진 책(계5:1)
일곱인으로 봉해진 것이란 하나님이 감추신 비밀한 내용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로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특히 계시록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다. 가령, 해 입은 여자가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달을 밟고 있다(계12),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계13), 이만 만의 황충 떼(계9) 등의 상징적 용어가 이해될 리 없고, 구원 받은 십사만 사천(계7,계14) 역시 단순한 숫자가 아님이 분명하다. 성령에 의한 계시가 필요할 뿐이다.
본문 계20장 역시 천년왕국도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임이 분명하다. 이 부분이 교회사에서 큰 난제가 되어 왔기에 신학자들이 이를 학설로 분류했다. 크게 3가지이다(전 천년설, 후 천년설, 무 천년설). 주님의 재림을 기준으로 천년왕국이 전에 펼쳐지느냐 후에 펼쳐지느냐 혹은 없느냐의 구분이다.
1. 후 천년설
예수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임한다는 이론이다. 세상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점차 개선, 정화된다는 주장인데,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그리고 점차 세상이 각박해지고 악해지니까 설득력이 소멸되어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2. 전 천년설(다시 두 가지 이론 -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 역사적 전 천년설로 나뉜다)
가.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
7년 대환란을 교회가 통과하지 않고 휴거된다는 이론이다. 주님의 공중재림 때에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 혼인잔치가 벌어지는데 이때 땅에서는 대환란의 기간이 진행된다는 이론이다. 이 대환란이 끝나면 주님과 교회가 땅에 내려와서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는 주장이다. 이때에 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자들이란 누구인가? 그 전에 신앙생활을 잘한 자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천년 동안 땅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25장에서 양으로 판정된 자들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기간이다. 그리고 천년이 끝나면 이들의 믿음을 시험키 위해 사단을 풀어서 미혹할 때에 이기는 자는 천국에, 지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복음을 훼손하는 무지일 뿐이다. 사단이 없는 상태에서 가지는 신앙은 거품일 뿐이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믿음의 시련을 통해 연단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 사단이 무저갱에 갇힌 상태에서 전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 거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 사람이 판단하고 결단해서 영접한다고 하니 이 또한 사람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구원으로서 복음에서 벗어난 이론이다.
이 가설의 더 큰 문제는, 왕 노릇하는 자들이란 순교한 믿음의 선진들의 영혼들과 주님의 재림 시에 주님처럼 영광의 모습으로 변모한 신령체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땅의 백성들은 모두 육체를 입고 있는 자들이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이론인가? 신령체와 육신의 사람이 섞여 사는 세계가 말이 되는가? 육체를 가진 자들 위에서 군림하는 보상이 그리 좋은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상급이 그런 허접한 것일까? 신령한 자들이 무엇이 미련이 남아서 육을 가진 사람 위에서 철장권세를 휘두르나?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나. 역사적 전 천년설
7년 대환란을 교회가 통과한다는 이론이다. 이 때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한단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시에 앞선 순교자들과 환란시의 순교자들이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재림시에 택한 백성들이 신령체로 변모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천년왕국 안에서 천년동안 혼인잔치가 벌어진다는 이론이다. 거기는 사자와 송아지가 친구가 되고 아기와 뱀이 함께 노는 곳이란다(사11장, 65장의 문자적인 성취). 그리고 천년이 차면 옛 하늘과 옛 땅에서 살던 자들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하고나서 사단은 지옥에 처해진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의 문제점은 더 심각하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옛 하늘과 옛 땅이 천년동안 따로 공존한단다. 마치 1층과 2층 집처럼...그리고 천년왕국의 존재이유가 복 낙원이라고 한다. 즉 아담이 선악과 먹은 죄로 추방당한 실낙원을 다시 복 낙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선악과를 먹고 죄 아래 가두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는데서 나온 허접한 이론이다. 더군다나 무엇 때문에 마귀와 땅의 백성들을 살려두었다가 천년 후에 심판하여 지옥에 보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여기저기에 나와 있는 성경의 문자적 내용을 조합한 이론에 불과하다.
