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스쿨링을 끝냈습니다
* 그룹홈스쿨링을 여기서 멈춥니다.
전화 상담은 꽤 많은 편이었습니다. 아이를 설득하여 입소절차를 밟겠다는 부모는 많았지요.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는 쉽지않은 제안이었겠지요. 상담이 입소로 연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최근 2년 새 몇 명의 아이들이 들어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있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 왜 여기 그룹홈스쿨링 공간이 아이들이 견디기 힘든 곳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직장얻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니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부모는 아이들이 학습에만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성적이 좋은 직장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되는 과정은 학습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기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주체성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낯선 사고와 경험이 필요한데 낯선 지식만을 들이밉니다. 결국 아이들은 과중하고 의미없는 학습에 흥미를 잃고 자극을 찾습니다. 아이들은 불안하기에 함께 할 또래가 필요합니다. 예전과 또 달라진 또래문화의 탄생입니다.
학교는 성적좋은 일부 아이를 돌보는 곳이며 누구든지 사고만 치지 않으면 내버려두는 곳입니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학교는 어쩔 수 없이 가거나 놀러가는 곳입니다. 대안학교 또한 또래문화의 통제가 어렵습니다. 이곳의 그룹홈스쿨링의 출발은 새로운 또래문화의 차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햄버거를 눈 앞에 둔 채 단식을 강요하는 꼴이었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유토피아'는 모든 불행의 씨앗인 개인의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육체적인 행복은 가짜 행복이고, 정신적인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후세 학자들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욕구가 억제된 수도원을 확장한 사회'라고 합니다. 우리도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던 거지요. 아이들에게 이곳 그룹홈스쿨링 공간은 '수도원'이었습니다.
* 아이가 둘 뿐인데 한 아이가 나갔습니다
그룹홈스쿨링을 끝내기 직전에 단 두 아이가 남았습니다. 우리의 그룹홈스쿨링은 바람 앞의 촛불이었지요. 달리지 않는 자전거가 넘어지듯이 복수의 아이 없는 그룹홈스쿨링은 없으니까요. 이 두 아이를 문익점의 목화씨앗처럼 소중히 해야 했지요. 이렇게 풍전등화 형국에서 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아이는 2년 반 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하면서 더디지만 꾸준히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졌습니다. 모의고사 국어, 영어 8~9등급은 5~6등급으로 올라섰습니다. (자랑입니다만 사실 이것만 해도 학교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기적입니다) 지식암기형 탐구과목인 한국지리는 3등급까지 나오지만, 가치사고형 탐구과목인 사회문화는 6등급이 머문다는 것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축적 이후의 단계, 사고작용 및 행동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대학이 누구에게나 최선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임을 알았다", "~해야 한다", "~해야겠다" 순으로 표현의 변화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착한' 이 아이에게는 단순지식의 축적이 가장 덜 힘든 일이었습니다. 수능 위주의 학습계획을 수정해서 지식 아닌 '사고하고 행동하는 공부'를 하자고 제시했습니다. 아이가 그러겠다고 받아들이길래 아이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이 부모님은 대학은 반드시 보내야 한다고 하셨고, 집에서의 생활을 '갑자기 허용받은' 아이는 즐겁게 짐을 쌌습니다.
* 이제 한 아이가 남았습니다.
이 아이는 여기서 계속 공부하여 대학에 가고자 합니다. 그룹홈스쿨링은 그 명운을 다했고 이 아이를 외아들 키우듯이 하기로 했습니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형식갖춘 프로그램은 대폭 줄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단순하되, 가장 효율적인 하브루타 방식의 대화를 포함하여 지식을 축적하고 지식으로 사고하고 사고를 통해 행동해야 하는 학습과 훈련은 이어집니다.
다만 또래와 함께 하는 위안과 촉발을 얻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그룹홈스쿨링은 끝났지만 위탁형 홈스쿨링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어 두세 아이가 홈스쿨링을 함께 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그동안 꽤 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크고작은 기적을 체험하곤 했습니다.
