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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1070. [역경의 열매] 심재수 (1-13) 젊음바친 회사 부도… 가정도 붕괴 위기
차라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눈을 감으면 좋으련만…. 절망은 터널이 아니다. 완전한 블랙홀이다. 고난은 항상 한꺼번에 몰려온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내린다.
젊음과 혼을 바친 회사가 부도났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글 모아쓰기와 한자 변환처리 알고리즘(Algorithm)의 코드체계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상공부장관상과 장영실기술상을 수상한 톱 엔지니어가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1998년 1월은 잔인했다. 외환위기의 태풍이 직장을 부도로 몰아넣었다. 쌓아온 공적들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상장기업이 졸지에 부실기업이 됐다. 전쟁터의 패장은 말이 없다. 부도난 기업의 임원은 할 말이 없다.
그때 ‘구조조정’이란 말이 처음 나왔다. 나를 믿고 동행해준 100여명의 직원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매일 술로 고통을 달랬다. 어느 날, 만취상태로 귀가한 내게 아내가 슬며시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경매처분 절차 통지서’. 기절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은 것에 문제가 발생했다. 부도난 회사는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 회사에 이어 가정까지 무너질 위기였다.
“오, 하나님. 이건 너무 잔인합니다. 제가 비교적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침대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마치 인생이 온통 경매처분을 당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안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라는 것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주도하던 회사가 부도를 당했다? 주택마저 경매에 넘어갔다? 그리고 알거지가 됐다? 하나님, 이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잘되어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수를 믿을 텐데요. 하나님이 지금 손해를 보시는 겁니다.
사면초가였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내가 개발하고 생산·판매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대한 책임이 남아 있다. 만약 신속한 애프터서비스가 되지 않으면 은행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몇 개월째 급여와 교통비를 지급받지 못한 직원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100여명의 직원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자동화기기는 애프터서비스가 생명이다. 우리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도움의 손길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즈음 한 지인이 회사를 찾아와 솔깃한 정보를 주었다. 고양시에 아주 용한 점쟁이가 산다는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훤히 꿰뚫는다고 한다. 신묘불측한 처방까지 내린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여보, 우리 바람이나 쐬러 갑시다.”
자유로를 달려 빨간 깃발이 꽂힌 무당집 앞에 도착했다.
“이 점쟁이가 아주 족집게라는군. 점을 한번 봤으면 싶어. 요즘 도무지 되는 일이 없잖아.”
아내는 침묵했다. 그런데 선뜻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우선 점심을 먹고 다시 옵시다.”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무당집에 당도했다. 이번에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만약 저곳에 들어가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온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때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보, 무당집에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지요? 제게 한 가지 묘안이 있어요. 내일부터 교회 새벽기도회에 나갑시다.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한번 매달려 봅시다.”
아내의 권유에 마음이 흔들렸다. 점을 보느냐, 새벽기도를 드리느냐. 아주 중요한 선택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 [역경의 열매] 심재수 (1) 젊음바친 회사 부도… 가정도 붕괴 위기
* [역경의 열매] 심재수 (2) 점집 유혹에서 벗어나 새벽기도 참석
* [역경의 열매] 심재수 (3) 새벽기도 6개월 만에 외국 투자유치
* [역경의 열매] 심재수 (4) 새벽기도 1000일 ‘일천번제 헌금’ 결심
* [역경의 열매] 심재수 (5) 신권 지폐 발행 힘 입어 회사 급성장
* [역경의 열매] 심재수 (6) 나만의 노하우 ‘관계경영’… 성경서 영감
* [역경의 열매] 심재수 (7) 기도가 살면 기업도 가정도 산다
* [역경의 열매] 심재수 (8) 1000일 새벽기도의 응답 “예수를 전하라”
* [역경의 열매] 심재수 (9) ‘삼고초려 영업전략’ 직접 현장서 솔선
* [역경의 열매] 심재수 (10) 세무조사·질병 이겨내자 뜻밖 선물
* [역경의 열매] 심재수 (11) 사내커플 아내와 주일마다 교회 데이트
* [역경의 열매] 심재수 (12) 믿음 생활이 회사·가정·인생을 바꾸었다
* [역경의 열매] 심재수 (13·끝) 인간 경영-가정 화평, 새벽기도로 일궈
◆약력=1956년 경남 함안 출생. 고려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FKM 대표이사 사장. 장영실기술상, 상공부장관상 수상. 외국기업협회 선정 ‘세계를 감동시킨 CEO’. 영락교회 안수집사.
***[역경의 열매] 심재수 (2) 점집 유혹에서 벗어나 새벽기도 참석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점집이냐, 예배당이냐. 점을 보느냐, 새벽예배를 드리느냐.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 힘든 새벽기도를 어떻게….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면 온종일 졸리고 피곤할 텐데. 나는 ‘종달새 형’이 아니라 ‘올빼미 형’ 체질이라서 힘들어요.”
