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표현 2001년 3/4월호 시조평
제목 ; 극단적 언어 경험의 창출과 한국적 서정
이재창
개성이 없는 작품은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1천여명의 시조시인들이 발표하는 작품들 중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천편일률적인 서경의 소재나 현대적 감각에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어투, 산 속의 절간이나 기행하며 읊는 단순한 소재의 작품들은 이미 현대산업사회에서는 생명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그것만을 고집하며, 그것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몰개성의 작품들을 현대적 사고방식에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들만이 주장하고 추구하는 작품들을 하나의 고립된 상태의 세계로 인정해주는 것도 공존공생하는 방법일 수 있다.
서로의 주장을 개진하는 것도 시조단이 좀더 성숙한 문학의 세계로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서로가 수용할 줄 아는 너그러움도 필요로 한다. 서로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집요한 어둠의 속성처럼 해꼬지를 부린다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그것은 서로 자신의 살을 흠집 내고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 익명을 매개로 한 비판은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범죄행위에 가까운 몰상식이다. 그건 문학인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이며, 설령 문학을 한들 그의 작품에서의 진실성은 발견할 수는 더더욱 없다. 문학인의 탈을 쓴 야만인에 불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인터넷 사이버문학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시조단이 미성숙한 애벌레처럼 바닥에서 기고 있는 애처러운 현상과도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생산해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잿밥에 눈이 멀어 벌이는 헤게모니 싸움으로나 비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그와 다른 작품의 질적 향상을 높이기 이해 전력투구하는 시인들이 존재하기에 시조단이 그나마 나름대로의 위상을 찾아가고 있다.
박기섭 시인은 자신의 시론 <매화와 휘파람새>에서 말한다.
우리의 땅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의 언어를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 다.는 폴․발레리의 이 한마디를 늘 한 그릇 찬물 같은 충고로 듣는다.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또 어떤가.거지는 거지를 시기하고,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
최근에 발표된 시조작품들을 한 번 눈여겨 들여다 보자.
고향 사람들이 내 詩碑를 세워 주었네
잠자는 시름을 깨워 무거운 돌 세운 후로
지렁이 실울음소리가 고향길에 자꾸 감기네.
-정완영「이승의 풍경화-시비를 세운 후로」(『문학사상』2001. 1)
먼 그대 숨구멍 속을 은밀히 들락거리는, 눈에 안 보이는, 그러나 저리 선연한, 사련의 슬픈 넋이여 눈이 붉은 혼쥐여
-박기섭「혼쥐」(『정신과표현』2001. 1/2)
위 첫 번째 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한 노시인의 마음가짐이 잘 나타나 있다. 한국적인 가락의 대명사로 불리는 정완영 시인. 그의 시조에서 우리는 시조의 참맛을 느낀다. 한때 많은 시인들이 그의 가락과 한국적 서정에 대해 심취해 연구해 왔고, 지금도 그의 작품은 공부하는 대상이 되어왔다. 고향사람들이 자신의 시비를 세워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시비를 세움으로서 더욱더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귀거래사임을 직감한다. 어쩐지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는 정완영 시인의 마음 한구석을 읽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박기섭 시인의 작품은 위 시조에서 뿐 아니라 그의 많은 작품 곳곳에서 하나의 도를 느낀다. 아직 40대 후반에 불과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름대로의 시조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만한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이 시조단에 존재한다는 것이 커다란 행운이다. 그는 자신의 시론 <매화와 휘파람새>에서 시조에 대한 자신의 모든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의 영역. 바라건대 나의 시안(詩眼)이 현재에 안주하며 미지의 쪽문을 기웃거리기보다 그 미답의 경지를 스스로 주저없이 열어젖히고 나아가기를!
욕망은 생존에 대한 가장 뚜렷한 자각이요, 그 힘의 원형질이다. 삶의 곳곳에 널린 가치들을 망가뜨리지 않고 온전히 아우르는 욕망의 길, 그런 욕망의 물화(物化). 거기에 시가 있다. 자존을 위한 오만, 그 오만의 터전에서 무수히 폭발하는 꽃. 거기에 시의 개성이 있다.
이와 같이 그는 시조를 위해 온 몸을 투자하고 온 몸으로 시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느낀다.마지막 한 줄을 위해 이전의 아홉 줄을 흔쾌히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한 사람의 시인으로 서리라. 모름지기 시인은 시로써 말하고, 시로써 만나며, 시로써 공유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말하고, 시조단에 대한 여러 현상들에 대해 과감한 비유를 하고 있다.
정완영 시인이 한국적 서정과 가락에 대표할 만한 특징을 보여주는 노시인 이라면, 박기섭 시인은 정완영 시인이 지니고 있는 한국적 서정의 일부분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변용의 효과를 최대한 노리면서도 현대시적 감각을 가장 잘 살린 역작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시인이다. 그만큼 두 분의 문학적 역할이 시조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같이 수많은 시인들 중에서도 한 사람의 시인을 만난다는 것은 같은 길을 걷는 문학인이나 독자들에게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유년은 어디서나 돋아나 덤벼들었다.
