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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발리크에서 트로이까지는 156km이고 걸리는 시간은 3시간이라고 나온다.
다섯 시에 기상하여 여섯시 반에 트로이로 출발하였는데 우리의 상상 속에 트로이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신의 아들들이 어울
려 전쟁이 벌어진 곳으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어본 사람이나 브레드 피트가 아킬레우스, 에릭 바나가 핵토르로 나온 2004년도의 트로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 역사의 현장이었던 트로이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벽 같이 버스에 짐을 싣는다...여섯시 반에 출발로 터키여행의 특징이다. 오늘 이스탄불에 도착을 해서 관광을 하고 야간 투
어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의 바닷가...그래도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를 환송하기 위해서 출동한 견공들....이곳도 임자없는 개들이 많다...손으로 만지면 안되는데 주인이 없어서 씻겨주지 않기
때문에 털들이 너무 불결하기도 하고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었던 마레라는 호텔이다.
옥상에는 이런 풀장도 있는 3성호텔이다.
해안지방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풍차도 보이고...
아이볼릭에서 출발한지 두시간이 넘어서 트로이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인다.....소시적에 호르메스의 일리어드를 읽으면서 트
에게해와 트로이에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해 왔었던가...이 표지판을 보면서 가슴이 설렌다.
동방원정을 떠나던 알렉산더 대왕도 원정길에 이곳을 들러서 갔다고....
트로이로 들어가는 트로이 성벽의 배후...전에는 이곳이 사람이 살던 곳이었을 것이나 세월이 지나면서 흙에 뭍혀 밭이 되지 않
았을 것이다.....지상에는 남아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삼국지나 수호지를 가슴 뛰며 읽었던 사람이라면 삼국지나 수호지에 거론되는 대표적인 지명의 광경들을 상상 속에서 그려 보
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여행을 가서 정작 지명의 현장을 보았을 때는 상상 속에서의 광경과 너무 다른 모습에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처럼 이곳도 그럴 수밖에 없는 곳이다.
트로이 영화를 본 사람이나 일리아스를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영화의 장면을 떠 올리거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신들과 신의
아들들 그리고 영웅들을 떠올리면서 트로이를 생각하였을 것이나, 이곳에는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나 에페소에서처럼 지상
에 남아 있는 유적이 없다..
일리아스의 열렬한 독자였던 독일의 슐레이만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 트로이를 발굴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이 1870년도
에 발굴을 하여서 이곳이 트로이가 실제로 존재했었던 곳이라는 밝히기 전까지는 흙 속에 묻혀 있던 유적지에 불과했기 때문이
다.
그리고 호르메스(호머)의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일리아스는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중국의 수호지와 같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올림포스의 신이 등장하는 그런 전쟁을 실재로 역사상에서 있었던 것으로 믿고 싶어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지상에 보이는 유일하게 트로이를 상징하는 목마가 관광객들을 맞아 준다.
입구에 들어가면 카다란 목마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관광객들에게 빌려주는 무기와 방패와 복장들이 있다.
뒤에 박물관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발굴된 성만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는 것이 고작이다.
사실 역사학자가 아니라면 땅속에 있었던 성곽이나 성곽의 쌓여진 시기나 그 곳에서 있었던 문명들의 흔적들은 그리 관심이 있
는 부분들이 아니다.
발굴된 부분을 한 바퀴 돌고는 목마 앞에서, 또는 목마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트로이에 들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
로 트로이관광에 의의(意義)을 두게 된다.
트로이 방문 기념사진부터 찍는다...
사실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트로이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터키 관광객들을 모집하는 여행
사 중에는 이곳을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관광객들에게 빌려주는 방패와 무기 그리고 옷...사진도 직접 뽑아 주는 모양
트로이전쟁 때 사용하던 팡패와 칼
눈에 보이는 것은 발굴해 놓은 돌무더기(?)들로 문양을 보고 어느 시대의 것인지 짐작을 한다.
발굴된 트로이 성벽들...흙 속에 묻혀 있었던 것들이다.
