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 6층 비대칭 복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익산에서는 지금 후대에 길이 남을 중요한 일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익산의 자존심, 자긍심이며,
전북도민의 염원이 깃든 문화유산이고,
백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미륵사지 석탑 복원입니다.
1999년 해체가 시작되어
2013년 복원 기초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는 1915년 일제가 시멘트를 발라놓았던 6층 비대칭 모습으로 확정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륵사지 석탑 복원 계획(모양)에 대해 이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6층 비대칭 복원의 결정 근거와
★6층 대칭 복원의 주장,사진자료를
제 블로그에 자세하게 기술해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구해보고 싶습니다.
아래 글을 읽어보시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적극적인 의견 꼭 부탁드립니다.
따뜻하고 즐거운 주말되세요!
-임형택 의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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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비대칭 복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근래 미륵사지 박물관 국립 승격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와 함께 후대에 길이 남을 중요한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11월 제182회 익산시의회는 익산시 2014년 주요업무 결산보고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익산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소관부서인 익산시 고도문화재과의 주선으로 매우 소중한 일정을 가졌습니다.
11월 12일(수) 미륵사지 석탑 복원공사 현장방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재청 사무관님께서 직접 익산에 오셔서 현장 감독님과 함께 아주 상세하게 복원의 계획들을 설명해주셨습니다.
특히 최근 이견이 표출되고 있는 비대칭 복원 계획(모양)에 대해서도 그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국보 11호는 미륵사지 서탑입니다.
동탑은 전라북도에서 맡아 9층까지 복원해 둔 상태이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보 11호 서탑은 그 중요성이 매우 큰 관계로 문화재청, 국립 문화재연구소가 전라북도와 대행협약을 체결하고, 직접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석탑 해체부터 복원공사 시작까지의 추진경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98년 구조안전진단, 1999년 문화재위원회 석탑 해체보수 결정에 따라 실측조사 등 준비를 거쳐
2002년~2003년까지 6층부터 2층까지 역사적인 해체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논의 끝에 2006년부터 석탑 1층 해체조사에 착수하여 2010년까지 석탑 해체 및 발굴조사를 완료하였습니다.
그 과정에 2009년 석탑 중심 심주석 안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과거의 탑들을 보면 대개의 경우 사리 등은 탑 아래 지하쪽에 봉안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제의 도굴꾼들도 미륵사지 석탑 심주석 아래쪽은 여러 차례 도굴을 한 흔적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륵사지 석탑은 특히하게도 땅 위쪽 탑의 중심 돌에 해당하는 심주석안에 '사리장엄'을 보관해두었다고 합니다.
1400여년전 튕겨놓은 먹줄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그 경이로움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 덕분에 1,400여년 동안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채 우리들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함께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을 통해 639년 탑 건립시기 및 미륵사 창건 주체와 성격도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부터 3차원 실측을 통한 정밀모형제작, 1층~2층 부재 보존처리, 토층 보강방안 연구,
국제포럼, 지역민 공개설명회, 보수정비 계획설계, 실시설계 등을 거쳐
드디어 2013년 '미륵사지 석탑 복원 착수식'을 개최하고 현재까지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본래의 석탑 돌(구부재) 가운데 깨진 돌의 경우에는 신기술을 도입하여 신부재(황등석)와 결합시켜
돌 모양을 복원하는 구조보강처리 특허기술까지 도입하는 등 역사에 남을 문화재를 복원한다고 하는
시대적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 왼쪽은 신부재, 오른쪽은 본래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구부재
깨진 부분은 신부재를 끼워 맞추어 복원해놓은 모습
그런데 최근 미륵사지 석탑 복원계획에 대해 이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복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륵사지 석탑의 모양과 관련하여 이견이 크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 문화재 위원 등의 수많은 회의와 검토를 거쳐
복원의 계획(모양)을 결정하였고, 그 고민과 노력의 흔적은 충분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는 6층 비대칭, 6층 대칭 복원 등 모든 경우에 대하여 검토하였고,
최종적으로 6층 비대칭 모양으로 결정하여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의 6층 비대칭복원 결정 근거>
1. 6층 비대칭은 신부재를 38%를 사용하는데, 과다사용(68%)하게 되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저하된다.
2. 비대칭이라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모형 실험을 한 결과 한쪽으로 하중이 몰려 붕괴될 위험 없이 구조적으로 안전하다.
3. 미래에 9층으로 원형복원하고자 하면 일부 해체한후 복원공사가 가능하다.
4. 우리가 확인하여 알고있는 모습은 바로 6층 비대칭모습으로 이 또한 역사이다.
이 모양은 조선시대까지도 6층 비대칭 모습이었으며 더 이상 붕괴되지 않도록 일제가 시멘트 작업을 해놓은것 뿐이다.
<6층 대칭복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
1. 신부재를 68% 사용하더라도 베니스 헌장 등에 따르면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 소형으로 만든 모형 실험은 충분치 않고, 비대칭을 복원 할 경우 한쪽으로 100톤 이상이 하중이 생겨 붕괴위험이 있다.
3. 6층까지 모두 복원하고 차후 하중문제 등 안전성이 보장되면 9층까지 복원하기에도 용이하다.
4. 6층 비대칭 복원은 문화유산의 파괴 행위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익산시민의 자존심으로 1915년 일제가 시멘트를 덧씌워놓은 모양을 복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익산의 자존심, 자긍심이며 전북도민의 염원이 깃든 문화유산이고 백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미륵사지 석탑.
동아시아 최대의 석탑이기에 그 복원이 결코 간단치 않은 것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 복원의 최종 계획에 대해 대다수의 시민들이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문화재청, 익산시에 미륵사지 석탑 복원계획에 대해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기를 적극 요청하였습니다.
간단치 않은 역사적 과정이기에 각계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가 중요하고 그에 따라 계획이 수립되었겠지만
결국 시민, 도민, 국민들의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문적 식견은 없지만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에 무한한 기대와 애정을 가진 익산시민, 도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복원 모양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길이 남을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되도록 신중하게 기술해보았습니다.
복원 계획(모양)과 관련한 근거를 정리해놓은 내용들 가운데 부족한 부분은 널리 이해해주시고
더 많은 분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댓글 등을 통해 충분히 의견주시고 더욱 보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구해보고 싶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계획(모양)에 해대 지금까지 글을 읽어보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적극적인 댓글과 의견 꼭 부탁드립니다.
[임형택의 친절한 의회일기 42]
미륵사지 석탑 복원 계획(모양), 어떻게 생각하세요?
첫댓글 비대층 복원은 진정성이 제로인
문화재 파괴행위입있다
절데로 막아야합니다
탑의 구부재란 탑의진정을확보한
구부재함은 탑의완전한(형태을갓추기워한석재) 일제강기 만든잡석은구부재가안임(가층적심석)탑의봉계 워험을막기워한고임돌 잡석
바람의 친구님,
신라인의 지문이 선명한 옹기받침은 흙 주물러놓은 흙덩어리라는 말씀이신가요?
고임돌이 잡석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재기합니다
숭례문 해체과정에 도목수 욕하는 문자등도 페설일수 있는건가요?
그야말로 산업쓰래기,고임돌에 대한 개념없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돌쌓기하는 집단 아닌가? 무식한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