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에스라2장1~70절
제목 : 믿음으로 떠나온 이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일반 백성들(3~35),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비롯해 성전에서 섬기던 사람들(36~58절), 가계를 알 수 없는 사람들(59~63절)의 명단이 소개 됩니다.
1. 귀한 족속의 명단의 수(1~58절)
1)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들(1~2절)
(1) 바벨론에서 유다에 있는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온 일들이 있었음을 언급합니다(1절).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본장과 1장 과의 문맥 연결은 다소 어색합니다 - 왜냐하면 1장에서는 고레스가 성전기명들을 세스바살에게 넘긴 사실이 기록된 반면에(1:8) 본장 초두에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포로민들이 귀환하는 장면이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난점은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을 동일인로 본다면 쉽게 해결됩니다(1:8 주석 참조).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 – 유다 사람들은 세 차례, 즉 B.C. 605년과 597년 그리고 586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그곳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 및 귀족 그리고 제사장 계급 혹은 기술자 등이었습니다(왕하 24:14; 25:6, 7; 단 1:3).
자손들 중에서. – 이것은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 모두가 돌아오지는 아니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 `놓임을 받고'는 원문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안은 번역자의 의도적 삽입 문구입니다.
한편, `돌아와'(슈브)는 부당하게 빼앗긴 물건을 돌려받을 때 사용되기도 한 단어입니다(창 20:7; 출 21:34; 삼상 6:3; 삼하 9:7).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행선지가 오직 예루살렘만은 아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후 유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었습니다(느 3:2-19; 7:20-35).
한편 `도'(메디나)는 당시 유다가 독립 국가가 아닌 페르시아의 일개 피정복지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단어입니다(느 11:3).
아울러 이 단어는 유다가 인접 지역에 소속되었다가 그나마 그 자체의 행정단위로 새롭게 인정받은 상태임을 시사합니다(Kidnr).
한편 `각기 본성'은 문자적으로 `각각의 그의 성읍'이란 의미입니다.
즉, 원래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을 말합니다.
(2) 유대인 공동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12명의 지도자들입니다(2절).
“[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
스룹바벨 - 이 이름의 의미는 `바벨론의 자손', 혹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 입니다.
이 사람은 `스알디엘'의 아들이며(스 3:2; 학 1:1). 여호야긴 왕의 손자(마 1:12; 눅3:27)입니다.
역대상 3:19에서 그가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 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스알디엘'이 후사 없이 죽은 관계로 그의 동생인 `브다야'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법을 좇아서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스룹바벨'을 낳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신25:5-10).
이에 따라 `스룹바벨'은 실제적으로는 역대상 3:19의 언급처럼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아들이 되는 셈입니다.
예수아 -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보다 후기 형태로서(Schultz), `여호수아' 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을 완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5:2). 그의 중조부는 대제사장 스라야로서(대상 6:14).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살해당하였다(왕하 25:18-21).한편 `예수아'의 부친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사닥'입니다(3:2; 대상 6:15; 학 1:1).
느헤미야 -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심'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약 한 세기 후에 활약했던 `느헤미야'와는 별개의 인물입니다(느 3:16; 7:7)
스라야 - `여호와께서 주관자가 되셨다' 라는 의미입니다.
느 7:7 에서는 `아사랴'로나옵니다.
르엘라야 - 느 7:7 에서는 `여호와께서 천둥을 치셨다'라는 의미를 갖는(Rudolph) `라아먀'로 나옵니다.
`르엘라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모르드개 - 바벨론의 주신(主神) `말둑'에서 기원한 바벨론식 이름입니다.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에 2:5)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입니다.
빌산 - `묻는 사람' 혹은 `그들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미스발 - `수효'(數爻)의 의미로서, 느 7:7 에서는 `미스베렛'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비그왜 - 페르시아식인 이 이름의 의미는 `행복스럽다'입니다.
한 가족의 족장인 그는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약 2천 명의 자손을 데리고 왔습니다(14절; 느 7:19).
르훔 - `자비로운'이라는 뜻입니다. 느 7:7에서는 `느훔'으로 나옵니다.
바아나 - `압제'(壓制)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평행 구절인 느 7:7과 외경 에스드라상 5:8 에서도 나옵니다.
2) 일반 백성들(3~35절)
(1) 가문별 구분(3~20절)
“[3]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4]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5]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7]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8] 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9]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0] 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11]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이 천이백이십이 명이요[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육 명이요 [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17]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18] 요라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19] 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0] 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3]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
바로스 자손 - `바로스'가 언제 살았던 사람인지 또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무튼 `바로스'는 가계의 이름입니다.
