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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와 경쟁해야 했던 이탈리아 평민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던 역사를 보면 , 현재 진해되고 있는 계층간의 차별이 얼마나 위험한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고대 로마의 역사를 보면 차별은 극소수의 특권층의 이익만 확대해 주고 , 평민과 노예의 생활을 파탄나게 한다는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글은 백과사전 등을 편집하였습니다.
로마의 대외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뒷모습이 있었다. 우선 전쟁에서 얻은 재화들과 토지들은 귀족과 유력자들이 독점하였다. 부유한 지배계급들은 타국민출신의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삼았다. 수많은 노예들을 이용해 정복지에 라티푼디움이라 불리는 대농장을 경영하고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 ‘라티푼디움’이란 광대한 토지를 뜻하는 라틴어이다. 광대한 토지에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농장경영이 대규모로 이루어 짐으로서 유력자들은 막대한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
노예제 농업경영은 사유지에서보다 공유지에서 더욱 왕성하게 발달하였다. 유력자들은 토지구입의 비용이 들지 않는 공유지를 선점하거나 국가로부터 임차를 함으로서 넓은 토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는 이론상으로는 기득권층이 확보한 공유지를 언제든 다시 회수할 수 있었지만, 그 세력범위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확장하게 된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지배계급들이 점유한 공유지를 국가가 몰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정작 로마의 영광이라는 구호아래 오랜 세월 전쟁을 위해 징집되었던 평민들은 자신들의 땅과 재산을 돌볼 수 없게 된다. 전쟁을 위해 복무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땅은 황폐해져 갔고 남아있던 그들의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재산을 팔아야 했다. 또한 로마에 굴복한 해외 각지에서의 대농장으로부터 값싼 곡물들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자영농들의 농산물들은 이것과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았다. 곡물경작 위주의 자급적 경영을 하던 소농들은 노예제 농업경영과의 경쟁에서 불리하였고, 토지를 확대하려는 유력자들에게 토지를 넘겨야 했다. 이런 식으로, '위대한 로마를 위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은 병사로 출전한 이탈리아 자영농의 생활을 파멸로 몰아넣었고 수많은 평민들이 토지를 잃고 무산계급으로 떨어져 도시로 밀려들었다
물론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있기는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다.
‘그라쿠스 형제’의 형에 해당되는 티베리스 샘프로니우스 그라쿠스는 귀족출신의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B.C 133년 호민관으로서 로마에 발생하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에 착수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대토지소유자의 토지 확장과 그로 인한 중소토지 소유자의 몰락을 막기 위해 대토지소유의 제한, 토지의 재분배를 정한 토지법안을 통과시켜 자작농을 보호하려 하였다. 그러나 토지문제로 원로원과 대립한 끝에 기득권적 보수파의 불만과 반대가 폭발하여 시가전이 벌어진 끝에 암살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그 뒤를 이어받아 동생인 가이우스 샘프로니우스 그라쿠스가 나서게 된다. 그는 B.C 132년과 B.C 123년 호민관의 지위를 획득하여,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개혁에 착수하였다. 이를 위해 안정된 값으로 평민에게 곡물을 공급하는 곡물법안, 로마 시민 식민시를 설치할 토지 법안, 군무에 대한 각종 보호규정을 정한 군사법안, 이탈리아 동맹시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시민권 법안, 부당소득 단속법정의 지배권을 기사(騎士)의 손에 맡기는 재판법안들을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원로원 세력을 밀려 실패하고, 무력으로 대항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함께하던 동지 3천명도 살해되는 비운을 맡게 된다. 이 두형제의 개혁이 실패하고 형제 모두 객사함으로서 로마는 그 모순을 그대로 불안하게 안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배회하는 야수조차도 은거할 동굴과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거늘, 이탈리아를 위해서 싸우고, 이탈리아를 위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은 공기와 햇빛을 누릴 뿐, 집도 안식처도 없이, 처자를 이끌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의 장군이 병사들을 내몰고, 그들이 싸우는 것은 적으로부터 묘소와 사당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외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집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제단을 가진 자 없으며,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조상이 고이 잠자는 묘소를 가진 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부귀와 사치를 위해서 싸우고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세계의 정복자라 불리워진다 해도 그들은 한 줌의 흙덩이조차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연설 중.
