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고
구름과 산을 벗하며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리니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에서 향연기를 피우며
이 책을 깊이 탐독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를 터득해서
문자 속에 참으로
교외별전의 뜻 아님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중생 보기를
환사가 환술로 만든 것을 보듯이 하면
모든 부처님의 기쁨을 이룬다.
생사를 면하고자하면 그 근본을 끊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많은 공력을 쓸 필요가 없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만약 일체의 법이 다 인연에 속해있어서
모두 자성이 없고
단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인줄 깨닫는다면
모든 일에 무슨 공력이 필요하겠는가?
'인연따라 생겨서 자성이 없다'는 것은
마치 환화인과 같으니
환화인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허깨비일 뿐이고
진짜가 아니다.
그러므로 또한 환유라고도 하고, 묘유라고도 하는데
유가 아니면서도 유이기 때문에
묘유라고 하는 것이다.
진실로 한 문장의 효용이 이치를 남김없이 포섭하고
한 게송의 공용이 지옥을 파괴할 수 있다.
삼세의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성품을 관찰하라.
일체는 오직 마음이 만든 것.
이 게송을 외우면 지옥의 고통을 파괴할 수 있다.
자취는 천갈래 길을 마음껏 오가지만
본래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여래의 제자는
모든 세간이 마치 허깨비와 같다고 보아
어떤 의심도 없다.
경계는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변화와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라.
얕은 근기들은
스스로 감득한 묘유를 무상으로 여기고
박복한 근기들은
자기의 진귀한 보배를 기왓장이나 자갈로 만들어 버린다.
한 구절로 마음을 거두고 항상 관조하고 실천하면
일체의 만행이 구족될 것이다.
그대의 몸과 마음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세번째 손과 같아서
끝내 없다는 것을 보라.
마음은 환사와 같아
환술로 갖가지 색을 만드니
만약 환사가 속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환술로 나타난 색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허공꽃인줄 알면
생사유전이 없어지고
저 생사를 받는 몸과 마음도 없을 것이다.
만약 여래께서 항상 설법하지 않는 것을 본다면
이것을 다문을 구족했다고 한다.
이 다라니는 모든 문자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언어로 깨달아 들어갈 수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안팎의 어떤 법도 얻을 수 없다.
이 다라니에 들어갈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들어갈 수 없는 다라니라고 한다.
허공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만이
이 다라니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대는 부처가 열반한 후에 무엇에 의지해 머물러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난이여, 4념처에 의지해 마음을 지키고 머물러야 한다.
몸의 성품이 허공과 같다고 보는 것을 신념처라 하고,
느낌은 안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고 보는 것을 수념처라 하며,
마음은 단지 이름일 뿐이므로 이름의 성품을 벗어나 있다고 보는 것을 심념처라 하고,
법에는 선법도 없고 불선법도 없다고 보는 것을 법념처라고 한다.
아난이여, 모든 수행자는 반드시 이 4념처에 의지해 머물러야 한다.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오직 한 뜻일 뿐이니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벗어나는가?
모든 욕망과 모든 견해를 벗어나는 것이다.
비록 갖가지 빛깔, 소리, 냄새, 맛, 감촉과 집, 숲, 땅, 산등
실체적 무엇이 있는듯한 영상들이 나타나지만
그 중에 실체가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다 오직 식일 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꿈을 꾸든 깨어 있든,
보이는 것은 오직 마음일 뿐이고,
길고 짧은 시간도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는다.
멀고 가까운 세계와 부처님 및 중생과 일체사물이
한 생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세간의 허깨비 속에 있으면서
어찌 인과를 벗어날 자가 있겠는가?
마치 술잔에 비친 활그림자를
뱀이라 의심해 병을 얻은 것과 같으니
단지 스스로 생각을 일으켰을 뿐이다.
마음이 부처를 만들고
마음이 중생을 만들며
마음이 천당을 만들고
마음이 지옥을 만든다.
마음이 비워지면 경계가 고요하고
생각이 일어나면 일체법이 생겨난다.
세간의 갖가지 법
일체가 모두 허깨비와 같으니
이와같이 알 수 있다면
그 마음 흔들리지 않으리.
世間種種法 一切皆如幻
若能如是知 其心無所動
모든 법은 자체가 없고
자기 마음에서 생겨나니
마음이 만약 생겨나게 하지 않으면
바깥 경계는 항상 공적하다.
일체 모든 중생
모두 열반에 함께 있으니
만약 이와같이 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성불이라네
선남자여,
법은 오직 한 글자이니
무라고 하는 글자이다.
본래 언설이 없는데 무엇을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말함이 없는 이것이 참된 설법이다.
보리는
몸과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
간밤 꿈속의 천년 세월이
깨어나자마자 바로 소멸되는 것과 같다.
존재하는 것이 없다.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보배가 아니다.
단지 스스로 생각을 일으켰을 뿐이다.
어찌 허깨비가 아니겠느냐?
비록 몸이 소멸되어 목숨이 옮겨간들
이 보는 성품이 너에게서 소멸되겠느냐?
무심하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하다.
생각해도 생각할 수 없는 묘용으로 끝없이 타오르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생각하라.
3세가 허깨비와 다름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모든 범부가 항상 정(定)에 들어있다.
만법이 종횡하는대로 맡겨둔들
어찌 무생의 도리를 벗어나겠는가?
한번 숨쉬고 눈을 깜박이는 사이에
중생의 수명은 400번이나 생멸한다.
매우 깊은 법문을 듣더라도
마치 맑은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듯 하라.
생사가 없는 곳에서 망령되이 생사를 보는 것이다.
당신의 몸에는 본래 '나' 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진아'라는 불성의 이치가 있다고 말씀하시자,
모든 보살들이 참회하며
"저희들은 한량없는 겁동안 항상 무아속에서 표류했습니다"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