“[4]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
스바댜 자손 - `스바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본서 8:8과 외경 에스드라상 8:34 에서도 나옵니다.
“[5]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아라 자손 - `아라'는 `여행자'라는 뜻입니다.
느 7:10과 외경 에스드라상 5:10에도 나옵니다.
“[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 `바핫모압'은 `모압의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모압 지방에서 관리 생활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자손으로서 바벨론에 남아 있던 200 명이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기도 하였습니다(스 8:4).
예수아와 요압 자손 - 당시 `바핫모압 자손'을 구성했던 두 가족인 듯합니다.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와 동명 이인입니다(2절).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자손 중의 일부는 후에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습니다(느 7:11).
“[7]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
엘람 자손 - `엘람' 은 `높은 지대'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고라 자손, 곧 레위인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대상 26:3; 느 12:42)
“[8] 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삿두 자손 - `삿두'는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삿두 자손' 의 일부는 이방 여인과 통혼하기는 했으나, 에스라의 신앙적 권면에 따라 그들과 헤어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10:27)
“[9]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삭개 자손 - `삭개'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스가랴'의 축약형인 듯합니다.
바로 이 `삭개'는 신약 시대의 `삭개오'라는 이름으로 변천하였습니다(마카비하 10:19; 눅 19:2). 이 이름은 느 7:14 에도 나옵니다.
특히 외경 에스드라상 5:12 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코르베'로 되어 있습니다.
“[10] 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바니 자손 - `바니'는 `세우다'의 의미입니다.
느 7:15과 외경 에스드라상 5:12에도나옵니다.
그러나 느 7:15 에서 만은 `빈누이'로 되어있습니다.
“[11]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브배 자손 - `브배'는 `아버지와 같은' 혹은 `자애로운'의 의미입니다.
“[12] 아스갓 자손이 천이백이십이 명이요”
아스갓 자손 - '아스갓'은 '하나님은 강하시다' 의 뜻입니다.
이 '아스갓' 자손의 나머지는 에스라가 귀환할 때 함께 팔레스틴으로 돌아왔습니다.
“[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아도니감 자손 - `아도니감'은 `주꼐서 일어나셨다' 의 의미입니다.
이 자손의 일부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습니다(8:13).
“ [14] 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육 명이요”
비그왜 자손 - `비그왜'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아딘 자손 - `아딘'은 `즐거운'이란 뜻입니다.
이 아딘 자손은 후에 에스라가 제창한 율법 준수 운동에 인(印)을 침으로써 참여하였습니다(8:6; 느 7:20; 10:16)
“[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아멜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 - 히브리 원문대로 할 경우, `히스기야를 통한 아델자손'으로 번역됩니다.
여기서 `히스기야'는 유다의 명군(名君) `히스기야' 와는 별개의 인물이며 `아델 자손'은 42절의 `아델 자손'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그 의미는 `절름발이' 혹은 `왼손잡이'입니다.
“[17]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베세 자손 - `베새'는 `짓밟힌'이란 의미입니다.
이 `베새 자손' 은 레위인들로서, 성전에서 비교적 비천한 일을 담당했던 것 같습니다(49절).
“[18] 요라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요라 자손 - `요라'는 `가을비'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이 `요라'는 느 7:24에서는 `하립'으로 불리워졌습니다.
“[19] 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하숨 자손 - `하숨'은 `넓은 코'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이 `하숨'은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옆에 섰었던 `하숨'과는 구별되어야합니다(느 7:22; 8:4).
“[20] 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깁발 자손 - `깁발'은 `크다'란 의미입니다.
느 7:25에는 `기브온'이라는 지명으로나옵니다.
그러므로 `깁발'을 `기브온'이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지역별 구분(21~35절)
여기서부터 35절까지에서는 귀환자들이 출신지별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21] 베들레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22] 느도바 사람이 오십육 명이요 [23] 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4]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6]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7] 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28]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9] 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30] 막비스 자손이 백오십육 명이요 [31] 다른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32] 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34]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5] 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베들레헴 사람(21절) - `베들레헴'은 `떡의 집'이라는 의미이며 이 성읍은 유다 땅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베들레헴 사람'은 유다 지파의 후예들입니다.
느도바 사람(22절) - `느도바'는 `떨어짐'이란 의미입니다.