근대 정치행정학자 막스 베버는 이런 노예제에 대해 이렇게 말을 남겼다. “노예 보충은 노예를 계속 구매하는 데 의존한다. 고대의 노예제경영은 근대의 석탄 용광로가 석탄을 소비하듯 노예를 소모시킨다." 이 시대의 노예란 흡사 소모품 같은 존재로서 다루어졌다. 쉽게 말해, 고대의 노예제는 우리가 근대 산업 혁명의 연료로 소모한 석탄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즉 고대 노예제 사회는 석탄 대신에 노예라는 인간을 불태움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15 ; 체질 판별
의자에 앉는 자세로 체질 판별하는 방법 ; 정확하지는 않지만 , 쉽게 체질을 판별하는 방법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치 마시고 , 그냥 재미로 봐주기 바람니다.
태음인은 많은 것을 감추는 성질이 있고, 소음인은 조금 숨기는 습관이 있읍니다. 그리고 소양인은 드러내는 성질이 있고, 태양인은 완전히 공개하는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에 따라 의자에 앉는 자세가 다름니다. 보통 남자들은 사회 규범을 의식하므로 의자에 앉을 때 바른 자세로 앉으려는 경향이 있읍니다. 반면 여성은 규범에서 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다 많이 합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의자에 앉으면 체질에 따라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합니다.
태음인; 다리를 무릅까지 포개어 앉읍니다. 백인들이 이런 자세로 잘 있는데 이는 백인들에 태음인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오래된 사진인데, 샤론 스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있는 장면이 있지요. 허리 건강에는 안 좋은 자세입니다.
군인이 적성에 앚는 편이다.
소음인; 의자에 앉아서 발목 부분만 살짝 꼬고 앉읍니다. 때론 손을 허벅지 밑에 넣는 행동을 하는데, 이런 행동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분위기가 어색하거나 뭔가 조심스러울 때 하는 행동입니다. 소음인이 무룹을 꼬고 안는 경우에는 충분히 사람들과 어울렸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도 무언가를 성취하였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간혹 이런 자세를 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무룹이 아파서 오래는 안하지요.
소양인; 흔히 말하는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읍니다.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다부지게 앉아 있읍니다. 소양인은 경찰, 소방관, 개그맨 등이 적성에 맞읍니다. 유느님이라 불리며 ,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유재석도 소양인이다.
태양인; 보기에 어색할 정도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의자에 앉읍니다. 태양인은 워낙 비율이 적어 관찰하기 힘든데요, 이상할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앉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태양인 입니다. 잘 알려져 있는 사람으로 박정희 대통령, 개그우먼 박경림이 있읍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사람은 체질이라기 보다는 성격 문제겠지요.
체질을 판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사상의학을 개척하신 이제마 선생께서도 체질을 판별하기 위해 하루 정도 사람을 관찰하였다. 일반인이 체질을 판별하기는 어려우며, 잘못 판별할 수 있다. 다만 가까이 지내면서 잘 아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일반인도 체질을 파악할 수 있다. 앉는 자세에 대한 관찰은 가장 초보적인 체질 판별 방법입니다. 요즘은 전자기기를 활용하여 체질을 판별하기도 한다.
체질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체질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약간씩 차이가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태음인은 소유 위주의 사고를 하고 소음인이나 소양인은 존재 위주의 사고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태음인을 지방 ( 두뇌의 주성분 )
소음인을 근육
소양인을 뼈대에 비교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너무 깊은 생각에 빠져서 일종의 주화입마에 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 홍익 ] 이라는 단어 한마디만 가슴에 품어 주시기 바람니다.
태음인은 비율도 높은 편이고 여론을 형성하는 능력이 우수하다. 그래서 태음인의 사고 방식인 소유위주의 사고가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소유위주의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
혈액형별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도 유행했었다. 그런데 훈련을 많이한 사람은 체질이나 , 혈액형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욕심이 있어야 한다.