설명을 들으면서 가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조차 알아듣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성벽의 골목을 따라 나가면
멀리 에게해가 보이는데...5km정도 밖에 있는 해변이 옛날에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바다였었다고...
성벽에서 바라본 바다...이곳이 모래밭이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길이다.
대리석에 새겨진 나뭇잎 조각...한때는 화려했던 건물의 일부였을 것이다.
유적지에 대한 안내서 위에 써져 있는 7자는 이곳의 유물 중에서 유물이 나오는 지층의 7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호메르스(트로
이) 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 현장인데 지금은 중단이 되어 있는 듯....
8층은 로마시대의 유물이 묻혀 있는 층이라고
트로이 성벽 안이나 성 밖 주변에는 이렇게 큰 상수리나무(열매가 길쭉한 것을 보아서) 많이 있다...저 뿌리는 옛날의 유물에 닿
아 있을 것이 아닌가?
2와 3의 표지들이 붙어 있는데 숫자가 낮을 수록 오래된 유물층인 셈이다....그리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
미가 없고....
돌틈새 피어 있는 야생양귀비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곳이 성루(망대)라고...전에는 높았지만 토사에 묻히는 바람에 땅과 같아져 버렸다.
트로이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찍는 기념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ㅎㅎㅎㅎ
우물 같이 생긴 것이 우물이 아니고 망루라고....
어떤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무념무상으로 유적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트로이는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었다. 트로이의 전설
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며, 호메로스 서사시의 근간을 이룬다. 광활한 유적 덕분에 트로이는 고대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적지가 되었다. 1822년 찰스 맥라렌에 의해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 소재지로 밝혀졌으나, 학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은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에 발굴을 시작한 이후였다. 슐리만과 되르펠트는 주거지가 파괴되어 버린 9
개 주요지층의 순서를 밝혀냈다. 한 세대 동안 지속되었던 제7a기는 BC 13세기경 발생한 화재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이때의
트로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묘사된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다음백과)
목마가 있는 주차장 겸 광장으로 돌아온다....2층과 3층으로 올라가서 전망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트로이의 목마는 그리이스의 뛰어난 목수이자 권투선수였던 에페이오스가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은 전쟁에서 철수하는 체하고
근처의 테네도스 섬에 정박하고 있었다. 뒤에 남은 시논은 트로이인들에게 이 말이 트로이를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든 아테나
여신에게 받치는 제물이라고 말했다. 라오콘과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이 말을 성 안으로 들여놓았으며,
이 말 안에 들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은 그날 밤 성문을 열어 그리스군을 들어오게 했다.
그래서 트로이는 패망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이네이스 Aeneid〉 2권에 자세히 나와 있고, 〈오디세이아 Odyssey〉에도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트로이의 목
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가 그린 트로이의 목마
정면에서 본 트로이 목마
목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올라가서 창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찍기도 한다.
목마에서 올라가서 보면 해안이 눈앞에 보인다....지금은 들판이지만 저곳에서 그리이스의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의 핵토르가 싸
웠던 곳일 것이다.
트로이 유적지로 들어오는 길
우리도 이곳에 왔다가 간다는 기념사진을 찍고....이 목마도 없었더라면 하루를 투자하고 온 길이 너무 허전해서 어쩔 뻔 했을
까...부녀지간의 사진이다.
각자 이곳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이스탄불로 출발을 한다.
https://youtu.be/urUQbb3EARA(트로이 전쟁 이야기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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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와 관련해서 알아 두면 좋은 인류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과에 대한 이야기
아담을 타락시켰던 에덴동산의 사과.......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사과)를 따먹음으로 인류가 죄인이 되었고.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던 파리스의 사과....트로이가 멸망을 하였고.
만유인력을 발견하게 했던 뉴턴의 사과...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을 발명하였다는데...
사실은 이 세가지 다 뻥이라고 한다.
