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반문화 최정숙 이사장
민간 주도로 근대역사문화자원의 보물 ‘인천’을 알리다
바다처럼, 바위처럼 ‘해반’이란 이름에 담긴 뜻 그대로 해반문화는 인천의 문화를 넉넉하게 품고 반석처럼 든든하게 받쳐왔다.
1883년 제물포항 개항 이후 여러 나라 근대 문물은 모두 인천을 통해 들어왔다. 인천은 신문물의 핫플레이스였고 당대 시대성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문화유산을 남겼다. 해반문화는 지난 30년 세월 동안 개항장, 차이나타운 같은 인천의 보석 같은 근대역사문화유산을 발굴해 널리 알렸다.
인천 지역에서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을 이끌고 있으며 국가유산청의 생생국가유산, 청년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지역 문화유산 교육 사업을 알차게 진행한다. 그 중심에 해반문화의 이홍우 명예 이사장과 최정숙 이사장 부부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인천 토박이로 지역에 자긍심과 애정이 깊다.
우연히 지역 문화운동을 시작해 소중한 인연을 만났고 이제는 필연처럼 인천을 기반으로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최정숙 이사장이 들려준 해반문화의 출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인천의 문화운동사였다.
Q. 2023년부터 시작한 ‘백령도 국가유산 프로젝트’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 섬으로 북한과 가까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섬이자 천연기념물이 많고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의 보고입니다. 인천시, 옹진군과 함께 ‘지구의 시작 백령도, 우리 함께 우주와 만나요!’란 주제로 자연유산 해설, 국가유산 모니터링, 천연기념물인 사곶사빈에서 해양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과 이를 활용한 정크아트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백령도 콩돌해안에서 맨발로 걷고 물멍하는 힐링 프로그램부터 별밤 시낭송회, 백령 드로잉 대회도 열었죠. 섬을 모티브로 에코백, 손수건 지도, 드로잉북도 내놓았습니다.
각자가 느낀 백령도를 예술로 표현하며 소중한 자연유산을 가슴에 새겼죠. 섬 주민과 섬 밖의 여행자가 어울릴 수 있도록 공들여 프로그램을 기획하니 참가자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국가유산청으로부터 2023년 지역국가유산 활용사업 우수사례에 선정됐고 2024년에도 알차게 진행됐습니다.
Q. 해반문화는 30년 세월 우직하게 인천의 문화와 역사 정체성 교육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단체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해반문화의 출발점은 1991년, 해반갤러리가 문을 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화가고 이홍우 명예 이사장은 치과의사입니다. 남편은 집안의 장남이라는 묵직한 책임감, 기대감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을 택했지만 시를 쓰고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었죠. 훗날 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학위도 받을 만큼 문사철 학문에 강한 끌림을 갖고 있었어요.
번듯한 도심이 아닌 달동네 송림동에 치과를 열었고 개원 후 몇 년 동안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진료비를 거의 받지 않을 만큼 보통의 치과의사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추구했어요.
우리 두 사람의 공통 분모는 문화였습니다. 그림 그리는 제가 오랫동안 꿈꿔옸던 해반갤러리를 열었는데 운영이 어려웠어요. 당시 인천은 문화의 불모지라 미술관도 전무했고 당연히 ‘미술품 컬렉터’의 개념조차 없었어요. 우선 문화예술의 저변부터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갤러리에서 시낭송회, 음악회, 문화강좌를 열었죠. 주변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규모가 점점 커져 피아니스트 백혜선, 양귀자 작가 등 예술가, 작가 초청 행사부터 찾아가는 미술 전시회 등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우리 활동이 알려지면서 인천의 문화예술인, 행정가, 학자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해반은 자연스럽게 인천 문화계의 구심점이 됐습니다.
Q. 해반문화에서 활동하는 시민, 전문가 그룹이 ‘인천다움’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론화하면서 정부, 지자체에 대안을 건의하며 바람직한 길로 나아가도록 노력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무렵 '인천'의 위상은 공단이 있는 서울 옆에 위치한 뚜렷한 특색이 없는 지방 도시였어요.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서울로만 몰려들다보니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천은 점점 소외돼 문화의 불모지가 돼버렸더군요. 당시에는 인천국제공항도, 영종, 송동, 청라 같은 신도시가 없던 시절이죠.
