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국가유산지킴이 최영진 대표
평택 역사문화 인프라를 만들다
경기도 평택시, 인구 약 60만 명의 도농복합도시입니다. 예부터 ‘땅이 평평(平. 평평할 평)하고 연못(澤. 연못 택)이 많은 곳’이라 평택(平澤)이란 지명이 붙었습니다.
평택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유산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동법 기념비, 청동기시대 유적지,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간척지, 객사, 향교 같은 오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보물 같은 평택의 문화유산을 발굴해 그 가치를 빛내는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평택 시민들이 있습니다. 그 중심에 평택의 토박이 ‘최영진’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적인 팽성읍 객사와 그 뒤편에 위치한 부용산 일대를 정비해달라는 청원을 평택시에 꿋꿋하게 전개해 역사문화공간을 조성했고 옛 문헌을 뒤져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에 표지석이 세워지도록 애를 썼습니다.
2015년 평택국가유산지킴이 단체를 만들어 다채로운 문화유산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평택의 역사관광 인프라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는 최영진 대표를 만났습니다. 기꺼이 길잡이가 돼 평택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의 현장으로 차를 몰아 안내하며 해설을 들려주는 그에게선 고향에 대한 애정과 향토 역사에 대한 열정이 그득했습니다.
Q. ‘평택’이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보여주는 유산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드넓은 평택평야가 있는 곳이 먼 옛날에는 모두 바닷가 갯벌이었고 어촌마을이었죠.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이 아산만방조제 건립으로 이어졌고 바닷가의 벌을 매립해 농지가 됐습니다.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소사동의 청동기마을유적지에서 내려다 보면 지금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그 자리에 수천년 전 바닷가 풍경이 오버랩됩니다.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는 해외 주둔 미군 기지 중 단일 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왜 이곳에 미군기지가 들어섰을까요? 그 기원을 찾아보면 현재 평택항 일대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나오고 일제강점기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요.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에 미군이 자리 잡았고 몇 년 전에는 용산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했습니다. 전쟁통에 연합군의 오폭 사고로 평택역 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요. 아프지만 곱씹어야 할 전쟁의 상흔이죠.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사까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입니다.
조선시대에 평택은 충청, 전라, 경상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요. 주막거리가 발달한 것도 조선시대 조세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꾼 대동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기념비가 평택에 세워진 것도 교통의 요지라 유동인구가 많다는 입지조건 때문이죠. 이처럼 숨은 보물찾기처럼 찬찬히 찾으면 평택 땅의 역사가 보입니다.
Q.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역사나 국가유산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이 직장인으로 살았던 최영진 대표가 ‘평택국가유산지킴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08년 숭례문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슴이 덜컥했어요. 많이 안타까웠고 제가 살고 있는 평택의 문화유산에 눈돌리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사찰, 향교, 팽성읍객사 등 동네 곳곳을 틈나는 대로 둘러보며 지역의 역사를 살폈습니다. 평택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화단체 ‘우리문화달구지’의 경상현 단장과 인연이 닿아 역사체험, 공연 프로그램을 돕기도 했어요.
동네 문화유산의 가치에 눈을 뜰수록 봉사활동을 조직적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사비를 들여 회원 모집 플랙카드 50여개를 제작해 아내와 함께 평택 일대를 돌며 붙였어요. 누군가 플랙카드를 떼어 가면 다시 제작해 붙이면서 공들여 봉사자를 모았습니다. 6명이 모여 2015년 5월15일 평택국가유산지킴이를 창립했습니다. 제일 먼저 문화유산 일대 환경정화부터 시작해 평택의 문화유산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나눠주는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아요. 평택에 조선시대 원균의 묘가 있어요. 저희 단체가 묘역 일대를 청소하는 걸 본 한 시민이 문중의 후손들도 하지 않는 청소를 한다며 덕담을 건네더군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기 때문에 향토사학자, 역사학자를 초청해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하고 정기적으로 답사도 다니고 있어요. 평택에서 생생문화재사업이 열릴 때는 적극적으로 행사 진행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회원수는 30명으로 늘었고 비영리단체로서 틀을 갖췄습니다. 국가유산청장 표창(2022년)도 받았어요. 저희 단체는 순수 봉사 단체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은 만나 지킴이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필요한 운영비는 회원들이 낸 회비로 충당하고 있어요.