아래는 트로이에 관해서 사전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관심이 있는 젊은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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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는 트로야·트로이아라고도 한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서는 ‘일리오스’라고 불렸다. 스카만드로스강과 시
모이스강이 흐르는 평야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근대에 와서는 히살리크라고 불렀다)에 있다. 바다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어
바다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은 적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에게해(海)와 흑해(黑海)를 잇는 헬레
스폰투스(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에 있어, 예로부터 번영을 누려왔다.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이 1870년부터 이곳을 발굴하면서 유적이 밝혀졌다. 유적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하층은 BC 4000
년 말기의 것으로,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제2층에는 메가론식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건물이 있고, 이 층에서 많은 금·은 제
품을 발견하였으며, 이 층을 호메로스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슐리만은 이때 발굴한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 1881년 베를린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함으로써 찬란했던 트로이문화가 세상
에 알려졌다.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은 이를 탈취, 금·은 보물은 모스크바 푸시킨미술관에, 도자기류는 상트페테르부르
크 에르미타슈미술관에 소장하다가 1995년 4월 푸시킨미술관에서 다시 전시되었다.
그러나 그후 슐리만을 도운 독일의 고고학자 되르프펠트는 아래에서 제6층에 해당하는 곳이 호메로스 시대의 것이라고 하였다
(BC 15∼BC 12). 1930년대에 와서 미국의 블레겐이 다시 조직적으로 발굴하여 한 층 위인 제7층 A를 호메로스 시대의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제7층 B는 철기시대 초기, 제8층은 그리스인이 이민(移民)한 아르카이크시대의 것이며, 맨 위층인 제9층은 헬레니
즘시대 및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이 무렵 도시는 ‘일리움’이라고 불리었다. 이 시대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원정 도중에 일부러
이곳을 들렀다.
일리아스
1만 5,693행, 24권. 각권마다 그리스 문자의 24 알파벳순(順)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옛날에는 각권마다 그 내용에 부합되는 이
름이 붙어 있었고, 알파벳순으로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BC 3세기에 처음으로 쓰인 권별법(卷別法)이었다. 《일리아스》는 도
시 트로이의 별명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이다. 10년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로 절세의 미인인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
리스가 유혹해 간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지휘로 1,000척의 배를 거느리고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트로
이 성(城)은 함락되지 않는다. 자신을 섬기는 사제 크라이세스의 딸 크라이세이스가 아가멤논에게 잡혀가자 격노한 아폴론 신
(神)이 벌로 액병(厄病)을 내린다. 이 수습책 때문에 벌어진 말다툼에서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그리스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
가 노하여 싸움에서 손을 뗀다. 이 아킬레우스의 이탈이 바로 《일리아스》의 주제이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
티스의 간청으로 주신(主神) 제우스는 신(神)들에게 양군을 원조하지 말도록 명하여 그리스군을 패배케 한다. 패배한 그리스군
의 참상을 좌시할 수 없어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와 전차를 빌려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
전하여 적을 패주(敗走)시켰으나 그는 트로이의 장수 헥토르에게 살해된다. 이 소식에 접한 아킬레우스는 복수하기 위하여 헤
파이스토스가 특별히 만들어준 갑주를 입고 출전하여 헥토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욕보인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
은 신들의 비호(庇護)로 야음(夜陰)을 틈타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헥토르의 시체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
다. 《일리아스》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공방 5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
였다. 무용(武勇)을 노래하고 그리스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방랑 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BC 900년경 쓰여진 작품이다. 그리스
인들에겐 오디세이아(Odysseia)와 함께 그리스 민족의 단일성과 영웅적 자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유럽인의 정신과 사상을 낳은 원류가 되고 있다. 이 시는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
작함으로써 인간주의적 접근을 시도한 최초의 작품이며, 냉혹한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인해 플라톤은 일찍이 아이들에게는 금
서로 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라틴어로는 아킬레스라고 한다.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중심인물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
