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외 9편
김남호
오늘도 초점 없는 눈이
뉘시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도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엄마를 마주본다 나를 보는 엄마도
엄마를 보는 나도 초점 바깥에 있다
초점 안에서 뜨겁던 옛날이 꿈같다
아버지도 나도 뜨겁던 그때,
밥 먹다가도 밥그릇이 날아다니던 그때,
눈빛만 마주쳐도 불이 붙던 그때,
식식거리며 시커멓게 탄 가슴으로
사립문을 박차고 나오던 그때,
등 뒤에서
박살난 그릇들을 주워 담던
그때 엄마의 눈빛도 저랬을까
저렇게 초점 바깥에 있었을까
지금 뛰쳐나간 게 뉘요
하는 눈빛이었을까
그때 깨진 초점이 아직도 저러고 있을까
저문다는 말
저문다는 말에는 땅거미가 지지
나를 지나 내 뒤쪽으로 뒤뚱뒤뚱 사라지는
털이 부숭부숭한 거대한 거미가 있지
저문다는 말에는 발소리가 들리지
발자국은 없고 발소리만 들리지
멀고먼 북천의 언저리에서
됫새 떼처럼 내려와 수런거리다가
귀 기울이면 감감해져 버리는
자박자박 흙마당 밟는 소리 들리지
저문다는 말에는 거지가 있지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안 부르는 것도 아닌
혹시나 싶어 사립문 열고 내다보면
식은 밥처럼 서 있는 내가 있지
저문다는 말에는 엄마가 있지
막내를 부르는 엄마의 꼬리 긴 모음이 있지
모음만 있지 아야 어여 날은 저문데
새벽 개미
새벽꿈에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보았다 꿈속에서 엄마는 치매도 없고 건강했다 나는 비를 들고 개미가 줄지어 다니는 방바닥을 쓸었다 쓸어도 쓸어도 개미는 기어 나왔고 쓸어 담은 개미는 마당에다 털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도 시퍼런 불길이 치솟았고 버린 개미는 방으로 다시 기어들어왔다 엄마는 빗물에 적신 비로 개미를 쓸어서 방문에다 풀칠하듯이 발랐다 개미는 텅 빈 문살에 거미줄처럼 발렸다 문살에 개미를 바르자 방바닥에는 개미가 사라졌다 마당에도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마당으로 개미 대신 시퍼런 불길이 달려오고 있었다 얼굴이 후끈했다 놀라서 잠이 깼다 아, 꿈이었구나! 젖은 개미 떼가 지나간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불면증 심한 아내는 겨우 잠들었는지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에 꿈에서 보았는데도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옷차림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요양원에 밤새 무슨 일이 생겼을까?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이 시한폭탄처럼 깜박거렸다 내 더듬이는 자꾸 불길한 쪽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나이의 바깥
봄볕이 좋아서
어머니를 잠시 모시고 나와
요양원 가까운 공터에서
해바라기를 한다
공터 주위엔 10년도 안 됐을
이제 겨우 나무 꼴을 갖춘 벚나무들이
지지목의 부축을 받은 채 줄지어 서 있다
그 아래로
일고여덟 살쯤 됐을 자매가
나풀나풀 지나간다
언니, 이 나무는 100살쯤 된 거지?
아냐, 이건 90살밖에 안 돼!
올해 105살 어머니가
휠체어에 얼굴을 묻은 채
기억의 바깥에서
부끄러운 듯이 졸고 있다
한국근현대 백년사
105살 엄마를 모시고 응급실을 갔다
생년을 확인한 의사도 간호사도
뜨아한 눈빛이다
오늘 죽어도 호상인데
뭘 이렇게 호들갑을 떠나 하는
그래도 몇 가지 기본적인 검사를 했다
환자의 환후를 염려해서가 아니라
절차상 필요해서 병원의 돈벌이를 위해서
하지만 그 이상은 말렸다
검사받다가 돌아가실 것 같았다
기능이 정상인 데가 없다
하긴 백 년을 넘게 썼는데
제대로 된 부위가 어디 있으랴
온몸 안팎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는데
치료를 할 수도 없고
할 데도 없고
뭘 어떻게 해줄까요 하는 표정으로
의사가 나를 본다 그래도 뭘 해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나는 의사를 본다
한국근현대 백년사가 병상에 누워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줄을 보고 있고
나는 뭘 어째야 할지를 몰라
병실 바깥에서 무너져가는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비와 신부
신부는 아직 착하고 그 아비는 여전히 늠름해서
내가 아는 마지막 부족처럼
순한 짐승의 털가죽으로 부끄럼만 가린 채
손을 잡고 이목구비들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아, 가로지른다는 건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출렁거리는 것이구나
가로지를 때 신부는 화살이 되고
가로지를 때 아비는 과녁이 되는구나
화살은 시위에서 떨고 있는데
과녁은 벌써부터 흔들리는구나
흔들리는 걸음걸이가 아비를 만드는구나
아비와 나란히 걷기 위해 자신의 바른쪽 뒤꿈치를 자르는
저 글썽이는 하얀 옷자락이 신부를 만들듯이
이목구비가 많아서 슬플 수도 없는 면사포처럼
개표하듯이 쏟아지는 저 하얀 봉투더미가
그렁그렁한 패총貝塚을 만드는구나
필리버스터
―시詩
저걸 가려움이라고 하면
손톱을 부르는 가려움이라고 하면 안 될까?
