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4장 강해 행24:10-16절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항상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였습니까?
너 커서 나중에 뭐가 될래? 너 꿈이 뭐냐?는 거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렸을 때 꿈이 뭐였습니까?
그때는 대부분이 부모님이 원하시는 답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과학자가 될래, 나는 대통령이 될래, 나는 장군이 될래.....
그래야 용돈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그랬습니다.
근데, 나는 길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가 될래.
나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가다가 될래 그러면?....
네, 꿀밤을 맞거나 밥을 굶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릴 때, 꾸었던 그 꿈대로 살고 계십니까?
그 꿈이 진짜 꿈이었습니까?
물론 그 꿈대로 사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과연 몇%나 될까요? 모르긴 해도 10%도 안될겁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릴적 꿈꾸었던 꿈이 바뀌었을 겁니다.
아직도 어릴적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릴 적 말고, 지금 여러분들이 꾸는 꿈은 뭡니까?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무슨 꿈이 있고, 무슨 꿈을 꾸며 사십니까?
잘사는 겁니까? 성공하는 겁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겁니까?
도대체 여러분들이 꾸는 꿈은 어떤 꿈입니까?
그런데, 그 꿈이 진짜가 맞습니까?
제가 장담하건데, 어릴 때 꾸었던 꿈이나,
지금 여러분들이 가진 그 꿈은 진짜 꿈이 아닙니다. 왠지 아십니까?
항상 바뀔 수 있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늘 바뀌어 왔고, 바뀌었습니다.
지나보면, 우리가 소망하고 꿈꾸는 것들은 늘 바뀝니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토요무료급식에 오시는 연세가 7-80이 넘어신 어르신들에게 꿈이 뭡니까?
물어봅니다.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시는지 아십니까?
성공하는거? 돈많이 버는거? 고래등 같은 넓은 집에 사는거?.....천만에 말씀입니다.
대부분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거....
그래서 자식에게 짐이 안되고 그냥 잠자듯이 잘 죽는게 소원이고 꿈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연세에, 대궐같은 집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고급승용차? 돈이 많은거?.....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 연세에, 그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아프지만 않고 건강하게만 살다가 그냥 편안하게 죽는게 그 연세에 꾸는 꿈입니다.
제가 가끔 병들어 계신 우리 장인어른을 보면, 참 안쓰럽기도 하고
지금 사시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꿈이 뭡니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가고 싶은 곳도 없으실 겁니다.
그 몸으로 화장실 가는 것 조차도 혼자서 못가시는 그 상황에서
무슨 가고 싶은 곳이 있겠습니까?
설혹 가고 싶은 곳이 계셔도 갈 소망이 있겠습니까?
드시고 싶은게 있어도 맘껏 드실 수 없습니다. 겨우 죽으로만 연명하고 계십니다.
그저 집 아니면 병상에서 그저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는 삶에
무슨 이 땅에서의 성공이, 출세가 무슨 소용이 있고,
돈 많이 버는게 무슨 소망이 되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이 땅에 것에 무슨 소망을 가지겠습니까?
그 연세가 되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이 되면,
그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걸 알게 됩니다.
그저, 늙어 아파서 자식들에게 짐이 안되는거.
대부분 그게 꿈이라고 이야기 할 겁니다.
뭐, 2-30대, 4-50대만 해도 꿈 꾸는게 있죠.
좋은 직장, 돈 많이 버는거, 출세하고, 남에게 자랑은 아니지만
뒤지지 않게 사는거....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꿈 꿉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거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니고, 다 바뀌는거 아시죠?
여러분들도 7-80세가 되어 보세요. 무슨 꿈을 꾸겠습니까? 무슨 꿈이 있겠습니까?
그 연세가 되면 세상에서 꿈꾸던거 아무것도 아니다라는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50세를 지천명이라 했습니다.
지천명이 뭡니까?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 했습니다.
그 하늘의 뜻이 무엇입니까?
세상 다 부질없는거다....세상을 아는 나이라는 겁니다.
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꿈이 바뀔까요?
꿈이 안 이루어져서 그럴 수도 있고, 꿈도 못 꿀 상황이 돼서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왜 우리가 살면서 꾸는 꿈이 바뀌는가?
우리가 꾸는 세상적인 꿈은, 진짜 꿈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에서 꾸는 꿈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이고, 금방 끝나기 때문에 그래요.
설사, 자기가 이루고 싶은걸 이룬다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이 8-90이 돼서 보면, 그게 부질 없는 꿈이었다는걸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젊은 시절 잘 나가고, 소위 행세 꽤나하며 인생 잘나가는 때가 있어도 잠시입니다.
나이 들어 요양원에 들어가 보세요. 거기서 똥귀저기 차고 병상에 누워보면
세상 자랑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절로 알게 됩니다.
여러분, 8-90이 돼서 내일이 보장 없는 인생을 사는 나이가 되어 보세요.
꿈이 있겠어요? 젊어서 꾸었던 꿈이 뭔 소용입니까?
설사 그 꿈을 이루었다해도, 8-90세가 되어 보세요. 꿈을 이루었다고 행복할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왭니까?
우리 인생에 있어서의 이 땅에 소망하는 모든 것은 헛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꿈이라는게 살아가는데 있어 동력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결코 우리의 참 소망이고, 목적은 될 수 없습니다.
왭니까? 이 땅에서 소망하는 것은 늘 변하기 때문이고 헛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화려하게 살았다고 하는 솔로몬왕이 잠언1:2절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그렇게 탄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소망이 뭐가 있을까?...
이 일에 대해 사도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 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소망이시다....그렇게 말합니다.
죽은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소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전도자의 삶을 살면서
늘 했던 설교의 핵심이고, 복음선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중요합니다. 왭니까?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부활의 소망을 가는 곳 마다 전하고 다닙니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가 뭡니까?
예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다.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 부활의 소망을 주셨으니, 주 예수를 믿어라는거 아닙니까?
왜요? 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중요합니까?
유한한 이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 영생이
있다는걸 증명하신 사건이 부활사건이거든요.
유한 세계인 이 땅에서는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이들거나 병들어 죽으면 끝이예요. 영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늘 변해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며, 변하지 않는 천국이기 때문에
거기에만 소망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롬8:24절 뭐라고 그럽니까?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무슨 얘깁니까?
우리가 보고 사는 이 땅의 것은 소망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소망이 뭐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바라는 꿈이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있을거 같습니까?
우리가 꿈꾸는 이 땅에서의 소망은
보람이 있거나, 의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꿈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꿈과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고,
그것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한다고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고자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도자의 삶을 살았던 겁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부활의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세상적인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왜, 우리가 교회를 다녀야 하고,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하고
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궁극적 소망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궁극적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영생에 대한 소망이 진정한 소망이며
우리가 믿는 믿음의 이유인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비록 옥에서 자유를 박탈당하여 매인 몸이지만
그는 담대하게 외치는 목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망이 없는 감옥에서 조차도 두려움이 없이 당당하게 이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참 소망은 부활에 있고, 영생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소망 가운데 살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의 소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후6:10절에서 말씀하시길.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땅의 것으로 부요한 자가 아니라,
주님으로 인하여 부활을 통해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나라의 자녀로서 부요한 자로 사시는 두란노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