“그럼 제가 먼저 시작하지요. 당신은 나중에 결정하세요.”
아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우리 부부는 무당집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논쟁한 후 ‘새벽기도 참석’이란 결론을 얻어 귀가했다. 이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만약 그날 점집에 들어갔더라면 평생 귀신의 계략에 휘둘리는 삶을 살았으리라.
아내는 이튿날부터 만리현성결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나는 새벽 4시 30분에 아내를 깨워 교회에 보내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내가 새벽 시각에 일어나지 못했다. 몸살이 난 것이다.
“내가 새벽기도회에 못가면 당신이라도 참석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지금 우리에게는 비상기도가 필요해요.”
아내의 말이 옳았다. 회사와 가정이 모두 붕괴될 초비상 사태인데 한가롭게 늦잠을 자고 있다니….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나인데, 왜 아내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잠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일으킨단 말인가. 말로만 힘들다고 하소연할 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존재가 아닌가.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아, 그곳에는 생소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꼭두새벽에 300명이 넘는 교인들이 예배당에 나와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나는 진정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주일이면 달랑 교회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였다. 성경도 읽지 않았다. 목사님이 성경구절을 제시하면 목차를 펼친 후, 페이지를 찾느라 허둥댔다.
“세상에는 참 죄인들이 많구나. 새벽부터 웬 눈물인가.”
새벽기도회 분위기가 좀 낯설었다. 그러나 한달 정도 지나자 성경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았다. 하나님은 기도와 성경말씀을 통해 매일 지혜와 용기를 부어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체험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바를 기쁜 마음으로 해준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징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매일 설교 요지를 노트에 기록했다. 현재 설교 노트가 43권이나 된다. 만약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노트에 불참 사유를 적었다. 몇 달 동안 출석 통계를 내보니 불참 사유는 딱 하나였다. 음주,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친구·직원·손님들과의 술자리에서 거의 주도권을 뺏긴 적이 없을 정도로 음주를 즐겼다. 웬만큼 먹어서는 취하지도 않았다. 이성을 잃고 횡설수설하지도 않았다. 딱 술 체질이었다. 기도회에 불참하는 날은 노트에 ‘음주’라고 적었다. 횟수가 많아지면서 음주라는 표현이 부끄러워 ‘알코올’ 또는 ‘사케’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술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호텔 앞 화단에서 아침까지 잠을 자는 일이 있었다. 알코올이 마약처럼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런 습관이 고착화되면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
“술버릇을 잡지 못하면 내 인생은 망가진다. 이제 술을 끊어야 한다.” 나는 금주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술을 먹는 성경적 근거는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이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어성경을 보니 ‘Do not get drunk’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 말은 술을 적게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입에 대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드디어 술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3) 새벽기도 6개월 만에 외국 투자유치
나는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다. 술자리에서의 대화도 부드럽고 이성도 잃지 않는다. 영업도 잘하는 편이었다. 술 때문에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술에는 장사가 없다. 술을 먹으면 실수하는 일이 빈번했다. 금주. 그게 그리 녹록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결심을 해도 매번 허무하게 무너졌다.
술꾼들은 술을 마시기 위해 항상 명분과 이유를 찾아낸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술을 마신다. 일과가 늦게 끝나도 한잔, 일찍 끝나도 한잔. 기쁠 때도 한잔, 괴로울 때도 한잔. 이런 생활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었다. 새벽기도회 때마다 금주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술을 끊게 해주세요. 술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어요.”
언제부턴가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거의 정신을 잃었다. 술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왔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체질과 식성에도 변화가 왔다. 술에 대해 몸이 완벽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밖에서 밤늦도록 어울리는 일도 점점 힘겨웠다.
일본에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일본 임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들은 어김없이 내게 술을 권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술을 끊었습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금주의 후유증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금주 약속을 끝까지 잘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술을 끊는 일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체질을 변화시켜 주셔야 한다. 주변에서 술을 권할 때 한약을 먹는다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핑계를 대거나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정면 돌파를 택했다.
“술을 끊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리 됐습니다.”
“당신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때부터 나의 간증이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얼마 후부터 내 앞에는 음료나 물이 놓였다. 나는 술 마시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는다. 다만 저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사람들은 내게 두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어떻게 사업을 그리 잘하는가.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으면서 어떻게 술자리 분위기를 그리 잘 맞추는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업이 훨씬 잘된다. 그 비법이 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금주도 바로 그런 경우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를 통해 말씀 훈련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마태복음 6장 33절이 가슴속에 큰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어려웠다. 기술 파트너였던 일본의 후지쓰 프론텍은 우리 회사 부도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으나, 회사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판매한 제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자본을 100% 투자해 한국 법인회사를 설립하겠다.”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IMF의 찬바람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외국 기업의 투자유치가 확정된 것이다. 회사 설립은 자산인수방식(P/A)이었다. 고객에 대한 무한책임을 실천한 기업, 환경이 어려울 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기업의 배려에 우리는 감동했다. 그때가 바로 1998년 7월 4일이었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바로 그날에 FKM이란 새로운 회사가 탄생했다.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4) 새벽기도 1000일 ‘일천번제 헌금’ 결심
하나님이 나를 테스트하셨다.
