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나의 삶
김승기
미혹, 혹은 극점
김승기
너무 닳고 빤한 행간
그 너덜너덜함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완행열차는 갑갑한 그 책갈피를 빠져나가곤 했다
차창에 비친 한 사내의 힘없는 얼굴을 지나
갈 곳도 없이 역을 빠져나가는 암담함을 지나
누가 부르는 듯 부르는 듯 빌어먹을 그리움을 지나
태종대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바다,
그 막막함을 단번에 찢어 놓는 시야
창백하고 긴 그림자가 그제야 부끄러워지고
얇은 지갑과 시간, 고만큼의 자유
골드문트는 대전역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항상 중얼거리곤 했다
"떠날 때는 고독하고 돌아올 때는 지쳐있다"*
*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 중에서.
떠날 때는 고독하고 돌아올 때는 지쳐 있던, 그 극점에서.
나의 젊은 날, 정확히 말하면 나의 대학시절은 대전역을 빼놓고선 얘기할 수가 없다. 나의 대학시절은 지독한 방황기였고, 대전역은 그 회색빛 일상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루, 블루. 일상은 지루하고 견딜 수 없으나 꾸역꾸역 채워야만 하는 빈 여백과 같았다. 나는 이방인이었고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참으로 버거웠다. 정히 힘들면 술에 의지해야 했고, 그것도 안 되면 밤차를 타고 도시를 탈출해야 했다.
이런 심리상태인데, 의과대학 생활은 시험과 시험의 연속이었다. 학교 수업은 도대체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상념에 사로잡혀있다 보면 교수님 강의 진도는 벌써 저 만큼 나가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강의실에 남아있는 것은 고역이었고, 슬며시 뒷문으로 탈출하여 동학사행 버스를 타곤 했다. 동학사 입구 공주집을 들려 소주와 빈대떡을 사서 가방 속에 욱여넣고, 남매탑을 오르곤 했는데, 그렇게 한 질곡의 나날이 한 오백 번은 될 것이다.
의과대학은 공부를 안 하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학점이 평균 D면 낙제고, 한 과목이라도 F여도 낙제다. 그리고 내리 2년 연속 낙제면 아주 퇴학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일 없으면 도서관에 가서 죽쳤다. 숭전대(지금 한밭대), 목원대, 충남대 도서관. 참 많이 갔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공부에 집중도 안 되었지만, 삶이 정히 못 참겠다 싶으면 당장 시험이 내일이라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의과대학을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런 심리상태에서 낙제 한 번 안 하고 정상적(?) 졸업한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의과대학 6년 동안 보통 1/4에서 1/3 정도의 학생들이 낙제를 한두 번씩 당한다.
어쨌든 나의 의과대학 6년은 계속 떠남과 돌아옴의 연속이었다. 대전역에서 밤 12시 15분 부산 발 야간 완행열차를 타면 아침 7시 즈음 부산역에 도착했다. 밤 열차에 혼자 오도카니 어두운 유리창엔 지칠 데로 지쳐있던 그 사내! 그리고 쓸쓸히 혼자 역을 빠져나와 약속이나 한 듯 습관처럼 태종대 자갈마당을 향하던 그 사내! 파도치는 넓은 바다를 보면 창백한 시간이 조금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자갈치 시장을 향하곤 했다.
지금은 자갈치 시장이 현대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골목골목 아지매들이 다라이를 놓고 생선을 파는 노점상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리 아프도록 걷다, 아나고에 소주 한 잔도 걸치고, 그 짓도 이제 시들해질 즈음, 내 귀에 자기 물건 사라며 악다구니를 쓰는 아지매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정신이 번쩍 들며, 나태하고 무력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져 허둥지둥 다시 부산역으로 다시 향했고, 올라오는 열차에서는 부랴부랴 밀린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얼마 못 가는 건전지 같은 삶에 그때그때 충전을 하며 이렇게 6년을 겨우 살았다, 아니 간신히 버텼다.
내가 제일 좋아한 소설이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인데, 일종의 성장소설로 아마도 다섯 번은 읽었을 것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번역이 된 것도 있는데, 이는 소설 속 두 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나는 두 주인공 중에 골드문트를 많이 닮아 있었고, 아니 그를 닮아갔다. 항상 떠돌며 자기를 찾아가는 그는, 그때의 내 우상이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얼굴과 쾌락의 얼굴은 그 모습이 닮아있다”, “떠날 때는 지쳐있고 돌아온 얼굴은 고독하다.” 골드문트가 독백하듯 내뱉던 글귀들인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런 긴 방황은 공중보건 의사를 마치고 인턴 때 즈음 되어서야 끝나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회색빛 시간 띠는 내 자아를 확립해가는 혹독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덤으로 얻은 것도 있다. 나를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하게 하여 전문의가 되게 했고, 지금도 적을 두고 공부를 해오고 있는 정신분석학회 훈련의 자연스러운 예비 트레이닝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잘은 못 쓰지만 나를 ‘시를 쓰는 사람’으로 조각하여 갔다.
지금도 대전을 가면 비록 많이 바뀌어 그때의 역사와 다르지만, 습관처럼 대전역과 길 건너 내 젊음이 비틀대던 술집 골목을 걸어본다. 옛날 대전역엔 광장 중앙에 시계탑이 있었다. 생이 너무 지루하고 남루하여 떠나고 싶은데 떠 날 수는 없을 때, 나는 역전 그 시계탑이나마 한 바퀴 돌고 와야 잠을 이루곤 했었다. 이글을 쓰고 있자니 코로나 정국이 좀 풀리면 대전역을 한번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앞에 소개한 시는 나의 젊은 날을 회상하며 정리한 60살이 다 되어 발표한 시고, 다른 시를 하나 여기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역에서 바다까지」는 내가 한참 방황할 때 습작했던 것으로 나중에 등단작이 되었고, 첫 시집에 수록된 것이다.
도시에서 떠밀린 사람들은/ 모두 밤(夜) 역으로 모여든다./ 백기가 되어 밤차에 몸을 싣고서 그들은 파도가 된다./ 종국에/ 어둠 속을 외쳐대는 소리가 되기도 하고/ 갯바위에 제 몸을 내리치는 분노가 되기도 하고/ 그래, 잠들지 못하는 바다는/ 어둠 속에서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또 하나/ 떠밀리는/ 저/ 파도./ 어느 역을 탈선해 온 발돋움인가?/ 밤차를 탄 사람은 사라져 버리고/ 긴 그림자만 파도 되어/ 갈매기 울음소리에 능지처참 당하고 있다
-「역驛에서 바다까지」전문
김승기 경기 화성 출생. 2003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