이 성읍은 `베들레헴' 남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느도바 사람'도 유다 지파에 속했습니다.
아나돗 사람(23절) -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지경 중에서 레위 사람들을 위하여 할당된 6개 성읍 중의 하나였습니다(수 21:18).
이 `아나돗'이라는 지명은 가나안 족속의 여신 `아나드'(Anath)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따라서 이는 이 성읍에서 `아나드' 여신에 대한 숭배가 성했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 곳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합니다(렘 1:1).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4.8Km 지점입니다.
아스마엣 자손(24절) - `아스마엣'은 `죽음은 강하다'란 뜻입니다.
예루살렘 북동쪽 약 2.5Km 지점의 베냐민 직경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25절) - `기랴다림'은 `여러 성읍 중의 성읍'의 의미로서, 베냐민 지경의 남단에 위치한 `기럇여아림'을 말합니다(삼상 6:21; 7:1).
`그비라'는 `마을' 혹은 `작은 촌락'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서쪽 약 5Km지점이며,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수 9:17).
그리고 `브에롯'은 `우물들'이라는 뜻으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남쪽 약 2.5Km 지점입니다(Aharoni).
라마와 게바 자손(26절) - `라마'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8.8Km이며,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습니다(수 18:25).
그리고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였습니다(삼상 7:16,17; 19:18-24).
한편 `게바'는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으로서(수 18:24,28) 예루살렘 북쪽 약 11 Km 그리고 기브아북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직후 남국의 아사왕은 라마에서 가져온 돌로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도 하였었습니다(왕상 15:22; 대하 16:6).
믹마스 사람(27절) - `믹마스'는 `감추어진'이란 뜻으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9.6Km 지점입니다.
벧엘과 아이 사람(28절) -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창 28:19,22).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9.2 Km 지점에 위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언덕 정상 가까이에는 매우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거주지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한편, `아이'는 `무더기' 혹은 `폐허'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3
.2 Km 지점입니다(수 7:2).
느보 자손(29절) - `느보'는 `놉'의 다른 지명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봐야되는 까닭은 본문단(21-35절), 특히 24-35절 베냐민 지경에 속한 성읍들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느보'를 베냐민 땅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 `놉'으로 봅니다(삼상 21:1).
이 성읍의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4.2Km 지점이고 그의미는 `번창해짐'입니다.
막비스 자손(30절) - `막비스'는 그 지명의 뜻이나 그 성읍의 위치가 모두 불분명합니다.
다만 베냐민 지파에 속했던 성읍 정도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엘람 자손(31절) - 이것은 7절의 `엘람 자손'과 동일시 되어 왔습니다.
그 까닭은 양쪽의 수효가 동일하게 1,254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같이 봐야 될 더 분명한 근거는 없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다른'이라는 형용사를 특별히 사용한 까닭은, 7 절의 `엘람'이
라는 `인명'과 구별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림 자손(32절)- `하림'은 `바친', 혹은 `봉헌된'이란 의미이며 그 성읍의 위치는 분명치않습니다.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33절) - `로드'는 샤론 평야의 남쪽이며, 욥바 동남쪽 약 18Km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편, `하딧'은 `로드' 북동쪽 약 6.2Km에 위치해 있고, `오노'는 `로드'의 북서쪽 약 10.8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편이 세 성읍들의 지명이 갖는 의미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리고 자손(34절) - `여리고'는 `향기의 도시', `달(月)의 고을' 그리고 `종려 나무의 성'등의 의미입니다.
올브라이트(Albright) 교수는 그중에서 `달의 고을'을 맞는 것으로보고 `여리고'라는 지명을 고대 셈족의 월신(月神), 야리(Yarih) 숭배와 관련시킵니다
한편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동쪽 약 27Km 지점입니다.
스나아 자손(35절) - `스나아'의 의미는 `가시가 많은'입니다.
그 위치는 여리고 근방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편, 이 `스나아 자손'은 후에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조력하였습니다(느 3:3).
3) 제사장들과 레위인들(36~42절)
(1) 제사장들(36~39절)
“[36]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37] 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38] 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39] 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더라”
비록 이들은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들 이었지만, 그들이 담당하는 직분상,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신분상 따로 구별되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36절) - 이것은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대 제사장예수아가 속했던 일족이었습니다.
여기의 `예수아의 집'은 `여다야 자손' 이 대제사장의 가문임을 밝히기 위한 특별한 언급입니다.
