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正見)’』에 이어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중도의 척도는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正思)’도 자기중심이 되면 남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생각하는 것은, 구상화(具象化)되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마음을 갖고 남과 접촉하면,
남도 또한 그것에 반응해 올 것이고,
음식도, 식기도, 집도, 옷도, 책상도, 다리(橋)도, 자동차도,
모두가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발명된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한다는 것이 자기 본위로 흐르면,
사람과 사람과의 조화를 깨뜨리고, 시비의 씨를 뿌리게 된다.
‘ 『말(正語)』 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롱박에서 망아지가 나오다...'(=뜻밖의 일이 사실로서 실현됨.)
라고 하는 옛사람의 경험적인 교훈은, 일면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상대를 깔보는 말, 야비한 말을 쓰고 있으면,
어느 틈에 그 말에 자신의 마음까지 물들어,
상대의 마음을 자극해서, 싸움의 원인을 만든다.
말은 언혼(言魂)이며, 살아 있는 파동(波動)이다.
겸허한 말, 자비로운 말, 친절한 말, 용기있는 말, 배려하는 말 등
올바르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要件)의 하나이다.
고타마는, 밝음과 어둠의 마음에 대해서, 단숨에 여기까지 추구해 왔다.
그리고 정도(正道)에 들어가는 세 가지 척도를 발견하고,
정도의 척도는, 이것뿐일까. 하고 생각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더욱 생각의 깊이를 더해갔다.
생각하니까 스르르 떠올랐다.
이상의 세 가지 이외에
『일』 『생활』 『정진(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이라는 다섯 가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이전까지의 고타마는,
한 가지 문제를 풀어 가는데 며칠이고, 몇 개월이고 걸렸다.
하지만, 어젯밤 이후의 고타마는,
생각의 시점을 바꾸어 한 문제를 추궁하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 마치 샘물처럼 솟아나서,
불명한 점이 환하게 풀리는 것이었다.
지혜의 주머니가, 자신의 육체 안의 어딘가에 있어서
그 주머니로부터, 술술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도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이어 『‘정업(正業)’』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일’』은 자신의 생활을 돕는 동시에 사람들의 생활에 윤기를 더해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유쾌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의 은혜와, 사람들의 협력의 덕택이다.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은,
먼저 감사의 마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은 보은이라는 보시(布施)의 행위로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지상의 조화는
이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된다.
감사와 보은을 축으로 삼고
용기와 노력, 지혜가 삼위일체로 되어 작용할 때,
이 지상은 보다 한층 풍요함을 더해 갈 것이다.
『‘올바른 생활(正命)’』이란, 인생의 목적과 의의를 알고 있는 생활이다.
인간의 생활은, 대자연이 조화되어 있듯이, 조화돼 있어야 한다.
서로 돕고, 서로 보충하며, 웃음이 있는 생활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의 조화를 만들어 간다.
자신의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수정하여 가는 것이다.
자신의 인격이 원만해지면, 주위도 원만해질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엄한 태도가 없으면,
올바른 생활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道)에 정진(精進)'』 이란,
부모 자식, 형제자매, 친구, 이웃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바람직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대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큰 자각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대자연도 없다.
자기 이외의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동시에 자기 이외의 모든 존재는 자신을 인식하기 위한 재료이며
혼의 향상에 불가결(不可訣)한 것이다.
부모 자식, 형제, 친구, 이웃 등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영혼을 올바르게 닦아나갈 수 있는 현상계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 준 자비인 것이다.
도(道)에의 정진은, 인간의 특권이며, 신의 자비이다.
동물에는 보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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