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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금강경 1-3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7.05.05|조회수63
[스크랩] 금강경 1-3/종범스님
++++++++++++++++++++++++++++
이것이 금강경
제일 첫 번째 나오는 경문이다.
●●이런 부분이
어떻게 금강경 첫 번째에 나올까?
가만히 이 광경을 그려보라.
●●●그것은 삶의 질(質)이다.
●《삶의 양(糧)》이라고 하는 것은
[몇 년을 살았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삶의 질(質)》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정신세계에서 사셨는가?
라고 하는 것이 삶의 질(質)이다.
그러니까.
매일 발우를 들고
탁발을 하러 시중에 들어가고
공양을 하러 나오고 할 때
어떤 정신세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가?
어떤 정신세계로 공양을 드시고
드신 다음에 발우를 정리하셨는가?
또 앉는다고 하는 것이
●●●어떤 정신세계로 앉았는가?
●●●그것이 삶의 질(質)이다.
그래서
●●●삶의 질(質)이 아주 넓고 깊으면
💎☸※※※단 하루만 살아도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삶의 질(質)이다.
●●●그런데 삶의 질(質)이 낮으면 💣💣💣
억만 년을 살아도 모자란다.‼‼‼💥💥💥✳✳✳
☸일념즉시 무량겁
(一念卽是 無量劫)이고,
☸무량원겁 즉일념
(無量遠劫 卽一念)이라.
한 생각은 찰나인데,
그 삶의 질(質)에 따라서
일찰나가 무량겁이 될 수 있다. ⭕⭕⭕‼
또 삶의 질(質)에 따라서
무량겁이 일찰나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불교를 공부하는 분은
절대 오래 살려고
연연할 필요가 없고
삶의 질(質)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질(質)은 어떻게 높이는가?⭕⭕⭕
이 정신세계를 높이는 것이다. ⭕⭕⭕
그러니까.
하루만 살아도 💎💎💎
영원히 산 것이다. 💎💎💎
그게 해탈이다.💎💎💎⚡⚡⚡
그냥 마음공부 없이
오래 살아보아야 별의미가 없다. ⭕⭕⭕‼
마음공부가 깊으면
오래 살 필요가 없다.
또 금방 죽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것이 마음공부이다.
한 생각은 헤아릴 수 없는
영겁(永劫)의 시간이고
헤아릴 수 없이 멀고
아득한 시간도
한 생각에서 나온다.
💎☸부처님이 맨발로 걷고,
부처님이 탁발 공양하시고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신
그 마음이 반야바라밀이다.
💎☸부처님이 오시는 것도
반야바라밀이고,
가시는 것도 반야바라밀이고,
공양하시는 것도 반야바라밀이고
💎💎☸전부 반야바라밀이다.⭕⭕⭕
부처님께서 사시 때
일종식(一種食)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음식을 준비해서는
부처님과 그의 청정한 제자들이
오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승가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님들은
저마다의 탁발한 음식이
다름을 보고 💥
분별심을 일으킬지 모른다.💥
음식의 맛과 양
또 그 종류에 따라
때로는 탐심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곧 다른 많은 스님들이 그렇게 하시듯
그 마음을 관찰하고⭕⭕⭕⚡⚡
분별심을 놓을 수 있다.⭕⭕⭕‼
고요히 탁발을 하시고는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오셔서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 공양을 한다.
공양을 하기 전에
잠시 저마다
침묵으로써 명상을 한다.
이 음식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수많은 인연,
온 우주 법계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은은히 피어오르게 한다.
몸이 약하거나
병이 들은 도반이 곁에 있다면
내 발우에 담긴 몸에 좋은 음식이나 고기 등을
나누어 줌으로써 약으로 삼는다.
그리고
때때로 맛에 탐착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는 💥💥💥
잘 관하며 ⭕⭕⭕
고요히 공양을 한다. ⭕⭕⭕
공양이 끝나면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아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금 고요히 선정에 든다.⭕⭕⭕‼💎💎💎‼
이러한 아난존자의 묘사에
어디 시끄럽고
복잡스런 느낌이 있는가.
