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戰雲
인류역사에 있어서 공의公義를 위해 선발적先發的
으로 일으킨 전쟁이 과연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크고 작은 전쟁은 모두가 탐욕과
이해분쟁의 발로發露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외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성전聖戰”을 자처했던
십자군 전쟁 마저도 성지聖地에 대한 지배권과
기독교 전파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 실현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므로 이교異敎에 대한 몰이해와
신앙적 우월주의에 의해 벌어진 살육에 불과했으니
그 전쟁 또한 “성전”이라 평가 받을만한 것이 못된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전쟁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절대다수의 전쟁들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남의 영토를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등 패권주의와 탐욕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이었다.
노예 해방문제로 일어났던 미국의 남북전쟁도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차로 일어난 전쟁이 아니요
공업이 발달한 북부지방에서 공장 노동자들을
더욱 많이 고용하기 위해 남부지방의 농장주들이
움켜쥐고 있는 노예들을 해방시켜야 했기 때문에
북부.남부 양측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발발한 전쟁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인류역사상 일어났던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은 거의 모두가 패권과 이익추구를 위해
혹은 편벽偏僻한 신념 아래 저질러진 살육에
지나지 않았으며 중세, 근대,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평화와 공생공영
共生共榮에 대한 인류의 의식이 조금씩 진보
하기는 하였지만 인류의 야만성을 씻어
내기에는 아직 멀고도 먼 세월이 남아 있다.
우리 인류사人類史에 있어서 ‘평화와 공생공영의
가치’가 ‘이익과 패권의 가치’를 앞서는 성숙한
의식이 자리 잡게 되는 후천 가을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후천시대로 접어 드는 길목을 열기 위한
그리고 공의公義를 실현하기 위한 성전聖戰이
숙명적으로 예정되어 있으니 그 전쟁은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와의 전쟁이 아닌 우리 인간계와
천상天上 신령계와의 일대결전이 될 것이다.
‘음과 양의 대결’ 이야기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천상 신령계의 대세大勢를 움켜 쥐고 있는 삿된
신령들의 세력과 우리 인간계의 선남선녀善男善女
세력이 맞붙게 될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도 길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굴러 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들 움직이고 아침에 출근하여
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며 살아 가는 모습은
언제나 일상의 모습 그대로 이지만 이 땅을 내려다
보고 있는 신령계에서는 삿된 세력에게 대세를
빼앗긴 선신선령들의 탄식과 그늘진 마음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 인간계에서 신령계의 타락한 세력과
일대결전을 벌일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이르러 우리 인간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전운戰雲,
어두워진 하늘을 다시 밝히고 후천 가을세상을
열어 가게 될 인간계의 선남선녀들이, 정법正法을
저버린 신령계를 치기 위한 일대결전의 전운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하늘과 땅의 순리와 正法의 역사가 이처럼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용기
경직되거나 절치부심하지 않아도, 태연자약
하며 여유롭고 발랄한 가운데에서도 결연한
의지의 칼날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천상天上
신령계의 타락한 세력에 대한 가소로운
마음과 승리를 확신하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 쉽고 만만한 싸움은 아니리라.
전쟁이 시작될 때 저쪽의 세력이 훨씬 더
강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이미 탄탄하게
정착되어 있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계의 선남선녀들로 이루어진 세력을
크게 키워야 하는 것은 우리의 여생餘生
동안의 중대한 과제가 된다.
각자 인간 마다 남은 여생의 길이가 수십년
길고 짧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음과 양의 대결’ 제하 글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천상의 신령계와 이 땅의 인간계는
시간의 흐름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수십년은 저곳에서의 수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저쪽 세력의 힘이 훨씬 강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가소로운
마음과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일어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자연의
법리이자 우주원宇宙元 절대자 하나님의
섭리인 “근원의 힘(원력元力)”을 믿기 때문이다.
수십만년, 수백만년간 대자연 역사의 흐름인
행역行易의 이치에 있어서 단 한치의 흐트러짐과
예외가 있지 않음으로 하여 이 우주와 대자연의
생태生態가 굴절됨 없이 영속永續할 수 있었듯이
인간계와 天上 신령계의 일대결전 또한 우주와
대자연의 절대 법리가 미리 정해 놓은 과정일 뿐
이며 그 전쟁의 결과 또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미약한 달빛이 이 세상을 환히 비출 수 없고
미약한 달빛이 결코 태양의 빛을 가릴 수
없는 것은 쉽고 자명한 자연의 이치이듯
대자연의 법은 알기 쉬운 것이든 어려운 것이든
모두가 한결 같이 명백하고 지엄할 뿐이다.
