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天台山에 들어서며 모습을 드러낸 삼신할멈바위는 겹겹 깊이 팬 주름이 어서 긴 겨울 지나 천태동천에 물 흐르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돌이나 한번 던져보고 가유.”
“할머니!애가 둘이나 있어유.”
바위주름들 사이로 돌을 던져 떨어지지 않으면 삼신할멈이 자식을 점지해준단다.
폭포수가 세 단계를 거쳐 흘러내려 삼단폭포라고도 불리는 용추폭포도 폭포로서의 제 구실을 할 것처럼 군데군데 얼음이 녹고 있다.충북 영동군 양산면의 누교리에서 산속으로 들어와 보니 들머리표식처럼 충북의 설악이란 표현이 크게 과장하지 않은 명산이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으로 두 나라의 각축전이 벌어지기도 했던 영동군은 충청북도 최남단에 위치하여 동쪽으로 경북 김천시와 상주시,서쪽은 충남 금산군,남쪽은 전북 무주군과 접하니 가히 네 개 도의 문화를 고루 지닌 곳이라 볼 수 있겠다.악성 박연을 추모하는 난계 국악축제가 매년 열리고 정월대보름에 마을농악대가 가가호호 집터를 눌러주는 지신밟기행사를 한다.또 천태종의 본산이기도 한 곳이다.
천태종,법화경을 근본교의로 하여 중국 수나라 때 지의가 처음 세운 종파이다.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하나의 종파로 성립되었다가 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왕조에 의해 쇠퇴기로에 들어선다.여기가 고려 천태종의 본산이라 천태산이라 칭하고 지금까지 신비스러운 몸체를 의연히 유지하고 있다.
75m수직암벽을 타며 숨을 몰아쉬다
바로 영국사가 보인다.영동 양산8경의 제1경이라는데 지금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기만 하다.스님도 보이지 않고 산 오르는 산객 한 사람 없어 등진 천태산의 영국사를 더욱 외진 사찰처럼 보이게 한다.
난을 피해 남으로 피신하던 고려 공민왕은 여기 영동 양산면 누교리에 머물게 되었다.며칠간의 폭우로 불어난 개울 건너편 천태산 쪽의 절에서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공민왕이 크게 관심을 기울인다.그 절이 고려 문종의 넷째아들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창건된 국청사임을 알게 된 공민왕은 그 절에서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빌고자 하였다.
뜻을 알아차린 신하들은 칡넝쿨을 꼬아 다리를 만들어서 공민왕은 국청사 부처님 앞에 나아가 국태민안을 빌 수 있었다.공민왕이 다녀간 후 그 뜻을 기려 편안할 영寧,나라 국國자를 써서 영국사로 고쳐 부르고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부르게 되었다.
사찰입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는 비록 헐벗어 볼품 있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니 풍채가 보통이 아니다.높이31m,기둥둘레11m의 이 은행나무는 대략1000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하고 있다. 2m높이에서 갈라진 가지는 동서로25m,남북으로22m나 퍼져있어 가을이면 얼마나 풍성한 차림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치악산 구룡사의 은행나무는 수령200년을 갓 넘어 견줄 대상이 못되고,용문산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가 약1100년 정도의 생을 이어가며 높이42m,뿌리부분 둘레15.2m로 국내최고,최대의 계급장을 달았으니 이곳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그 다음 순위쯤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덩치 큰 나무가 국가의 난이 있을 때면 소리 내어 운다니까 영국사가 오늘처럼 매번 조용한 사찰은 아닌가보다.안내판에 영국사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을 천태산A코스 암릉구간이라 표기하고 있다. 75m암벽을 오르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자 왔으니까 그리 올라가기로 한다.
소나무숲길은 평탄하지만 드문드문 눈이 녹아 질척하다.곧이어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암반에 늘어져있는 밧줄을 붙든다.두 번째 암반은 더 길고 가파르다.천태산의 유명한 랜드 마크를 다 올랐다싶었는데 다시 맞닥뜨린 수직암벽이 위압감을 준다.
첫 번째 바위 슬랩구간에 길게 동아줄을 늘어뜨려 놓았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절대 우회하라는 경고문을 보고 잠시 망설이게 된다.노약자나 어린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굵은 밧줄을 움켜쥔다.절벽 위 청명한 하늘 아래로 까마귀가 소리 내며 원을 그린다.양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어깨까지 묵직해진다.
