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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성당울뜨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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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방 스크랩 수도원에 식구가 많다보니 명절을 준비하는 풍경도 ...
프리실라 추천 0 조회 33 10.02.23 10: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수도원에 식구가 많다보니 명절을 준비하는 풍경도
고소한 냄새만큼이나 진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여럿이 둘러 앉아 만두를 빚고 있는 곳에서는
만두소의 다양한 재료들만큼이나 넉넉한 이야기들이 오고갑니다.
그리고 빚어 놓은 만두 모양들은 또 어쩜 그리도 다양한지,
모양새만 보고도 고향이 어딘지 대충 맞출 수 있을 정도입니다.
새삼 설날 아침상에 오른 만둣국을 보면서
각 지방의 고유함을 품어 안고 있는 수도원이
복을 품고 있고 있는 넉넉한 만두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이 어디 수도원뿐이겠습니까...
서로의 인연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있는 모든 가정이 그렇겠다 싶습니다.

명절 음식 준비 중 제가 맡은 것은 녹두부침개!
물에 불린 녹두를 믹서에 가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그런데 한참을 신나게 갈다보니 씩씩하게 돌아가던
믹서가 꼼짝을 안합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수녀님들께 물으니 ‘열 받아서’ 그렇답니다.
이리 저리 만져 보니 뜨끈하긴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열 받는다고 그냥 서버리면
이렇게나 많이 남은 녹두는 다 어쩌란 것인지 괘씸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열을 식히는 것이 우선인지라
믹서를 들고 바깥바람을 쏘이러 나갑니다.

주방 옆문을 밀고 나오니 아직도 전날 내린 눈이 그대로 있습니다.
눈을 싹싹 쓸어내려가고 있는 수녀님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믹서를 식히고 서 있으려니 찬바람에 제 정신까지 말갛게 깨어납니다.

‘열 받았다’ 싶을 때 그래도 정지 할 줄 아는 믹서가 저보다 낫다 싶습니다.
더 무리하면 속이 다 타버릴 텐데 그래도 서야 할 때를 알고 있으니
열이 식으면 다시 움직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사는 동안 믹서만도 못했던 경험들이 솔솔 떠오릅니다.
화가 난다 싶어도 정지선을 잊어버려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경험입니다.

눈 구경하며 믹서는 열을 내리고 저는 맑은 생각을 길어 올리다가
전 보다 더 힘찬 소리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명절에 새겼던 가르침들 기억하며 ‘정지선을 지키자’ 결심을 세워봅니다.

바오로딸 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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