천상 신령계를 다스리는 상제上帝의 자리에
올라야 할 태양太陽을 축출한 소음少陰의 세력이
왜곡되고 굴절된 지금의 역사를 유지시킬 수
없는 것인 바 음양陰陽의 법칙이라고 하는
자연법을 크게 위배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높은 신령들도 우주와 대자연의 법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며 이것을 거스를 경우
반드시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환원작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선남선녀들은 자기가 종사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또 한편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도道의 길을 병행하면 될 뿐이다.
우리가 펼치는 道는 매미소리 처럼 싱그러우며
꽃내음 처럼 향기로우며 두발을 담근 시냇물처럼
잔잔하고 편안하게 전개될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道가 될 것이다.
구원
모든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은 무엇이며 작금에
이르러 진정으로 절실한 구원은 무엇일까?
모든 종교들이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가
“인간 구원”이라는 명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거나 혹은
자기 욕구의 한계에 부딪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러한 난제들을 신神의 가피加被를 통해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후死後의 극락과 천국을
염원한다.
종교의 의도하는 바가 그 어떤 종류의 구원이든지간에
인간이 이 세상에서나 내세來世에서나 혹은 두 세상에서
모두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모든 종교가 인간을 고통과 한계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는데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인간은
왜 구원이 필요하고 어떤 종류의 구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종교 마다 설명이 같지 않다.
중동中東에서 시작한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는 자신들이
가르키는 구원의 길이 유일한 참된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인도종교는 구원의 길에 있어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어쨌든 모든 종교가 어떠한 형태
로서이든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서는 유대교이든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그들의 구원관救援觀만으로써는 온 인류와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수
없는 형국에 놓여져 있다. 작금에 이르러 절실한
구원의 필요성은 신령계神靈界에 의한 인간계人間界에
대한 구원이 아니라 역으로 인간계에 의한 신령계에
대한 구원의 필요성인 것이다.
어두워지고 기울어진 하늘, 선신선령善神善靈들의
한숨 소리와 탄식에 젖어 무너져 가는 저 하늘이 어찌
이 세상을 구원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까마득히
길고 긴 이 우주 역사의 소용돌이와 굽이침이
작금에 이르러서는 “우리 인간들이 주체가 되는 천상
신령계에 대한 혁명과 구원 그리고 후천後天 가을세상의
개막開幕”이라고 하는 막중한 소명召命을 안겨 주었다.
우리 인간들이 기존의 종교적 구원관에 안주하며
찬송가와 찬불가 소리에 묻혀 있는 이 시간에 天上
하늘에서는 우리 인간계의 선남선녀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 즉 선남선녀들에 의한 신령계에 대한 구원에
목을 메고 있는 실정이다.
작금 천상 신령계는 선신선령들이 수세에 몰려 있고
사심邪心에 빠진 신령들은 정점頂點에 서서 득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령계에 의한 인간계 구제가 아닌
인간계에 의한 신령계 구제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명운命運을 좌우하게 될 중차대한 시대에 놓여져 있다.
우리 인류가 이후로 매달려야 할 일은 극락, 천국을
염원하는 구원이 아니라 이 하늘과 땅에 대한 구원이요
이 하늘과 땅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지상의
선남선녀들에게 맡겨진 과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진다면 하늘도 땅도 후천 낙원시대의 개막이라고 하는
가장 큰 구원의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이 땅의 선남선녀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 한후 어두워진 저 하늘을
다시 밝히는 별무리 군단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말은 세상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고작 수백명이 들여다 보는 작은 카페가
아니던가. 다만 나의 앎과 깨우침을 최소한으로나마
토로하고 싶은 심정에 내뱉는 말이다.
비록 지금은 작은 인터넷 카페에서 나의 앎과 깨우침을
토로하고 있지만 빠르면 내년(2024) 하반기에, 늦어도
후년(2025) 상반기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앎과 깨우침을
세상에 널리 펼 수 있는 나의 성전聖殿이 생겨날 것이다.
나의 성전이 생겨 난 이후부터는 오히려 나의 이러한
앎과 깨우침은 평범한 모습 속에서 침묵으로 숨어 지내게
될 것이다. “특별한 가치와 진리”는 “평범한 모습 속에
숨어 지낼 때” “참된 빛이 바래지지 않으며 참된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년후 나의 임종臨終에 이르러서 임종을
지켜 보는 도반들이 있다면 나는 그 도반들에게
“함께 했던 우리의 시간들이 무엇을 위한 시간
이었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소중하고 중차대한 시간
이었는지를”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 아무런
말 없이 침묵으로 떠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 도반들이 깊은 내막을 모른다고 해서 하늘과
땅의 엄중한 역사가 멈출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망종芒種(음력 4월 18일/양력 6월 6일. 07시 18분 入)
망종은 24절기 가운데 아홉 번째 절기로서 보리를
모두 베어내고 쌀벼를 심는 때이다.
천상天上 신령계의 그릇된 세력을 척결하고
선신선령善神先靈들이 다스리는 하늘을
재건再建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계의 선남선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