와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이 그를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려고 황천(黃泉)의 스틱스 강물에 몸을 담갔는
데, 이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아킬레스힘줄[腱]이라는 이름
도 여기서 유래하였는데, 이 전설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친은 그를 트로이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하려고 그를
여장(女裝)시켜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틈에 숨겼는데, 그가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찾아
온 오디세우스에게 발견되었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들 속에 무기를 섞어 놓았는데, 아킬레우스만은
사내라서 무기를 집음으로써 정체가 드러났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여러 미술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리스군은 10년 동안에 걸쳐 트로이를 공략하였으며, 아가멤논은 아폴론 신전의 신관인 크류세스의 딸을 잡아 자신의 애인으
로 삼았다. 하지만 아폴론 신의 저주를 받아 그리스군영에 역병이 돌기시작했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그 여자를 돌려주
라고 하자 아가멤논은 대신 아킬레우스의 애인을 자신의 여자로 바치라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리르네소스의 왕 에티온을 죽이
고 미녀 브리세이스를 손에 넣었으나 아가멤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죽이려고 했지만 아테
나 여신의 만류로 단념하고 대신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 두번다시 전쟁터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가 없는 그리스군은 계
속 패배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갖추고 출진하였는데,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
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다시 전쟁터에 나서게 되었다. 이때 그가 몸에 걸친 무구는 어머니가 공신(工神)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유명한 ‘아이기스’이다. 그는 적장 헥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어 끌고 돌아왔는
데, 헥토르의 부왕(父王) 프리아모스가 몸소 진중으로 찾아와 몸을 굽히면서 자식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헥토르의 인
도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도 마침내는 파리스의 화살에 급소를 맞고 죽었다. 그는 격정적인 성격이었으나 정이 많고 트로이전쟁
에서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알려졌으며, 발이 빨라 준족(駿足)의 대표자로도 알려졌다.
백과사전의 일리아스
《일리아스》(고대 그리스어:Ίλιάς)는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다. 이름은 트로이인들의 왕성인 ‘일리
온’에서 유래하였다. '일리아스'란 이름은 '일리온의 노래' 란 뜻이다. [1]오디세이아(Odysseia)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
양의 문학예술과 문화의 전범(典範)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자는 호메로스라고 알려져 있다.
주제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다뤘다. 9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상황과 전쟁에 관여하는 올륌포스의 신
들, 장수들의 이야기 등을 위주로 한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서 시는 24편으로 나뉘며, 그리스의 대표적 시운중의 하나인 6각운
(Hexametre)으로 작곡되었다. 각 권마다 그리스 문자의 24 알파벳 순서로 이름이 붙어있다. 그리스 문학의 대부분이 운명론에
따른 체념이나 절망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정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영광된 죽음을 택하는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가 작자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는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호메로스가
후대에 전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밀먼 페리는 "호메로스가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그의 서사시의 구조를
보면 구전이 되기 좋도록 되어 있다고 보고, 호메로스가 혼자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문자화 했다고 본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아가멤논이 아폴론 사제의 딸, 크뤼세이스를 모욕한 죄과로 아카이 진영(고대 그리스 동맹군)에 전염병이
번진다. 총지휘관 아가멤논은 공개 회의에서 아킬레우스와 격한 말다툼 끝에 그의 애첩 브리세이스를 강제로 빼앗음로써 또한
아킬레우스를 모욕하게 된다. 분노에 사로잡힌 아킬레우스는 앞으로 트로이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아킬레
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의 부탁에 따라 제우스를 은밀히 찾아가 아카이아군이 패배하도록 요청하여 그의 허락을 받아낸
다.
아가멤논은 제우스가 보낸 꿈에서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것을 본다. 이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가멤논은 장군들과 토론 끝에,
전체 군사회의를 소집한다. 네스토르와 오디세우스는 열띤 논쟁을 벌이며, 아카이아군은 트로이 정복을 포기하고 귀향하자는
의견에 마음이 솔깃해지지만, 신들의 영향하에 있는 오뒷세우스의 강한 반대와 건의에 따라 트로이군과 빨리 결전을 치르자는
데에 합의를 본다. 시의 후반(484-877 이른바 전함 카탈로그)은 전쟁에 참가한 아카이아군과 트로이아군의 지방, 도시 그리고
지휘관들을 노래하고 있다.