이 많은 스님들이
일상을 살아가지만
어느 한 구석
시끌벅적한 광경이 아닌
한없이 고요하고 💎💎💎⚡⚡
여법한 광경일 뿐이다.💎💎💎⚡⚡
아난존자는
항상 그림자처럼
부처님 옆에 서 있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실 때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부처님을 따르고,
공양을 하실 때
말없이 옆에 앉아
함께 공양하며
항상 부처님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한 부처님에 대한 지켜봄이 있었기에 ⚡⚡⚡
부처님의 일상 그 자체가⚡⚡⚡💎💎💎
얼마나 큰 깨달음의 순간인지를 ⚡⚡⚡💎💎💎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을 때
시시콜콜해 보이는 ⚡⚡⚡
이런 사소한 일상까지 ⚡⚡⚡
아난존자는 경전에서 소중하게 말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보고 ⚡⚡⚡
감탄해 마지않으며 ⚡⚡⚡
부처님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하셨던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면 어떠한가.
잠이 안 깨니
자명종도 소리 큰 것을 사다가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출근하기 직전까지 맞춰놓는다.
또,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지 못해
눌러 놓고 자다보니
이만 저만 늦은 게 아니다.💥💥💥
그러니 아침이 얼마나 바쁘겠나. 💥💥💥
정신없이 시계 보면서
씻고 화장하고
대충 밥 먹거나 💥💥💥
아침밥도 굶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서 후다닥 회사로, 학교로 간다.💥💥💥
하루의 시작이 정신없으니 💥💥💥
어찌 하루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 때 동료들과 어울려 한 잔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쓰러지듯 잠이 들곤 한다.💥💥💥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정신없이 💥💥💥💣💣💣✳
마음 챙기지 못하고 사는 것은 💥💥💥💣💣💣
이와 다를 게 없다.
이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 금강경 제 일분에 나오는
부처님의 평화롭고 고요한 삶과 💎💎💎
우리의 허둥지둥 정신없는 삶을 💣💣💣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의 하루 일과는
모든 순간순간이
그대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밥 먹고, 걷고, 씻고, 앉는 모든 일들이
소중한 수행 아닌 것이 없으니
따로 수행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다.
💎💎☸☸어느 한 가지 사소하고
💎💎☸☸덜 중요한 일이 없이
💎💎☸☸모든 일과가 그대로
💎💎☸☸소중한 깨어있음의 행이다. ⭕⭕⭕‼
우리들은 중요한 일도 있고
사소한 일도 있으며,
때때로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사소한 일들은
일일이 신경을 쓰지 못하곤 한다.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지간한 사소한 일이나
소소한 일들은
그냥 흘려 보내기 쉽다.
회사에 가야 된다는 목적 때문에
집에서 밥 먹고,
버스를 타고,
회사로 걸어가는
그런 일상은 사소하고
귀찮은 일쯤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행에 있어
💎💎☸☸《사소하고 중요한 분별》은 없다.⭕✅‼
💎💎☸☸낱낱의 《모든》 일상은 ⭕⭕⭕‼
💎💎☸☸그대로 하나의
💎💎☸☸소중한 깨달음의 행이 된다.⭕⭕⭕‼
밥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이,
밥 먹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이 된다.⭕⭕⭕‼
밥 빨리 먹고 나서
좌선에 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오직 밥 먹는 그것이
그대로 목적이다. ⭕⭕⭕‼
💎💎☸☸밥 먹는 순간
온전히 밥만 먹는다.⭕⭕⭕‼
밥 먹으며 다른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그렇게 번잡하지 않고,
💎💎☸☸오직 밥만 드실 뿐이다.⭕⭕⭕‼
밥을 먹는 순간,
발을 씻는 순간,
걷는 순간,
탁발을 하는 순간,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거기에 있다.⭕⭕⭕‼
💎💎☸☸매 순간 도착해 있다. ⭕⭕⭕‼✅✅
어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 ⭕⭕⭕‼✅✅
💎💎☸도착지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뿐,⭕⭕⭕‼
또 다른 도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도착해 마친 것일 뿐이다.⭕⭕⭕‼✅✅
그러니 더없이
평화롭고 향기로울 수 있다.✅✅
💎💎☸☸걷는 순간 오직 걸을 뿐, ⭕⭕
💎✳✳✳탁발을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발을 씻는 순간 오직 씻을 뿐, ⭕⭕‼
빨리 씻고
좌선에 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이다.⭕⭕⭕‼✅✅