때마침 유홍준 선생이 불지핀 문화답사 붐을 타고 지역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죠. 1883년 개항의 상징 제물포항과 국내 1호 철도 경인선, 다양한 근대문화유적이 있는 인천의 정체성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를 고민했고 1995년부터 인천의 문화 현안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해반문화포럼을 시작했어요.
인천의 문화적 상징물들, 중국인 거리 활성화, 인천 구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문화정책, 인천관광정책, 월미관광특구 등 지역의 굵직한 이슈를 다뤘습니다. 2003년에는 인천문화예술중장기발전계획도 세워 인천시에 제안했지요. 출판사를 만들어 인천 관련 책자을 꾸준히 발간했습니다.
자유공원 일대 개항장, 문학산 문화유적지, 영종도 일대, 인천 일대 섬 등 무수한 곳으로 우리 지역 바로 알기 답사를 다녔습니다. 월미도를 문화의 거리로 만들기 위해 토요일마다 야외 공연도 열었고 학교 도서관 살리기 운동도 전개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회원들과 많은 일을 했습니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많은 상을 탔고 ‘인천문화사관학교’라는 말도 들었지요.
우리 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쇠락했던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살아났고 달동네 박물관이 문을 열었으며 개항지 일대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조성된 것도 뿌듯한 성과이지요. 인천 개항장 문화유산야행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벌인 문화운동은 민간이 주도하고 관에서 따라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Q. 인천의 역사 문화를 알리고 지역 정체성을 탄탄히 하기 위해 국가유산 교육과 지킴이 활동 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진행하나요?
초중고생 대상 인천 국가유산 교육은 ‘인천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 정체성’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도록 공을 많이 들이는 부분입니다. 학생들을 지도할 전문 강사 양성도 꾸준히 했습니다.
인천의 여러 학교를 찾아가 다양한 교재, 교구를 가지고 생생한 문화유산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청소년 해설사도 양성합니다.
현재 20여 명의 청소년들이 활동중인데 문화유산야행 기간 동안 개항장 문화지구에 대해 야무지게 설명해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역사 문화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을 지도해 국가유산청이 주최한 경진대회에서 꾸준히 수상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모니터링, 환경정화와 답사 등의 지킴이 활동을 오랫동안 진행하며 지역의 미래 인재를 길러냈어요. 성실하게 지킴이 활동한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담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도 여럿 배출했고 청소년 지킴이가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 해반문화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일을 배우기도 하죠.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실무를 진두지휘하는 박춘화 센터장님과 김혜정 국장님 두 분은 해반문화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어린이부터 성인, 전문가 그룹까지 대상별로 특화해서 문화유산 해설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국가유산 관련 프로그램을 알차게 기획해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해반문화의 정신인 ‘인천사랑, 문화사랑, 인간사랑’을 현장에서 구현하고 계신 인재들입니다.
Q. 최정숙 이사장님은 1991년 해반문화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30년 세월의 소회, 앞으로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약 70년 동안 살고 있어요. 유년 시절을 송림동 달동네에서 보냈어요. 어릴 적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해안성당으로 심부름 다녔고 화교 친구도 사귀었죠.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만국공원 일대는 맘껏 뛰놀던 놀이터였습니다. 아련한 추억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해반문화는 인천 토박이로서 고향의 추억을 유산으로 축적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직을 이끈 30년 세월 동안 기쁜 일, 아픈 일, 인간 관계의 갈등을 두루 겪었어요. 승승장구하기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 때문에 고전하기도 했지만 다시 힘을 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해반문화의 이사장이지만 뿌리는 화가입니다. 지금도 하루 10시간 꼬박 앉아 그림 그리고 꾸준히 전시회를 열고 있어요. 해반문화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문화 현장에서의 소중한 경험이 알게 모르게 제게 스며들어 작품으로 투영되더군요. 또 제 손을 거쳐 인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그림지도들, 굿즈가 완성됐죠. 2024에는 송림동 달동네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시절, 그 공간을 추억하는 분들의 발길이 이어지군요. 뭉클한 경험이었습니다.
화가로서 저는 작품활동에 매진할 것이고 해반문화의 리더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계속할 겁니다. 힘닿는 대로 인천뿐만 아니라 강화도, 옹진군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도 의미있는 활동을 전개하며 문화유산 지킴이 네트워크를 탄탄히 다지며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