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양상태
'相泰 奉見 하라. 白米.....'라는 등기우편이 오면 외갓집 할아버지께서 쌀을 부치셨으니 찾으라는 말씀이었다. 옆집 가게에서 짐차라고 하던 삼천리 자전거를 빌리거나 정기화물 앞 리어카 배달꾼을 동원하여 쌀을 찾아 싣고 왔었다. 볏짚으로 짠 쌀가마니는 80킬로여서 무겁기도 하지만 껄끄럽고 쥐구멍이라도 생겼으면 다루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팔아 돈으로 주시면 이곳에서 팔아먹으면 되는데 하고 자문해 보기도 했었다. 곡식은 파는 것을 산다고 하고 사는 것을 판다고 하는지 지금까지도 아리송하다.
요즈음은 쌀도 20킬로 이하이면 문 앞까지 배달을 해준다. 세계적인 ‘DHL'이라는 배달 운송 업체가 처음 TV 광고로 알려질 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는데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니랄 수가 없다.
택배도 초창기에는 화물을 직접 들고 택배회사 영업소로 찾아가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니면 전화로도 탁송이 가능하다. 반품할 것은 문 앞에 내어놓으면 수거해 가기도 한다. 작은 물건은 소포를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우체국에서도 친절하게도 택배 업무를 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부피가 작은 물건은 고속버스나 직행버스를 이용하여 소화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문서나 서류들은 행낭으로 매일매일 가져가고 가져다준다.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해도 전화로 주문을 해도 친절하게 약속한 시간까지 지켜 가면서 배달을 해준다. 철도는 물론 항공 선박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은 늘어 가고 있다.
배달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줄 곳 있어왔다. 하루 씩 늦게 우체부를 통해 배달되는 일간지, 완전히 사람들의 두 발로 전달하는 부고訃告가 그랬고, 밤이면 밤마다 사연을 배달해 주는 심야 음악방송이 밤을 하얗게 도색을 하기도 하였다.
짜장면이나 통닭은 오래전부터 배달이 익숙해져왔다. 그런데, 코로나가 일반 음식들까지 배달 행렬에 끼워 넣었다. 이 순간에도 ○○요, ○민 등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다.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싶기도 한다. ‘일자리 창출이다’ ‘고용 증대다’ ‘직업의 다 변화다’ 모두가 일리는 있겠으나 무엇인가 개운하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무심코 지나치는 일은 없는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염려되는 것이 포장지다. 더구나 음식물이 묻은 포장지와 용기들은 과연 세척하여 배출하는지 의문스럽다. 알기로는 음식은 주문한 근처에서 배달하는 줄 안다. 돈 들여가며 운동도 하는데 가까운 곳이니 걸어가서 먹으면 돌아오면서 소화도 되고 일거양득이 될 터인데 말이다.
가끔은 배달이 잘못되어 속이 상하기도 한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물건이 떡하니 문 앞에 있을 때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먼 곳은 전화를 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거꾸로 우리 물건이 다른 곳으로 갔을 경우에는 찾으러 가야하고 시간이 촉박할 때는 난감하기도 했다. 간혹 분실이 되었을 때는 복잡한 처리 절차가 있다고 한다.
배달민족倍達民族이라 함은 우리 민족을 다르게 부르는 말이다. 상고시대 지역 이름 배달倍達겨레가 이루고 있는 나라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물건을 가져다가 나누어 돌리는 배달配達과는 엄연하게 다르다. 다만 한 업체에서 상호로 쓰고 있을 따름이다.
상상해 본다. 우리 집에 음식이 드론으로 배달되어, 베란다 창문에서 ‘마라탕 시키신 분!’하고 부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