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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어머니 전상서-번외]
30대 중반이란 나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생각의 깊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현실을 인정할 수 없고, 벗어나고 싶단 마음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적도 있던 저를 이렇게 살아내고, 버텨낼 수 있도록 바로잡아 주신 당신께 감사의 말을 우선 전합니다.
보이는 사실에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 냉정하게 끊어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저를 이렇게 변할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신 당신의 현명함을 뭐라 말로 표현해서 감탄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시련들을 꿋꿋하게 버텨내고, 두 자식을 위해 흐트러짐 없이 한길만을 외로이 걸어오시면서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식의 좌절감을 내비추지 않으셨던 당신은 늘 가정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며 기도를 올렸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자식만 바라보고 한평생을 살아온 당신께 이젠 제가 보답을 해드려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조금은 여유 있고, 조금은 인생을 즐기면서 당신의 마지막까지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어머니...
예순이란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청춘을 행복하게 비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걱정 없이, 외롭지 않도록 자식 된 도리로써 보살피겠습니다.
말로는 다 갚을 수 없는 당신의 사랑에 비하자면 따라갈 수도 없는 마음일지는 모르나, 하나씩 그렇게 채워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이루나 드림
* * * *
[못다한 이루성의 이야기]
너무 어렸다. 어떻게 손쓸 수도 없게 그저 난 겁에 질려 있었다. 그의 언성에 하루하루 가슴조리며 불안해하기 일쑤였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이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버텨내기에 급급했었다.
나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기에도 버거웠던 내게 어느 순간부터 주변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누나를 걱정하는 동생이 되어 가고 있었다. 10대, 20대의 이루나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은 없었다. 그저 동생과 엄마를 걱정하고, 보살피는 의무감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에는 뒷전이었다.
이루나는 아버지란 사람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남자를 없애버리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말을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린 현실에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이루나를 위해 지원군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우석의 부름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찾아갔고, 도움을 청하는 현우석에게 있는 그대로의 이루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듯 흔들리던 눈빛은 이내 결심을 한 듯 확신의 찬 눈빛으로 바뀌어있었고, 그렇게 내게 매형, 엄마에게 사위가 되었다.
‘행복해보여서 참 좋다. 내 누나 이루나.’
* * * *
[10년후]
“반갑습니다. 이루나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번엔 어떤 작품이신지 인터뷰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음... 소재고갈로 인해서 작품생활을 잠시 접을까 하다가 문득 제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무심코 실행으로 옮기게 됐어요.”
“어머! 그럼 이번 작품은 이루나 작가님 실제 이야기이신 건가요?”
“굳이 구분을 하자면 그렇겠네요.”
자그마한 키에 사진촬영카메라를 어깨에 걸쳐 메고, 루나가 있는 작업실을 방문한 기자.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한 듯 루나는 아무렇지 않게 기자 앞으로 차를 내놓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루나는 조금씩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10년이란 시간동안 많은 작품들을 하나씩 내놓았고, 어느덧 다섯 번째 작품 관련 인터뷰를 갖던 자리였다.
쉽지 않았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어내고 완성된 원고를 기자의 앞에 가지런히 내 놓는다. 한 장씩 넘겨가면서 내용을 읽어내려 가던 기자는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눈동자를 찡긋 거리기도 하면서 차츰차츰 진도를 나가기 시작한다.
“씁...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네요. 이게 정말 작가님 이야기란 말인가요?”
“뭐.. 100%라고 할 순 없겠죠, 아무래도 소설이다 보니 재미요소를 조금씩은 첨가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60~70%는 거의 제 이야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신작에 대한 단독 인터뷰를 제게 맡겨주신 것에,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그 작품을 제 눈으로 처음 볼 수 있게 해주신 것까지요. 앞으로의 행보 기대하겠습니다. 아... 책 나오면 사인 받으러 한 번 더 찾아봬도 될까요?”
“언제든지요. 기자님 오신다고 하면 하던 작업도 그날은 쉬고, 맞아드릴게요.”
“진짜 영광입니다. 오늘 인터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뒷걸음으로 연신 루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현관을 빠져나가는 기자. 오래전 꿈이기도 했던 작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루나는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고, 우석은 창업에 열의를 보이더니 끝내 해내고 말았다. 대형 마트의 CEO가 되면서 지역별 지점까지 내주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도록 일에 치여 살다 시피 한다. 하지만 루나의 전화 한통이면 하던 일도 모두 내려놓고 바로 달려오는 사랑꾼의 면모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사랑하려면 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