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技術
정병근
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끊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훤히 보이는 저 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시작 노트
번쩍 떠오르는 시
술을 마시고 다녔다. 시간만 나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허전했다. 술을 축으로 일상을 살았다. 일과 사람 사이에 낀 수많은 시간의 틈을 술로 때웠다. 40년 정도 마시다보니 슬슬 지겨워질 무렵, 어떤 계기로 술을 끊었다. 급성간염이 찾아왔다. 한 보름 정도 입원하고 나오니 말끔히 낳았다. 입원하는 동안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받아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 것 외에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단순한 생활이 나를 회복시켰다. 끼니 거르지 말고 다니라던 말씀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수군대기도 한다. 가짜 뉴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웃는다. “야, 한 잔해.” “너, 마음에 안 들어.” 나를 시험하거나 비아냥대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술 마시는 나와 안 마시는 나 사이에서 당황하는 기색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다 나 때문이니까.
산책을 한다. 특별한 준비 없이 그냥 걷는 것이다. 이어폰을 꽂고 중랑천과 도봉산과 수락산 자락을 부지런히 걷는다. 술살이 빠지면서 배도 들어가고 몸이 날렵해졌다. 내친 김에 근 30년을 복용해오던 공황장애약도 끊었다.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때마침 코로나가 덮쳐 와서 혼자 산책하기 좋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걷는다. 산책은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자칫했으면 영영 못 만날 뻔한 나가 아닌가. 내가 만나본 나는 퍽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지금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술을 끊은 지 벌써 6년이 넘는다.
가끔 그림을 그린다. 존경하는 선배 시인이 내게 크레용을 사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크레용의 정확한 명칭은 오일 파스텔이다. 초등학교 때 잡아보고 50년 만에 처음 잡아보는 크레용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되새겨보니 나는 미술 시간을 좋아했다. 도화지에 그리고 싶은 것을 스케치하고 색을 칠하면서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고 즐겁다. 내 속에 그리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린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하다. 내년에는 두 번째 개인전을 열어 공감을 나눌 생각이다.
앞의 시 「유리의 기술」은 30대 후반에 쓴 것이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술을 마시던 시절이다. 우리는 어떤 장場 속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계는 중력과 시공과 빛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의 막 안쪽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겠지만 그곳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막을 뚫고 거기로 가려면 광속을 뛰어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소파에 앉아 술을 깨우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거실 창유리가 마치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막과 같다는 생각이 번쩍 찾아왔다. 이런 발상을 다듬어서 쓴 시이다. 이 시는 동료 시인들로부터 종종 언급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곤 하는데, 내 시를 좋아해주는 시인과 평론가와 독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정병근 경북 경주 출생. 1988년 《불교문학》 등단. 시집 『눈과 도끼』 외. 지리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