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전씨 관향비(龍宮全氏 貫鄕碑)를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에 2023년 8월에 세웠다.
龍宮全氏 貫鄉碑
龍宮全氏의 始祖(시조) 諱(휘) 全邦淑(전방숙) 都始祖는 百濟의 開國 功臣 諱 全聶(전섭)의 28世孫이며 高麗忠烈王 門下侍中 平章事 龍城府院君에 皮封(피봉) 諡號(시호) 文政인데 龍宮全氏의 分貫 上祖로 하고 龍宮을 本貫으로 하여 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아들 諱 正敏(정민)은 文科 中書舍人이요 三重大匡(삼중대광) 兼(겸) 太師하고 諡號는 莊節公(장절공)이다. 孫 諱 忠敬 文科 典法摠郞(전법총랑) 侍中平章事요 諡號는 文敬公 曾孫 諱 大年은 文科 中正大夫 版圖摠郎(판도총랑) 侍中平章事다 玄孫 諱 璡(진)은 文科로 正順大夫 鷹揚軍(응양군) 民部典書며 夫人은 尚州金氏다. 위로 다섯 분은 文科 出身으로 清宦(청환)으로 顯達(현당)한 先祖들입니다.
公의 五世孫 諱는 元發(원발) 號(호)는 菊坡(국파)요 夫人은 尚州朴氏니 諱 珽璋(정장)의 따님이요 先生과 더불어 同穴(동혈)에 安葬(안장)하다. 諱 元發은 一男二女를 두시니 아들 僩(한)은 文科 中正大夫 司僕判事(사복판사)요 諱 僩이 七男五女를 두시니 長에 該(해)요 次에 直은 内瞻寺(내첨사) 判事요 强은 少尹이고 謹(근)은 文科 軍事요 敬은 縣監(현감)이고 慄이요 寶積이다.
諱 元發은 元朝에서 賢良한 선비를 招賓(초빈)하였을 때에 賢良貢擧(현량공거) 及第하여 忠肅玉(충숙왕)二年 乙卯(1315年) 元朝에 入國하여 또 元朝에서 壯元(장원)하니 벼슬이 榮綠大夫(영록대부) 兵部尙書(병부상서) 兼 集賢殿太學士(집현전태학사)에 이르렀다. 그 후 元朝에서 致仕歸國(치사귀국) 할 무렵에 元帝가 公에게 所願을 下問할 때에 오직 高麗의 歲貢이 過多함을 아뢰고 이를 蕩滅(탕감)하여 달라고 歎願(탄원)하니 元帝는 이에 感動하여 金 銀 駿馬 絹帛 등의 歲貢을 大幅 減額하게 하고 公服一襲을 下賜(하사)하니 公께서는 公服이 臣에게 不當하다고 辭讓(사양)하시다 恭愍王 三年(1354年) 十月에 元나라에서의 在任 三十九年만에 歸國하게 되니 恭愍王이 元朝에서 在任중 過多한 歲貢을 減除(감제)케한 勳業(훈업)을 嘉賞(가상)하여 선생이 竺山府院君 의 封號(봉호)를 받음에 축산으로 貫鄉(관향)을 奉하고 省火川一區를 下賜하니 鑑護故事(감호고사)처럼 敬老케 하였다. (竺山은 곧 龍宮의 別號다.)
諱는 元發이요 號는 菊城시니 生沒(생몰) 年度 未詳이다. 出生地 縣西(聞慶市 永順面 達地里 110番地)시다. 公께서는 晚年(만년)을 休老할 곳으로 省火川(지금 소천) 東쪽 언덕에 亭子를 세우고 宋나라 때 周濂溪(주염계)의 愛蓮詞(애연사)에 그 향이 清而 遠之하다는 것과 같이 清遠亭(청원정)이라 扁額하고 清遠亭에 걸어져 있는 扁額(편액)은 退陶 李滉(퇴도 이황) 先生이 菊坡 全元發先生을 攢揚(찬양)한 親筆 二首가 있다. (清遠亭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33호 西紀 2008年 2月 18日 指定) 清遠亭 境内 蓮塘池(연당지)가 대홍수로 埋沒(매물)되었다 西記 2021年度 錦川生態河川 復元事業으로 環境部(환경부)에서 蓮塘池 復元(복원)하다.
歷代 우리나라에서 推薦(추천)받아 元에 들어간 분들이 많았지만, 文章이나 官爵(관작)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 나라의 어려운 弊端(폐단)을 바로 잡아 힘을 쓴 분은 거의 없다. 선생은 一身의 安寧을 폐리와 같이 버리고 忠國愛民하신 사심 없는 愛國心의 발로야말로 우리 겨레 萬代의 龜鑑(귀감)이 아닐 수없다. 우리나라가 世界적인 碩學(석학) 退陶 李先生도 此爺(차야)는 間世 名賢(명현)이니 立嗣崇報함이 可하다 하였으니 道内 士林의 公論으로 壬申(1692年) 十二月 에 士林의 追慕(추모)하는 與望(여망)에 따라 崇德詞와 典敎堂을 刱建(창건)하니 곧 蘇川書院이다 蘇川書院 수립(竪立) 九年 뒤 肅宗 27年 辛巳(1701年) 八月에 賜額(사액) 書院으로 내려졌으며 高宗 八年 辛未(1871年) 國禁으로 毁撤(훼철)하였다가 1968年 戊申에 士林의 公論과 後孫들이 重建하여 每年 陰曆 三月 中丁에 享祀하다.
公의 遺筆이 忠惠王 復後 三年 辛巳(1341年)에 報恩 俗離山 法住寺 境内 珊瑚殿(산호전) 西쪽 蒼岩壁(창암벽)에 磨崖碑(마애비)로 慈浄国尊普明塔碑文은 公의 筆跡이니 直寶文關 奉常大夫 全元發 本教書라고 至今도 鮮明하게 남아있다(忠清北道 有形文化財 79호) 이번에 門中의 뜻을 모아 龍宮全氏의 貫鄕碑를 높이 세우니 千秋萬代 永歳無窮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