한 가지 짚고 가야할 사항은, 아담이 선악과 먹고 죄 아래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설계에 창세전부터 예정된 것이다. 이것을 로마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롬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초월하기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차원이다. 천국은 은혜의 나라이다. 사람의 공로가 단 1도 개입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가는 곳이다. 그래서 택한 자들을 먼저 죄 아래 가두고 십자가 은혜로 구원시키시는 것이다. 이들이 천국에 갔을 때에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양케 하려는 게 창조목적이다.
선악과 따먹고 에덴 밖으로 추방된 아담이 생명과를 먹지 못하도록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들로 지키게 했다. 그럼 언제 어떻게 그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의 피 흘리심으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두루 도는 화염검의 실제가 십자가 사건이었다. 어린양의 번제물이 불태워지는 곳이 번제단이고 이것의 실제가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 아니던가? 휘장에는 그룹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찢어진 휘장은 곧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육체였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처럼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던 우리가 예수의 대속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된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 복 낙원이다. 창세전 택함을 입은 자들이 역사 속에서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이다. 이 세상은 이렇게 하나님의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가두리 양식장이다. 그 목적인 잃어버린 양이 다 찾아지면 이 세상을 더 이상 필요가 없음으로 불살라질 것이다.
사단은 이런 구원의 여정에서 악역으로 쓰임 받다가 구원 얻을 자가 다 채워지면 세상과 함께 용도폐기 될 것이다. 그의 갈 곳은 지옥이다. 그러므로 문자적인 천년왕국을 이 땅에서 펼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자적인 천년왕국설은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배치되는 사상일 뿐이다. 참고로 431년에 있었던 에베소 공의회에서 천년왕국설은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다. 그리고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의 신학자들도 천년왕국설을 이단시 하였다.
3, 무 천년설
그래서 무 천년설이 가장 성경적이고 진리에 부합한 이론이다. 지금부터 본문을 통해 이 부분을 살펴보자.
계20:1~6) 본문에서 ‘천년’ 단어가 5번 나온다. 우선 천년의 개념 파악이 중요한데, 천년의 의미를 2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영원의 개념이다. 천은 10의 10의 10이다. 충만의 충만의 충만으로서 영원을 상징한다. 사람의 차원을 넘어서는 영역을 암시한다. 가령 창5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수명은 아무리 살아도 천년을 넘지 못한다. 가장 장수한 므두셀라가 969살에 죽었다. 여기에서 힌트를 찾아낼 수 있다. 천년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상징이다. 즉 천년이란 영생 혹은 부활생명의 의미가 있다.
둘째, 천년이란 주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기간이다. 주님의 초림을 성경을 세상 끝에 오셨다고 한다(히9). 그래서 십자가에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완전히 끝장 내셨다. 그때부터 복음을 믿는 자들은 묵시의 세계인 영원의 세계, 영생의 세계에서 사는 자가 된다. 주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 하늘에 앉혀졌지 않은가?(엡2:6).
그러나 즉시 데려가시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는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깨닫고 오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이제 갓 태어난 영적 어린애이다. 날마다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의 심판이 아직 유보되는 다음 이유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 찾아지면 순식간에 불로 소멸될 것이다. 이렇게 2가지 개념으로 ‘천년’을 볼 수 있다.
<1~2절> 하늘로서 내려오는 무저갱 열쇠 가진 천사~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사단을 잡아 열쇠와 큰 쇠사슬로 결박했다는 말씀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사단의 사망권세를 깨뜨렸다는 말이다. 이는 창3:15절의 성취이다.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가 뱀인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주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신음하는 자기백성들을 해방시켜 자유케 하려고 오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다니! 이런 우주적 사건이 어디 있을까? 인간이 가장 두려워 떠는 것이 바로 죽음인데, 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니 이런 기쁜 소식이 세상천지에 어데 있는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사망이 손을 대지 못한다. 이처럼 사단의 사망권세가 깨졌다는 것을 큰 쇠사슬로 묶어 무저갱에 던지고 열쇠로 잠그었다고 하는 것이다.
<요일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사단)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사단의 집인 세상에서 죄와 사망 권세에 갇혀 있던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사단을 결박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묵시 속에서 하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 할렐루야!
