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리뷰] 유정재 안무의 '화양연화'…꽃처럼 아름답던 시절에 대한 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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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8일(토), 29(일) 오후 5시, M극장 ‘이슈와 포커스’ 밀물컬렉션Ⅱ에 초대된 유정재(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겸임교수)안무의 ‘화양연화’는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절제미학을 보여준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2000)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현대무용이다. 혼자 추는 춤 '화양연화' 역시 과감한 생략과 담백한 상징으로 '촌철살인'의 기교로 관객을 압도한다.
안무가 유정재는 '화양연화'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한다. 배경막으로 사용된 서정의 공간 벽, 춤의 숲이다. 춤꾼에게 연애란 불륜과 같은 긴장감이 이는 한정된 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연습과 공연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남은 이별을 부르기 십상이다. 아름다운 이별에 걸린 유정재의 '내 젊은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야기가 있는 유정재 스타일의 춤으로 쓴 담시(譚詩)는 강한 임팩트를 주며 현대무용의 특질을 살린다. 세월과 운명에 걸친 모래시계, 벽을 타고 여인이 서서히 걸어 나오면서 벽에 기댄 모습의 움직임은 회상을 나타낸다. 모래는 운명, 돌아가지 못하는 인생을 상징한다. 안무가 겸 춤 연기자 유정재의 의상은 정갈한 치파오 차림의 첸(장만옥)을 연상시킨다.
'화양연화'의 주제음악 'Yumeji's theme, 유메지가 꿈꾼 것은, 2000'이 낮게 깔린다. 첼로는 여심을 아리게 훑어간다. 현을 탄 춤은 처음부터 관객을 몰입시키는데 성공한다. 챙이 긴 빨간 모자, 왼쪽 검정, 오른쪽 빨강의 하이힐, 모자와 구두는 여성의 신비로움을 나타낸다. 모자로 얼굴을 살짝 가린 모습은 만춘을 지난 우수에 찬 여인을 보여준다. 여인의 초가을은 쓸쓸함을 동반한다.
유정재는 추억의 선율이 담긴 음악을 불러오고, 영화 속의 인상을 이야기 한다. 다시는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 갈 수 없기에, 청춘은 아름답다. 유정재는 멜라니 샤프카의 'The Saddest Thing, 세상에서 가장 슬픈, 1973'으로 슬픔을 가중시킨다. 침묵의 이별을 고하는 것, 눈물 흘릴 때가 왔지만 소리 내어 울거나, 몸부림치며 울지 않겠다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음악과 춤이 절묘하게 매치된 '화양연화'는 색감을 최대한으로 부각시키고, 간결하게 강하게 각인된 이미지들이 주제와 연결되어 있어서 여인의 비밀과 사연을 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끔 만든다. 슬픔의 퇴적층은 기쁨을 낳고, 성숙한 자신을 보여주는 대범을 동반한다. 행복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안무가는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고마움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화양연화'의 마지막 2분은 빗소리가 쓰임 된다. '아름다운 추억에 담긴 안무가'의 눈물의 상징이다. 말레이시아 국적의 대만감독 차이밍량의 영화 '애정만세'(Vive L'Amour, 1994)에서 주인공 메이 린(양귀매)이 길게 울음을 터뜨리는 롱 테이크 장면이 연상된다. 유정재 안무의 '화양연화'는 이미지 컷, 영화적 컷 백, 미장센, 시각적 비주얼로 영화를 오마주한다.
흔한 소재로 자신의 감성을 가다듬고, 내재적 슬픔을 끌어 올려 승화시키고, 작품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시키고, 맛깔난 음식으로 조리한 '화양연화'는 노련한 요리사의 저력을 보는 것 같다. 장미 무늬를 가슴 곳곳에 달고, 유연하게, 펼쳐나간 여인 유정재도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한글'춤 시리즈, '목화꽃 희게 피는 날', '기우는 가도', 성남국제무용제 전야제 등등의 춤에서 보았던 춤과는 다른 '화양연화'가 숙성의 춤으로 보이다니 말이다.
유정재의 춤과 안무작들은 늘 간결하고 깔끔하다. 그녀는 명징한 가운데 자신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촘촘히 들어있는 안무작들로 군더더기 수사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작품들의 너스레를 단칼에 잠재우고 차단해 왔다. 현대무용에서 유정재식 창작법은 현대무용 학도들이 자신의 열정적 에너지로 우수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교본으로 기능한다.
아직 아름다운 시절이다. 아름다움은 모습이 여럿이다. 그녀의 작품을 가끔 보고 싶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