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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일기
1976년 6월 23일의 일기
실종이후기
나는 가상의 실종을 획책한다.
이 글은 변변치 못한 나의 삶 연속이라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다.
헛된 망상이라 해도 좋다.
그렇지만 단한가지 중요한 것은 언젠가 이 가상의 실종을 실행에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꽤나 오래전부터 (아마 1년쯤은 넘으리라) 나의 실종에 대하여 생각해 왔었다.
방법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실종 이후를 상상해 온 것이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에 와서 소설 나부랭이를 쓴다고 허세를 부리다보니 다시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우선 실종의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실종 방법 1
이 방법은 과학적인 신빙성이 전혀 없느니만큼 그만큼 실현가능성이 부족하지만 내 입맛에 가장 당기는 방법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증발해버리는 방법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이어도 좋고, 낮잠을 달콤하게 즐길 때도 좋고, 복잡한 시내를 걸어가는 도중이어도 좋다.
나는 이 증발에 대해 딱 한 가지 조건을 붙이고 싶다.
아니 증발뿐만 아니라 나의 실종하고 싶은 모든 방법에 해당하는 조건이다.
실종 이후의 온갖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실종이후기(失踪以後記)가 존재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인간의 증발이라는 비과학적인 가정 아래서 실체적인 나의 존재를 찾으려는 모순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증발 이후의 실존에 대해 언급할 하등의 필요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이니까.
내가 현실의 어떤 순간에서 증발해버린다는 것은 재차 생각해봐도 여간 매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적 고통이라던가, 망설임이라든지, 두려움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방법인가?
실종 방법2
죽음이라는 방법이다.
이것은 실제 있어서는 안될 방법이지만 이 방법도 어디까지나 실종할 수 있는 방벙 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자살이건, 타살이건, 우연사이건 실제로 이 방법으로 나의 실종을 시도하게 되었다가는 실종이후기를 써 줄 사람이 없어진다.
아니 써 줄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나의 실종이후기를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이 방법을 이용하기에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가령 죽음을 가장한 실종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가정하게 된다면 이거 퍽 재미있을 것 같다.
이 방법이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실제인양 믿게 만들어지려면 완벽에 가까운 지능적인 수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까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이 미치지 않아서 보류하기로 하겠다.)
이 죽음을 가장한 실종이 실행되고 나면 나는 실종 이전의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내가(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야 한다.) 즉 새로운 내가 실종 이전의 나의 위치에 서야한다.
(투명인간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그래야만 나의 식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내 친구, 선후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몰래 훔쳐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또 다른 나의 탄생은 그 목적을 실종 이후에 벌어질 사건이나 뭇사람들의 나에 관한 평가를 관찰하고 청취하는데 둔다.
3.기타의 실종 방법
위에서 서술한 두 가지 방법 외에 입산을 한다거나 먼 나라로 떠나가는 방법 등이 있을 것 같다.
소식을 남기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춰 버리는 방법도 실종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의 실종방법에는 이렇게 몇 가지가 있다.
어떠한 방법이든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실종이라는 이미지만 확실히 해두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입산을 한다거나 먼 곳으로 떠나서 실종으로 위장하기에는
어딘지 선뜻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 나의 실종을 세상 사람들이 실종이라는 본래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만 같은 염려 때문에 주저해지는 것이다.
‘뭇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염두에 둔다면 증발이라는 방법도 어딘지 개운치 않은 데가 있다.
증발이라는 신비스러운 방법이 나에게는 더없이 만족할 만 하지만, 뭇사람들은 나의 증발을 믿으려 하지 않을 거란 말이다.
수많은 억측과 의혹으로 실종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곤란해진다.
사전의 의미로는 실종을 ‘종적을 잃어서 그 소재지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됨’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뭇사람들이 나의 사라짐에 대하여 이 이상의 의미를 가미하여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즉 나라는 인간이 이 지구상 어디엔가 살아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삶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증발이라는 방법을 쓰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나의 실종방법도 ‘죽음을 가장한 실종’에 귀착된다.
6월 24일
요즈음 서양에서는 동양철학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적인 면에서 볼 때, 동양의 불교, 유교 등의 심오한 철학이 매카니즘에 시달리는 서양인들의 메마른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인 것 같다.
서구의 정신적, 문화적, 종교적인 2대 지주인 그리이스, 크리스트교 정신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철학이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6월 26일
소도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내 집이 있습니다.
이곳은 시내버스의 마지막 주차장에서 10분이면 걸어 갈수 있는 발로 크지 않은 시골마을입니다.
