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나의 소견 335번.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 2016-12-23
이름 : 이재현
게시일 : 2016-12-23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
Seven Year Tribulation & Seven Years a Peace Treaty
7년환난과 7년평화조약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용어는 분명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먼저 7년이라는 기간은 다니엘 9장 27절에 ‘한 이레’로 명시되고 있다. 이 기간을 요한계시록에는 절반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전 3년 반은 ‘천이백육십일’(계11:3)로, 후 3년 반은 ‘마흔 두 달’(계11:2;13:5), ‘천이백육십일’(계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로 나타나 있다. 다니엘 9장 27절에는 ‘이레의 절반’이라는 분기점을 말씀하며 7장 25절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후 3년 반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면 7년환난의 ‘환난’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찾은 것인가? 마태복음 24장 3절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서이다. 8절에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하셨다. 이어 9절에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라고 하심으로 환난의 시작이 어떻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되어 질 일을 예언하신 것이다. 환난 중간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15절의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을 다니엘 9장 27절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와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라는 구절과 비교해 볼 때, 환난의 중간에 있을 사건도 계시해 주시고 있다. 29절에는 ‘환난 후에’라는 직접적인 언급을 통하여 대환난의 시작과 중간 끝에 있을 일을 선명하게 알도록 하셨다. 이를 통하여 7년환난은 성경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참고/막13:1-37;눅21:5-38).
정성욱 박사는 7년 환난이 세대주의자들이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개혁주의권에 속한 학자들이나 성도들은 7년환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해오거나 비판해 왔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분명히 성경적인 것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주 예수님 자신이 대환난에 대해서 친히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 대환난의 기간이 7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예수님 재림 직전에 일정한 기간의 대환난이 있을 것이며, 대환난의 시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연계될 것이고…우리 주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교훈입니다(마24:15-28)1)
이를 또 7년 평화조약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직접 인용하신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은 ‘이레의 절반’에 있을 일이다(마24:15). 그리고 그 앞에 ‘한 이레’ 즉 7년이라는 말씀이 나온다(단9:27). ‘한 이레’에 다음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이어지고 있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인 것이다. 이 계약의 전 3년 반이 지난 시점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레의 절 반’ 이전 이레의 시작 때에는 자유롭게 ‘제사와 예물’을 드릴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평화조약이라는 단서이다. 다니엘서는 유대인들에게 있을 종말의 사건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원인이되는 성전에서 예배인 ‘제사와 예물’을 명시한 것이고, 이때 교회가 당할 일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이다.2)
脚註
1) 정성욱,「정성욱교수의 밝고 행복한 종말론」, (주)눈출판그룹, 2016.3.7, p.252.).
2) 7년 환난에 대한 더 자세한 연구는 이재현,『징조는 픽션보다 참혹했다』,「7년 환난을 인정하면 세대주의인가?」, 도서출판 좋은땅, 2013.2.8. pp255-279. 이재현,『종말론 연구 시리즈(17) 7년 환난을 인정하면 세대주의인가?』, PGMC, 2014.를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