욕심은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과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에리히 프롬의 저서 [ 소유냐 존재냐 ] 라는 책이 있다.
필자는 느낀 바는 이책이 제시하는 교훈은 소유욕보다는 존재감에 대한 의욕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도 하는데 , 욕심은 사람을 지탱해주는 심지와 같은 것이다.
소유욕을 견제하고 , 존재감에 대한 욕심으로 대체해야 한다.
홍익인간 이념은 존재의 사고 방식을 강화해 준다.
16 ; 3법칙
돈과 행복의 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정, 회사 조직, 크게는 국가 등의 사회 단위에서 지도자들은 조직원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여러가지 행사를 기획을 한다. 이런 행사에서 우선은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형식으로 진행 했을 때는 효과가 좋은데, 어떤 때는 효과가 별로 좋지 않거나 심하면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때론 돈은 거의 투자 하지 않고, 단지 조직원들의 의사소통만 활성화 함으로써 사기가 올라가기도 한다.
사례 1 ; 한 업체에서 사원들의 근로 의욕을 증진시키기 위해 우수 사원을 뽑아 가족 동반 해외여행권을 상으로 주었다. 그런데 여기에 추천된 사원은 해외여행 대신 그냥 돈으로 받기를 희망하였다. 생활비도 빠듯한 형편에 해외여행은 오히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사례2 ; 각종 명절에 주는 선물 ; 사원들에게 2~3가지 밖에 안되는 선물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이상한 불평을 합니다. " 누가 뒤로 돈 먹은 거 아니냐 " 등, (참 어려워요.) 그렇다고 그냥 돈으로 지급하면 성의가 없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여러가지 선물과 현금에 가까운 상품권 등 다양한 선물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불만이 사라지고 만족한다. (물론 이정도로 관리하려면 정성과 돈이 많이 든다. ; 대기업이라야 이정도로 관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열역학 법칙에 비교하면
G = H -TS ;
자유 에너지 = 유형 에너지 - 온도 * 엔트로피 ; 에 비교한다.
만족의 정도 = 소비하는 재화의 가치 + ( 생활의 여유로운 정도 X 재화를 소비하는 자유로운 정도 )
이 공식 그대로를 활용하기 보다는 우변의 두번째 항목 (T*S) 은 심리적 요인이라 활용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법칙으로 인간의 생활을 완전하게 표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위 공식에서 심리 상태를 표시하는 ‘생활의 여유로운 정도’ 가 음의 부호가 되는 상황 (예로 들은 사례 1 같은 경우) 에서는, 재화를 소비하는 정도 만큼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때론 사람의 심보가 고약하여 좋은 여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온도에 대한 분석 ; 자연 법칙은 온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그대로 공식에 반영된다. 그러나 사람은 온도가 너무 높으면 불편하거나 위험하게 된다. 따라서 적정한 온도 일 때 즉 적정한 삶의 여유가 있을 때 만족도 최상을 유지하게 된다. (공식을 이에 맞도록 만드는 일은 단순하므로 생략합니다.)
물리학에서 중요한 원리중에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
운동량의 편차와 위치 편차를 곱한 값은 일정한 값 이상이 된다는 원리이다.
원자 주변을 도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는 공식이다.
이 공식은 전자나 빛 같이 매우 작은 대상에 적용되는 공식이다.
꽤 유명한 공식이니 , 이를 사회에 적합한 말로 바꾸어 봅니다.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확고하게 정하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불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선거철에 투표를 할 때 어떤 사람은 무조건 한쪽 편을 들어주지만,
어떤 사람은 어느쪽이 잘하는지 , 어느쪽이 나에게 좋은 정치를 하는 살펴본다.
몰표가 나오는 지역의 정치인은 유권자의 눈치를 보기 보다는 공천을 받는 일에 집중한다.
정치인이 국민을 어렵게 여기게 하려면 , 몰표를 주는 풍토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혹자는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여 , 남에게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정치적 소신을 강요하는 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며 ,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