“술을 좋아하는 네가 새벽기도회에 며칠이나 나올까? 과연 술은 끊을 수 있을까? 어디 두고 보자.”
그 시험에 패스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험에 패스한 선물로 100명의 직원과 함께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회사를 세워주셨다. 나는 투자회사인 후지쯔사 대표에게 물었다.
“그럼 CEO는 누가 맡게 되는가?”
“당신이 맡으면 된다.”
나는 ‘3불가론’을 내세워 정중히 사양했다.
“첫째, 나는 엔지니어다. 기술자일 뿐이다. 둘째, 행정을 모른다. 셋째, 회사를 직접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나는 ‘보스형’이 아니라 ‘참모형’이다.”
그러나 후지쯔사 대표의 태도는 완강했다.
“당신이 맡지 않으면 회사 설립을 보류한다.”
나는 부도난 회사의 오너가 겪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임을 지는 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원들이 아우성이었다.
“우리 생계가 달린 문제다. 빨리 결정을 내려라.”
결국 사장을 맡게 됐다. IMF 상황에서 외국 기업을 한국에 유치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정말 겁이 났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경험도 없는 사람이 괜히 헛발질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새벽기도를 통해 지혜와 용기를 구했다. 그리고 ‘새벽기도 형 CEO’가 되기로 작정했다. 중요한 사안은 미명의 기도를 통해 결정했다. 하나님께 은밀하게 응답을 구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퍼뜩 떠오르는 지혜를 통해 응답하셨다.
새벽기도의 응답은 신속하다. 새벽기도의 응답은 지혜롭다. 새벽기도의 응답은 명쾌하다. 새벽기도의 응답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다. 모두를 승리자로 만든다. 새벽기도의 응답은 은밀하다. 기발한 해결의 열쇠를 주신다. 사장을 맡고 처음 묵상한 성경이 열왕기상 3장이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내용이다. 양을 태워 제물로 바친 솔로몬처럼 나도 일천번제를 드리자. 내가 드릴 수 있는 일천번제는 무엇일까. 우선 10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럼 무얼 바칠까. 솔로몬이 양을 드린 것처럼 나도 1000일 동안 ‘일천번제 헌금’을 드리자.
당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집은 여전히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1000일 동안 헌금을 드린단 말인가. 일단 시작하자. 나중일은 아무도 모른다. 새벽마다 봉투에 일천번제 헌금이라고 적어서 바쳤다. 물론 아주 작은 액수였다. 교회에는 일천번제 헌금이라고 쓰인 봉투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헌금을 드린 1개월 후부터 일천번제 헌금이란 봉투가 마련됐다. 목사님의 따뜻한 배려였다. 하루는 새벽기도를 드리는데 열왕기상 3장 14절 말씀이 눈에 쏙 들어왔다.
“네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면 자리를 오랫동안 보전해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나는 지금 13년째 기업의 CEO를 맡고 있으니 이 말씀도 그대로 응답된 셈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확한 판단과 추진력이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열심을 내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기도가 필요하다.
새벽기도는 지혜의 보고(寶庫)다. 새벽기도는 황금이 묻힌 광산이다. 새벽기도는 마음의 불순물을 씻어내는 세정제다. 새벽기도는 응답의 시간이다. 새벽기도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의 시간이다. 새벽기도는 하나님과의 단독 상담이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크고 비밀한 선물을 준비해 두셨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이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역경의 열매] 심재수 (5) 신권 지폐 발행 힘 입어 회사 급성장
성경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새벽에 기도하거나 산에 올라 기도한 내용이 많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다. 전도여행을 떠나시기 전에는 새벽에 기도드렸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마가복음 1장 35절).
모세도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아브라함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산’과 ‘새벽’은 잠든 영혼을 깨우는 비상 사이렌이다. 새벽기도와 산상기도는 긴급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는 ‘영혼의 SOS’다.
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적을 그대로 닮고 싶었다. 그래서 새벽기도와 함께 산상기도를 시작했다. 주말이면 기도원에 올라가서 밤늦도록 기도했다. 그때마다 암울한 영혼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 하나님은 고난과 실패의 바다를 앞에 놓고 울부짖는 나를 위해 크고 은밀한 선물을 준비해 두셨다.
2006년 5000원권 신권이 새로 발행됐다. 이듬해 1만원권과 1000원권 신권 지폐가 새로 선 보였다. 이에 따라 전국 은행과 점포의 CD와 ATM 기기를 모두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권은 기존 지폐보다 사이즈가 훨씬 작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한국형 금융 자동화 기기기 필요했다. 우리는 치밀한 기기 교체 프로젝트를 수립해 신속히 최신형 제품을 보급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쇄도했다.