💎☸모든 순간순간
더 이상 도달할 곳이라고는 없다.⭕⭕⭕‼✅✅
💎☸그 순간이
가장 온전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라.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무엇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고, 💥💥💥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
한 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
한 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점을 일깨우고 계신다. 💎💎☸☸⭕‼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과라도 ✅✅
💎☸매 순간 순간의 삶이
《지금 부처님의 삶》에서처럼 ⭕⭕⭕‼
《●●온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
말해 주고 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던
‘평상심이 도’라는 말 ⭕⭕⭕‼
또한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선사 스님들께서
부처님의 일상을 언급하신
💎☸금강경 제 일분을 두고
💎☸깨달음 최고의 순간이며 ⭕⭕⭕
💎☸최상의 설법이라고 하셨다.⭕⭕⭕‼
똑같은 일상이라도
그 일상이
깨달음의 순간이 될 것인가? ☸☸☸💎💎
아니면
어리석은 중생들의
평범한 일과가 될 것인가? ✳✳✳💣💣💥💥
하는 데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똑같은 일상이라도
온전히 그 순간 집중을 하여⚡⚡⚡
깨어있게 되면 ⚡⚡⚡
그것은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과 같다.⚡⚡🌺🌺🌺
그러니
💎☸늘 일과가 깨어있지 못한
우리들의 안목으로 보았을 때,
금강경의 제 일분이
얼마나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나.
그저 우리들의 삶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마음의 눈을 맑게 씻고
2,500여 년 전
부처님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 마음을 살짝 엿보게 되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모든 일과가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임을 알 수 있다.⭕⭕⭕
겉모습은 서로 같더라도
그 내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부처님도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고
역대의 고승들도
지금의 우리들도
모두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듯
평범하고
똑같아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내면에 중심을 세우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보내느냐?
💥💥그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냐?
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평화롭게
깨어있는 낱낱의 일들이
곧 좌선을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일상을 살아감이
💎☸그대로 좌선하고 앉아
💎☸마음을 집중하는 것과 둘이 아니며,
💎☸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고 말이다.
⭕[가부좌를 결하시고
⭕몸을 곧게 세운 뒤
⭕입가에 마음을 집중하시고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구절인데,
아쉽게도
우리가 많이 독송하고 있는
구마라집의 번역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일대일로 직역하는 것을
중시하는
현장 삼장의 번역이라던가,
진제 삼장본,
보리유지 본 등의
☸다른 한역 금강경에서는
☸모두 번역이 되고 있다.
빠알리어 경전에서도
이 부분은 잘 드러나 있음을 볼 때,
분명 이 부분은
금강경의 원본에는 나타나 있는
경구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 제 일분에서 말하고 있는
⭕부처님의 일상 하나하나가 그대로
⭕가부좌를 결하고 앉아 마음을 집중하는 좌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 부분에서는 말하고 있다.⭕⭕⭕‼
앉아서 하는 좌선은 중요하고
법 먹고, 탁발하고, 발을 씻는 등의 일은
중요치 않은 것이 아니라 ❌❌✅✅
이 모든 낱낱의 행위가
그대로
💎☸마음집중의 수행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양이 끝나시고
부처님께서는 여느 때처럼
가부좌를 결하시고
몸을 곧게 세운 뒤
입술 바로 위쪽으로✅✅✅
호흡이 들고 나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시며 앉아 계신다.
💎☸호흡이란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스님은
이 부분을
‘주대면념(住對面念)’이라고 하여,
‘전면에 마음을 집중하시고서’
라고 해석을 했다.