애초부터 대학진학은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가, 대입공부를 하기 시작한 3년 뒤 수능에서 국영수 세 과목에서 단 한 문제 틀린 아이도 있었고, 수능 2~3등급의 학력은 갖췄지만 공부도 싫고 대학도 싫다며 고3 나이에 사회로 나가 월급을 받으면서 요리사의 꿈을 키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대안초등학교 동창 몇 명과 그룹홈스쿨링을 하다가 로봇특성화고에 진학한 뒤 실망하여 자퇴하고, 우리 그룹홈스쿨링에 합류한지 1년 8개월 만에 모의고사 국영수 4,5,4 등급에서 수능 2,2,1등급을 받기도 했고, 성적, 품성 다 좋지만 단지 과잉관계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아이가 중학교를 자퇴하고 들어와 1년 가까이 공부한 후 성적과 미술 실력이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 때문에 서울예고에 합격했노라며 부모의 감사방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지간히 부모 속을 썩이는 국어,영어 8~9등급 아이가 8개월 만에 4~5등급이 나오는 경이로운 일도 있었고, 품성과 머리는 좋지만 최소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꿈꾸다가 추락하던 중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여기에 들어와 1년 가까이 뺀질거리면서 미세한 변화를 보여주더니 막판 6개월 만에 고1 수학과 물리, 화학을 끝내고 고2 3월 모의고사에서 2등급을 찍고나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사교육은 시간이 아깝다며 자기주도학습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 심지어 이곳이 힘들다며 중도에 짐을 싼 아이들까지도 시야가 넓어졌고, 사고와 해석, 판단을 할 줄 알며, 자신에 대해 자각할 줄 알더라며 부모님들께서 전해주셨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이곳에 있었던 기간과 비례하지도 않습니다)
'밀당'은 청춘남녀의 연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적이야말로 진정 밀당 대상입니다. 성적은 (부모님이) 갈구할수록 요원하고, (부모님이) 무심할수록 가까이 있기 쉽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평균학력 이상이던 우리 부모 세대는 공부못한 것이 철천지한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뿐입니다. 요즘은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철천지한이 되는 시대입니다.
삶의 의미를 못찾는 아이가 공부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교육의 시작은 자신의 발견이라야 합니다. 외워서 시험에 쓰이는 지식은 자신의 발견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각과 자성이 가능해지고 자발성이 생기면 어느 순간부터 거듭제곱의 속도로 학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기적같은 일도 알고보면 기적일 수 없습니다.
* 홈스쿨링은 홈스쿨링 동기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애초부터 학교가 못마땅한 분들의 홈스쿨링은 자기주도적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를 힘들어하거나 학교가 아이를 힘들어할 때 부모는 대안으로 홈스쿨링을 찾습니다. 그러다보니 홈스쿨링 지향점이 홈스쿨링 동기와 무관하게 '기승전대학'이 되곤 합니다.
대학입학 수렴 현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래성 짓기 또는 연약지반 위에 집짓기라는 것입니다. 떡 먹을 생각이 없는 아이 입을 강제로 벌려 김칫국 들이붓는 모양이기 쉽습니다. 결국 학교 밖에서 학교를 찾습니다.
* 앞으로의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1. 미래를 지향해야 합니다.
지금 1년의 변화는 과거의 5년~100년에 해당합니다. 앞으로는 더 현깃증나게 빨라지겠지요.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하는 지금의 교육적 지향을 그대로 믿고 있다간, 달착륙을 목표로 발사된 우주선이 달의 공전궤도에 이르렀을 때 달은 지구 반대편을 돌고 있는 황당함을 경험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미래학 책은 대기업이 없어진다, 1인기업이 대세다, 무엇보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합니다.
2. 신체가 최우선입니다.
존 로크는 <교육론>에서 귀족의 자식교육은 소작농이 자식 키우듯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덕체(知德體)가 아닌 체덕지(體德知)의 순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서요. 신체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인성, 지식이 맨 나중이라는 겁니다. 우리 교육적 관점과 비교했을 때 정확히 뒤집어졌네요.
니체 이후 푸코, 들뢰즈, 후설... 현대 철학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신체에 주목합니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정신을 조종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근대 이후 정신에 근대성을, 신체에 전근대성을 부여하고 신체를 가볍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 스스로 그 질곡에 빠졌습니다. "알았다, 해야한다, 해야겠다"를 거듭하며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답은 신체에서 찾아야 합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그러네요. 대소변도 못가리는 서너살 짜리 아이들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고요. 사랑은 떼어내는 고통을 피하지 않는 것인데, 요즘 엄마들은 보살핌에서 자신의 숭고한 사랑을 찾는다고요.
3. 이젠 정말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미래 지식기반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교육이든 학교밖교육이든 이 땅의 거의 모든 교육이 시험성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험성적을 지향하는 교육이 창의적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지식-사고-행동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법인데 시험만을 위한 주입식 암기교육은 사고-행동의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창의성을 죽이는 교육에 너나없이 매달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 이제 그룹홈스쿨링은 끝났습니다.
