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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학교놀이였다.”
오는 8월 말에 정년퇴직을 앞둔 박경선 대진초등학교 교장은 지난 41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재미있는 놀이였다”고 회상했다. 흔히 일을 놀이처럼 하는 사람을 두고 천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박 교장의 교사로서의 지난 삶은 천직이었을까? 그는 ‘미친 여자와 좋은 선생님’이라는 짧은 문장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퇴직하면 ‘미친 여자와 좋은 선생님’를 제목으로 책을 쓰고 싶었다. 이 책 제목은 그동안 내 삶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미친 여자’는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하는 소리고, ‘좋은 선생님’이 나를 평가해 주는 말이다. 나는 학교 일이 전부였다. 제자들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은 행복이었다. 내가 행복했고,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평가해 주니 내 교직생활은 천직이 아니었겠나?”
정년퇴직을 앞둔 이의 교육철학은 감회가 남다르다. 철학이 실천으로 이어졌는지, 그저 철학으로만 머물렀는지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변곡점이 되기 때문이다. 박 교장에게 지난 41년 교직생활에 길잡이가 되어준 교육철학은 ‘사랑’과 ‘글쓰기’와 ‘독서’다.
- 왜 ‘사랑’인가?
“제자에 대한 ‘사랑’은 교직생활의 원천이다. ‘사랑’이 있어야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다. 지난 41년 동안 ‘사랑’이 있었기에 재미있는 놀이처럼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박 교장은 24권의 책을 출간한 아동문학가다. 그는 1987년 수필 ‘구혼여행’으로 새한신문, 1993년에는 동화 ‘동전 두 개’로 아동문학평론지에, 이듬해에 ‘방학에는 술래되어’로 동시까지 문단에 등단했다.
지금까지 ‘너는 왜 큰소리로 말하지 않니’, ‘개구쟁이 신부님과 해를 맞는 부처님’ 등 5권의 단편동화집과 ‘우체통에 칭찬 넣기’, ‘바람새’ 등 12권의 장편동화집, ‘열린교실의 글쓰기’ 등 3권의 글쓰기 이론서, 최근에 ‘섬김밥상 행복교육’ 수필집 1권, 제자들과 나눈 편지를 엮은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 1권 등 총 24권의 책을 출간했다.
- 전업 작가에 견줄 만큼 많은 책을 썼다. 글쓰기는 어떤 의미였나?
“글쓰기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장이었다. 교단에서 만나는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영감을 받고 그 영감이 책으로 나왔다. 내게 글쓰기는 나와 아이들간의 소통의 과정이었다.”
박 교장은 퇴임을 앞두고 수필집 ‘섬김밥상 행복교육’과 편지글모음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를 출간했다. ‘섬김밥상 행복교육’은 지난 4년 동안 신문에 써오던 칼럼들을 엮은 것이며,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는 41년간 교단에서 제자들에게 받았던 편지를 묶은 것이다. ‘섬김밥상 행복교육’을 학교 교직원, 학부모, 한국글쓰기회 회원들에게 선물했고,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는 박 교장이 재직 중인 대진초등학교 4,5,6학년 학생들에게 선물했다. 이 두 권의 책은 그의 교직생활을 함축하는 상징성을 내포한다.
- 소통의 교육을 지향해왔다. ‘섬김밥상 행복교육’에도 그 철학을 녹여냈나?
“몇 년 동안 신문에 칼럼을 써왔다. 내 칼럼을 보고 학부모나 동료교사, 교육부 관계자들이 카톡으로 감상평을 보내왔다. 일방적인 글쓰기가 아닌 소통의 글쓰기가 됐다. 책에는 칼럼과 감상평을 함께 실어 소통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 아이들과의 직접적인 소통도 남달랐다는데…
“새학기가 되면 유치원과 초등학교 전교생, 교사, 행정직, 노무직 등 학교 전 구성원의 사진과 이름을 교장실에 붙여놓고 매일 보면서 익힌다. 아침마다 등굣길에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으며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눈다. 또 교장실을 ‘ oo 다방’으로 개방해서 선생님들이나 아이들 누구나 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야말로 소통의 완결판처럼 보인다.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는 지난 41년 동안 제자들이 보내준 편지를 엮은 것이다. 내게는 재산목록 1호다. 나는 제자들에게 졸업하고도 힘든 일이 있을 때 편지를 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군에 가서나 실연을 당했을 때, 또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편지를 보내온다. 부모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평소에 스스럼없이 소통해 온 시간들이 졸업 후에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친구처럼 소통하고 싶은 선생으로 생각해 편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 교직생활의 가장 큰 보람이다.”