“오, 하나님. 크고 은밀한 선물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엄청난 축복이었다. 회사 설립 당시 총 매출은 30억원이었다. 보잘것없는 작은 회사였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힘입어 2007년 매출액이 무려 14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것은 어느 몇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덕분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서 8장 7절).
운영 자체가 힘겨웠던 회사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 성장의 밑바닥에는 철저한 준비와 기술 개발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2007년 이후 FKM은 동종업계 최고의 시장 지배력을 갖춘 회사로 등장했다. 부도를 통해 어렵게 태어난 회사가 일약 최고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변한 것이다.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던 주택 문제도 말끔히 해결됐다. 이것이 어찌 사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인가. 사람이 어떻게 국가의 화폐 정책을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손길 덕분이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다.
사람은 실수와 실패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교훈삼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CEO는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일을 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바른 선택이 중요하다. 사람은 실패할 때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새로운 결단을 나려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일어설 수 없다. 끊을 것은 끊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심플한 삶을 기뻐하신다. 복잡하면 서로 얽힌다. 복잡하면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은 심플한 삶에서 나온다. 단순한 기도가 오히려 힘이 있다. 새벽에 드리는 기도, 동산에서 드리는 기도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나는 영락교회 대학부를 섬기고 있다. 청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크리스천 기업인으로서의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 내가 만약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아마 알코올 중독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6) 나만의 노하우 ‘관계경영’… 성경서 영감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영의 노하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대부호가 된 깁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한 기업가가 깁슨을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 “저도 선생님처럼 대부호가 되고 싶습니다. 그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깁슨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세 가지 비결이 있지요. 첫째, 실패와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둘째, 술을 마시지 마십시오. 셋째, 하나님과 성경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세요.”
방문자는 기발한 비법을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의 싱거운 답변에 실망했다.
“그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뭐 새로운 것은 없나요?”
“알기만 하면 뭐합니까. 실천을 못하는데요.”
세상의 일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새벽기도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새벽기도의 참맛을 모르는 사람은 말을 하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신다. 신앙생활의 가장 무서운 적은 ‘죄’가 아니다. 게으름과 우유부단이다. 결단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게으르면 희망도 없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항상 뒤처진다. 결정이 느린 사람은 시간과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낭비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언 10장 4절)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회사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일을 접고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나 기도원으로 갔다. 근심 걱정 두려움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기도원에 올랐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찬송과 기도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마음속에 새로운 용기와 비전이 생겼다. 하나님은 나와 다투는 자와 다퉈주시고 싸우는 자와 싸워주셨다. 모세가 아말렉 전투에서 두 손을 높이 들 때는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배한 것처럼…. 기도의 손을 내려놓으면 인생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나는 경영의 노하우를 모두 성경에서 배웠다. 새벽기도를 통해 묵상한 말씀을 그대로 사업에 적용했다. 출애굽기 18장 21∼25절에 나오는 백부장과 십부장 제도를 응용해 회사의 조직을 수평적 구조로 변화시켰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와 봉사는 열심인 반면 말씀훈련에 게으른 것을 보시고 일곱 집사 제도를 도입하셨다. 그것을 본떠서 직원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성경은 보물 창고였다. 그곳에 모든 지식과 지혜와 창의력이 들어 있었다. 외국 기업의 CEO는 일반 기업의 오너와는 많이 다르다. 나는 하나님께 늘 자문을 구했다.
“제가 어떤 경영을 해야 하나요? 경험도 없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관계경영’이다. 아마 이 단어는 내가 처음 사용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목사님의 설교에서 배운 것이다.
“크리스천의 신앙 성패는 관계 정립에 달려 있다. 하나님, 이웃, 가족, 성도와 좋은 관계를 가져야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설교를 듣는 중 가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주주, 고객, 협력업체,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이것을 ‘관계경영’이라고 부르자.”
기도하면 기업 운영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도하면 막힌 곳이 뚫렸다. 하나님이 일을 먼저 시작하시고, 그 다음으로 나를 투입하셨다. 그리고 미처 구하지 않은 것까지 풍성하게 채워주셨다. 나는 1998년부터 8년 동안 혼자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른 것은 자동으로 풀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관계경영’의 핵심이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7) 기도가 살면 기업도 가정도 산다
신권 화폐 발행과 함께 회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그때가 곧 위기였다. 어느 은행이 신형 현금입출금기를 가장 신속하게 배치하느냐. 이것이 그 은행의 능력처럼 평가받는 분위기였다. 여러 은행으로부터 호출이 이어졌다.
“이번에 당신의 능력을 한번 확인해 보겠다. 입출금기를 신속하게 교체해다오. 만약 다른 곳부터 설치하면 당신과 계속 거래하기가 어렵다.”
