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제자로서 사는 기쁨’이라는
표어를 내 중심에 두고, 걸어 가고자 합니다. 즉 교회안에서
기쁨이 있는 모습을 채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가 아닌, 성령의
감동에 따라 이루어지는 기쁨을 표현하며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승천 후 에 제자들은 계속 기도와
찬송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고, 그 성령의 감동에 따라 흩어져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마음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자신의 소유물을 나누고,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여 기도와 찬송을 하고, 흩어져 각 집을 순회하면서
기쁨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식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과 함께 주님 마음으로 하나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과연 내 삶속에서 가능할까? 우리 교회에서 그리고 성도에게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초대교회가
살았던 모습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또는 우리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로서 사는 기쁨은 제자하면 기쁨이 언제나 연상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늘 싱글벙글하는 사람 또는 표정이 안정되고, 평안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관계나 일속에서 쉬운 일이
없습니다. 늘 피곤과 싸워야 하고, 때로는 의견이 충돌이
되고, 갈등속에서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미로와 같은 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결론과 함께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테두리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교회속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합니다 결국 앞에서 열거된 일이 일어납니다. 힘든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이 있게
되면, 기쁨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섬기고 사랑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주시는 능력속에서
나를 짓누르는 것들에 흔들리는 것보다는 나에게 소망이 되는 일을 바라보면서, 그 모든 어려운 것들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가 주신다는 믿음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닌 기쁨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요16:20-24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슬퍼할
것이지만, 너희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이다. ----- 전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 분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요, 너희 기쁨이 가득 찰 것이다.’ 주가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은 삶의 환경을 넘어 영적인 평강속에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를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통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각자와 교회가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믿음으로 서로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면서 기뻐하는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쁨속에서 사는 교회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쁨이 내 안에 있게 될 때, 주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나의 오이코스와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이 내 삶 전체에 표현될 때, 세상은
감동하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는 것이 주님이 뜻이라고 사도바울이
말한 이유입니다. 날마다 주가 주시는 기쁨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