아울러 `예수아의 집' 은 `여다야 자손'이라는 복합적 명칭은, 포로로 끌려가기 전의 바로 그 대제사장 가문이 포로 후의 대제사장 예수아의 혈통적 뿌리였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Fensham).
한편, `여다야'는 `하나님이 아셨다'의 의미로서 그는 다윗에 의해서 두번째로 제사장에 임명된 사람입니다(대상24:7).
임멜 자손(37절) - `임멜'은 `어린 양'의 의미입니다.
그는 다윗에 의하여 당시 24반차로 편성된 제사장 직책 중 16번째의 반차에 배정되었습니다.
그 이래로 그는 그 반차에 속하는 제사장들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포로 귀환 후 그의 후손인 `임멜자손' 중 `하나니' 와 `스바댜'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처에 따라 그녀들을 다시 내쫓기도 하였습니다(10:19, 20)
바스훌 자손(38절)- `바스훌' 은 분명치는 않으나, 애굽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서 `호루스(Horus) 신의 몫'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의 이 `바스훌'은 제사장 `임멜'의 아들로만 명시되어 있고, 역대상의 제사장들 명단에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스훌 자손'은 독립된 가문은 아니었으나, 포로 귀환 후 그 당시의 형편상 별도의 반차에 배정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Keil).
여기의 이 `바스훌 자손' 중의 일부도 다른 자손들 처럼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이들의 조상인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며 심지어 가두기까지 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있습니다(렘 20:1-6).
하림 자손(39절) - `하림'은 `바친' 혹은 `봉헌된'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하림'은 다윗에 의하여 세 번째의 반차에 배정된 제사장이었습니다(대상 24:8).
이 사람의 후손도 에스라 시절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우(愚)를 범했습니다(10:21)
(2) 레위인들(40~42절)
“[40]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41]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이십팔 명이요 [42]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구 명이었더라”
=====2:40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일정한 기업올 받지 못한 채 다른 지파들중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민 35:2-7).
그러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자, 북쪽 땅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 유다로 넘어왔고(대하 11:16), 이에 따라 레위 사람들 전체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만일 북국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북국의 멸망과 함께 앗수르로 끌려가서 다시 본토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왕하 17:23).
호다위야 자손 (40절)- `호다위야' 는 `여호와는 뛰어나시다' 라는 의미를 갖는`호드야'(느 7:43) 와 동일 인물입니다.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40절) - 이들은 `호다위야 자손'에 속하는 두 자손들이다. 여기서 `예수아'는 추측컨대 히스기야 당시에 십일조를 관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대하 31:15).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2절).
노래하는...아삽 자손(41절) - 노래하는 것도 레위인의 직무 중의 하나였습니다(대상 25:1-7)
따라서 `아삽 자손'은 레위인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아삽 자손'을 별도로 구분시켜 언급한 까닭은 그 직분의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한편,`아삽'은 `모으는 자' 혹은 `수집자'란 뜻입니다.
이 사람은 다윗과 솔로몬시절에 찬양의 제사를 주관하였고(대상16:4,5,7,37), 많은 시편을 짓는 등 이스라엘의 음악 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네 아들과 함께 성전 봉헌식에 관계하기도 하였습니다(대하 5:12)
문지기의 자손들(42절) - 이 레위인들은 성전을 지키는 독톡한 직분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대상 9;17-17; 시 84:10).
그들의 다른 임무 중의 하나는 창고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대상9:26).
살룸 - `보상된' 혹은 `보상'의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렘 35:4 에 언급되어 있는`살룸'과 동일 인물입니다.
그는 고레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들도 함께 문지기의 일을 하였습니다.
아델 - `절름발이 혹은 `왼손잡이'란 뜻입니다.
달문 - `빛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살룸'의 형제였습니다(대상 9:17).
악굽 - `추적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도 `살룸'의 형제였습니다.
하디다 - `탐색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소배 - `포로로 데려가는'이라는 의미입니다.
4) 성전의 일꾼들(43~58절)
(1) 느디님 사람들(43~54절)
“[43]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4]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45]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46]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47]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48]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49]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50]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51]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2]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3]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4]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① 시하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43절)
`느디님'은 `주어진 자들'이란 의미입니다.
영어개역 성경(RSV)은 이를 `성전 수종자'(temple servant)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전쟁 포로의 후예들 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민 31:25-47).
한편 여호수아시대에 이스라엘에 의해서 멸망받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여호수아를 기만했던 기브온 족속들은 나무 패며 물긷는 자들이 되었습니다(수 9:23-27).