이 무슨 낭패인가. 약속한 날짜에 제품을 반드시 납품해 줄 것을 요구했다. 잘못하면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관계가 무너질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약속을 하면 더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생산량은 한정돼 있는데 공급은 폭주했다. 경쟁업체의 집요한 공격도 이어졌다. 모든 것이 잘될 줄 알고 우쭐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
기도를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업은 신뢰가 생명이다. 기업은 신용이 자산이다. 상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기업의 이미지는 흐려진다.
“오 하나님, 이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보너스가 아니라 고난입니다. 차라리 이런 고통 없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나을 뻔했습니다. 나를 공격하는 저들에게 어떻게 맞서야 합니까.”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하나님께 투정을 부렸다. 그날 묵상한 말씀이 출애굽기였다. 모세가 출애굽을 선언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오랜 광야생활에 지친 그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을 쏟아냈다.
“모세여, 우리가 차라리 애굽에 머물 때가 좋았다. 이건 너무 힘들다.”
아, 내가 바로 부정적인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를 못 견디고 불평한 것이다. 그날 새벽 출애굽기 6장 1절 말씀이 또렷하게 보였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떡 속에 가시가 있었다. 회사가 갑자기 성장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나와 사원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호황’이라는 떡 속에 ‘고통’이라는 이름의 가시를 박아 놓으셨다. 이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로 갈까봐 고통의 가시를 주셨다. 복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면 가시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말씀과 기도의 핀셋으로 솎아내야 한다. 겸손의 그릇에 떡을 담아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다. 새벽기도회 때 신명기 31장 20절을 읽는 중에 큰 깨달음이 왔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라.”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은 새벽마다 내게 깨달음을 주신다. 미명에 지혜를 주신다. 그것은 세상의 지식이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하늘의 은밀한 약속이다. 하늘의 비밀한 음성이다.
“철저하신 하나님, 섬세하신 하나님. 저의 나약한 마음을 미리 아시고 이런 처방을 준비하셨군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위대한 손길을 믿습니다.”
거래처와의 약속을 모두 정확하게 지켜냈다. 공장은 거의 1년 동안 3교대로 24시간 가동했다. 이번에는 거래처 사람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말 감사하다. 사장이 직접 우리를 찾아와 설명하고 약속해 준 회사는 없었다. 부를 때마다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선뜻 달려와 준 당신의 겸손과 친절에 감동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르쳐준 ‘새벽기도 경영원리’다. 기도가 살면 기업도 산다. 기도가 살면 가정도 산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8) 1000일 새벽기도의 응답 “예수를 전하라”
나는 ‘새벽기도형 CEO’를 꿈꿨다. 회사를 경영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부도난 기업을 살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믿을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하루를 새벽기도로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기대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의 말씀으로 대답을 주셨다. 새벽기도 1000일 ‘D-3’. 경기도 파주 오산리 최자실기념기도원에 올랐다. 기도동산에서 1000일 새벽기도의 피날레를 맞고 싶었다. 가슴이 설레었다. 3일 금식기도를 결심하고 어느 목사님에게 자문을 했다.
“목사님, 금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못하면 위험하다고 하던데요.”
목사님의 간단한 충고. “그냥 하세요.”
금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먹다 남은 음식만 보아도 군침이 돌았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잔반에 자꾸 눈길이 갔다.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다. 사흘 금식이 마치 혹독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새벽기도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주실까. 어떤 응답을 주실까.”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온통 음식 생각뿐이었다. 기도 굴에 들어가 기도에 몰입하면서 비로소 배고픈 생각을 잊어버렸다. 두 시간의 기도가 마치 20분으로 여겨졌다. 그때 펼쳐든 성경말씀이 사도행전 20장 24절이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통해 큰 깨달음이 왔다. 오직 사업에만 열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사실 나의 뇌리는 24시간 내내 회사 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선교나 전도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사업 못잖게 중요하다. 그때부터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1000일 새벽기도’를 통해 비로소 ‘예수를 전하는 크리스천’이 된 것이다.
나는 교인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나를 만나자는 분이 많아졌다. 영락교회에서는 내게 몇 가지 직분을 주었다. 남선교회 지회장, 구역장, 새 신자 가족부 안내위원, 선교부 서기 등의 직분이 주어졌다. 특히 남성 구역장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나는 직분을 거절하지 않았다. 신앙은 봉사를 통해 성숙한다. 기업인이 사업에 몰두하다 보면 영성이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인도 교회 직분과 봉사활동에 감사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특별한 새벽기도 날에 특별한 말씀으로 응답을 주셨다. 2000번째 날에는 로마서 10장 14∼15절, 3000번째는 시편 116편 12∼14절, 4000번째는 역대상 16장 15절 말씀을 주셨다. 이 모든 성구들은 당시 상황에 아주 적절한 인생 나침반이 되었다. 기도 응답에 그저 놀랄 뿐이다.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현장 경영'을 배웠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그를 치유시켜 주었다. 예수님은 ’나를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공장도 가보고, 우리 기기가 설치된 은행과 점포에도 가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사 제품이 점포에 설치되면 마치 옥동자를 하나 낳는 기분이다. 한번은 어느 은행에 설치된 ATM 기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청원경찰이 나타났다.