- 책을 출간한 과정이 드라마틱하다고 들었다.
“학교에 학부모 강의 차 오셨던 이주영 선생님이 고령에 있는 우리 시골집에 하룻밤 묵은 일이 있다. 그때 이 선생님이 책장에 꽂힌 편지 파일들을 꺼내 보시고 책으로 내어보자고 하셔서 책이 나오게 됐다.”
책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는 박 교장에게 가장 큰 퇴임선물이다. 자칫 짝사랑으로 끝날뻔한 박 교장과 제자들과의 사랑이 쌍방향이었음을 확인해준 고마운 책이다.
- 짝사랑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출판한 책들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생일인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번에 출간한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는 4,5,6학년 학생들에게 모두 선물했다. 단 선물하면서 독후감을 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동안 아이들이 내 책을 읽고 별 호응이 없어 짝사랑이었나 하는 가슴앓이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 독후감을 받으면서 내가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 어떤 반응들을 보냈나?
“짝사랑을 하며 가슴앓이를 하는 제자가 보낸 편지를 읽은 한 학생은 ‘선생님이 주고받으신 편지가 마치 저의 상황인 것 같다’며 ‘저도 짝사랑을 한다면 친구나 선생님께 털어놓아 이야기해보거나 편지를 써봐야겠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 책을 조금 읽어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배려, 양보 등을 배우게 됐다’는 학생도 있었다.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가슴 한 쪽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많다’며 솔직한 심정들을 보내왔다.”
- 학생들이 그동안 선물해준 책을 읽으며 감화를 받은 내용들로 보인다.
“그동안 아이들이 책을 선물해 준 뒤에도 반응이 없어 ‘과연 책을 읽기나 했을까’ 의구심마저 들면서 회의를 가진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에 보내준 아이들의 독후감이 아니었으면 그런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퇴직할 뻔 했다. 아이들이 내 책을 통해 다양한 감성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준 사랑이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확인했으니 내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 제자들이 보내 준 편지는 교직생활에서 어떤 의미였나?
“나는 어리버리한 선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졸업 후에도 잊지 않고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친구처럼 대해줬다. 그런 마음들이 내게는 큰 에너지원이 됐다.”
- 책을 낼 정도로 제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학급 문집 ‘색동’을 꾸준하게 만들어왔는데 그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학급 문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아이들의 가슴에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그런 기억들이 졸업 후에도 이어져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안부전화를 주기도 한다.”
- 교직생활 중 아이들의 ‘독서의 생활화’를 실천해 왔다.
“독서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책읽기, 글쓰기, 토론하기, 책 쓰기 4단계였는데 아이들 수준에 맞게 단계별로 했다.”
- 우동기 교육감도 책을 읽은 소감을 보내왔다는데…
“이번에 출간한 두 권의 책을 보내드렸는데 감사하게도 ‘글을 읽는 내내 아믕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는 감상평을 보내주셨다. 특히 우리 학교가 학교폭력 제로 학교로 선정됐는데 그 배경에 아이들의 ‘걱정 풀어 글쓰기’ 활동이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평도 해 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 ‘독서’의 어떤 효과에 주목하고 교단에서 능동적으로 활용했나?
“독서교육은 전인교육의 첫걸음이다. 독서만큼 효과가 넓고 깊은 교육방법은 없다. 독서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성장하게 하는 주체적인 교육방식이다. 이 때문에 책 읽기는 평생과업이다. 독서야말로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다. ‘독서’는 마음을 보듬고 생각을 키우는데 최고의 방법론이다.”
- 평생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까지 아이들은 어떤 존재였나?
“나한테는 아이들이 교직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의미였고, 창작의 원천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자부심과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다. 나 역시 그랬다. 순간순간 힘들 때가 많았고, 끝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을 의지하고 힘을 냈다.”
- 창작의 원천이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학급 문집을 만들어보면 너무나 순수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또 어른이 생각할 수 없는 창의적인 생각들도 쏟아낸다. 내가 동화책을 쓸때 아이들이 보여준 순수한 마음과 기발한 이야기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 41년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소감은 어떤가? 서운할 것 같은데…
“다음 학기부터 바로 대구교대대학원 강의를 하게 된다. 현장 교사들과 또 다른 공부를 하며 제자들을 길러낼 것이다.”
-대구신문 황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