트로이아군과 아카이아군은 들판으로 나가 전투를 위해 진을 친다. 그러나 트로이아의 장군 파리스는 홀로 양 진영 사이에 나
서서 자신과 단판을 할 아카이아 용사는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친다. 아카이아군 진영에서 마땅한 도전자를 찾고 있을 때를 같
이하여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는 헬레나를 망루에 불러내어 아카이아의 장군들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다. 마침내 파리스는
헬레나의 (전)남편 메넬라오스와 일대일 결투을 벌인 끝에 패배하며, 아프로디테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헬레나는 여신
의 강요로 파리스가 쉬고 있는 침소로 가 그를 약간은 핀잔을 주면서 위로한다.
제우스를 중심으로 올림포스의 신들은 트로이전쟁의 앞날에 관한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한다. 아카이아군의 편을 드는 헤라의 요
구로 아테나는 판다로스를 꾀어 메넬라오스에게 활을 쏘아 부상을 입힘으로서 이 전에 맺은 협약을 깨친다. 트로이아군의 간계
에 분격한 아가멤논은 곧바로 전투 태세를 갖추도록 아카이아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장군들이 이끄는 부대의 열병식을 끝
마친 후 아카이아군은 드디어 트로이아 진영으로 공격해 들어간다.
디오메데스의 무공과 아테나의 도움으로 아카이아군은 트로이아군을 궁지에 몰아 넣는다. 디오메데스는 선두에 서서 만나는
졸개들을 모조리 물리친 후 메넬라오스를 부상시킨 판다로스와 그를 지원하는 아이네아스와 대결한다. 먼저 창을 던져 판다로
스를 단숨에 꺼꾸러뜨린 다음 아이네아스에게는 바윗돌을 집어던져 기절을 시킨다. 죽을 지경에 놓인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
프로디테가 끼어들지만 성난 황소 같은 디오메데스에게 손에 부상을 입고 도망친다. 아이네아스는 결국 아폴론에 의해 구출되
며, 아폴론은 아테나가 잠시 전장을 비운 틈을 타 트로이아군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또한 아레스가 트로이군의 편을 듦으로써
아카이아군이 궁지에 몰린다. 이를 지켜본 헤라는 다시 아테나를 시켜 아카이아군을 돕도록 한다. 다시 디오메데스는 아테나의
힘을 등에 업고 아레스와 맞붙어 싸운다
트로이아군과 아카이아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틈에 헥토르는 동생 헬레노스의 간청에 따라 성으로 돌아가 아낙네
들로 하여금 아테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도록 권유한다. 이 사이에 전장에서는 트로이아 장군 글라우코스와 아카이아
장군 디오메데스는 서로 족보를 묻고는 서로의 조상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뻐하며 싸움을 그만두
고 가지고 있던 무기를 우정의 표시로 교환한다. 헥토르는 트로이아 성에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동생 파리스를 만나 핀
잔을 준 뒤, 남편을 찾아 어린 아들 아스튀르낙스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헤메는 아내 안드로마케를 성문 근처에서 만나 눈물어
린 이별의 대화를 나눈다. 이는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가장 유명한 이별 장면이다.
아테나와 아폴론은 헥토르에게 아카이아의 가장 용맹한 장수와 일대 일로 싸우게 부추긴다. 텔라몬의 아들, 큰 아이아스와 헥토
르는 일대 일로 결투를 벌인다. 밤이 되어 양쪽 군대가 갈라지고 네스토르가 전사자들을 화장할 수 있도록 휴전을 맺고 아카이
아 인들의 선단 주위에 방벽을 쌓도록 권유한다.