<마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여기서 강한 자는 사단, 더 강한 자는 주님, 세간은 성도들
첫 아담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어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우리는 사단에 속해 사망이 왕 노릇하던 자였다. 죄의 올가미에 걸려 죄로 신음하며 사망의 비참함에 갇혀서 소망이 없이 살아가던 존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흰 눈보다 더 깨끗이 되었으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으며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환호성을 외치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에 연합하여 영원히 산자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하늘에 앉혀진 하늘의 시민권자이다.
<요12:31~33>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세상 임금인 사단을 성도의 심령 안에서 쫓아내시고 그를 주님께로 이끌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주님의 대속으로 죄인 나를 의롭게 여기시니 평강이요 기쁨이 아닌가? 이처럼 좋은 일이 어데 있을까? 영생이 보장되고 천국이 보장된 자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 오늘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아멘이 된다. 그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가진 자가 성도이다. 이런 심령의 만족과 즐거움을 일컬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한다’고 하는 것이다.
2절, 천년동안 결박하여~
앞서서 천년을 2가지로 개념정리한 대로 적용할 수 있다. 우선, 천년을 주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로 해석해 보자. 예수의 십자가에서 사망 권세가 결박되어 있다가 재림 때에는 그 역할이 끝나면 마침내 사단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때까지 사단은 믿는 자들을 손대지 못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기에 성도가 비록 죄를 짓는다 해도 취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천년을 하나님의 생명(영생, 부활생명)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망의 권세가 힘없이 결박당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둘 다 해석이 가능하다.
사단은 바깥 어디에 있는 게 아니다. 선악과 먹고 태어난 모든 사람의 안에 있다. 그래서 바울이 롬7장에서 탄식하기를 ‘원하는바 선을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않는바 악을 행하는 것은 내 속에 두 법인,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있기 때문인데, 악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죄로다,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고 한탄을 했다. 죄는 마귀의 인격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아비 마귀를 닮고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래서 우리를 그 사단의 본성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우리 안으로 오신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나도 같이 죽음으로써 더 이상 율법과 죄가 나를 만지지도 못하게 되었다. 소속이 바뀐 것이다.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사단의 소속에서 그리스도의 소속으로...)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성령이 임하면 내 안에서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전쟁이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을 이기랴? 나의 옛사람을 하나 둘씩 성령께서 차압해서 깨뜨리고 부수어 가신다. 마침내 육신은 후패해져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된다. 끝내는 육적인 것을 거의 다 내려놓게 되고 오직 영혼은 하나님으로만 기쁨과 만족함으로 살게 된다. 이처럼 성도 각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해 가시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총칭하여 사단을 무저갱에 가둔다고 한 것이다(이는 거듭난 성도에게서만 일어나는 역사임)
예를 들면, 세상 욕심으로 가득했던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하는 와중에서도 세상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결국 환도뼈가 부러지고, 그래도 세상 미련이 남아 있으니까 세겜에서 외동딸 디나가 겁탈당하고, 이로 인해 온 가문이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하나 하나님의 손길로 극적인 탈출을 하게 된다. 언약 백성은 세겜(세상)에 머물면 안된다. 벧엘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듯 혹독한 과정들을 거쳐서야 야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성되어 가는 것이다. 성도는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약속받은 자들이다. 이게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공연히 고집부리다가 거덜 나느니 미리미리 항복하며 사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3절,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그 후에는~ 헬라어는 ‘메타’이다. 뜻은 ‘병행해서’이다. 시간적인 후가 아니라 천년의 진행과 더불어서 사단의 활동도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게 사단에게 허락된 일이다. 욥의 경우에서처럼, 성도의 구원을 막지는 못하나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 원흉이다. 본문에서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은 택한 백성을 괴롭게는 하나 구원을 막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고난과 역경이 성도의 구원 과정에서 필요하기에 악역을 하는 사단의 활동이 그 천년 동안 병행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의 운명은 토사구팽일 뿐이다.
