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이웃나라의 테우다바 바스투의 성주 스크라 푸타의 누이동생으로,
‘마야‘라는 왕녀였습니다만, 고타마 싯타르타를 낳고,
그 후의 경과가 나빠져, 일주일 만에 타계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여동생인 파쟈파티가 후처로써 오고,
싯다르타 왕자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으로 길러 주었습니다만,
얼마 안 지나, 의동생인 난다가 태어나고,
그 관계를 안 무렵부터,
싯다르타는 스스로 고독에 빠지고, 고뇌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찬다카의 탕크와라고 하는 말이랑 코끼리를 타고,
성 밖을 산보했을 때,
슈드라의 불쌍한 생활을 보고,
성내의 우아한 생활과 비교하고,
거기에서 사회의 모순을 느껴, 마음 아파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인가? 싯다르타는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내에 있어도,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세상,
소국의 비애 등, 시야가 넓어짐과 동시에,
싯다르타의 인생에 대한 고뇌와 의문은,
깊고 커져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3살 때부터, 바라몬 학자로부터 베다랑 우파니샤드 교전을 배우고 있었고,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지혜가,
도리어 그 고뇌를 보다 깊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무술도 무사로써 해야만 하는 길로써, 배우고 있었지만,
얼마 안 되어 무정(無情)을 느끼고,
싯다르타는 혼자 생각에 잠기는 날이 많아져 갔던 것입니다.
17살의 해였습니다.
부왕이랑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의모의 오빠, 스크라 풋타 라쟌의 딸. 아쇼다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부왕의 후계자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그것도 마음의 구원은 되지 않고,
무희 등과의 놀이로 우울함을 없애려고 하는 노력도 허사가 되어
싯다르타는 번민의 날들을 보내고,
마침내 29 살의 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머니는 왜 돌아가셨는가.
적어도 어머니가 살아 있었더라면,
의제와의 상속문제로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 것을......
왜 같은 인간끼리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 죽이기를 하는 것일까.
마음에 평온함이 없는 성내의 생활.
같은 인간으로, 왜 가혹한 계급제도, 빈부의 차별이 있는가.
신(神)이 있다면, 왜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늙은 사람들의 불쌍한 모습.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
이와 같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싯타르타는,
출가의 기회를 잡으려고 항상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 마침내 출가의 길로 - 길은 아득히 ]
그러나 카피라의 성문은,
싯다르타의 출가를 우려하는 왕의 명령에 의해.
단단히 닫히게 되고, 외출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계 상태가 되어,
좀처럼 출성의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야쇼다라와 결혼해서 12년,
그 밖에도 싯다르타를 초조하게 하는 것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임신을 했다..라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층 출가로의 길은 멀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쇼다라가,
‘이름을 어떻게 할까요?’
라고 상담해도 싯타르타는,
‘그런 것은 부왕과 상담하면 된다’
라고 매우 거칠게 답했던 것입니다.
자식은 부부의 연결고리'라고 생각했던 야쇼다라의 꿈을,
무정하게 부수었던 것입니다. 부왕이,
‘제 자식의 이름 정도는 네가 지어라’
라고 말하자, 싯다르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라후라-라고 지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합니다.
라후라ㅡ란, 장해물이라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야쇼다라는 그런 무기력한 남편에게,
슬픔을 참고, 출가를 막으려고,
항상 마음속으로 신(神)에게 염원을 했던 것입니다.
겨울의 저택, 여름의 저택에 있는 여자들도,
싯다르타의 항상 침울해져 있는 마음을 밝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로했던 것이었습니다만
싯다르타의, 오랜 세월 동안의 고뇌와 목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달이 뜬, 깊은 밤.
마침내 싯다르타는 성안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고요한 것을 확인하고, 찬다카를 위협해,
서문을 열게 하고, 탕크와를 타고 출성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대로,
베사리 교외에 있는 아누프리야의 숲을 향해 말을 나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새벽 녁. 싯다르타는 찬다카에게 소지품을 가지게 하고 귀성하게 했습니다.
찬다카는 귀성해서, 이 일을 왕들에게 알렸습니다만,
책임을 추궁당하고 사이에 끼어 몹시 곤란을 겪었던 것입니다.
싯타르타는 신앙으로의 길.
첫걸음부터, 커다란 의문에 부딪혀 버렸습니다.
그것은, 도중의 숲에서,
웃크바라고 하는 사로몬의 문을 두드려,
입문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요기 스트라를 기본으로 한 육체적 고행을 보고, 먼저 그렇게 느꼈던 것입니다.
피부를 포도색으로 변색될 정도까지 장미가시 위에 누워 수행하고 있는 제자.
짐승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태우고 있는 불 옆에서 피부를 태우며,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가 열심히 하고 있는 자.
흙 속에 신체를 묻고, 목만 내놓고 그 부자유를 참고 있는 자.
물구나무서기를 어느 정도 긴 시간 할 수 있는가 열심히 하고 있는 자.
별난 수행승 중에는,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고, 인내심을 기르고 있는 자.
싯다르타는, 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가.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으로는, 자아의 온상이 아닌가.
'나는 이 정도의 혹독한 수행은 견딜 수 있다는 의식이
그들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것뿐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싯타르타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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