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바위 抄 외 9편
- 조설釣說*
최 영 욱
이른 새벽 갯바위에 서면
아득한 옛날
약천 선생의 글귀가 떠오른다
근 400여 년을 넘긴 그 옛적에
낚시는 과학이라 하였으니
낚시란 대와 줄, 찌와 바늘의 부침이며
법과 묘리妙理가 작용하여
챔질의 순간과 챔질의 자세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하였다.
하여 법은 가르칠 수 있으나
묘리의 터득은 시간에 있다고 하였으며
작은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큰 것을
이룰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새벽 갯바위에서
바람을 읽고 조류를 보고
수심을 당겨 내 마음 속으로 가져올 때
겨우 낚싯대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조설 : 남구만의 약천집 28권 잡저 편의 낚시 산문(1670년)
갯바위 抄
간당간당
“제발 목줄 튼튼히 쓰세요.”
갯바위로 오르는 꾼들 뒤통수로
선장의 목소리가 꽂힌다
그 소리 귓가에 쟁쟁거려
1.75호를 쓸까, 2호를 써야할까
파도가 넘실대는 갯바위에서
후로로 카본줄 1.75호의
목줄을 맨다
덩치 큰 감성돔들은 능히 끊고 도망갈 정도의
목숨줄이자 생명줄을 맨다.
“팅” 하고 줄이 끊어지는 순간
감성돔에게는 생명줄이 될 터이나
겨뤄는 볼 만한 목줄일 것이다
낚싯대로 전달되는 발악의 즐거움과
살려 버팅기는 치열한 버팀이
절정과 혼신으로 부딪치는 갯바위
나도 간당간당한 목숨줄 하나 부여잡고
울퉁불퉁한 갯바위 같은 세월을
간신히 살아냈지 싶다.
갯바위 抄
하염없어 하염없는
영하권의 추위 속에서
서로의 어복 충만을 빌며
담배를 나눠 피는 갯바위가 훈훈하다
서로가 다른 갯바위에서
감성돔 전용 1호 대를 펴고
오늘의 조과를 꿈꾸는 갯바위는
한 발 앞이 절벽이라 늘 위태롭다
파도가 쉼 없이 던지는 질문에
갯바위는 대꾸조차 없고
꾼들이 던져놓은 구멍찌는 아장아장
조류를 타기만 할 뿐 미동 조차 없다
시선의 하염없음과 바다의 하염없음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파도가 웃었다
갯바위에서의 하염없음은 늘 꾼들의 기다림인지
기다림이 즐거움인지 그 질문도 늘 하염없기는
매 한 가지라서 하염없는데
어쩌면
당신과의 거리 또한
하염없을 것이다.
갯바위 抄
- 주화입마走火入魔
운기조식에 실패한 늙은 고수가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강호는
번득이는 살기殺氣로 무장되어 있다
모두가 입과 머리와 가슴에
누군가의 목을 겨누는 잘 벼른 칼날이 숨겨져
있고 숨은 칼날 밖으로는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들로 치장되어 그 비의秘意를 읽을 수 없다
하여 세상은 숨기고 숨기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주화입마에 들고서야 알았다.
하동포구
- 황어
겨우내 얼어붙었던 벽소령 눈이 녹으면
그 물 향香도 그리움이 되는 것인가
섬진강 하구 기수역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내 길을 잡아 다시 오르는 지난한 여정
주황색 혼례복으로 치장한 황어들이
화개동천 벚꽃 그늘로 떼지어 들 때
숨이 멎는다
수백 리 물길을 헤쳐
지리산 안 화개동천에
치열하고 숭고한 초례청을 차리면
큰 산 지리산마저도
저 거룩한 문장에 숨을 죽이는 것이다.
하동포구
참게
거북하고 낯선 말들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세상 속으로
어린 참게는 강을 타고 오른다
봄이면 오르던 선조들을 길을 따라 오른다
“집게발 포신을 치켜세우고
팡팡 물대포를 쏘며”*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사는 것은 늘 거기서 거기라지만
저 치열한 오름 끝엔 무엇이 남는 것일까
논둑 도랑에 엎드리거나
지천의 어둑시근한 조그만 굴속에 엎드려
가을 바람에 살을 찌울 것일 터
지리산 단풍이 들면 다시 길 떠날 채비를 마치면
이들의 길은 모질 것이다
연어 채포망에 걸리거나 어부들의 통발
재첩 잡는 거랭이에 걸려 식탁에 오를 것이다
혼신을 다해 살다가 지역의 특산품이 되는
참게의 일생이 더러는 부러울 때가 있다.