`주어진 자들'이라는 의미인 `느디님'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졌듯이 (민 8:16), 이들도 레위인들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그 레위인들에게 드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8:20).
시하 자손 - 이들도 혈통상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이 이름이 이스라엘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그 주변처, 즉 애굽이나 아람 계통 민족에게서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수바 자손 - `하수바'는 `날씬'의 의미를 갖는 아랍어 풍(風)의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도 혈통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듯합니다.
답바옷 자손 - `답바옷'은 `도장' 혹은 `반지'의 의미입니다.
② 게르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44절)
게로스 자손 - `게로스'는 `발목이 굽은'의 의미입니다.
시아하 자손 -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바논 자손 - `바논' 은 `구속'(球束)이란 뜻입니다.
③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45절)
르바나 자손 - `르바나'는 `옷을 입다'란 의미입니다.
하가바 자손 - `하가바'는 `여치' 혹은 `메뚜기'란 뜻입니다.
악굽 자손 - `악굽'이라는 이름은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도 발견됩니다(42절). 이것은 이 `악굽 자손'이 문지기의 직분을 수행하던 `악굽'가문의 레위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④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46절)
하갑 자손 - `하갑'은 `메뚜기'란 뜻입니다.
사믈래 자손 - `사믈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난 자손 - `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입니다.
⑤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47절)
깃델 자손 - `깃델'은 `건장한'이란 의미입니다.
가할 자손 - `가할'은 `잠복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르아야 자손 - `르아야'는 `하나님께서 보셨다'란 의미입니다
⑥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48절)
르신 자손 - `르신'이라는 이름은 `견고한' 혹은 `안정된'의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에게서 많이 발견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은 다메섹 왕 `르신'일 것입니다(왕하 15:37; 16:5-9).
느고다 자손 - `느고다'는 `구별된'의 의미입니다.
갓삼 자손 - `갓삼'은 `삼키는 자'의 의미입니다.
⑦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49절)
웃사 자손 - `웃사'는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세아 자손 - `바세아'는 `절름발이'라는 의미입니다.
베새 자손 - 이에 대해서는 17절 주석을 참조하라.
⑧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50절)
아스나 자손 - `아스나'는 `나(Nah)에게 속한 자'란 뜻입니다.
`나'(Nah)가 애굽의 신임을 볼 때, `아스나'는 애굽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합니다.
므우님 자손 - `므우님'은 에돔의 동쪽 그리고 사해의 동남쪽에 거주하던 소수민족의 명칭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의 `므우님'은 그 소수 민족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합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거주'입니다.
추측컨대 이들은 웃시야 왕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포로로 끌려온 자들일 것입니다(Schultz, 대하 26:7).
느부심 자손 - `느부심'은 이스마엘 족속의 한 분파였던 `나비스 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창 25:15).
⑨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51절)
박북 - `병'(甁)이란 의미입니다.
하그바 - `구부러진'이란 의미입니다.
할홀 - `갈가마귀'란 뜻입니다.
⑩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52절)
바슬릇 - `껍질을 벗김'이란 뜻입니다.
므히다 - `노예로 산'이란 의미입니다.
하르사 - `벙어리의' 혹은 `말이 없는'의 의미입니다.
⑪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53절)
바르고스 - `코스(Kos)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코스'가 아카디아 및 아람 계통의 신(神)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바르고스'는 이방인임이 분명합니다.
시스라 자손 - `시스라'는 `전장'(戰場)이란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가 사사 바락과 드보라에 의해 궤멸당했던 가나안 동맹군의 지도자 이름과 동일하다는 점에서(삿 4:1-22; 5:19-31), 이 `시스라'는 가나안족 계통의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데마 자손 - 이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⑫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54절)
느시야 - `뛰어남'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디바 - `유년기에 포로로 잡혔다'는 뜻입니다.
(2)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55~58절)
“[55]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56]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7]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이들의 일부는 틀림없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후예일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곳 원주민을 자신의 역군으로 삼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왕상 9:20, 21).
또한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 중 상당수는, 솔로몬의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온 자들의 후손들이었을 것입니다(Fensham, Brockington).