회칼을 부르는 생선이라고 하면 안 될까?
도끼를 부르는 장작이라고 하면,
너덜거리는 장작의 갈피에 지루한 말씀처럼 붙어 있는
옹이라고 하면 안 될까?
뭇 사내의 눈알을 주렁주렁 매달고도
횡단보도를 팔랑팔랑 건너가는
망사 스타킹이라고 하면,
밤새도록 긁어도 새벽이 안 보이는
즉석복권이라고 하면
안 될까?
필리버스터
―골절
팔 하나 부러지자
세상은 갑자기 쓸쓸한 오지奧地
한 손으로 겨우겨우 세수는 하였으나
로션 한 방울 찍어 바를 수가 없고
목맬 넥타이 올가미 하나 제대로 만들 수가 없고
약속시간은 다 돼 가는데 양말은
발가락 다섯을 받아들이지 못 하네
인공수정사는 팔 하나로도
뭇 암소들의 서방노릇을 하고
어떤 권투선수는 벙어리주먹 하나로도
제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데
나는 손목 하나 부러뜨려
세상 바깥으로 내쳐지네
깁스한 팔목을 치켜들고
에라이, 엿 먹어라!
목욕탕 시멘트 굴뚝처럼
주먹떡 한번 먹이자 수백 개 주먹떡이
화살처럼 돌아오네
필리버스터
―끝말잇기
1
바람이 분다
귀가 시리다
귀를 버린다
바람이 분다
코가 시리다
코를 버린다
바람이 분다
가슴이 시리다
가슴을 버린다
2
가로등 밑으로
분리수거 통 아래로
하수구로 골목으로
몰려간다
버려진 것들끼리
잠시 뭉쳤다가
다시 서로를 버리면서
3
귀도 코도 없는 내 앞에
가슴이 뻥 뚫린 여자가 다가와서
배시시 웃고 있다
어, 저 웃음은 언젠가 내가
그녀한테 버린 건데?
일벌
식탁에 꿀 한 방울 흘렸다
티슈 한 장 뽑아 쓰윽 훔치려다
문득, 머뭇거린다
등굣길 교문처럼 벌통 입구에
새까맣게 몰려들던 벌떼를 생각한다
저 한 방울의 꿀을 모으기까지
벌들은 얼마나 많은 꽃을 찾아
먼 길을 날갯짓했겠는가
부러질 것 같은 날갯죽지를 저으며
허둥지둥 저무는 집으로 달려왔겠는가
어미만 바라보고 있을 까만 눈들 때문에
오로지 그 눈빛들 때문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려왔을
일벌, 일벌들
평생 헤어날 길 없었던 그 일의 벌罰!
휴지로 닦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온다
절은 땀내가 난다
<산문>
어머니라는 천둥소리
김남호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시를 10편 골라놓고 보니 어머니에 대한 시가 절반이 넘는다. 참 부끄럽다. 시인들이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소재가 ‘어머니’ 아니던가. 어느 평론가는 ‘아버지’라는 말은 그냥 ‘소리’이지만, ‘어머니’라는 말은 ‘천둥소리’라고 했다.(김양헌)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가 천둥소리로 울려오는 절대적 존재라고 할지라도,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야 하는 시인이 ‘어머니’라는 인화성 강한 소재를 앞세워 손쉽게 독자의 누선을 자극하려 든다면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를 앞세워서라도 내 시재詩才의 천박淺薄을 가리고 싶었다. 물론 금세 들키고 말겠지만.
어머니는 1918년생이시다. 한국식 나이로 105세, 연 나이로 104세, 만 나이로 103세이시다. 어떤 나이를 적용해도 한 세기를 훌쩍 넘기셨다. 당연히 동갑들은 유명을 달리하신 지 오래다. 어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문인들로는 시인 오장환 박남수 황금찬 문익환 김경린 심연수. 소설가 한무숙 같은 분들이 있고, 윤동주 시인은 한해 빠른 1917년생이시다. 이 문인들의 이름은 한국현대문학사에서 빛나는 별 같은 존재들이지만 내 어머니의 이름은 학창시절에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내 보호자는 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트 같았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살아낸 당신에게 자식으로서 몇 편의 시는 올리고 싶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수시로 자식들을 응급실로 부르시는 바람에 나의 모든 촉수들이 어머니를 향해 있어서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시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어머니의 105세 생신날이었다. 바깥은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축제 분위기인데 요양원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었다. 당신은 나이를 잊은 지 오래인데 새삼 생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는 문밖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는 유리문 안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채 “무슨 일이요?” 하는 눈빛으로 바깥의 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별일 아니어요!” 하는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시선은 만나지 못하고 어긋났다.
어머니의 ‘105세 생신’에는 105개는커녕 한 개의 촛불도 없었다. 휠체어에 실려서 다시 복도 저쪽으로 사라지는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좀 더 천천히 우리 곁을 떠나시기를. 국민학교 때 학부모 회의가 있던 날처럼 창문 밖에 서서 나를 좀 더 오래오래 바라봐 주시기를. 그래서 시답잖은 시를 쓰는 막내아들에게 숙제 도와주듯이 ‘천둥소리’ 같은 시나 몇 편 건지게 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