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주김씨 계림군파 대종회는 조선조(朝鮮朝) 개국공신(開國功臣) 좌찬성 봉 계림군(左贊成 封 雞林君) 시호(詩號) 재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중 성년자로 이루어진 대문중으로서 六百十여년의 종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대왕의 국구(國舅)이신 김주신(金柱臣:계림군11세손)이 1694년에 시작한 이래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78년간 여러 지파종중대표(支派宗中代表)들과 함께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사략(東國史略) 동사찬요(東史簒要) 려사제강(麗史提綱) 당서(唐書) 국조보감(國朝寶鑑) 여지승람(輿地勝覽) 금강산 마하연사적(金剛山 摩訶衍事蹟)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등 우리 조상에 관한 기록이 있는 믿을만한 모든 역사서를 수집하여 검토하고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한 끝에 1772년에 최초 대동보가 편찬되었습니다.
족보에 관한 연구 문헌들을 보면 조선조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엄격하였던 신분제도가 해이해진 틈을타서 가짜 양반이 횡행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혈족인양 행세하는 지경에 이르러 족보의 편찬이 필요하게 되어 十六세기 이후 각 씨쪽들이 다투어 족보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 바, 위 1772년도의 최초 대동보 역시 위와 같은 시대변화를 반영한 면도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이어서 1842년의 임인대동보(壬寅大同譜) 1898년의 무술대동보(戊戌大同譜) 1924년의 갑자대동보(甲子大同譜) 1957년의 정유대동보(丁酉大同譜) 1991년의 신미대동보(辛未大同譜)가 편찬된 바 있습니다.
경주김씨 제 종파의 올바른 계보 정립에 힘을 모으고 있는 경주김씨 대종친회에서 2012년 6월 28일자로 발행한 ⌜경주김씨의 정통계보⌟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2010년에 이르러 경주김씨 족보 편찬 四百년사에 유례없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소위 태자파라는 족보가 등장하였는데 언필칭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이라면서 마의태자를 파조(派祖)로 도용한 사건입니다. 이들은 처음에 원조 순웅장군을 파조(派祖)로 한다고 하여 장군공파라고 하였고 얼마후 순웅장군의 품계를 대장군으로 올려 대장군공파라고 하더니 마침내는 순웅장군(順雄將軍)을 마의태자의 둘째 아들로 계대하면서 자칭 태자파(太子派)라는 대종회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태자파 창시대동보를 편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대종회의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던 김주경 종원이 장군공 김순웅을 파조로 하는 장군공파대종회를 결성하여 대장군공파 대동보를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즉 대장군파 대종회는 2003년 3월 28일 대동보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해 12월 20일자로 편찬공고를 하였는데 놀랍게도 ⌜경주김씨 대장군공파 선원세계표⌟ 상에 장군공 김순웅을 마의태자의 둘째 아들로 계대하고 무후인 감사공파의 후손이 있는 것으로 표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대종회는 이를 종란(宗亂)으로 규정하고 2006년 11월 11일자 종문위원회 결의에 이어서 2006년 11월 12일자 정기총회에서 제 七차 대동보편찬을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물론 장군공파가 야기한 종난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후 2007년 11월 30일자 대동보편찬예비공고를 하였고 2008년 7월 31일 편찬위원 예비명단을 확정하고 2008년 9월 25일자로 제七차 대동보편찬을 공고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三차에 걸처 수단기일이 연장된 끝에 2012년 1월 31일로써 수단이 마감되었으나. 그후에도 제출된 수단 가운데 계보상의 오류가 다수 발견되어 이를 바로잡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우리 대종회 회원들은 이 대동보를 편찬하게 된 경위를 이해하고 태자파가 2010년도에 발간한 창시대동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태자파의 이 창시대동보에는 우리 종원도 모르게 여러분들의 계보가 올라 있다는 것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명문가의 대종회원으로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는 것이 그른지를 구분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이 대동보가 편찬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끝으로 그동안 대동보가 출간되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편찬위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