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천민자본주의적 의식의 승리이자 파시즘의 승리이다. 386세대라 일컬어지던 자들이 자신들만의 눈앞의 금전적 이득을 위해 군사정권의 후예를 지지하였다. 또한 늘어가는 저소득층은 여전히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노예적 투표를 하도록 강제되었다. 진보정치를 힘들게 하는 지역감정 역시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강력한 힘을 발휘해 박근혜 당선에 힘을 보탰다. 명실상부 유신의 정통계승자가 집권을 한 상황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날마다 노동자가 죽어나지만, 세상사람들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수구세력은 승리하였고, 민주화세력은 패퇴하였으며, 진보세력은 소멸하고 있다.
진보세력이 소멸한 것은 진보세력 스스로 수구세력과 맞서지 않고, 민주당의 2중대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차별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민주당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채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노동운동을 변혁의 주체로 인식하고 연대할 동지로서 바라보고 정책을 제시하며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노총에 표와 자금을 구걸하기 급급했다. 그 결과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민주당까지 모두 노동자들 시각에서는 '정체성'의 차이가 없는,' 정치인'으로만 차이가 나는 당이 되었다.
정체성도 해체되고, 정치인도 사라진 진보신당에 남은 고유한 것은 ‘반주사파'뿐이었다. 노급의 정체성이 해체되어 나가는 혼돈의 시기, 진보신당에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며 여성노동자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려는 여성주의는 사라졌다. '여성이 진보다'를 외치며, 여성정치인만의 이익을 추구하여 당의 계급정체성을 탈각시키 데 일조했다. 수구정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기에 승리하였고, 진보정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리고 소멸해 가는 중이었다.
정체성을 상실한 진보신당은 대선국면에서 자기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공공연히 선거를 포기해야 한다는 당의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주장이 나왔다. 당을 ‘재창당’하자마자 ‘선거포기’라는 희극적인 참극은 재창당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사회연대후보’로 선언된 ‘좌파단체와의 연대’는 ‘자당후보에 대한 부정’으로 변질되고, ‘후보로 논의되는 당원에 대한 진상조사’로 이어졌다. 당원들의 후보선출권은 박탈당했으며, 대의원들은 당명개정에 대한 논의를 통해 당의 정체성을 정립할 기회를 원천봉쇄 당했다.
진보신당은 대외적으로 '김소연' 선거연대를 천명했으나 이는 공식적으로 당론이 될 수 없는 전대표단 개개인들의 입장일 뿐이었다. 어떤 내용이든 공식적인 당론을 만들기 위해 많은 당원들은 당대회를 요청했으나 전대표단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을 당론이라 강요해 당조직을 탈법적으로 작동시켰다.
선거과정에서 당조직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았으며, 김소연 후보가 폭행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통합진보당이나 김순자선본에서 먼저 성명을 낼 정도였다. 대다수 당원들에게 우리의 후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각자 지지하는 후보가 있었을 뿐이다. (이는 득표수로 충분히 판단가능하다.)
진보정당이라면 당차원에서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면 진보적인 후보를 판단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차원의 판단을 방기한채 부대표들 개개인의 판단을 당론으로 강요해 당원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었다. 뿐만아니라 '김순자나 문재인을 지지한 당원들을 징계하겠다'고까지 했다. 당은 차라리 보수야당 선거연설을 하는 당협위원장, 당기위원장의 문제나 제대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정치적약자에게는 엄격하고 당내권력자들에게는 관대한 것은 전형적인 부패정치의 모습'이다. 당차원에서 결정을 도출하지 못한것은 반성하지 않고 사적입장을 당론이라고 우기면서, 당원개인이 특정후보 지지에 대한 징계를 논했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면 그만인가. 전대표단의 공식사과가 필요할 것이다.
‘탈당‘자체로만 놓고 보았을 때는 김순자후보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탈당의 원인제공이 당에 있다는 점에서, 개인 ’김순자‘보다는 당의 책임이 막중하다. 또한 ’순캠‘를 통해 좌파분열을 시켰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김소연‘,’김순자‘의 지지기반이 다를 뿐더러, 겹친다 하더라도 두 명이 출마해 좌파의 가치를 두배로, 두가지 방식으로 알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소연‘ ’김순자‘ 모두 각자 능력대로 진보의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진정 문제를 삼아야 할 자들은 ’당‘의 이름으로 선거를 치르기 불가능하게 한 자들이다. 당의 이름으로 선거를 해서 당을 알려야 했다.
혹자는 이정희를 비판하지만, 적어도 이정희는 자당의 이름으로 다까기마사오 욕이라도 하고 퇴장했다. 문재인한테 도움이 되건말건 ’통합진보당-이정희‘는 알린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보신당' 이름으로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들은 대표단이 지지한다던 ’김소연‘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할 수 있었는가. 역사적으로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해오던 진보신당 당원들이 역설적이게도 후보도 못낸 채 '명함도 못 내미는 비판적 지지론자'가 된 채, 자신들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황이다.
당이 혼란한 시기 후보출마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후보를 고민하고, 좌파적 정책을 알리기 위한 후보를 세워내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비난을 감수하며 출마-완주를 해낸 당내외 동지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런 분들의 노력이 있기에 우리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로, '좌파정당'의 이름으로 계승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