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스님
9. 자비는 소유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나눠야
집착을 지혜로 변화시킴이 수행
육경 대상 업식 환영임 일깨워야
【본문】
또 물었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6바라밀(六波羅蜜)은 6도(六度)라고도 하며,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이거늘 지금 말하시길,
육근이 청정한 것을 육바라밀이라고 하시니 어떻게 의미가 통하며
건넌다(度)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달마대사가 답하였다.
"육도(六度)를 닦으려면 반드시 6근을 청정하게 해야 하며 육근을 맑히려면
우선 육적(六賊)을 항복시켜야 한다."
又問曰 如經所說 六波羅密者 亦名六度. 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
우문왈 여경소설 육바라밀자 역명육도 소위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今言六根淸淨 名爲六波羅密者 若爲通會 又度者 其義云何.
금언육근청정 명위육바라밀자 약회통회 우도자 기의운하
答曰 欲修六度 當淨六根 欲淨六根 先降六賊.
답왈 욕수육도 당정육근 욕정육근 선항육적
【해설】
바라밀(波羅蜜)이란 파라미타라(pāramitā)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이며 도피안(到彼岸), 도(度)라고 번역하며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다. 무명의 중생이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6바라밀을 실천 수행하여 생사의 강을 건너 열반의 언덕에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보시는 행복을 주는 것이요, 지계는 고통에서 구하는 것이요, 인욕은 보시와 지계를 실천하기 위하여 욕망과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정진이다.
쉼 없이 나아가면 탐ㆍ진ㆍ치 삼독이 줄어들게 되며 삼독이 주는 만큼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참다운 지혜가 드러나게 된다. 그 지혜로 다시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완전한 지혜인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정진해 나아가는 것이다. 육바라밀의 실천 수행은 참 나의 작용에 의해 비추어진 일체 대상을 욕망ㆍ집착 마음이 아닌 지혜ㆍ자비의 마음으로 비춰보고 판단ㆍ선택ㆍ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육근을 맑히어 청정하게 하며 욕망과 집착을 부추겨 생사윤회 고를 가져다 주는 6식을 조복 받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것이 참 나에 비친 업식의 환영임을 알고 육바라밀 수행의 주체인 나 역시 환영임을 깨달아 생사윤회의 강을 건너 해탈 열반으로 나아가니 바라밀을 도(度)라고 한 것이다.
【본문】
"눈의 경계를 버리면 모든 색의 경계에서 벗어나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보시(布施)라 하고,
귀의 경계를 막으면 소리의 대상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지계(持戒)라 하고,
코의 경계를 항복시키면 향기와 악취에 평등하여 자유롭게 되므로
인욕(忍辱)이라 하고,
혀의 경계를 다스리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않으며 읊고 강설하되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정진(精進)이라 하고,
몸의 경계를 이기면 모든 애욕에서 초연히 요동치 않으므로 선정(禪定)이라 하고,
뜻의 경계를 조복하면 무명(無明)을 따르지 않고 항상 깨달음의 지혜를 닦아
모든 공덕을 즐기어 닦으므로 지혜(智慧)라 하느니라.
또 도(度)라 함은 운반한다는 뜻이니 육바라밀은 배와 같은 것이어서
중생들을 운반하여 저 언덕에 이르는 까닭에 육도(六度)라고 하느니라."
能捨眼賊 離諸色境 心無固吝 名爲布施.
능사안적 이제색경 심무고인 명위보시
能禁耳賊 於彼聲塵 不令縱逸 名爲持戒.
능금이적 어피성진 불령종일 명위지계
能伏鼻賊 等諸香臭 自在調柔 名爲忍辱.
능복비적 등제향취 자재조유 명위인욕
能制舌賊 不貪邪味 讚詠講說 無疲厭心 名爲精進.
능제설적 불탐사미 찬영강설 무피염심 명위정진
能伏身賊 於諸觸欲 湛然不動 名爲禪定.
능복신적 어제촉욕 담연부동 명위선정
能調意賊 不順無明 常修覺慧 樂諸功德 名爲智慧.
능조의적 불순무명 상수각혜 악제공덕 명위지혜
又度者運也 六波羅密 喩若船筏 能運衆生 達彼岸故 云六度.
우도자운야 육바라밀 유약선벌 능운중생 달피안고 운육도
【해설】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육근의 경계란 무엇인가? 육근의 대상인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육경을 욕망과 집착의 대상으로 보고 집착하여 머물고 구하는 것이다. 이 대상들을 욕망ㆍ집착이 아닌 자비ㆍ지혜의 대상으로 비추어보고 판단ㆍ선택ㆍ실천하는 것이 육바라밀, 즉 육도(六度)이다.
욕망의 대상이 아닌 자비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구하여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나누어 주라는 것이다. 어리석음에 의한 집착의 대상을 지혜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육근에 의한 육경의 대상들이 실체하는 것이 아니라 참나에 비친 업식의 환영임을 일깨우는 수행의 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눈의 경계를 버리어 보시를 성취하고 귀의 경계를 막아 지계를 성취하고 코의 경계를 다스려 인욕을 이루며 혀의 경계를 다스려 정진을 행하고 몸의 경계를 이겨내어 선정을 이루고 뜻의 경계를 조복하여 지혜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욕망과 집착에서 지혜와 자비로 바꾸라는 것이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ㆍ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어디에도 욕망과 집착은 없다. 지혜와 자비 또한 없다. 욕망과 집착, 지혜와 자비, 선과 악 등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 6근(六根), 6경(六境), 6식(六識)의 주체는 '나'라는 환영이다. 참나 → 나 → 내 마음(욕망, 집착 혹은 지혜, 자비) → 업식 → 내 몸 → 육근 → 대상의 순서로 사물을 인지하게 된다.
내 마음을 욕망과 집착이 아닌 자비와 지혜로 바꾸면 육근ㆍ육경ㆍ육식 모두가 지혜와 자비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육도이다. 육도란 중생을 생사윤회 고의 강을 건너 해탈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므로 육도(六度),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칭한 것이다. _(())_
첫댓글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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