이러한 견해는, 앗수르 왕 산헤립(B.C. 705-681)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대국의 국왕이 타민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신 혹은 자국의 신(神)에게 봉사토록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풍습이었다는 사실(Mendelsohn, Slavery in the Ancient Near East ; Meyer) 에 의해서도 뒷받침됩니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산헤립은 타민족과의 전투 중 한꺼번에 41 명을 붙
잡아 가서 그들을 자신의 신 `자바바'(Zababa)에게 봉사토록 하였다고 합니다.
①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55절)
소대 - `배회하는'이란 의미입니다.
하소베렛 - `서기관'이란 뜻입닌다.
브루다 - `분산'의 의미입니다.
②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56절)
야알라 - `야생 염소'란 의미입니다.
다르곤 - `거친' 혹은 `엄격한'이란 뜻입니다.
깃델 - `건장한'이란 의미입니다.
이 자손들은 `느디님 자손'들 가운데서도 발견됩니다(47절).
③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57절).
스바댜 -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동일한 이름이 4절에도 언급되지만 본절의 `스바댜' 와는 구별 되어야 합니다.
하딜 - `동요'(動搖)란 뜻입니다.
보게렛하스바임 - `가젤 영양(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영양)을 올무로 묶는 여자'란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포케레트'과 `하츠바림'의 두 단어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서 `포케레트' 는 분사의 여성형이라는 점에서, 학자들은 `보게렛하스바임 자손'을 `영양'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직업여성의 후예들로 봅니다(Fensham, B.D.B)
아미 - `건축자'란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느 7:59 의 `아몬'과 동일 인물입니다.
④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58절)
본절은 `느디님 사람'(43-54절)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55-57절)이 신분적 위치에서 동일함을 시사합니다.
신복(에베드) - 이것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종'을 가리킵니다.
2. 족보가 불분명한 사람들(59~63절)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1) 임멜에서 올라온 사람들(59~60절)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이들도 역시 세스바살의 영도 하에 바벨론에서 함께 귀환한 자들이었습니다.
`델멜라'는 현재의 `프톨레마이스'의 `텔마'를 말하는 듯합니다.
이곳은 페르시아만 근처에 있으며 심각한 염분(鹽分) 피해로 인하여 현재는 폐허로 변해 있습니다.
그 지명의 뜻은 `소금의 언덕'입니다.
한편, `임멜' 은 `어린 양' 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룹 - `천사'란 뜻입니다.
이곳은 현재의 `프톨레마이스'의 `치리파임'에 해당합니다.
앗단 - 이 단어의 의미는 `확고한'이며 느 7:61의 `앗돈'과 동일지역으로 추정합니다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인지의 여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무리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배교(背敎) 의 자리에 들어서도록 만들 가능성이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율법을 통하여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금하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출 34:12-16; 고후 6:14).
여기에 나와 있는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名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들라야 - `여호와께서 자유롭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도비야 - `여호화는 선하시다'란 뜻입니다.
여기서 `도비야 자손' 은 B.C. 586년 의 예루살렘 몰락 이후 암몬으로 도망쳤던 유대인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렘 41:15).
그러나 그 사실이 입증되지 못한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2절)에 포함되지 못한 것입니다.
느고다 - `구별된'의 의미입니다.
비록 이 이름이 `느디님 자손'들 중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48절 ; 느 7:50), 본문의 `느고다'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2) 조상의 가문과 선조를 밝힐 수 없는 사람들(61,62절)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제사장 중에는 - 앞의 언급(59, 60절)이 일반 서민들의 경우였던 것과 약간 대조됩니다.
본절에 언급된 자들은 스스로가 제사장의 후예들임을 주장하였습니다.
하바야 자손 - `하바야' 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란 뜻입니다.
학고스 자손 - `학고스'는 `가시 나무'란 뜻입니다.
이 자손들은 자신들이 다윗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학고스'(대상 24:10)의 후손들임을 자처하였을 것입니다.
바르실래 자손 - `바르실래'는 `강철'이란 뜻입니다.
`바르실래'라는 인물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도피하던 다윗을 정성스럽게 도와준 사례가 있습니다 (삼하 17:27-29).
그러나 본절의 `바르실래'는 그 사람의 사위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알길이 없으나 그는 길르앗 출신의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하면서, 장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바르실래의 유산을 물려 받았을 것입니다(민27:4; 36장)
비록 그들은, 제사장들의 후손임을 주장했으나 그것을 문서상으로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성직을 박탈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보계'(함미트야하심)는 문서화된 족보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족보 기록은 한 인간의 혈통적 뿌리를 밝혀 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히 여겨졌었습니다(대상 5:17).
한편 `이름'(케타밤)은 `자신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입니다.
