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 암 사 적 공 원


우 암 사 적 공 원 정 문


대전시 동구 가양동 65번지 일원에 위치한 '우암사적공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70~1689)선생이 '흥농서당(興農書堂)'과 '남간정사(南澗精舍)'를 세워 많은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며 병자호란때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책을 강구하던 곳으로, 우암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우암 송시열선생의 본관은 은진이고, 자는 영보(英甫)이며, 우암은 그의 호다. 인조 때 생원시험에 합격한 이후 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쳤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고 문묘(文廟)에 배향 되었다. 선생은 소제(동구 소제동)에 살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학문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흥농촌(興農村)에 서재를 세워 '능인당'(能仁堂)이라 하였다.
현재 이곳 사적공원에는 남간정사와 소제동에서 옮겨온 기국정(杞菊亭) 등이 남아 있고, 선생의 문집인 송자대전(宋子大全) 목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남간사(南澗祠)와 유물관을 세우고 주변을 새롭게 정비하여 우암사적공원을 조성하였다. 공원 안에는 위의 유적외에 이직당 과 명숙각, 심결재, 인함각 등이 있고 송자대전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 덕포루, 연못 등이 있다
남 간 정 사 와 기 국 정 ( 공 원 내 )
남 간 정 사( 南 澗 精 舍 )

남간정사는 선생의 나이 77세때 지은 것이라 한다
기 국 정 과 남 간 정 사 의 출 입 문
이 문은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로, 이곳은
기국정(杞菊亭)과 남간정사(南澗精舍)로 출입하는 문이다.

남 간 정 사

남간정사로 흐르는 물의 원천지
남간정사 앞 연못의 이끼가 옛 정취를 돋운다. 계곡에 있는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밑을 통해 연못으로 흐른다

남간정사는 조선 숙종 8년(1683)에 세워졌으며, 정조 때 한 차례의
중건과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가장 최근에는 1976년에 보수하였다
남간정사 옆의 기국정
기 국 정 ( 杞 菊 亭 )
기국정과 남간정사로 출입하는 문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기국정(杞菊亭)이 나온다. 이 건물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소제동 소재방죽 옆에 세웠던 건물이다. 선생은 소제에 연꽃을 심고 건물 주변에는 국화와 구기자를 심었는데, 연꽃은 군자를, 국화는 세상을 피하여 사는 것을, 구기자는 가족의 단란 함을 각각 의미 한다.
선생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학문을 논하며 지냈는데, 선비들이 구기자와 국화의 무성함을 보고 건물 이름을 기국정이라 불렀다. 건물은 본래 초가지붕 이었으나, 선생의 큰 손자가 기와지붕으로 수리하였고, 그 후 소제호가 메워지면서 건물도 차츰 허물어지게 되자 1927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남간정사 와 기국정 사이에 배롱나무가 오랜 풍상을 겪은듯
이끼가 끼인채로 지팡이에 의지한채 고택을 감싸고 있다

기국정이 있었던 옛 소제호

옛 사당으로 오르는 문
남간정사 뒤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옛 사당으로 오르는 문이다. 이 문으로 오르는
좌우에는 우암선생이 생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배롱나무 몇 그루가 있다.
보수 중인 옛 사당
남간정사의 위에 자리한 남간사(南澗舍)는 1924년 기국정과 함께 소제동에 있던
우암 고택에서 이전한 사당이다. 지금은 한창 보수 중에 있으며 그 전에 사당 안에
소장되어 있던 모든 비품과 기물은 우암사적공원 맨 뒷편에 위치한 신사당
안으로 모두 옮겨 놓았다.

팔 각 정
팔각정은 기국정. 남간정사와 박물관 사이에 있다. 뒤에는 산을
등지고 있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경관이 좋다.
유 물 관

팔각정과 홍살문 사이에 있으며, 우암 송시열선생의
유품과 장서, 역사적 배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부터 학계에 알려진 우암 선생의 영정

송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사진을 유물관에 기증,
전체 모습은 닮았고 두건만 차이가 나는듯..

인조11년(1633년)에 생원시험 장원급제한 교지

부끄러운 치(恥)자로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겪으면서 오랭캐인 청나라에
두 번씩이나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조선의 참담한 심경을 담은 우암의
글씨로 당시 시대 정신을 반영하였다. 일반 붓으로 쓴 것이 아니라
큰 칡뿌리를 잘게 찢어서 붓 대용으로 쓴 글씨다
우암의 정절을 표시하는 글씨,
해동 천지에 조선의 큰 뜻을 담은 글씨다.

초구(貂구):담비털로 만든 외투(복제품)
1658년12월 효종이 요동정벌을 당부하며 하사

( 진 품 사 진 )
이직당,명숙각,인헌각,장판각(송자대전),견뢰재,심결재,남간사 등
이 직 당 ( 以 直 堂 )

이직당 : 마음을 곱게 쓰라는 의미로 큰 강당이다

우암선생의 직(直)사상을 담고 있음.

명 숙 각 ( 明 淑 閣 )
명숙각(明淑閣)은 이직당(以直堂) 앞 왼쪽에 있으며, 인함각(忍含閣)과 대칭을 이루어 마주
보고 서 있다. '모든 일을 명확하게 하고 마음을 밝고 맑게 하라'는 의미의 선비들 공부방.

인 함 각 ( 忍 含 閣 )
이직당(以直堂) 앞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의미의 선비들 공부방.
장 판 각

우암 송시열선생의 글을 새긴 판각(송자대전)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관리사무소 옆에 위치하고 있다. '송자대전판(宋子大全板)'은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1호이다.
송자대전은 우암 송시열의 문집으로서 215권 102책이 된다. 조선시대 헌종13년(1847)에 간행해서 이곳에 장판각을 짓고 판각 5151판을 보관해 오던 중 일부가 분실되어 현재는 4483판이 보관되어 있다. 장판각은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하고 그 책수도 증가 하여 지금은 108책이 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본 카페에 별도로 소개 하였습니다. 송자대전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송 자 대 전
홍살문-홍살문 사이로 멀리 있는 건물이 명정문(明正門)이다.

명 정 문 ( 明 正 門 )
홍살문을 지나면 명정문(明正門)이 나온다. 명정문(明正門)은 "올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문을 드나 들면서 나라를 위한 올바른 정치를 생각하라는 의미.
견 뢰 재 와 심 결 재 로 통 하 는 문
이직당(以直堂) 중앙 뒤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문을
통해 들어가면 견뢰재(堅牢齋)와 심결재(審決齋)가 나온다.
견 뢰 재 ( 堅 牢 齋 )
선비들의 공부방, 이직당(以直堂) 뒤 계단으로 올라가 왼편에 있다.

심 결 재 ( 審 決 齋 )
선비들의 공부방. 이직당(以直堂) 뒤 계단으로 올라가 오른편에 있다.

남 간 사 (南 澗 祠)
사적공원 맨 뒷편에 있는 건물로 우암사적공원을 조성하면서
새로 지은 사당, 우암 송시열선생에 대한 제향을 모시는 곳.


덕 포 루 ( 德 布 樓 )
우암 송시열선생께서 후학들에게 덕을 베풀고 교육을 시키던 곳.
견뢰재(堅牢齋)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왼쪽 밖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