“왜 여기서 서성거립니까. 신분증 좀 보여주실 수 있나요?”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계속 현금 입출금기를 만지고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이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9) ‘삼고초려 영업전략’ 직접 현장서 솔선
현금입출금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년의 남자, 손님이 없으면 기계를 툭툭 건드려보는 수상한 남자. 은행 직원이 나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청원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왜 이곳에서 서성거리느냐고 물었다.
“제가 바로 저 기기를 만든 사람입니다.”
청원경찰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명함을 건네주면서 다시 설명했다.
“입출금기를 만드는 기업의 사장입니다. 고객에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현장조사를 나온 것입니다.”
“사장님이 직접 점포를 방문하고 있군요. 죄송합니다. 몰라보고 그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현장경영의 원리’다. 나는 사장실에 앉아있는 체질이 아니다. 공장과 점포와 지방 사무소를 돌면서 현장을 체크했다. 특히 24개 지방 사무소를 방문할 때는 항상 아침 7시에 모여 직원들과 함께 설렁탕을 먹는다. 근무시간에 방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은행 지점장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도무지 만나주질 않았다. 결국 은행으로 찾아가 비서에게 명함과 방문 목적을 밝히고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마침 우리 회사 직원이 기기를 체크하기 위해 은행으로 들어왔다. 나는 얼른 몸을 숨겼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행여 직원들의 사기가 꺾일 것을 우려한 것이다.
“사장이 저렇게 낮은 자세를 보이다니…. 사장도 저렇게 힘겨워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말단 직원은 어떻게 영업을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드디어 지점장이 나타났다. 그는 3시간을 기다린 나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전 예고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그는 총총히 나가버렸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이런 수모를 견뎌내지 못했다. 강하게 항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절망과 고통의 파도가 밀려와도 그것을 능히 참아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뎌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장 12절).
며칠 후, 미리 전화를 하고 그 지점장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방문 목적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지점장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협조를 약속했다. 나는 이것을 ‘3·3·3 전략’이라고 부른다. 고객 앞에서 3시간을 기다려라. 30분쯤 욕먹을 각오를 하라. 이런 일을 최소한 3번은 시도하라. 그러면 반드시 문이 열릴 것이다. 직원들에게 이 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한 번 두드려 열리는 문은 거의 없다. 계속 두드려야 한다. 이런 끈기가 없으면 영업에 성공할 수 없다.
2009년 초, 회사에 큰 시련이 닥쳤다. 국세청 및 관세청의 세무조사를 비롯해 각종 조사를 모두 받았다. 그 과정에서 경영의 미숙한 부분들이 드러났다. 우리 회사는 아주 짧은 기간에 성장했다. 하드웨어는 제법 규모를 갖춘 반면 경영의 소프트웨어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세무조사를 앞두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한 심정으로 기도원에 올랐다.
“하나님, 난생 처음 받는 세무조사입니다. 이번 시험을 잘 이겨내게 해주세요. 지혜와 명철을 주세요.”
기도하는 그 시각, 회사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다. 조사관은 사장이 얼굴을 비추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리고 직원에게 말했다.
“사장은 어디 있나요.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 기도원에 있습니다.”
조사관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기도원이요? 그럼 전화를 하세요.” “기도하는 중에는 전화연락도 안 됩니다.”
분위기가 점점 어두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10) 세무조사·질병 이겨내자 뜻밖 선물
조사관이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회사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데 사장이란 사람은 한가롭게 기도원에서 기도나 하고 있단 말인가. 대단한 강심장이거나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도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은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충분히 기도를 드린 뒤 회사에 도착했다. 마음이 지극히 평화로웠다. 누구 앞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또박또박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영적 에너지다. 조사관이 다소 엄격한 톤으로 말했다.
“정밀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미숙함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외환위기를 딛고 태어난 기업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경영을 토대로 운영되는 회사입니다.”
나는 점점 간증을 하고 있었다.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이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하나님은 각종 조사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다.
“어린아이가 장성하면 체격에 맞는 새 옷을 입는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성장하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10년 후를 내다보아라. 주먹구구식 시스템으로는 결코 큰 회사가 될 수 없다.”
참으로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세무조사를 통해 회사는 더욱 건강해졌다. 그것은 ‘필요한 아픔’이었다. 시련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 것이다. 세무조사는 약간의 과징금으로 마무리됐다.
이번에는 전혀 뜻밖의 시련이 닥쳤다. 건강을 자신하던 내가 거의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각종 조사를 받느라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탈진입니다. 쉬어야 합니다.”
1주일 동안 입원했다. 입원은 난생 처음이었다. 예수를 믿은 뒤 이렇게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드리지 못한 것도 처음이었다. 사람의 건강도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만 무너져도 건강할 수 없다. 이른바 ‘육체·정신·영’이 건강해야 한다.
