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명원이 엄마는 출근하고 아빠는 교회 사역자 수련회로 홍천 비발디 파크로 떠났습니다. 근데 제가 비발디 파크에 도착하여 짐을 풀자 마자 명원이 엄마에게 긴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명원이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연락이 왔으니 빨리 와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가 2008년 1월 4일 오후 2시경... 홍천까지 2시간 이상 걸려 도착하자 마자 바로 돌아오라는 말에, 그리고 오전까지만 해도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왔기에 꼭 가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일단 함께 갔던 이웅진 목사님이 감사하게도 저를 삼성의료원까지 다시 2시간 걸려 운전하여 데려다 주고 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회복중이던 명원이는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온 몸은 각종 주사약으로 퉁퉁 불어 보였습니다. 눈을 뜨지 못하고 기력이 다 빠져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은 엄마 아빠가 오실 때 까지는 약을 강하게 주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 약을 끊겠다고 말했습니다.
약이 끊어지자 산소포화도가 더욱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울면서 이제 아이와 작별해야 할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로 엊그제까지는 벤틸레이션을 끊고 산소 공급만으로도 상태를 잘 유지해서 우리와 오래 함께 있을 희망을 주던 명원이가
이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려 합니다.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다시 상태가 호전 되었었고, 몇 차례 희망을 주었다가도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진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극적으로 다시 상태가 호전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작별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항상 중환자실에 면회 와서 불러주던 축복송과 찬송 소리를 계속 반복적으로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명원이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명원이에게 그동안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시간 함께 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명원이로 인해 행복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3시간 정도, 명원이는 엄마 아빠의 축복과 찬양과 기도와 사랑 표현을 들으며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시 정리한다고 자리를 비켜달라기에 나갔다 오니 그동안 명원이를 괴롭혔던 기관 절개 튜브, 산소줄, 분유줄, 링거 줄, 모니터 센서 줄 등이 다 사라지고 너무나 평안한 모습의 명원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안실에서 작은 프라스틱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아이를 담으라 했지만 제가 명원이를 직접 안고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태어나서 아이를 이렇게 완전히 안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항상 무슨 줄이든지 몇개씩은 연결되어 있어서 완전히 들고 안아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안았던 명원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너무나 편안해 보였고, 너무나 예뻤습니다.
중환자실 뒷편으로 일반인들은 모르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로, 직원들만 다니는 통로로 주차장으로, 병원 차를 타고 영안실로 바로 옮겨졌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많이 슬프고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평안한 모습의 명원이를 보지못했었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축복 속에 하나님 품에 안긴 것이 많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첫댓글 명원이의 이야기가 다시 올려지니 저도 정원이가 너무나 보고 싶어지네요...그리고 정원이는 ..홍천의 비발디 파크에서 차로 10분도 안되는 곳에 있답니다..지금 돌이켜보면 거기에 정원이를 묻어놓는 게 아닌데...그때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달라져 있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해요. 두어시간 거리라서 그래도 울 가족들 함께 다녀오곤 한답니다...
마음으로는 늘 준비하고 있고 강해지려 하지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작별'이란 단어가 너무 두렵고 무섭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눈 명원이 가족을 떠 올리니 가슴이 뭉클하고 숙연해집니다. 명원이와 다하지 못한 행복한 일들이 명원이 동생과 늘 이어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