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의 모교 모습)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구태여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써서 말을 하는 의도가 이 글의 전반적인 냄새 일것 같다.
초로의 나는 얼마전 60년전 졸업한 국민학교를 둘러보고 왔다.
아침 등교시간에 큰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던 행진곡이 들리는 듯 했다.
기름 냄새나는 검은색 판자벽, 교문에 들어서면 횡으로 쭈욱 다가오던 기와지붕이 눈에 선했다.
복도를 걷노라면 들려오던 삐걱 거리던 판자들의 마찰음, 꿈속에서도 들리던 땡 땡 땡 학교종소리, 운동회 날 운동장에 펄럭이던 만국기, 하얀색으로 그려졌던 달리기 마당선들, 옥수수 가루와 분유를 배급받기 위해 운동장 한가운데 줄 서서 기다리던 기억들 , 설레어 잠 설치고 나섰던 소풍길등을 떠올리며 지난날을 회상해보았다.
그렇지 굶던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 그 옥수수 빵은 너무도 맛있었다,
미국이 무상으로 원조해 준 옥수수 가루며 분유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이 나면서 그 옥수수 빵 냄새가 코에 스미는 듯 했다. 옥수수 가루며 분유를 배급받기 위해 고사리 손에 빈 도시락을 들고 운동장 가운데 줄을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들의 모습들이 눈앞에 닥아온다.
당시 아버지께서 낙민동 동회장직을 맡고 계셔서 우리집에는 옥수수 가루며 분유가 항상 넉넉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배급받은 옥수수 가루며 분유를 집에 가지고가서 빵을 쩌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고 입가에는 흰색 분유가루를 잔뜩 바르고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신나게 뛰어 다니며 천진난만하게 놀던 생각이 난다 .
여름날이면 매미소리가 숨넘어가듯 자지러지던 운동장 주변의 플라타나스는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조형물들로 가득했지만 나의 뇌리속엔 세월을 보듬고 모든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나의 어린시절을 죄다 저장하고 있을 못생긴 플라타나스가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60년이 지난 지금 예전의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깨복쟁이 친구들의 모습이 가슴 한컨을 짠하게 한다 .
자세히 보지 않아도 감지 될수 있는 뭣인가가 분출되고 있었다. 그것은 설래임이고 설움이었다.
부산 동래의 한 모퉁이에 자리한 유락국민학교 , 37회 졸업생 150여명의 꼬맹이들이 전국각지에 흩어져 할 값 하면서 살게 된 이 나이된 지금까지 그들의 에너지는 “설움” 그것이였을 것이다.
번화가에서 자란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자연 속에서 올라오는 설운 사연들, 학교 주변엔 동해남부선 철길이 가로 놓여 있어 수업시간에도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들리곤 했던 추억의 시간과 공간들.....쉬는 시간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 하던 여학생들의 고무줄을 자르고 다니며 즐거워 키득 거리던 철부지했던 기억들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
놀거리가 없어 위험한 줄 알면서도 기찻길위에 못을 올려 놓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동심의 세계, 먹을 거리가 없어 주인에게 붙잡히면 혼이 날줄 알면서도 주변의 연밭을 휘집고 다니며 연근을 싹슬이하던 친구들과의 추억들, 비록 돌담이 블록 담으로 변하긴 했으나 고샅의 곡선이 그대로 남은 옛집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 동심의 꿈을 키워왔던 우리들의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곳, 하긴 누구라고 그때의 설운 사연 없는 사람이 있으리오마는 그때의 설움을 에너지로 승화시킨 자랑스러운 친구들을 생각하며 조용히 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
어린날의 학습효과는 평생을 간다는 것. 그 설움이 나를 긍정적으로 다그친 에너지가 되고 향수가 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나의 아들딸들에게는 나처럼 바닥의 설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기초적인 자식사랑으로 나타나는 한편 내 설움의 현장에서 그 배경이 된 근본적인 원인까지도 격을 높여 품으려드는 아쉬움을 보았다. 아마도 그 설운 시절의 나를 그 당시의 현실 속에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 현상으로 파악을 해봤다. 당시 사회를 엮고있던 말단 권력자들의 권위주의의 횡포, 그들의 뒷배경이 되어준 중앙권력, 약자들에게 한을 품게 했던 군사문화의 정치,경제 현실, 그것이 우리 설움의 근본 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렇드라는 것이다.
어린시절 다 같이 가난했기 때문에 눈물 젖은 빵은 설움의 순도가 다르다. 다만 힘없고 가난하고 못 배운 우리 부모들을 차별하고 지역적으로 차별했던 그 당시 정치,사회 현실이 진하게 응어리가 된 설움인 것 이다. 그 고압적 권위와 차별의식을 설움의 원인으로 설정하면서도 설운시절의 상황 속으로 돌아가 우리를 차별하고 구속했던 힘과 나란한 수준으로 자신을 올려놓고 싶은 심리적 현상이 있으며, 결과 그때 그 시절의 인물들을 개조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우선적으로 평가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필부인 바에야 어찌 그런 현상을 탓하여 오늘의 설레임을 감하리요.
우리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 두 시기를 처음부터 영향을 받고 체험한 세대들이어서 그 설레임의 와중에도 구태여 두 시기와 우리들의 감수성에 대해서 논하는 깨복쟁이 친구들도 있을 것이며. 설움 속에서 자수성가한 친구들이 자기도 모르게 권위주의의 뿌리를 추종하는 경향도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다시 돌이킬수 있다면 되돌아 가고픈 추억속의 그 시간들, 춥고 배고팟던 시절이였지만 왜 그 시절이 그리도 그리울까요. 설움이 분출되는 회한의 감회속에서 비록 힘들고 어려운 시대였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었고, 낭만과 인정과 사랑이 함께 공존했던 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016년 03월17일
유락 국민학교 37회 동기회
글쓴이 카페지기 안태옥
인삿말 한줄 남기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