정연홍 / 시인의 “섬진강 기갑사단”에서 차용
하동포구
- 다독다독
섬진강 너른 백사장 한 켠
북소리에 징소리가 얹힌다
휘몰 듯 흐느끼듯
지리산 백운산도 넋풀이에 그만 맥이
빠져 침묵할 때 환장하게 깔리는 저녁놀에
징도 북도 채를 놓았다.
자진했거나 홍수에 휩쓸린 수살귀신들
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들려다 총 맞아 죽은 귀신들
모두 자박한 강물을 걸어 나와 넋 놓고 울 때
그들의 등을 다독거리던 늙은 무녀도
눈가를 훔쳤다
굿이 끝난 뒤
뒷전 귀신들을 풀어 먹일 때
나도 슬몃 끼어들어
떡 하나와 막걸리 한 사발을 받아들었다
뒷전은 뒷전끼리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차밭 법당
부고訃告
“꿩 꿩”
꿩은 왜 두 번만 울까
왜 두 번만 울까를 생각하는 차밭
꿩이 울자 부고가 왔다
부고는 꿩 울음을 타고도 오고
휴대전화기로도 왔다
어느 큰 작가의 죽음도
전직 대통령의 죽음도
가난한 시인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던
젊은 화가의 부고도
꿩 울음을 타고 왔다
하여 차밭은 어느 법당보다
혼자 울기 좋은 법당이었다.
차밭 법당
연두
곡우穀雨를 열흘 앞두고 차밭에 들어
입하立夏 열흘 지나 세상으로 돌아왔다
일 년, 한 달의 수행이 끝나는 것이다
차밭에 들면 세상이 멀어 좋았다
허나 차밭과 세상은 늘 지척이라
밝음과 어둠, 즐거움과 서러움 또한
연두색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지워졌다
연두는 애처로운 색일진대
꺾다 보면 다향茶香이 사라지듯
여린 찻잎은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고
이미 꺾은 차나무로 손이 나가는
허방을 짚기 일쑤여서 늘 멀미 같은 시간이었다
연두의 작은 잎들을 가마솥에 덖고 비벼
다관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으면
물을 받은 연두들은 말린 몸을 펼쳐
향 같은 기별을 보내오는데
하여 연두는 눈물의 색으로
네게로 다가가는 것이다.
차밭 법당
고슬고슬
여린 찻잎에
햇살이 앉았다
순간 눈이 멀었다
차밭에 봄볕이 깔리고 바람이 불면
찻잎도 바람을 타면서 햇살을
퉁겨낼 때
차밭도
고슬고슬한 섬진강 윤슬을 닮아 간다.
산문
연분홍 치마가
19번 국도를 따라 벚꽃이 피자 강이 환해졌다. 세상이 환해지자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꽃구경도 꽃구경이지만 고사리밭으로 차밭으로, 두릅에 엄나무순까지, 모두가 농부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주머니 또한 두둑해질 터여서 그들의 발길 또한 들뜨기 마련이다. 자연이 인간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선순환의 이치가 얼마나 지속될지를 걱정하면서 나도 꽃길을 따라 차밭으로 든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산빛을 바라보면 초록의 강성함에 새삼 놀라고 있는 나를 본다.
봄은 잔치다. 푸른 밥상과 푸른 술상까지도 그렇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 두릅과 엄나무순은 봄날 최고의 반찬이자 안주인 것이다. 푸르름이 주는 행복은 차라리 눈물겹다. 하여 봄날은 꽃그늘로 기어들어 자주 술판을 벌이는 것이다. 술에 차에 차곡차곡의 세월을 살다 보면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차밭에 한 달을 살다 세상으로 나오면 고추밭과 도라지밭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이제 연분홍 치마는 봄바람에 휘날릴 기운이 다한 것이다.
봄은 전쟁이다. 뽑고 돌아서면 무성하다. 하여 옛 어른들께서 “풀을 매는 손은 기어가는데 풀은 날아간다”고 하였을까. 농막 하나 지어놓고 ‘놀이터’라 부르는고, 고추, 가지, 오이, 호박, 방울토마토, 도라지 농사(?)를 짓는데 약 50여 평이다. 나머지 200여 평은 놀리느니 동네 할머니들께서 들깨를 심는다고 하셔 내어드렸다. 내어드리고 나니 상당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 할머니는 들깨를 심을 곳에 미리 제초제를 친 것이었다. 하여 ‘제초제를 쓰시면 땅을 무상으로 빌려드릴 수 없다’. 고, 단호하게 말씀드리니, ‘약 안 치고 우찌 농사를 짓나?’시며 되레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그러시면 올해는 이왕 치셨으니 농사를 지으시고 내년부터 제초제는 절대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았으나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만 젓고 돌아서셨다. 이래저래 봄날은 가고 있었다.
최영욱 / 경남 하동 출생. 2000년 《제3의 문학》 천료. 시집 『다시 평사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