75m높이에서 늘어뜨린 굵은 동아줄을 조금 가느다란 케이블로 다시 감았다.혹여 끊어질까봐?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불현듯 저걸 붙들고 오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고 만다.이럴 때가 스스로에게 가장 불안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신발밑창을 점검하고 배낭끈을 조인다.매달려 오르면서도 잡은 줄이 꽤나 무겁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이 산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산 오르는 이 등짐엔 한 아름
인생의 무게 담겨있네
굵은 동아줄 휘어잡은 손에
역동의 세월 두툼하게 뭉쳐있네
산 까마귀 요란스레 훼치며 날아오더니
등짐 모두 풀어 놓으라, 잡은 줄 다시는 놓치지 마라
수직암벽 맴돌며 떠나지를 않네
중턱에서 한 번 쉬었다가 간신히 올라서자 영하의 날씨에도 이마에서 주룩 땀이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산행은 하체만의 움직임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한 암벽구간이다.다리뿐 아니라 팔과 손목에도 상당한 힘이 필요함을 실감한다.산은 종종 두 팔,두 발로 기어오르게끔 하면서 절대 만만한 산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영국사를 내려다보는데 눈발 실은 바람이 휘익 떼 지어 불어오면서 땀을 씻어준다.
슬랩구간을 올라 숨을 고르며 영국사를 내려다본다
계절의 고요한 이동을 보며
첩첩이 겹친 많은 산들 너머로 멀리 덕유산이 시야에 잡힌다.멋진 조망이 있다는 건 오르는 수고로움에 대한 커다란 보답이다.이해가 앞선 좁은 시각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상,도시빌딩숲에서와 달리 사물과 사물간의 자연스런 흐름,유기적인 연결을 보게 된다.그처럼 산은 눈을 맑게 한다.그래서 더욱 상쾌하다.
정상을200m남겨둔 능선에 올라서야 밧줄을 보지 않게 된다.듬성듬성 잡목이 있는 흙길을 걸어 정상으로 향하는데 겨울 천태산 하늘빛이 너무 고와서 그런가보다.고개 치켜들지 못하고 힐끔힐끔 살피게 된다.
“알현하기가 너무 힘들군요.”
“어서 오시게.수고 많았네.위험하니 다음에 올 땐 여럿이 오게나.”
천태산 정상석(해발714.7m)앞에서 혼자 인증을 받으며 산 좋아하는 지인들과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한다.천태산 정상은 충북 영동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에 있어 두 군에서 각각 이정표를 세워놓았다.다시681m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로 내려서서 헬기장을 지나 뛰어난 주변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D코스로 하산 길을 잡는다.
돌아내려오는 천태산은 곳곳마다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오로지 느낌으로만 알게 하는 것,눈으로도 귀로도 알 수 없는 계절의 바뀜,자연의 순환.혁신이니 개혁이니 야단스럽게 외치고 휘갈겨 알리려는 인간의 그것과는 확연한 다름.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 없이 자연은 슬그머니 지금까지의 옷을 벗을 뿐이다.한겨울 시름처럼 안고 견뎠을 적설에도 한 마디 신음 내뱉지 않고 그저 살그머니 봄을 불러 끌어안아 제 자리를 넘겨준다.
봄은 다시 그 자리에 물 흐르게 하고 꽃 피우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생색을 내야만 기대를 충족하고 뽐내야만 직성 풀리는 사람들 세상과의 천지격차 판이한 것.위대한 자연의 모습을 도통 보지 못하거나 혹여 닮으려 속 태우는 부끄러움마저도 부끄러워 말아야겠지.그게 사람 본연의 또 다른 자연스러움일 테니까.
간간이 올라왔던A코스를 바라보며 내려가게 된다.영국사가 아직 저 아래 있고 진행방향으로 옥새봉이 조망된다.전망바위에 올라서자 갈기산에서 성인봉을 거쳐 월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흐릿하다.
남고개에 이르는 천태산 내리막길 볕든 양지엔 이미 봄이 움트고 있었다.연민 가득 싣고 다가온 실바람이 간신히 겨울 넘긴 잎사귀에 스킨십을 한다.옅게 묻어나는 봄의 향내에 살 추스르지 못하고 얼다 녹은 잎은 그예 고개 수그리고 만다.
영국사일주문 옆의 샛길로 들어서 올라갈 때 지나쳤던 망탑봉으로 간다.망탑봉의 명물이라는 상어 닮은 흔들바위와 홀연히 서있는 삼층석탑(보물 제535호)을 보고 진주폭포의 상단부와 천태산의 또 다른 경관을 감상하고는 다음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