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쉘비 스퐁의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에필로그
그리스도 능력
오래 전, 1974년에 나는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 있는 성 바울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 자신의 돌파구였음을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성 바울교회는 한때 남부연방 수도였던 유서깊은 대도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로버트 E. 리와 제퍼슨 데이비스가 남북전쟁의 암흑기에 이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드렸던 것이다. 그 때도 나는 예수, 곧 나의 신앙 전통의 중심적 상징인 동시에 그의 이미지와 끊임없이 씨름하고 있었던 예수에 대해서 새로운 이해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의 내적 갈등과 그것이 낳는 긴장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 나는 예수의 인격에 대해 강렬하고도 불가항력적으로 매료되었었다. 나는 또한 예수를 에워싼 왜곡시키는 신화들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견딜 수 없게 되었으며, 그를 독점한 전통 교회에 의해 목이 졸리고 있었다. 나의 좌절의 수위가 얼마나 높았던지 예수의 의미나 그의 능력을 거의 감지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여러 면에서 내가 헌신하고 있던 교회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이런 마음이 그 일요일의 설교에 반영되었는데 그것은 통상적으로는 사람들이 듣고 곧 잊어버릴(나 자신이 그럴지도 모를)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설교의 "수명"은 실로 짧다. 그것이 비록 길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들은 후 사람들의 마음에는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루시 뉴톤 보스웰 네거스라(Lucy Newton Boswell Negus)는 리치몬드의 탁월한 시인은 그 날 나의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그의 자유시에 담았다. 그녀는 그것에 "그리스도 능력"(Christpower)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녀는 내가 성 바울교회에서 한 다른 설교들을 근거로 나중에 창작한 시집 앞머리에 그 설교에 관한 시를 배열했다. 이 시가 그 시집의 제목이 되었고, 그 이후 "그리스도 능력"이란 말이 다른 말들과 함께 나의 어휘와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할 때 항상 그 시를 내 앞에 놔두었다.
그러므로 그 때 내가 표현했고 루시 네거스가 오래 전인 1974년에 엮은 말로 이 예수 연구를 결론 맺고자 한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이 책을 낳은 씨앗들이 그 시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난 30년 간 내 연구의 초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가 나의 인생과 경력을 형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예수의 본질과 그의 삶의 의미에 대해 개론적인 이해밖에 없었으나 이제 마른 뼈와 같은 것에 살을 붙이게 됨으로써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다. 나의 방향은 변하지 않았으나 나의 이해는 심화되었고 따라서 나의 순례는 이 책으로 완결되는 동시에 원(圓)은 완성된 셈이다.
그리스도 능력
그를 보라!
그의 신성을 보지 말고,
오히려 그의 자유를 보라.
그의 능력에 대해 부풀린 이야기를 보지 말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그의 무한한 능력을 보라.
그를 에워싼 1세기 신화를 보지 말고,
오히려 그의 존재의 용기, 그의 삶의 능력 그리고
그의 사랑의 감화력을 보라.
당신은 광신적 탐구를 중단하라!
잠잠하고 이것이 하나님임을 알라.
이 사랑,
이 자유,
이 생명,
이 존재,
그리고
당신이 받아들여질 때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라.
당신이 용서받을 때 당신 자신을 용서하라.
당신이 사랑 받을 때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그 그리스도 능력을 붙잡으라
그리고 담대하게 당신 자신이 되라!
나는 이것이 하나님, 곧 내가 그 심오한 인간 예수에게서 만난 하나님으로 향하는 좁은 길이라고 믿는다.
샬롬!
존 쉘비 스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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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존 쉘비 스퐁 감독의 "비종교인을 위한 예수"(Jesus for the Non-Religious)의 연재를 마칩니다.
연재를 마치면서 그 동안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제 자신에게 던졌던 몇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똑같이 드립니다.
* 인간 예수에 대한 신화는 언제, 어떻게 , 왜 만들어졌는가?
* 예수에 대한 신화들을 벗겨내면 예수에게 무엇이 남는가?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몰상식한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흔히 분노에 가득 차서 저주와 증오를 내뱉는 잔인한 사람들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교회는 왜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외아들까지 잡아먹는 도깨비로, 예수를 잔인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자발적인 희생자로 만들었는가?
*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고 인간성을 부정한 결과는 무엇인가?
* 왜 우리는 예수를 전통적인 유신론적 교리로부터, 신화로부터 해방시켜 예수 이야기를 소통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는가?
저의 연재글을 통하여 스퐁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뜻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았길 바라며, 그동안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스퐁 감독님 고맙습니다.
The End
2014. 3. 22. 발람의 나귀
스퐁 감독께서 신약성서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통하여 역사적 예수를 완전한 인간성을 구현한 '참사람'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저 또한 전적으로 스퐁 감독님의 의견에 공감을 표합니다.
하여 다음에는 '월터 윙크'의 The Human Being: Jesus and the Enigma of the son of the Man(참사람:예수와 사람의 아들의 수수께끼)을 통하여 좀 더 '참 사람 예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