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극도의 불안과 공황발작에 시달리던 과거의 일상을 떠올리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지만, 부디 저의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년 가을, 저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사실 팔에 거의 매달려) 처음 병원을 찾았습니다. 제가 제 생일에 가족들에게 폭탄 고백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빠, 나 아무래도 진짜 미친 것 같아.”
정말 글자 그대로 저렇게 말했습니다.
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을 하러 온 자리를 갑자기 박차고 뛰쳐나간 저를 찾으러 나온 가족들은 건물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서는 당황하면서도 원래 조금 유별난 저를 차분히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별난 행동을 했던 게 아니라 식당에서 공황발작이 왔었고 그걸 가족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숨을 곳을 찾으러 나갔던 것이었습니다.(저는 보통 공황이 오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생각이 겉잡을 수 없이 많아지며, 미칠(혹은 죽을) 것 같은 공포와 이인감을 겪습니다.)
사실 저는 저의 공황장애를 일찍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스무살 때부터 시작해 5년 동안 지속된 증상을 제가 몰랐을 리 없겠죠. 다만 그걸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공황발작이 온 제 모습을 누군가 보는 게 너무 창피했고 내가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숨기면 숨길수록 더 많은 곳에서 자주 찾아오는 탓에 나중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듣다가 중간에 이탈하기 일쑤였고 집에 오면 도어락도 누르지 못한 채 문고리를 잡고 울었어요. 밥을 먹을 때면 늘 목이 메여 음식을 소화하기 힘들었고 하루라도 공원을 뛰지 않으면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아 밤마다 한두 시간씩 산책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면 심장 뛰는 소리가 온 몸을 울리는 바람에 눈을 감고 양과 잠자리 천 마리를 세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정말 죽지 못해 사는 하루가 계속 반복되자 저는 학교 상담센터부터 동네 약국, 주변 사람들 등등 여러 군데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아빠의 손을 잡고 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이러다 죽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던 저는 선생님을 만났던 첫 날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제게
“선생님이 도와줄게.” 라고 말씀하셨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때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은 눈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들을 하는 나를 아무 의심 없이 이해해주고, 나의 고통을 지켜봐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상했고, 고마웠습니다.
3시간이 넘는 첫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어쩌면 이 고통이 끝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살고 싶었던 저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들을 평소에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워낙에 겁이 많고 예민한 저는 금방 외부 자극에 압도당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운 것들을 직접 제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가장 많이 훈련했던 건 공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나 스스로 그것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저의 경우, 그 힘 안에는 가족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제가 공황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가족들은 매일 학교가기 전 아침에, 집에 돌아온 저녁에, 잠들기 전 밤에 저를 안아주었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늘 저의 손을 잡고 다녔습니다. 불안이 심해지면 차가워지는 손발을 계속 주물러주었고, 매일 저녁 맛있는 밥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셨어요. 저와 함께 애써주는 가족들을 보며 저는 공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사랑 받고 자란 귀여운 딸이지만, 그걸 공황을 치료하면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동안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내게 닿는 사랑들을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치료를 하면서 그게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그 사랑들이 말로 형용할 수도 없이 진하고 포근해서 어쩔 때는 놀라기도 하고, 제가 받는 사랑들을 확인할 때마다 고마움과 안도감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제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었고 가정환경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도 많았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러한 문제들은 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완벽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남들 배려하느라 내 몸과 마음을 축내지도 않고, 너무 많은 것에 의미 부여하지 않으며 살려고 합니다. 물론 아직도 제게 이것들은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씩 해내고 있어요. 무엇보다 공황발작이 오지 않는 것 하나로 제 삶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가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좋아하고 아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공황을 겪는 시간은 참 외로웠고, 길었고, 어쩌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옆에는 가족을 비롯해 참 많은 사람들이 저를 지켜주고 있더군요. 그걸 치료하면서 알게 되었고, 덕분에 하루에 하나 이상씩은 꼭 감사하다고 기도드리며 잠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문득 불안이 몰려올 때면 다시 또 이 불행이 반복될까봐 두렵지만 그때마다 선생님과 훈련했던 것들을 다시 상기시키며 명상을 합니다. 그러면 금방 다시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어요.
저는 여전히 허약하고, 예민하고, 겁이 많지만 그것이 저의 약점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저 그런 것들을 갖고 있을 뿐이에요.
저는 이런 저를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영영 해내지 못했겠지요. 저는 저의 불완전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저를 사랑해요. 공황이 저를 괴롭힌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계속 건강해지고 있고, 결국 공황 없이도 잘 살아갈 겁니다. 이건 바람이라기보다 치료를 통해 배운 어떤 확신입니다.
병원 침대에 누우면 저 천장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제가 이제는 배에 뜸을 올려놓고 입을 벌리고 잠을 잡니다.ㅎ 이런 오늘이 제게 있는 건 마음을 담아 보살펴주셨던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겠죠. 치료 도중 공황 발작이 다시 와 매우 좌절하던 때에도 덕분에 다시 희망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살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끝으로 저를 늘 같은 온도로 대해주셨던 간호사선생님과 사랑하는 가족들, 옆에서 응원해줬던 친구들, 위로가 되어줬던 시와 글자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해요!
첫댓글 하니님.
잔잔하게 귓가에 속삭여 오듯
깊은 안도감이 숨을 몰아쉬게 하듯,
감동의 눈물이 맺히고 그게 풀잎에서 이슬처럼 주르르 흘려내리듯.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글귀가 긴 여운으로 그대로 남네요.
하니님, 스스로 일어날수 있는 힘이 이미 있었는 걸요.
그걸 알아차리고 힘으로 느끼기까지의 과정이었던것같아요.
공황이 와도. 변치않는 힘이 내안에 있다는 걸 알아차린 하니님을 늘 응원합니다.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좋은날입니다.
잘 딛고 일어서신 용기에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지금처럼 내면에 있는 힘을 믿고 더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좋은 글 함께 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