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0:23-33절 교회의 덕을 세우는 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불신가정의 제사상에 올려졌던 음식물을 먹어도 되냐 안되냐 하는 의문과 논쟁이 종종 있었지만, 옛 고린도교회에서도 이미 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본문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하는 문제에 관한 논쟁에 사도 바울이 종지부를 찍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사도 바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본문 25절에서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했듯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시장에서 직접 사다 먹을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본문 26절에서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하듯이 그 고기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 앞서 고전8:4에서는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했습니다. 즉 우상에게 바쳐졌다 하지만 우상이란 것, 자체가 헛것이고 하나님 외에 신이란 도대체 없기 때문에 그 고기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본문 28절에서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했듯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거나 시험에 들 사람이 있을 때에는 안 먹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9-30절에서 말하듯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 거리낌 없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속한 일이고 그래서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남들로부터 이러쿵 저러쿵 하는 판단과 비방을 받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4:16에서도 음식문제와 관련해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 속에서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하는 외형상의 문제의 속에 들어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행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먼저 본문 23절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문제가 되었던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 자유가 최고의 가치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행위가 유익하고 덕이 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하냐 불가하냐", 즉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해서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행사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유익과 건덕을 추구함이라는 사도 바울의 첫 번째 가르침을 봅니다.
그리고 각자가 추구해야 할 그 유익이 자기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말하는 것임을 사도 바울은 본문 24절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를 배려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나의 자유를 확보하는 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사도 바울의 두 번째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 기꺼이 제약받을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5절에서는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했고, 21절에서는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했습니다. 또 롬15:1-2에서는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사고는 자유보다는 유익, 나의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말하는 데에 머물지 않습니다. 본문 33절에서 그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 권면 가운데서 우리는 우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라는 말과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라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소수의 무리나 특정 집단의 유익이 아니라 모든 사람, 가능한 많은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전체의 건덕을 무엇보다도 가치있게 여기는 사도 바울의 세 번째 가르침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는 즉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한 본문 33절에서 또 주목할 것은 "말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목적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된 동기요 목적이 되어야 하지 한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나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 앞서서 이미 9장에서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그의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먼저 4절에서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반문한 후, 12절에서는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했고, 19절에서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 고자 함이라" 했으며, 22절에서는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했습니다.
본문 32절은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궁극적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궁극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자유보다는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권리행사보다는 많은 사람의 구원을 더 중요시할 때 자연히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 우리들의 모든 언행이 보다 더 가치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르침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남의 유익을 위해서, 특히 교회의 덕을 위해서,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자신의 권리행사를 유보할 수 있는 자유함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고전6:12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자기의 자유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 자유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전서 8장 9절과 13절에서는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안 먹어서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특징의 하나가 자유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그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을 위하여 행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이익과 즐거움만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할 때 이미 자유하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며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상태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의 원리는 비단 음식물에 관계된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언어 행실에 관계된 것으로.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실제 행동을 잘못해서 일어나는 문제보다 말을 잘못해서 생기는 말썽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덕스럽고 은혜가 넘치며 평안하기 위해 성도들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관한 부정적인 얘기는 들으려 하지 말고, 어쩔 수 없이 들었을때에는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기억되는 것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끔 자기하고 아무 관계도 없고, 확실하지도 않으며, 소문이 나면 교회에 덕될 것 하나도 없고, 공개적으로 문제화해도 해결될 수도 없는 일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니고, 자기 상상에 따라 침소봉대해서는 사건 아닌 사건을 만들며, 그 일로 부당하게 상처받고 인격과 명예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사람들 생각은 하지도 않으며 애매한 사람을 죄인 만들고 교회생활뿐 아니라 신앙생활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해결해야 교회가 평안하고 덕스러울 것을 자기의 종교생활로 인해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문제의 해결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제일 좋아하고 박수칠 존재는 사탄밖에 없습니다. 고전8:1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뭔가 알고 있고 말할 자유와 권리가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남에게 유익이 없고 교회에 덕이 안되며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무관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일이면 영원히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회를 바로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를 아끼는 사람입니다.
벧전4:7-8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니 남의 허물을 들추며 교회의 덕을 무너뜨리려서는 안되며. 교회에 걱정스러운 일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때는 먼저 기도하며 함께 정신차리고 근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매사에 교회의 덕을 먼저 생각하며 우리의 언행을 다스려 나가는 슬기롭고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수영목사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