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신랑 입장!”
경쾌한 행진곡 피아노 선율이 웨딩홀 안을 가득 메우며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우석이 성큼성큼 웨딩홀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입장을 한다. 한편 신부대기실에서 한껏 긴장한 듯 창백한 얼굴로 예쁘게 단장한 루나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우석에 이어 입장할 준비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다음은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입장!”
우석이 입장할때랑은 다른 차분한 듯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행진곡이 연주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루나가 큰외삼촌 손을 잡고 조심조심 한걸음씩 내딛으며 우석과 가까워진다. 다가선 우석이 큰외삼촌께 꾸벅 인사를 건네고, 루나의 손을 건네받는다.
우석의 손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주례사님을 마주하고 나란히 서서 우석의 팔짱을 끼고 부케를 양손으로 맞잡고 선 루나. 그런 루나를 바라보며 신부 측 부모 석에 앉은 옥경이 눈시울을 붉힌다.
우석과 루나는 주례사의 안내에 따라 부부가 되는 수순을 밟아 나가고 있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상황에서 루나는 훌쩍이고 있는 옥경의 눈물을 보고 끝내 고개를 돌려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고 꾹꾹 흐르려는 눈물을 참아낸다. 그리고 옥경과 눈을 맞추고 자그마하게 속삭인다.
‘고마워요. 엄마. 잘 살게요.’
* * * *
[5년후]
“엄마! 엄마! 형아가 내꺼 뺏었어. 흐아앙~”
정신없는 집안 분위기속에서 낭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가득 채운다. 주방에서 음식준비에 한창인 루나가 계수대에서 손을 씻어내고, 거실에 앉아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울음을 그치도록 달랜다.
“준영이 너, 동생한테 그러면 안 돼. 형아 잖아.”
“으아앙~ 엄마는 맨날 나보고 그래. 나도 갖고 놀고 싶단 말이야!”
4살 준영이 루나에게 응석을 부르며 거실바닥에 앉아 통곡을 한다. 루나가 공평하게 똑같은 장난감을 손에 들려준 동생 우영이 배시시 웃으며 준영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며 메롱을 해 보인다. 욕실에서 씻고 나온 우석이 등장하자 준영과 우영은 떼를 쓰던 목소리를 줄이고 눈치를 본다.
“이 녀석들. 엄마 바쁜데 자꾸 그렇게 힘들게 할 거야?”
“아빠... 그게 아니구요...”
“준영이가 우영이 장난감 왜 뺏었어?”
“나도 갖고 놀고 싶었는데... 우영이한테 달라니까 안줘서요.”
“우영이는 왜 준영이형이 달라는데 안주고 혼자만 갖고 놀려고 했어? 그러면 돼? 아빠가 사이좋게 갖고 놀라고 사준 거라 했지.”
“잘못했어요..”
“그럼 서로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네...”
우석의 말이 끝남과 무섭게 준영과 우영은 서로를 고사리 손으로 끌어안고, 토닥이면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단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사이 우석과 루나가 눈이 마주치고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다.
* * * *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옥경, 거실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담느라 바쁜 루성. 도시락에 가득 담고도 부족하다는 듯 한껏 들떠서 설레어 보이는 옥경이 싱크대 찬장을 이곳저곳 열어보면서 다른 도시락이 또 없는지 찾는 듯 움직인다.
“루성아, 준비 다 했니?”
“네, 엄마는 준비 다 됐어요?”
“어, 근데 뭘 더 해야돼나? 이거면 부족할까?”
“엄마, 이거 다 어떻게 들고 가려고 그래요? 너무 많은 거 같은데.”
“많기는... 우리 준영이, 우영이까지 먹이려면 모지를 까봐 걱정인데.”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황급히 부엌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으로 달려가는 옥경.
“누구세요?!”
“어머니, 저희 왔어요.”
“할머니! 주녕이 와떠여!!”
“우영이두 와떠여!!”
도어락 잠금을 해제하며 현관문을 열어 보이고, 각자 한명씩 손을 잡고 다정히 서 있는 루나와 우석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어 보이는 옥경. 옥경의 뒤를 따라 현관문을 닫고 들어서던 루나가 부엌에 한바탕 난리가 난 상황을 보면서 입을 떡 벌린다.
“엄마, 뭘 이렇게 많이 했어요. 힘들텐데... 내가 음식은 준비한다고 몸만 가면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너 애 둘 보면서 음식 하는 게 그게 보통일이냐? 이정도면 부족하지 않을까? 뭐 더할까? 현 서방,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봐.”
“아유, 아닙니다 어머니. 지금 만들어 놓으신 것도 엄청난데요. 준비 다 되신 거면 차에 짐 실을까요?”
“그래, 그래. 어서 가자 그럼. 루성아! 매형이랑 차에 짐 좀 실어라.”
“네!!”
* * * *
캠핑장을 찾은 루나의 가족들은 미리 예약해둔 자리에 텐트를 치고, 차에 가득 싣고 왔던 짐들을 꺼내어 차곡차곡 풀어놓는다. 준영과 우영은 밖에 나오자 신이 났는지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한껏 신이 나 있다.
캠핑용 테이블에 오순도순 둘러앉은 옥경, 루나, 우석, 루성은 믹스커피를 타서 가볍게 티타임을 갖으며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리고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옥경과 루나가 준비해온 음식들을 꺼내어 그릴에 불을 피우고, 고기들을 구워내면서 잘 익은 것들을 골라 접시에 담아 루나와 옥경의 앞으로 갖다 주기 바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난 현 서방에게 그저 고맙네. 우리 루나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어주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줘서.”
“아닙니다, 어머니.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어머님 가족이 될수 있어서요.”
“아주,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농담 섞인 말투로 장난스럽게 말을 뱉으며 우석의 일을 거들고 있던 루성이 말했다. 루나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이다. 프러포즈 할 당시에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사랑받고 있단 생각이 들도록 사랑해주겠다는 현우석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결혼생활이 이렇게 꿀 같은 것인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결혼을 할 것을 너무 늦게 했단 생각이 들 정도인 루나.
‘내게 온 가장 큰 선물 같은 남자. 현우석,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