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 예산이 필요해요
(사)희망연대 대표 박일남
최근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뜨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주민참여 예산으로 500억을 배정하고 구마다 20~30억원을 주민참여예산으로 쓰겠다는 정책을 내세우고, 이에 따른 위원회를 활성화시키면서 시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이라는 제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15여년 전에도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주민이 요구하는 예산을 행정에 반영하겠다’고 말로는 그랬다. 주민들은 ‘우리 동네 이런게 필요해요!’ ‘이런 시설해주세요!’ 요구했지만 바로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도 반응이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주민참여예산을 별도로 배정했다는 것과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또다른 학습효과가 있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과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디자인 사업에 따른 학습효과이다. 4대강에 투입된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복지예산으로 썼다면, 국민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겠느냐? 그 돈이면, 대학생 반값 등록금하고도 남지 않느냐? 수자원공사가 수돗물가격을 올려 4대강 사업 적자를 메울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남부법원 앞, 공항로를 지날 때마다 길거리 바닥에 깔려있는 대리석을 보면서, 우리는 오세훈 시장이 벌인 혈세 낭비의 현실을 되새긴다. 예산을 정치권과 전문가에만 맡겨서는 나라꼴이 말이 아니니, 세금을 내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자각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세금을 걷어들이고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은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을 더내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복지예산을 편성ㆍ집행하는 과정은 전통적으로 국가의 역할이라고 알고 있다. 국민이 우리나라라는 공간에서 1년에 생산해내는 재화는 일정하다. 따라서 예산도 한정된 금액이다. 이 제한되어 있는 돈,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를 주민이 참여하여 결정하자는 것이 주민참여예산제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작년에 양천구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제안한 사업이 서울시의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회의에서 한 건도 채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말이 위원회이지 누구를 위한 위원회라면, 결과는 안봐도 알 수 있는 결론이다. 양천구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주민참여가 빠진 결과이다. 주민을 들러리로 만드는 위원회,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의지를 반영할려고 하는 위원회가 문제이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주민참여이다.
‘우리는 이런 예산이 필요해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산을 잘 알아야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안양천에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했는데, 예산을 잘 알아서 그런 엉터리 주장을 한 것은 아니다. 안양천을 가본 주민이라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잘 안다. 추재엽 전 양천구청장은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동도서관을 팔겠다고 했는데, 서울시가 나서서 매각행위를 중단시켰다. 그런데도 그는 행정전문가를 자처한 사람이다. 우리는 전문가들 앞에서 기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내가 사는 동네는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은 가정경제에서 집안 살림을 하듯이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하는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필요한 부분의 지출 순위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골목상권을 살리고 싶은 자영업자, 안전하게 그리고 창의적이고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고 싶은 시민, 복지정책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어르신, 안전하고 편안한 마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여성, 문화컨텐츠와 문화공간이 많았으면 하는 끼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두드려 볼 일이다.
나도 주민참여예산활동에 끼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