3)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들이 지성물을 먹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63절)
“[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 혹자는 `방백'에 해당하는 `티르솨타'는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고위 직책의 소유자를 뜻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Fensham).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 그 당시에도 `예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2절).
다만 여기서는 그 당시에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추측컨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이 부착된 에봇(삼상 23:6, 9, 10)은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또한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에서 없어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세스바살'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한 듯합니다.
그런 후에 `세스바살'은 `바르실래 자손' 등의 혈퉁적 정통성을 하나님께 물어
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본서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성경 어디에서도 `우림과 둠밈'을 언급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스바살의 시도는 무위(無爲)로 끝났으리라 봅니다.
지성물을 먹지 말라 - `지성물'(미코데쉬 하코다쉼)은 `가장 거룩한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것'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희생 제사 후에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가리킵니다(레 2:3, 10; 7:33, 34). 이는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제물의 분배에서 제외되는 것만을 의미치 않으며 제사장 역할 전체를 수행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3. 귀환 인구와 가축의 수(64~67절)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66] 말이 칠백삼십육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67] 낙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더라”
1) 회중의 합계가 42,360명입니다(64절)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
본절의 숫자는 3-60 절에 언급된 모든 숫자의 합인 29,818 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1) 3-60 절에서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만을 다루었으나 합계를 낼 때는 그들과 함께 귀환한 북쪽의 열 지파에 속하는 자손들의 숫자까지 포함시켰다는 견해(Seder, Olam, Raschi, Ushei),
(2)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12세 이상의 모든 남자를 집계하였다는 견해(Mich).
(3)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어린이 및 부녀자들까지 집계했다는 견해(Williamson),
(4) 합계 숫자는 느헤미야서의 그것(7:66)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정확한 것으로 보고 다만 3-60 절에 나열된 숫자 중에서 필사자의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Keil, Schultz)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느 것 중에서도 만족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습니다(Fensham).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중'(카할)이라는 단어가 성년 남자는 물론 여자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3) 의 견해가 가장 무난해 보입니다.
2) 남종과 여종이 7,337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입니다(65절)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
종은 가축 등과 같은 재산과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서, 위의 42,360명에 안들어감이 분명합니다(Williamson).
한편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 42,360명에 비하여 대단한 숫자입니다.
전체 인구의 약1/6 에 달하는 노비들이 함께 귀환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노비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 하였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신 24:14, 15 참조).
노래하는 남녀 - 이들에 대해서는
(1) 노래하는 레위인들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고용되어 성전에서 레위인과 함께 여호와께 찬양했던 성가대라고 하는 해석(Rawlinson),
(2) 성전 예배와 관계된 노래를 하는 자라기보다는 부유한 자들이 흥을 돋우기 위하여 고용한 자들이라는 해석(Williamson, Schultz, Keil)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첫째, 이들은 제의적(祭儀的) 공동체의 수효에 포함되지 않았으며(64절) 둘째, 부자들이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노래하는 남,녀를 고용하는 것이 고대 중근동의 관습(전 2:8)이었다는 점에서 둘째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포로 귀환 직후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제적 형편은 꽤 괜찮았음이 분명합니다.
이 같은 상황은 약19년 후에 학개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그것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학 1:6).
이 같은 상황악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진 극심한 천재(天災)때문이었을 것입니다(학 1:10, 11).
3) 말이 736, 노새가 245마리입니다(66절).
“[66] 말이 칠백삼십육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
말 - 팔레스틴으로의 귀향 길은 말이 다니기에 적절한 평원 지대였으므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로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팔레스틴에서 사용 되기에는 적절치 못했습니다(암 6:12).
노새 - 번식력은 전혀 없으나 강한 적응성 때문에 팔레스틴과 같은 산악지대에서도 짐 운반용으로 매우 적절한 가축입니다.
4) 낙타가 455, 나귀가 6,720마리 었습니다(67절)
“[67] 낙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더라”
약대 - 팔레스틴 땅 안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은 짐승이나 팔레스틴으로 돌아오는 귀로에 짐 운반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나귀 - 귀인(貴人)들에 의해서 애용되었습니다(삼상 9:3).
4. 건축을 위한 자원 예물(68~70절)
1) 족장들의 예물(68~69절)
(1) 예물을 기쁘게 드립니다(68절)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 `여호와의 전'은 B.C 586년 바벨론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왕하 25:10; 대하 36:19).