이 마을에는 조그마한 초등학교가 있고, 나는 이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마을의 뒤쪽에는 병풍처럼 산이 둘러져 바람을 막아주고 앞쪽엔 1km쯤의 들을 지나 바다가 있습니다.
내 집은 이 마을에 초등학교 알을 지나는 도로 건너편에 바다를 바라보기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은 순박하고 부지런한 농민들이어서 별로 가난하지 않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폭이 5m 정도 되는 도로에는 가끔 경운기가 털털거릴 뿐 도시의 차량들이 침범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 철수품은 소도시에서 구입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웃집 드나들 듯이 소도시에 갈수 있을 만큼 교통이 편리한곳이니까요.
우리 집에서 소도시 중심가에 까지 나가는 데 불과 30분도 못 걸린 답니다.
내 집은 100평정도 되는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25평짜리 단층 슬래브에는 방이 둘, 응접실이 하나 서재가 있고 부엌이 있습니다.
우선 현관을 들어서면 다섯 평정도 되는 마루가 있는데 이곳을 나는 응접실로 쓰고 있습니다.
응접실의 왼쪽으로 알에는 부엌 다음엔 방이 하나 응접실의 오른쪽으로 서재와 방이 있습니다.
서재가 있는 다음 방은 나는 침실로 쓰고 있고 이방은 창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응접실에는 탁자와 소파가 2개 있고 이 동식 스테레오 전축이 있습니다.
레코드판은 클래식음악과 팝송 경음악이 대부분입니다.
나는 이 전축을 자주 옮기는 편입니다.
응접실 길 쪽에 목욕탕이 있고 화장실은 대문간에 큰 건물이 있습니다.
살림채에 붙어있는 20평짜리 슬래브 외에 또 하나 꽤나 큰 건물이 있습니다.
살림채에 붙어있는 20평짜리 나의 아뜨리에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살림채와 아뜨리에 앞으로 정원의 놓여있습니다.
정원의 중앙부분에 5평 쯤 되는 연못이 있고 금붕어들이 살고 있습니다.
연못의 둘레엔 잔디가 깔려있고 그 둘레로 화단이 있습니다.
화단에는 군데군데 내 조각 작품이 놓여있고 화단 둘레 담 곁으로 전나무 사철나무들이 큰 키를 자랑합니다.
제일 키가 크고 오래 묵은 전나무 그늘에 벤치가 있고 이 벤치에 앉으면 앞으로 바다와 들이 확 트입니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시내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쇼핑도 하고 친지들도 만납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정도 내 집으로 다정한 벗들을 초대 하여 식사도 하고 애기도 하고, 들과 바닷가를 거닐기도 합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엔 P 교수님을 초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어떨 때 교수님은 내 후배가 되는 제자들을 몇 데리고 와서 나의 아뜨리에를 보여줍니다.
나는 항상 P교수님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한 가지 해보고 싶었지만 별로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아 번번이 나를 슬프게 만듭니다.
이번 여름 방학 땐 교수님을 모시고 남해안의 명승지를 몇 군데 둘러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내 친구 후배 서너 명과 함께 내가 하루 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시간을 아뜨리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작품을 제작하는 저녁입니다.
평일엔 학교에서 5시 이후에 퇴근을 하기 때문이 저녁에 작업을 하게 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오전에도 아뜨리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엔 학교에 가서 배드민턴도 치고 탁구도 치고 합니다.
그리고 한가할 땐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아뜨리에에서는 별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가끔 인체 데생을 하긴 하지만 이건 취미삼아 하는 게 아닙니다.)
집에는 내가 가르치는 애들이 가끔 놀러옵니다.
나는 이 애들을 모델로 해서 데생도 하고 조각 작품도 제작합니다.
이러한 나에게도 늘 두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예술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건 아마 평생토록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또 하나 고민은 비밀입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재산이 없는 사람처럼 가난하다고 했으니까요.
7월 2일
K에게
지금 밖에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밤으로 접어들고 있군.
약간 수다스럽긴 할는지 모르지만, 요 근래 얻은 몇 가지 책으로부터 사상, 감정이 외로움을 달래어 주는 군.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고나 할까?
내 주위의 환경들이 예전처럼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게 느껴지는 것이 퍽 다행스러운 일이군
비관적으로만 보여 지던 사안들이 낙관적으로 돌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우선 안심할 수 있게 된 거야.
내가 읽었던 몇 권의 책(그것은 소설이나 철학 서적이 대부분이었고 성경도 약간 읽었지)
은 다른 사람에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빈약할는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꽤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준거야.