제우스는 아킬레우스를 위해 아가멤논에게 복수해 주겠다고 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신들에게 이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에 다른 신들도 아카이아 군이나 트로이군을 도와주지 못한다. 제우스는 이데산으로 가서 아카이아인들에게
패배를 트로이아 인들에게는 승리의 영광을 내린다.트로이군은 승리하고 밤이 되자 승리에 도취된 헥토르는 아카이아군의 진
전세가 많이 불리해지자 아카이아 군은 전쟁을 접고 귀국하려고 한다. 아가멤논은 귀국을 하려고 하지만 디오메데스와 네스토
르는 이에 반대한다. 아가멤논은 네스토르의 조언에 따라 아킬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 아킬레우스와 화해하려고 하였으나 아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장군들을 깨워 파수병들을 돌아보게 한다.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는 트
로이군의 정탐군인 돌론을 죽이고 트로이군의 진영에 몰래들어가 트로이군을 정탐한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우스는 정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트라키아인들의 진영을 급습하고 말들을 빼앗아 돌아온다.
새로운 날이 밝자, 아가멤논은 무장을 갖추고 전쟁터로 군사들을 이끌고 나온다. 그는 용감히 싸웠지만 부상을 입고 디오메데스
도 역시 부상을 입고 선단으로 돌아간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오디세우스가 적군에게 포위당하자 아이아스가 그를 구해준다.
역시 오디세우스도 부상을 당하고 아카온과 에우리필로스도 부상을 당해 선단으로 물러난다. 네스토르가 마카온을 싣고 돌아
오는 것을 보고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보내 네스토르가 싣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한다.
아카이아군은 트로이군에 쫓겨 방벽안으로 밀려들어가고 헥토르는 방벽을 공격한다. 두 명의 아이아스가 이에 맞서서 항전을
독려한다. 리키아의 두 장군 글라우코스와 사르페돈이 방벽을 맹렬히 공격하다가 글라우코스는 부상을 당해 물러가고 사르페
돈이 격국 방벽을 허물고 만다. 헥토르가 돌로 쳐서 방벽의 문을 부수자 트로이군은 방벽을 넘어 문을 지나 물밀듯이 아카이아
진영으로 쳐들어 간다.
아카이아 군의 선단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포세이돈은 제우스 몰래 아카이아인들을 도와주며 격려한다. 맹렬하
게 공격하는 헥토르를 맞아 두 아이아스가 무너진 방벽 근처에서 선전하고 전선의 왼쪽에서는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가
아이네이아스와 파리스 등을 맞아서 분투한다.헥토르는 풀리다마스의 조언에 따라 군사들을 한쪽으로 집결시켜서 맹렬히 공
네스토르가 마카온을 대접한 다음 다시 싸움터로 돌아가다가 부상당한 아가멤논, 디오메데스, 오디세우스와 마주친다. 아가멤
한편, 헤라는 잠의 신의 도움으로 제우스를 이데산에서 잠재우는 데 성공한다. 이틈을 타서 포세이돈은 아카이아 인들을 도와주
는데 큰 아이아스가 던진 돌에 헥토르가 맞고 부상당하여 물러나게 되고 이를 기회로 아카이아인들이 공세를 시작하여 트로이
제우스는 잠에서 깨어나자 헤라에게 크게 화를 낸다. 이리스를 포세이돈에게 보내 싸움에 개입하지 말라고 종용하고 아폴론을
헥토르에게 보내어 그를 회복시키게 한다. 헥토르가 회복하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 아폴론의 도움을 받아 아카이아 인들을 맹렬
히 공격하자 아카이안인들은 결국 맨 앞쪽의 선단으로 부터 후퇴하기 시작한다. 큰 아이아스는 해전(海戰)에 쓰는 긴 창을 들고
홀로 분전하지만 중과부적으로 결국 트로이 군은 맨 앞쪽에 있던 프로테실라오스의 배애 불을 지른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입고 출전하여 트로이 군을 선단에서 몰아낸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트로이
군을 선단에서 몰아내기만 하고 돌아오라고 일렀으나 파트로클로스는 이를 무시하고 도망하는 트로이군을 쫓아진격한다. 파트
로클로스는 추격전에서 사르페돈을 죽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결국 헥토르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카이아 군과 트로이군과의 일전일퇴의 격전이 벌어진다.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
에게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벗겨 자신이 입고는 더욱 맹렬한 공격을 가한다. 메넬라오스가 안틸로코스를 보내 파트로클로스
의 전사소식을 아킬레우스에게 알리게 한다. 두 명의 아이아스가 분전하는 동안 메넬라오스와 메리오네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분노한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위해 새로운 갑옷과 방패를 만들어주도
록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겠다고 약속한다. 헥토르가 다시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다시 탈취하려고 공격하는 순간 아킬레우
스가 무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 크게 고함을 지르자 트로이 군이 놀라서 도망친다. 밤이 되자 풀리다마스는 헥토르에
게 아킬레우스가 출전하기 전에 트로이아 군을 성 안으로 철수 시켜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헥토르는 이에 따르지 않는다. 아카
이아 군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헤파이스토스는 테티스가 부탁한 아킬레우스의 새 무장을 만들어준다.