성경도 읽을 수 없었다. 예배도 드릴 수 없었다. 이런 생활이 1주일쯤 지속되면서 영육은 더욱 깊은 무기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차라리 교회에서 죽자. 질병이 무서워 벌벌 떨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영적 건강까지 무너지면 모두 끝이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그때 묵상한 말씀이 열왕기상 19장이었다. 엘리야는 아합의 공격을 피해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을 잔다. 모든 것을 포기한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내가 바로 엘리야였다.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버린 나약한 인간 엘리야였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에 누운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공급했다. 엘리사를 선자자로 삼을 것을 명하셨다.
나는 성경을 읽고 용기를 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주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새벽기도가 회복되면서 몸도 살고 영혼도 살아났다. 기도가 없으면 영적 호흡도 끊긴다. 새벽기도가 없으면 그날의 삶도 공허할 뿐이다. 새벽기도는 영적 자양분이다. 새벽기도는 지혜의 창고다. 새벽기도는 경영의 교과서다.
회사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직원이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사장님, 이제 우리도 편의점에 현금인출기를 공급하게 됐어요. 방금 계약 결정이 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은행과 보험사에 기기를 납품했다. 그런데 편의점에 현금인출기 2000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나님은 세무조사와 질병의 시험을 통과한 나에게 또 이런 깜짝 선물을 준비하신 것이다. 기도는 공짜가 없다. 기도는 허공으로 날아가는 법이 없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11) 사내커플 아내와 주일마다 교회 데이트
“인생 최고의 축복이 무엇일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갖고 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얻은 결론이다. 역시 ‘만남의 축복’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아내와의 만남, 회사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이 곧 축복이다.
나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외국인 회사에 다녔다. 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아주 예쁘고 총명했다. 당시 해외연수를 다녀올 정도면 제법 잘 나가는 여성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요일에 만나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면 번번이 거절했다.
“왜 데이트를 거절합니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족이 모두 영락교회에 다닙니다. 주일은 교회에 가야 합니다.”
“잘 됐어요. 그러면 내가 영락교회에 다니면 되겠네요.”
나는 교회에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단지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 출석을 약속했다. 상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성경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두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데이트를 즐겼다. 서울 근교 경치 좋은 곳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내장산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다.
사내에서 사원들 모르게 교제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직원들의 눈을 속였다. 전화를 했다가 다른 사람이 받으면 얼른 끊어버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직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이상한 전화가 많이 걸려오네. 왜 전화를 받으면 끊지? 도대체 누구지?”
나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게 바로 나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서 껌 종이에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적어 메모를 전했다. 여러 가지 기발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데이트를 갖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장벽이 너무 높고 많았다. 장모님은 일찍 남편을 잃고 2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분이다. 남편을 잃은 후, 비통한 심정으로 지내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더란다. 그 종소리를 따라가 보니 교회였다. 무턱대고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찬송을 하는데 마음이 아주 평안하더란다. 그때부터 신앙생활에 몰입했다. 평생을 신앙에 의지해 오신 강직한 분이다. 두 아들과 딸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내딸의 결혼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다.
내 어머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불교 신자였다. 역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4남 1녀를 잘 키워낸 여인이었다. 아들들을 잘 키워서 서울로 유학을 보냈으니 마을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예수 믿는 처녀를 만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해야 행복한 법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좋은 규수를 찾아볼 테니 그만 헤어져라.”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어머니를 설득했다.
“결혼하면 여자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겁니다. 제가 잘 가르칠게요. 저를 믿어주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장모님의 반대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한 사건이 장모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흔들어놓았다. 하숙집에서 지내던 중 복통을 일으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아내가 나를 집으로 데려와서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당시 체중이 53㎏ 정도였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지냈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예수도 안 믿지, 몸도 약하지, 모아놓은 재산도 없지…. 몸에 병까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장모님의 실망이 극에 달했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12) 믿음 생활이 회사·가정·인생을 바꾸었다
장모님은 나를 몸이 아프거나 심신이 나약한 청년으로 오해했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B형 간염이었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주 특이한 경우입니다. B형 간염이 자연스럽게 나았어요.”
“그래요? 하나님이 치료해주신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교회에 출석한 지 채 1년도 안 된 초보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운운한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믿음 때문인가? 열성 때문인가? 구원의 확신 때문인가? 아니다.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얻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종종 기적이 나타납니다.”
의사는 나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생각했다.
1985년 5월,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만난 지 1년만이었다. 처가로서는 첫 결혼식이었다. 나중에는 결혼을 그토록 반대했던 장모님이 오히려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정말 고맙네. 자녀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모든 자녀들이 혼기를 놓쳤을 거야. 자네가 우리 아이들을 결혼시킨 1등 공신이야.”