우선 현재의 나의 정신적인 방황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고 미래의 진로에 희미하나마 횃불을 밝혀주었지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것들은 이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내적이고 주관적인 것들 이었어
모든 사고를 내 자신에게만 국한시키는 자기 집착에서 얻어진 것은 결국 자기모순
뿐이었지 전대의 명성이었던 철학자들도 대부분이 이러한 결점을 자각하지 못하여 인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는 생각이 들더군.
최근에 와서는 유물론이니 관념론이니 하여 갑론을박했던 과거의 철학들이 올바른 괘도에 올라 선 것 같아 베이컨, 스피노자, 볼테르, 칸트, 쇼펜하우어, 스펜서, 니체 등 수많은 위대했다는 철인들에게서도 마저 너무도 많은 과오들이 발견되었고 결국 이들이 공적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비교적 무난한 철학이 대두된 것 같아
나같이 해박하지 못한 지석의 소유자가 이건 문제에 왈가왈부한다는 것조차가 우스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철학의 변천이 마치 나의 변천같이 느껴져서 몇 자 적어 보는 거야.
데카르트로 부터 시작된 회의를 보더라도 ‘나는 무엇인가?’ 라고 나의 존재를 회의하였던 과거의 나와 너무나 흡사한 거야.
그렇다고 내가 철학자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야.
이제 어쩌면 나도 어설프기는 하지만 나로서의 철학을 가지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감히 철학운운 하게 된 거지.
사실 나는 철학이 무엇인지 어떻게 성립되어져야 옳은지 잘은 몰라
다만 이런 기회에 철학운운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나의 인생관을 정립시키는데 거대한 영향을 가져 올 것도 같아 서투른 흉내를 냈을 뿐이지
그럼 체계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지만 어슴푸레하게나마 윤곽을 잡을 수 있는 나의 인생관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볼까?
우선 철학에 대해서
나는 이 문제로 내 친구 병수와 수차래 몇 시간에 걸친 토론을 하고 병규에게도 관심을 표명했었는데 이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맺게 되었어 (B.러셀의 “행복은 지금도 가능한가?”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지)
내가 철이 들면서부터 생각해오던 생각이 있는데 이제 문자로 표현 할 수 있을 만큼 체계가
잡힌 것 같아.
나는 종교의 기원을 공포로부터 해방감을 얻기 위한 의지로부터 생겨났다는 설을 믿고 있지. 이 설은 아늑한 먼 옛날 원시시대에 살고 있던 인간은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광대함에서 자신들의 무력함을 느껴 신을 창조해 냈다는 거야.
이렇게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신에 예속된 인간의 모든 것을 신의 의지에 맡겨 버리려고 하여 더욱 나약한 인간이 되어 버렸지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낸 신조차 완전하고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지.
왜냐하면 최초에 만들어진 신도 미개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의 소유였지 결코 현대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야.
현대 널리 믿어지는 수많은 신들로 시초엔 그렇게 절대적이고 완전했을지 모르지만 너무도 발달된 요즈음의 인간들의 지식으로선 도저히 만족할 만 것이 못 된 거야.
요즈음 사람들이 신을 만들어 낸다면 아마 신의 능력은 순식간에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고 신의 성격에서도 예수처럼 잔인하고 매정한 일면조차 없는 자비로 가득한 거야.
(예수 그리스도가 전지전능하고 최고의 신과 지배를 가졌다면 지옥의 저주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세상이 이렇게 악이 횡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어떠한 종교를 비난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아.
성경 속에는 물론 좋은 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어떠한 경전에도 주옥같은 성구가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내 생각 같아선 세속화되다시피 한 요즈음 신들에게 신앙이라는 명목아래 예속되느니 보다 그들로부터 좋은 점을 얻어내어 자기 양심에 질적, 양적으로 축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미개하고 우둔했던 선인들이 만들어낸 신을 전적으로 믿는 신자들처럼 신 앞에 예속되는 것을 나로선 용납할 수가 없고 차라리 내 자신이 창조해낸 신 앞에 엎드리는 편을 택하고 싶은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야.
현세의 거의 모든 신자들은 궤변에 가까운 이론으로 자기네들의 신을 변호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자기변명이야.
그렇다고 그러한 신들이 자기의 신자들에게 결코 나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 일거야.
다만 모두 옳을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 모든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이 인정하는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교리만은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하는 것뿐이야
앞으로의 나의 태도로 이 종교관을 끝맺어 보겠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언젠가 종교에 귀의하리라는 막연한 예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의 양심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사회 정의에 배반되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결코 종교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을 작정이야.
다음은 사랑에 대해서 내가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성간의 애정에 대해서야.
평소 나의 정신적인 비중을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이 이것이었기 때문에 이기심에 붙잡힌 자기중심적인 사랑, 이것이 여태까지의 나의 사랑이었어
나는 사랑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자기의 결핍된 상태로 인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봐.
