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의 漢文이야기 7
寒食(한식)의 유래
우리나라에서도 한식 하면 누구나 다 아는 날이다. 그러나 유래에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옛날에 介子推(개자추)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에 晉(진)나라 文公(문공)이 오랜 망명생활 끝에 秦(진)나라의 도움으로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자 곧 論功行賞(논공행상)을 실시했다. 문공과 함께 망명하고 객지에서 받들어온 사람을 1등상, 원조를 한 사람들을 2등상, 귀국을 환영한 사람을 3등상으로 하여 합당한 토지와 작위와 벼슬로 상을 내렸다. 그런데 문공과 함께 망명하며 곁에서 직접 모시면서 천신만고를 몸으로 겪은 개자추는 귀국 후 병으로 집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죽 한 끼도 먹기 어렵게 가난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사람들이 몰려와서 문공의 포고문을 알리면서 재빨리 신고하기를 권했다. 개자추에게 말하기를 신고만 하면 당연히 당신은 일등공신일 것이다. 그러면 토지와 벼슬이 내려져 당장에 지금의 가난도 끝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개자추는 권고를 듣지 않았다. 국내에서 일신의 안녕과 축재에만 눈이어두웠던 자들이 이제 와서 문공이 왕이 되자 남의 공을 훔쳐 자기 공인 양 날뛰는 貪天之功(탐천지공)이 싫었던 것이다. 망명시절 개자추는 자기의 넓적다리를 굶주림에 시달리는 문공을 위하여 몰래 베어서 문공에게 국을 끓여 바쳤던 충신이다. 그러나 공을 훔쳐간 자들의 날뛰는 꼴이 보기 싫어 차라리 숨어살고 싶었다. 개자추의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그게 무슨 소리냐? 신고를 빨리 해라”
하니 “어머니, 저는 무엇을 바라서 충성한 것이 아닙니다. 군주를 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했을 뿐입니다. 제가 신고하지 않음은 남의 공을 훔쳐서 제가 세운 양 하는 무리들과 함께하기 싫어서입니다.”
어머니 왈 “네 생각이 옳구나.”
개자추는 말을 이어서 “문공은 明主(명주)입니다. 왕위에 오른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부의 파렴치한 자들이 군주에 대하여 탐천지공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자들과 함께 하느니 차라리 짚신을 팔아먹고 사는게 더 사람다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하고 여쭈니, “듣고 보니 네 생각이 백번 옳구나.”
그리하여 개자추는 그날 밤에 綿山(면산)으로 들어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공은 군을 동원하여 면산을 수색했으나 찾지 못하자 찾을 욕심에 면산에 불을 질렀다. 개자추와 그 어머니는 끝내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개자추 모자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그날만이라도 불을 피우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그리하여 그날이 寒食(한식)이라는 風習(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글 : 月谷 朴 鳳 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