한 아이의 지식-사고-행동의 반복을 통한 체덕지 함양에 힘쓰면서 우리도 공부하며 글쓰기를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서 갈 길이 멉니다)
* 조나단의 홈스쿨링(http://blog.naver.com/weon0611) 이 아이의 블로그입니다. 조나단처럼 위탁 형태의 홈스쿨링을 필요로 하시는 분은 개별적으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그동안 우리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곳 '수도원'에서 잘 커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매년 홈커밍데이를 정해 연말에 만나자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개별적인 방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앞으로 잘 다듬어질 이곳 정원을 이곳에서 공부한 아이가 결혼식 장소로 활용하는 꿈을 꾸어봅니다.
http://blog.naver.com/kohhh123/220693557312 :요기는 네이버 블로그입니다, '초록손이와 원푸리의 풀꽃처럼'
첫댓글 홈쿨링을 하다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초등학생 엄마입니다. 아이가 좀더 커서 부모의 곁을 떠나서도 자신의 시간을 꾸릴 시기가 오면 아이와 함께 방문하리라 생각하며 꾸준히 올리신 글을 읽다가 이 글을 지금 읽게 되네요. 댓글은 달지 못했지만 올리신 글 읽으면서 크게 공감한 적도 많고 깨달음을 얻었던 적도 많습니다. 요즘의 세태를 저도 너무나 많이 느끼는터라 두분 심정을 너무나 공감합니다. 감사드린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 망설이다 글 올립니다.
그러셨군요... 고맙습니다.
어제 오신 교수님 동료교수가 학부학생과 강의실에서 서로 겉돌아 일찍 예정없이 사직했다네요.
너무 정신없이 변하는데 각자도생하려다 각자격파 당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듯 해서 안타까워요.
그곳이 좋아서 제 아이를 보내고 싶었는데 너무 놀라고 있어요.
학교도 자퇴를 했고...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방법들 인상 깊었고 너무도 좋았는데
가끔 체험학습으로 다니시는 모습도 참 좋게 봤었습니다.
서운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에고~ 카페에서 좀 떨어져 있다가.... 늦었네요.
오랜만입니다. 반갑고 고맙고 저도 서운하네요.
사진 속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네요~~
자연과 꽃과 함께한 모습도요~~^^
고맙습니다.
자연과 꽃은 현재인데 아이들은 과거가 되었네요 ㅎ
올리셨던 많은글을 밀린숙제하듯 읽어 내려갔네요...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아이가 건강한 마음으로 인생을 꾸려가길 바라는 맘 뿐입니다
삶의 주체성 찾기. 모든 사람의 평생 숙제이지요.
홈스쿨링을 고민하는 저에게 나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을 한번 더 확인시켜주네요, 좋은글 잘 읽었어요
다행입니다. 별 말씀요~ ㅎ
이제 막 홈 스쿨을 시작하려고 준비중인데 이 카페를 들렀네요.
많은 자료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별 말씀요~
많이 공부하실수록 방향이 뚜렷해질 거에요~
홈스쿨링을 고민하고 있는데 많은 자료와 좋은 글 감사히 읽겠습니다.
열심히 찾는 분들께 열리는 문, 아니 보이는 자료들입니다^^ 좋은 일이지요~
홈스쿨링!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근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 그룹 홈스쿨링 정말 끝난건가요?
위탁형태의 홈스쿨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빨리도 댓글 다네요~-_-!
네 그룹홈스쿨링도 위탁홈스쿨링도 모두 끝냈습니다.
위탁은 부모 대신 홈스쿨링을 맡는 건데요. 위탁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뒀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또래는 또래의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확인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룹홈스쿨링을 오래 했던거구요.
처음 홈스쿨링할 때 누구나 막막해 하지요.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집중하십시요. 그 문제만 해결하면 일단 된 것입니다. 그 다음은 덤입니다.
그러면 홈스쿨링이 할만 할 수 있을겁니다.
'결국 학교 밖에서 학교를 찾는 다'는 문장이 허를 찔린 느낌 입니다.
한달 열흘 지나 댓글을 달려니 허를 찌르는 느낌입니다 ^^;;
대부분 홈스쿨러 부모는 홈스쿨링 동기의 해결을 넘어, 그 이상의 욕심을 내게 되니까요.
결국은 동기와 목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알려고 하는지.
물론 저희집 아이들처럼 어린 아이들은 부모님께서 우선은 방향설정을 잘 해주셔야 하겠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That's it!!! 바로 그거지요~ ㅎ
든든합니다. 이런 곳이 있다니..함께 힘얻어..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노력하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까페에 와서 보니 많은 일들이 지나갔군요.... 앞 길에는 행복만이 가득하시길.... 자주 뵙고 살아요^^
중1 아이 홈스쿨링을 생각하고 있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도움되는 글들이 많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늘 여여하시길....,나마스테...()...
요즘 자주 아픈 아이를 보면서, 체덕지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새로운 선택지를 찾으신듯 합니다~^^
공감 화이팅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