아내 덕분에 신앙을 갖게 됐으니 참 감사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모든 노하우도 성경에서 배웠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 적절한 말씀과 깨달음으로 앞길을 인도하셨다. 짧은 신앙 연륜에 안수집사가 된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다. 나는 항상 예배시작 30분 전 예배당에 도착한다. 준비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하나님의 은혜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영혼이 감동된 상태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모두 은혜가 된다.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든 말씀이 꿀처럼 달콤하다. 굶주린 자는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 영혼이 굶주린 자는 설교를 분석하지 않는다. 가끔 교회봉사를 하느라 예배를 못 드린 사람들의 고백을 듣는다.
“아이고, 오늘 봉사하느라 예배도 못 드렸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배가 죽으면 신앙생활도 힘이 없다. 예배가 봉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선교국 서기로 봉사할 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주일이면 너무 바빴다. 사람들의 생각도 각양각색이었다. 피곤했다. 나는 담당 목사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무래도 제게 맞지 않습니다. 생각도 서로 다릅니다.”
목사님의 답변은 간단했다.
“이제 아셨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갖고 임하세요. 봉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몸부림치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 선교국 시스템을 회사의 행정 시스템과 유사하게 바꾸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제도였다. 지금 회사의 시스템은 거의 완벽하다. 지난해 우리 회사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 한 건도 사용하지 않은 우량회사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표창을 받았을 정도다. 교회 행정도 그런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섰다. 그 모든 봉사를 마치고 나서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다. 아주 짧은 기간에 생각지도 않았던 직분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가정생활도 실패했을 것이다.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았으면 부부화합도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아주 엄하고 보수적인 남자였다.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숱한 상처를 주었다.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한 말이 ‘역할 분담’과 ‘약속’이었다.
“나는 가장으로서 돈을 번다, 당신은 완벽하게 살림을 하라. 자녀들을 제대로 키워내라. 그것이 당신 책임이다. 약속하라.”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자녀는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어찌 아내만의 책임인가. 약속 시간이 5분만 늦어도 펄쩍 뛰었다. 약속은 곧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는 1등 남편, 1등 아빠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착각인지를 곧 알게 됐다.
***[역경의 열매] 심재수 (13·끝) 인간 경영-가정 화평, 새벽기도로 일궈
아들과 딸이 모두 대학입시에 낙방했다. 내신은 모두 하위 등급이었다. 옛날 같으면 이 책임을 모두 아내에게 전가했으리라. 왜 이 정도 성적이냐며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리라. 평소 나는 아이들에게 ‘재수 불가’를 강조해왔었다.
“재수란 있을 수 없다. 한번에 붙어라. 아버지 이름이 재수인데, 너희들까지 재수하면 되겠느냐.”
아들과 딸은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호된 꾸지람을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의외의 부드러운 반응에 당황했다. 그때는 내 성품이 IMF라는 ‘고난의 강’을 건너 ‘신앙의 육지’에 도착한 뒤였다. 이제는 완고한 사람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호탕하고 너그러운 ‘멋진 남자’, 집에서는 사사건건 따지는 ‘꼬장꼬장한 남자’가 아니었다.
“재수를 해라. 이번에는 기도하면서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참 미안했다. 아버지란 역할을 처음 해보아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용서해다오. 앞으로 잘 해보자.”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부드러운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성품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성급하고 독선적인 성격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역시 새벽기도 덕분이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내는 나를 만나서 행복해할까? 아이들은 아빠를 자랑스러워할까?”
대답은 ‘NO’였다. 그 순간 가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가족이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참 많이 받았겠구나.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이제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가정에 평화도 없다. 내가 먼저 마음문을 열고 생각을 바꾸자.
IMF는 내게 축복의 통로였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었다. 그 고난을 통해 ‘새벽기도형 CEO’가 되었고 가정이 회복됐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아들은 재수한 뒤 한동대학교, 딸도 나중에 재수해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위권 내신으로 거뜬히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아들은 학원 수업이 끝나면 밤늦게 교회에 들러 기도할 정도로 믿음이 장성했다. 나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을 버렸다. 왜? 자녀들도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부모는 청지기일 뿐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장 4절).
자녀는 소유가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다. 자녀를 노엽게 하면 대화의 문이 막힌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엄마와 아빠를 두려워하지 마라. 엄마와 아빠는 너희들이 잘못을 속이면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설교 내용을 노트에 꼼꼼히 기록하는 아들을 보며 그저 감사할 뿐이다. 좋은 아내를 인생의 배필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위기를 통해 좋은 회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친다.
새벽은 축복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아주 특별한 복을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시련을 능히 이겨낼 특별한 힘을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삶의 활력을 주신다. 새벽이 주는 풍성한 은혜를 나는 안다. 경험을 통해 안다. 새벽기도는 경영학 교과서다. 나는 경영의 모든 것을 새벽기도에서 배웠다. 가정의 화평도 새벽기도에서 깨우쳤다. 새벽기도의 은혜가 단비처럼 내 영혼을 적신다. 새벽에 나누는 하나님과의 조용한 속삭임을 경험해보라. 그 오묘한 계시와 세미한 음성에 전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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