그러나 이것은 건축 때에 사용된 재료가 특별한 관계로(왕상 5:17), 비록 파괴된지 약 50 년이 지났지만 그 흔적이 역력했을 것입니다.
그때 몇몇 족장들은 많은 다른 무리들보다 앞서서 성전 터에 도착한 듯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 이는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과 합치됩니다(1:2, 3). 한편 `그곳'은
(1)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땅(창 22:2; 대하 3:1)이었으며,
(2) 다윗이 `인구 조사'라는 결정적 실수(대상 21:1)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렸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대상 21:18-22) 과 동일 장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성전의 건축지로 지정된 곳이었습니다(대상 21:18, 19; 22:1).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의 건축을 위해서 많은 재물을 헌납한 것(출 35:5, 21-29)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나다브)는 성막 건축을 위한 헌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사실을 나타내는 말과(출 36:21) 동일합니다.
(2)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습니다(69절)
“[69]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
힘자라는 대로(케코함) -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 만큼을 가리킵니다다.
이 같은 자세는, 신약시대에 어려운 형편에 처했던 유대인들을 돕기위해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 원리와 동일합니다(고후 8:3).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 `공사'(멜라카)는 `봉사하다' 혹은 `공급하다'의 의미인 `라아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일', `사업', `수고', `부'(富)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금이 육만 천 다릭 - 원래 `다릭'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금의 무게를 잴 때 통용된 중량의 단위였으며 훗날에는 화폐의 단위로 쓰였습니다.
금과 1 다릭이 영화(英貨) 약11 파운드 정도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육만 일천 다릭'은 약 671,000 파운드, 즉한화(韓貨)로 대략 6억 7천만 원쯤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Pulpit Commentary).
은이 오천 마네 - `마네' 는 바벨론에서 주조된 은화로, 은화 1 마네는 약 34 달러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천 마네'는 미화(美貨)로 약 170,000 달러 정도 됩니다.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 - 이것은 특별히 지어 바쳤을 것입니다(삼상 2:19).
한편 `일백 벌'은 느헤미야서의 `육십 칠 벌'(느 7:72) 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본서의 기록자 에스라가 대략의 숫자만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귀환민들의 예루살렘 정착(70절)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제사장...니디님 사람들'은 모두 성전 봉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을 성읍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의 `성읍'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마을을 가리킵니다.
백성 몇 - 제사장 및 레위인과 대조되는 서민들로서 예루살렘이 고향인 백성을 뜻합니다(Fensham).
노래하는 자들 - 레위인의 한 부류인 아삽 자손을 가리킵니다(41절).
문지기들 - 이들도 레위인의 한 분파 자손들입니다(42절).
이스라엘 무리 - 이들은 남쪽 지파와 함께 돌아왔을 북쪽 지파만을 의미치 않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 이외의 나머지 전부를 가리킬 것입니다(2절; 3:1; 6:16, 17; 7:13; 8:29, 35)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 예루살렘이 고향인 자들과 성전 봉사에 관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에, 그 나머지 백성들도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흩어졌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순종하고 헌신하는 소수를 통해 일하십니다.
파괴된 성전과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재건하기에는 귀환한 사람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미약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록 적은 수였지만 성전을 재건할 마음을 갖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1:5).
하나님은 이들 ‘적은 무리’를 통해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큰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혹시 우리 공동체는 수와 힘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직무를 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도 부족함 없이 일하실 수 있는 분이니,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합시다.
2)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귀천이 따로 없습니다(43~54절).
성전에는 제사장과 레위인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느디님 사람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전면에서 일하는 스룹바벨 같은 지도자나 예수아 같은 제사장을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작은 수고를 감당하는 느디님 사람에게도 똑같은 사선을 주십니다.
나의 자리가 비록 이름도 없고 빛도 없어 누구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해도, 늘 지켜 보시는 하나님을 마주 보며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합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는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이지만, 실은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나온 믿음의 사람들의 명단이고, 성전 재건의 사명을 품은 순종의 사람들의 명단입니다(2~63절).
이 명단은 훗날 자손들에게 두고두고 자랑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내 이름을 어떤 명단에 올리고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이름을 남기려면, 어떤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할까요?
2) 몇몇 지도자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원해서 힘껏 예물을 드렸습니다(68,69절).
이들의 헌신은 귀환 공동체 모두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의 헌신은 기본만 유지하며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힘자라는 대로 순종하고 헌신하다 보면, 순종하고 헌신하는 힘이 더 크게 자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