빠알리어에서
‘전면’이라고 해석한 부분을
원본에서 ‘무카(mukha)’✅
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얼굴이나 입이라고 해석한다. ✅⭕⭕⭕‼
산스크리트본에서
💎☸무카는 입이나 얼굴을 나타낸다.✅⭕⭕⭕‼
전후 사정을 보았을 때
아함경 등에서 나오는
사념처 수행에 빗대어
‘얼굴에 마음을 집중한다’거나
‘전면에 마음을 집중한다’
는 해석 보다는
💎☸●●●‘입술 위 부분의 호흡이 들고 나는 곳에
마음을 집중한다’✅✅✅
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어쨌거나 여기에서는
호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순간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금강경의 제 일분에서는
💎☸부처님의 평범한 하루 일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가르침을 열고 있다.
우리의 삶과
부처님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
똑같이 먹고 자고 걷는다.⭕⭕⭕⚡⚡⚡‼✅✅
그러나
💎☸부처님은 깨어있는 정신으로
오직 그것을 할 뿐이며, ✅
오직 매 순간 순간 ⭕⭕⭕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
매 순간
다른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달해 있기 때문에 ⭕⭕⭕⚡⚡⚡
평화로울 수 있다.⭕⭕⭕‼💎💎
우리 또한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보며
우리의 삶도 ⚡⚡⚡
부처님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
외양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내면의 빛을
현실에 피어오르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또한
그대로 깨달음을 삶 속에서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꾸 어디로 갈까 망설이지 말고,💣💣
자꾸만 욕망을 일으켜 💥💥💥
도달할 곳을 찾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번뇌와 집착으로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
바로 그 자리에서 💎💎☸☸⚡⚡⚡
부처님의 삶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매 순간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행이고,
금강경의 실천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해석이
어마어마하게 굉장히 많다.
그런데 삼등분으로 나누는데,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까지는 법회의 청중이다.
그리고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여기까지는
💎☸부처님의 계행(戒行)이다.
💎☸오고 가는 것이 다 계행(戒行)이다.
그 다음에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여기까지는
선정(禪定)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계행(戒行)은
공양 시간이 돼서
부처님이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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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몸과 마음이 온전히 여기에 지금에 있다💎💎💎⭕⭕⭕
하루만 살아도 💎💎💎
영원히 산 것이다. 💎💎💎
그게 해탈이다.💎💎💎
그냥 마음공부 없이
오래 살아보아야 별의미가 없다. ⭕⭕⭕‼
●●●삶의 질(質)이 아주 넓고 깊으면
💎☸※※※단 하루만 살아도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삶의 질(質)이다.
●●●그런데 삶의 질(質)이 낮으면 💣💣💣
억만 년을 살아도 모자란다.‼‼‼💥💥💥✳✳✳
그러나 부처님의 행에 있어
💎💎☸☸사소하고 중요한 분별은 없다. ⭕⭕⭕‼
💎💎☸☸낱낱의 모든 일상은
💎💎☸☸그대로 하나의
💎💎☸☸소중한 깨달음의 행이 된다.
밥 빨리 먹고 나서
좌선에 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오직 밥 먹는 그것이
그대로 목적이다. ⭕⭕⭕‼
밥을 먹는 순간,
발을 씻는 순간,
걷는 순간,
탁발을 하는 순간,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거기에 있다.⭕⭕⭕‼
💎💎☸☸매 순간 도착해 있다. ⭕⭕⭕‼
💎💎☸도착지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뿐,⭕⭕⭕‼
또 다른 도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도착해 마친 것일 뿐이다.⭕⭕⭕‼
💎💎☸☸걷는 순간 오직 걸을 뿐, ⭕⭕
💎✳✳✳탁발을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발을 씻는 순간 오직 씻을 뿐, ⭕⭕‼
빨리 씻고
좌선에 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이다.⭕⭕⭕‼
💎☸모든 순간순간
더 이상 도달할 곳이라고는 없다.⭕⭕⭕‼
💎☸그 순간이
가장 온전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이다.
●●●삶의 질(質)이 아주 넓고 깊으면
💎☸※※※단 하루만 살아도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삶의 질(質)이다.
●●●그런데 삶의 질(質)이 낮으면 💣💣💣
억만 년을 살아도 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