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조선일보의 토론마당에 글을 하나 올렸다. 토론마당이므로 내 나름대로의 생각에 대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토론의 내용은 이 정부에서 내세운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에 대한 검토이다. 내 생각은 작금의 여러 상황들을 보건데 구호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소 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나름대로 정리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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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토론마당이라는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올렸으므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읽었다. 나는 그 글을 특별히 몇몇 주변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한줄 평을 부탁했다. 토론마당을 잘 보지 않는 이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이기도 하고 또 가까운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읽었으나 반응은 그저 무덤덤했다. 내 글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저 무시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한 분이 카톡으로 소감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반대요.”
거기 까지는 이해가 간다. 찬성 일색일거라면 의견을 묻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테니까.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카톡으로 답장을 보냈다.
“굿- 감사. 좋은 주말. 혹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반대를 한다니 반대 의견을 혹시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글은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양면성을 보일 수 있으며 또는 그 이상의 얼마든지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극명한 사례가 오늘 아침 뉴스에 보도된 여가부장관의 이야기다. 장관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나무꾼을 선녀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성폭행범이라고 낙인찍고 있었다. 법조인의 해석은 좀 다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보더라도 동일한 글에 대해서도 여가부장관과 법조인의 해석이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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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구든 해석의 잘못을 깨달았다면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자기의 시각을 교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인식의 지평은 보다 넓어지는 것이다. 내가 글을 주변에 보내고 한줄 평을 부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다시 카톡이 그분의 글을 가지고 왔다.
“걍 조선일보에 써서 반대요. 한겨레에 쓰세요.”
어리둥절했다. 장난일까? 교사가 하는 말장난으로 보기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분은 이미 교사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분인데 말이다. 곰곰 생각하다 다시 카톡을 보냈다.
”글 내용은 상관이 없군. 매우 시비조 같기도 하고-
글을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접근하면 세상이 갈기갈기 찢어진답니다. 한동안 오마이 뉴스에도 글을 썼었지요.“
그리고는 더 이상 카톡이든 전화도 문자든 오지 않아 아직도 그분의 속내를 자세히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분의 그런 마음이 요즈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글은 이 정권을 폄훼하거나 지난 정권을 감싸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에 글을 실었기 때문에 싫단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교사가 할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글을 읽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아니면 내 글이 무시할 만큼 형편없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싫다는 직설처럼 내 글에 바로 직설을 날리면 될 일 아닌가.
아끼는 후배였던 만큼 엄청난 충격으로 아직도 머리가 아득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