날이 밝자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새로운 무장을 가져다 주고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모든 아카이아 군들이 지켜보는 가
운데 화해한다. 오디세우스의 권고에 따라 모든 아카이아 인들은 아침을 먹고 아킬레우스를 따라 전쟁터로 향한다. 출정하기 전
에 아킬레우스의 준마 크산토스가 헤라의 힘을 입어 인간의 음성으로 아킬레우스가 오늘은 승리하지만 결국 전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무시하고 전쟁터로 나간다.
제우스는 아킬레우스가 당장 트로이 성을 함락하지 못하도록 여러 신들이 전쟁에 관여하는 것을 허락한다. 아폴론이 아이네이
스를 부추겨 아킬레우스에게 맞서게 한다. 여러 신들은 각자 자신들이 응원하는 측으로 갈라선다. 아이네이스가 위험해지자 포
세이돈은 그를 구해준다. 아폴론은 헥토르에게 싸움에 나서지 말 것을 권고하지만 헥토르는 이를 무시하고 동생 폴리도로스의
죽음에 화가 나서 아킬레우스에게 맞선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거의 죽음을 당할 뻔하는데 아폴론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
난다. 아킬레우스는 도망치는 트로이군을 크게 무찌른다.
트로이 군의 일부가 스카만드로스 강에 빠져 헤어나오니 못하는데 아킬레우스가 칼을 빼들고 뒤쫓아가서 닥치는 대로 죽이고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제물로 삼기위해 12명의 젊은 군인을 생포해 온다. 강의 신이 화가 나서 아킬레우스를 들판으로
추격하나 헤파이스토스가 불로 강의 신을 물리친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군을 성안으로 모두 몰아넣는다.
헥토르는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문앞으로 나가 아킬레우스와 일전을 기다린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쫓고 쫓기다가 트로이 성을 세바퀴나 돈다. 제우스는 헥토르의 파멸을 결정하고 아폴론은 헥토르를 도와주지 못한다.
아테나가 데이포보스로 변하여 헥토르로 하여금 아킬레우스에게 대항하도록 유도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
체를 전차에 매달고 돌아간다. 헥토르의 부모와 아내는 성벽 위에서 통곡한다.
파트로클로스의 혼령이 밤에 아킬레우스에게 나타나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것을 요청한다. 아침이 되자 아카이아 군은 나무를
해와서 파트로클로스를 화장한다. 그 다음날 화장터 위에 봉분을 만들고 아킬레우스 주최아래 장례 경기가 벌어진다.
아킬레우스가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고 나서 헥토르의 시체를 끌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돈다. 제우스는 테티스를 보내어 헥토
르의 시체를 욕보이지 말고 돌려주라고 명령하면서 이리스를 프리아모스에게 보내어 몸값을 내고 아들의 시체를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프리아모스는 제우스가 보내준 메시지를 믿고 길을 떠나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으면서 무사히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도착한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아들의 시체를 인도하고 헥토르의 장례기간동안에는 휴전하겠다고 약속한다. 프리아
모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데려와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