4절,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 베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이 살아서~
구약과 신약의 모든 순교자들이 다 하나님 안에서 산자들이다(여호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이다. 마22:32) 그리고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그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란 매 시대의 성도들을 말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은 짐승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경배하지도 표를 받지도 않는다. 즉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안에서 순교한 자들이나 지금 십자가 복음을 듣고 죄와 사망 가운데서 살아난 자들이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산 자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살아있는 자들이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눅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4절,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러므로 살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된 자들은 스스로 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평강이 그들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안식과 평안에 압도되어 산다. 그야말로 지신의 구원을 위해 일한 것이 전혀 없거늘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거저 받은 구원이다. 그래서 감격과 감사가 넘쳐흐르고 찬양이 솟구치는 삶이다. 눈을 떠도 감사 눈을 감아도 감사다. 세상만사가 초개처럼 느껴진다. 하늘의 신령한 복인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과 세상의 가치를 밟고 초월하여 만족과 기쁨으로 사는 것을 함축적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한다’고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망이 왕 노릇 했다. 세상의 가치에 치어 날마다 그것 없으면 죽는 줄 알고 소유와 성공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고군분투하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게 바로 사망에 잡혀 사망이 왕 노릇 하던 모습이다. 죄의 종이 되어 세상 가치에 굴복하여 사는 삶을 말한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하다. 사망의 큰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알지 못하고 사는 자들의 정체성이 바로 사단에게 사로잡혀 사는 인생들 아닌가? 여기서 누가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큰 은혜를 받는 자들은 창세전 택한 자일 수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5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함~)
여기서도 천년을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주의 재림 때까지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재림 때에는 백보좌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기 위해 몸이 살아날 것이다. 이게 심판의 부활이다(요5). 둘째는, 천년을 부활생명으로 해석한다.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선악과 먹고 영이 죽은 상태인데 이들이 택함 받지 못하여 복음을 믿지 않아서 영혼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이 두 가지의 해석은 실제는 같은 맥락으로 유사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이란 어떤 나라(나라=왕국)인가? 사단의 매임에서 해방된 자들이 경험하는 기쁨과 만족이 넘치는 세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삶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이다. 지금 이런 체험이 없는 자는 미래의 천국도 영생도 없다. 현재적 천국이 없다면 가짜라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줄기차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친다.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지를 보라는 것이다. 주와 한 영이 된 자는 행복이 겨워 밖으로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누가 이 기쁨을 막을 수 있는가?
* 이는 첫째 부활이라~
주와 함께 연합하여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함께 부활에 연합한 자들을 말한다(롬6). 첫 아담 안에서는 다 죽은 자들이다. 그러나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산 자가 되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러니 심판이 없고 둘째 사망(불못)도 없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가 저주가 되어 모든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공의인 율법의 요구를 다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6절,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너무도 익숙한 구절이 아닌가? 이미 베드로 사도가 외쳤던 말씀이다.
<벧전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보화 같은 말씀들로 즐비하다. 이 말씀들이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믿어지는가? 하나님의 소유됨이 정말 믿어지시나? 왕이요 제사장이 믿어지시나? 보시라 왕이다. 왕이 누리는 특권이 무엇이던가? 바로 자유와 안식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의 왕이다. 내가 누구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주의 사랑에 압도되어 다스림을 받는 왕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왕이다. 주님이 나의 생명, 방패, 피난처, 위로,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 주님으로 대 만족이요 영원한 기쁨의 지속이다. 그런 면에서 구원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왕이다. 주님은 왕 중의 왕이시니 이름하여 만왕의 왕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란 죄사함을 얻도록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신 어린양 예수를 증언하는 자라는 말이다. 망극한 은혜 받은 자는 그 은혜를 토해내게 되어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이시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사랑의 빚진 자들이다. 남은 삶을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 이게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다.
또한 전에는 사단의 종이었다가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임이 믿어지는가? 이 모든 근거는 자신이 행함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 때문이니 이 믿음은 견고하다. 내가 나의 열심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게 참된 믿음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흔들림이 없다.
계시록 중의 본문(계20:1~6)은 성경을 마무리 하면서 성경 전체를 함축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설명하는 삽입 구절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를 최적화하여 표출하실 분이 바로 아들 예수이심을 강조하며 부연 설명하는 내용이다. 줄이면 성경의 주인공은 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이시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책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모든 것은 다른 복음이요 이단이다.
이 핵심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달은 자라면 문자적인 천년왕국설이 얼마나 비진리이고 헛된 개념인지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고도 고집한다면 당달봉사이다. (이 부분에 대해 아직도 증거할 것이 넘치지만 이쯤에서 줄인다. 부디 깨닫기를 주님께 기도하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