나의 견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옳게 인식될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는 나의 경우에만 국한시켜서 얘기하겠어. 나는 내가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나에게는 수많은 결함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
용모라던가, 능력이라던가, 사고력 따위에서 말이야.
특히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것은 나의 추한 몰골이었지.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나의 신체 어느 곳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하거나 매력을 느낄 만한 곳을 찾아낼 수 없거든.
남 앞에 내보이고 다니는 얼굴에서는 부모를 원망하고 싶을 정도로 실망을 느끼고 있지.
거울 앞에선 나를 볼 때마다 ‘노트르담의 꼽추’가 떠오르곤 했으니까…
내가 사춘기 때 ‘나는 결코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놈’이라고 자포자기하였었지.
내가 여태껏 수많은 짝사랑을 해온 것도 이러한 데 원인이 있다고 봐야 옳을 것 같아.
나의 자신 없는 용모는 나를 더욱 소심하게 만들었고, 비관적으로 만들었지.
그래서 자연 여성한테서 찾고자 하는 미적 추구는 점점 심화되어 갔지만, 용기 없는 내성적인 나로서는 이것이 행동으로 표현되지는 못하고, 짝사랑이라는 방법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어.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할 때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예를 들어 용모라든가 재력, 학벌, 배경 따위에서 오는 자신감 같은 것 말이야. 그런데 나에게는 과거나 지금이나 이런 것들이 보잘 것이 없는 거야.
사랑이라는 갈증에 목이 타지만,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랑을 결코 받을 수가 없는 나로서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짝사랑을 해보는 도리 밖에 없었던 거야.
자신의 결핍을 상대방으로부터 보상받으려는 식의 사랑은 나에게는 불가능했던 거야.
사랑이 발생하게 되는 두 번째 원인은 동정심으로부터 오는 거야.
이것은 자기보다 못한 상대방에게 베푸는 사랑이지.
그러나 이런 이유로 성립되는 사랑은 극히 드물고, 설사 성립된다 하더라도 남녀간의 애정으로서는 바람직한 것이 못되지.
더구나 인간은 항상 ‘더 높은 상태’를 갈망하는 욕심쟁이라서 자기보다 못한 상대를 눈여겨보려고도 하지 않거든…
나도 마찬가지였지.
여성으로서 나보다 낮은 상대(용모, 재력, 학벌 등)를 만났더라도 결코 그 여자에게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을 거야.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위와 같은 두 가지 원인에서 볼 때 사람이 사랑이 성립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한가지 원인에서만이 아니라 두 원인에서 서로 보충 결합된 상태어군.
가령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 사이를 볼 때 A가 B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상태일 경우나
그 반대로 더 낮은 상태일 수만은 없는 게 통례지. A가 B보다 용모나, 재력, 능력, 학벌,
가문 등이 모두 나을 경우에 이루어지는 애정 관계란 순리적인 방향으로써 생각할 수가 없어. (역리적인 방향으로 고찰해 보면 A가 폭력이라는 지 육체관계 등으로 B를 소유할 수는 있다. 여기에서 애정이 존재할지는 의문스럽지만 ) A가 재력이나 학벌이 B보다 낮다든지.
A, B 가 거의 비슷한 상태라든지 등의 어떤 상쇄되는 우열의 면이 있어야 비로소 애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내가 여태껏 사랑다운 사랑을 이성과 주고 받아보지 못한 원인은
위에서 열거한 원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 인 것 같아.
옛말에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것은 아마 나의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태도에 탓을 돌리는 수밖에 없군.
이제 앞으로의 나의 태도와 신조를 피력해 볼까?
우선 이기심에 사로잡힌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고 이타심에 의한 타인 중심적 태도를
취하고자 하는 게 신조이지.
내 가슴속에 만재해 있던 애정의 축적물들을 차근차근 밖으로 끄집어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인간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거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인간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온아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될 수 있으면 나로 인하여 타인들에게 나쁜 영향이 끼치지 않도록, 오히려 그들을 위해 인정을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지.
가령 어떤 여자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그녀 곁을 떠나야할 경우를 가정해볼 때, 그 여자를 위하여 떠나기 때문에 결코 미움이나 저주를 보내서도 안 되겠고, 오히려 행복을 빌며 웃어 보일 수 있게 말이야.
이런 성인군자(?) 다운 현명한 태도를 취하게 될는지 나 자신도 심히 의심스럽지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수양을 쌓는 거지.
그리고 내가 어떤 이성을 사귀게 되었을 때는 나의 양심의 소리에 거역하지 않는 언행으로써 그녀를 대하고, 포용력 있는 태도로서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