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자유무역협정, FTA 타결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의 양대산맥 EU 및 미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수출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던 우리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미 남미, 아시아 등 여러 나라와 FTA를 맺은 우리나라에 비해 중국과 일본은 크게 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세기말 세계 경제는 지역간 경제블록이 대세로 자리 잡는 듯하여 우리나라의 수출이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다행스럽게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빠른 FTA 타결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노인병에 걸린 일본경제나 무작정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중국은 우리나라의 FTA 결과를 보면서 부러움을 가질 듯하다.
FTA는 관세 등 무역장벽을 완화하여 쌍방간 재화와 용역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협정이다. 물론 모든 무역장벽을 없애는 건 아니고 국가적으로 보호해야할 일부 산업의 규제는 존속된다. 이 부분은 협상에 달려 있는데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측의 자동차 등 공산품의 수입제한을 완화하는데 주력했고 미국은 우리나라의 쌀과 쇠고기 시장 문턱을 낮추는데 주력했다.
쌍방간 시장을 개방하면 산업에 따라 득실이 다르다. 국제 경쟁력이 지나치게 약한 시장은 외국에 내주게 되어 산업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 이는 해당 산업 종사자들이 절망상태에 놓이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쌀이다. 우리나라가 FTA 협상에서 다른 분야는 내주어도 쌀 수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FTA 논란은 조선왕조말 쇄국논란과 닮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난다. 19세기말은 제국주의 팽창시대였고 첫번째 수단이 개항이었다. 항구를 개방하여 출입국을 자유롭게 하는 개항은 과거 식민화의 시작 아니었던가. 즉 다음과 같이 예외없이,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개항
선교사 입국 및 상업 활동
상인과 자국민 보호구실의 소규모 군대 진출
정치 등 국정간섭 확대
갖가지 일을 빌미로 대규모 침략
경제적 수탈 및 식민지화
조선말 조정이 이런 수순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쇄국정책을 시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조선왕조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쇄국정책은, 조선왕조 패망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21세기초의 화두는 FTA이다. 과거 무력에 의한 식민지 건설에서 무역에 의한 국부축적으로 바뀌었는데 그 첨병이 FTA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력침략의 교두보는 개항이었지만 국가 경제력 확장의 교두보는 FTA이다. FTA를 기반으로 수출입을 통해 국가적 역량을 키우는 시대인 것이다.
FTA를 맺을 때마다 여당과 야당의 논평을 보면 극단적이다. 여당은 당장 국민들에게 떼돈이라도 안겨주는 것처럼 생색내지만 야당은 국가적 자존심도 없이 시장을 개방하는 매국적 행위라고 비난한다. 그런 작태는 여야가 바뀌어도 똑같았을 것이다. 해마다 국가예산을 두고 여야가 꼴불견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여야의 위치가 반대였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FTA의 피해를 입는 우리 산업에 대한 정책적 고려이다. 피해를 우려하여 FTA를 반대하는 것은 과거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이유와 다를 바 없다. 취약 산업 종사자를 다른 산업으로 유도하는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고, 그 산업의 장점을 살려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행복을 꾀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말 조선왕조가 쇄국정책을 취하지 않고 조기에 개방했다면 조선의 운명이 더 나아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도리어 더 빨리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일제 36년이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당시 조선을 노리던 열강에게 먹혀 더 오랜 기간 식민지 처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전통은 불행히도 무책임한 태도이다. “너네 잘못을 덮어줄 테니 우리 잘못도 좀 봐주라”는 식의 'barter system', 거래에 의한 행동을 일삼았다. 민생보다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기심을 앞세워 서로 봐주기식의 처리가 많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쇄국정책도 민생보다는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정책이었듯이, FTA도 ‘경제를 내세운 정권차원의 술수’가 될 수도 있다.
당국이 FTA 실적만 자랑하다가 저들의 시장에서 우리가 얻는 것보다, 저들이 훨씬 많은 이익을 가져가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먼 훗날 “21세기초 섣부른 FTA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려던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불행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