Q. 팽성읍객사 정비 등 평택에 역사문화공간이 만들어지는데 꾸준히 힘쓰고 있습니다. 과정 속에서 느낀 우여곡절, 보람은 무엇인지요?
현재 팽성읍행정복지센터가 있는 곳은 조선시대에 관아가 있던 자리입니다. 손님들이 묻던 객사, 향교 같은 문화유산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2018년 평택시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발언권을 얻어 시장에게 관아터 자리라는 표지석을 세우자고 건의했고 그 자리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 진척이 없더군요.
2020년 코로나 펜데믹 당시 온라인으로 진행된 시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재차 건의했습니다. 될 때까지 요청한 덕분에 지금은 센터 건물 앞에 ‘평택현 관아터’ 표지석이 옛날 지도와 상세 설명과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표지석 근처에는 400년 된 향나무도 있어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듯해 뭉클합니다.
팽성읍객사 뒤편에 위치한 부용산은 풍수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게다가 일제 강점기 반공호로 사용됐던 벙커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생생한 역사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죠.
1975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됐지만 토지보상 등 여러 이유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부용산을 공원으로 조성해 달라고 평택시민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아 청원서을 냈어요. 지킴이회원들과 함께 발로 뛰었고 2023년에 부용산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같은 청원을 여러 건 진행해 평택에 역사문화 인프라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중이에요.
팽성읍 객사 주변도 말끔하게 정비됐어요. 조선시대 객사는 고을 수령이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고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시설이에요. 망궐례는 궁궐과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임금을 뵙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예를 갖추는 걸 말하죠. 사라졌던 망궐례를 매년 팽성읍 객사에서 재현하고 시민 퍼레이드를 열며 평택의 역사문화축제로 자리 잡았어요. 저희 단체 회원들도 초등학생 역사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진행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국가유산 보존과 활용과 관련된 평택시 조례 개정을 이뤄내기도 했어요.
돈도 되지 않고 지자체에 늘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일에 힘을 쏟는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핀찬줄 때도 있어요. 저희가 발품, 손품 판 덕분에 평택에 역사문화 관광 인프라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과정이 고단하지만 동시에 뿌듯해요.
평택은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빠르게 바뀌는 중이에요. 공사장에서 땅을 파면 옛날 주거터, 패총 등이 나오기도 하죠. 유물과 유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저희 단체가 애쓰고 있지만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10년 전에 비해 우리 역사, 평택의 문화유산에 대해 평택시와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걸 체감해요. 평택문화원, 역사학자, 평택학 연구자 등 많은 분들과 교류하며 전문성을 키우고 문화적으로 윤택한 평택을 만들기 위해 평택국가유산지킴이로서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Q. 국가유산지킴이 경인권거점센터와 국가유산청에 바라는 점, 건의사항이 있나요?
저희 단체는 평택이 지닌 오랜 역사와 유형유산들이 잘 보존되고 그 가치가 계속 이어지기 바라며 모인 순수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입니다. 지킴이단체 등록부터 한옥 마룻바닥에 기름칠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같은 기본적인 현장 활동의 지침, 환경정화 물품 지원까지 경인권거점센터 도움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전국 지킴이대회에서는 다른 지역 활동가들과 교류하며 유용한 정보도 얻고 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평택국가유산지킴이가 지난 10년 동안 한 일들이 꽤 많아요. 저희 활동을 기록으로 정리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껴죠. 저희 활동들을 온라인 상에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싶은데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매월 문화유산 주변 환경정화 활동을 10년 동안 펼치고 있는데 지자체 지원이 원활하지 못해 힘이 빠질 때가 있어요. 지킴이 봉사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건 회원의 자긍심입니다.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을 국가유산청 등 중앙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해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