풀꽃처럼 뛰어들며 내 젖살을 뭉클 움켜쥐면
파르르, 나는 치를 떨며, 치마 쥔 손에 맥이 풀렸다
쓰러진 꽃대궁을 노후가 끌어안을 무렵,
폐쇄된 측후소의 풍향계가 돌기 시작했다.
혜성은 저녁 하늘가를 홀아비처럼 지나갔다.
연기 몇 가닥이 아직도 비비 꼬여 있다.
매운 눈을 문지르며 풀씨는 부엌을 나와
내 꿈에 장작 토막처럼 반달 하나 던져 놓고,
한 줌 달빛을 뻗치며 밤하늘로 떠다녔다.
이불을 걷어차는 아들처럼 이빨을 갈며
내 가슴 황토밭으로 마구 파고 들었다.
-정휘립「옛집/하룻밤」(『시조시학』2000 하반기호)
그의 작품은 격렬하다. 그 내용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연약하고 섬세하게 느껴지지만 그의 언어는 시조가 보여 줄 수 있는 강렬한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위의 작품이 보여주듯이 시조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 언어의 경험으로서 이미지를 표출해 낸다. 그것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한 가운데에서 의미하고 싶은 것, 또는 그것이 바로 시인 자신의 불가능성과 부정적인 한 경험에서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유년의 이야기다.
첫째와 둘째수가 한 연을 구성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각 장마다 숨가프게 돌아가는 시인자신이 내부적 불안요소가 산재해 있다. 덤벼들고, 뛰어들고, 움켜쥐고, 치를 떨며 맥이 풀리는 유년이다. 그 간단한 몇 마디의 언어로도 그 상황을 연출시키는 긴장감이 시조의 또다른 신선감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끌어 안고, 돌기 시작하고, 혜성처럼 하늘가는 지나가는 한 획의 별똥별처럼 그의 유년은 극단적 언어의 경험으로서 새로움을 창출해 낸다.
셋째수와 넷째수가 묶여 2연을 구성하면서는 유년의 불안정한 자아가 자신의 내부로 잠입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인상적인 이미지로 한편의 작품을 긴장하고 생소한 언어적 감각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닻줄을 풀 때마다 푸른 홰로 일어서다
은발로 쓰러지는 청사포 물보라길
초로의 어부 한 사람 눈이 젖어 보고 있다
수천 갈래 바람으로 갈갈이 찢기다가
주름투성이 울음으로 되감겨 오던 바다
산허리 숙대궁들은 아픈 닻이었을까
한 생애를 다 바쳐 마련한 물길들은
구릿빛 팔뚝으로도 다 풀지 못한 슬픔
초로의 어부 한 사람 눈이 젖어 보고 있다
-박권숙「청사포 2」(『현대시』2000. 12)
박권숙 시인. 그의 이름이 보여주는 일련의 청사포 연작시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된 하나의 사상을 만난다. 그는 삶과 현실의 벽, 그리고 바다에서 벌어지는 한 생애의 싸움들을 주름투성이 울음으로 되감겨 오던 바다로 묘사한다. 이러한 물길에 가슴이 찢긴 초로의 어부의 모습이 처연하다,
정휘립 시인이 시조가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 언어의 경험으로서 이미지를 표출해 낸다면 그의 작품은 여성으로서 가지는 강렬한 언어적 섬세함으로 이미지를 풀어낸다. 그가 청사포 연작시에서 묘사한 작품의 각 장 각 장이 하나의 시로 표현될 수 있는 언어의 조탁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은 정휘립과 박권숙이 이미지의 구성방법은 흡사하지만 언어의 선택과 묘사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박권숙 시인은 짜임새 있는 형식상의 특징을 또한 잘 활용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거대한 쇠기어가 이를 맞물려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규율이나 틀처럼 엄격하게 정돈되어 있다.
오가던 길목에서 복권 한 장 살 일이다
가난도 때에 절어 숨길이 가빠올 때
비장의 와일드카드로 승부를 거는 거다
행간을 오르내린 갖가지 풍문으로
까맣게 채색되는 가장의 속내 울음
설레는 기다림으로 툭툭 털며 가는 거다
다져온 모래 성채 와그르르 무너져도
끈끈한 목숨 불꽃 아직 꺼지지 않아
한 주일 너끈히 보낼 희망 열차 타는 거다
-추창호「복권」(시집『낯선 세상 속으로』에서)
추창호 시인의 작품은 대체로 현실적이다. 그의 작품은 시조가 자연이나 읊고 신선놀음이나 하려는 사람들에게 과감히 도전하며 현실적인 삶과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시조가 문학의 한 장르라면 당시대의 의식을 문학작품 속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 작품 복권도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걸고 한 주일을 견뎌내는 소시민들에겐 비장의 와일드카드이기도 하다. 오가던 길목에 버스토큰과 복권을 판매하는 좌판 앞을 지날 때마다 비록 한 주일의 기대가 그저 허무하게 끝나더라도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소시민인 우리들에겐 하나의 삶의 활력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비록 한 가족을 이끄는 가장으로써 한탕주의를 바라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역설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난은 죄가 아니다.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복권일지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끈끈한 목숨 불꽃 아직 꺼지지 않고 한 주일을 살아갈 넉넉한 식량처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복권을 통해 소시민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것을 시인은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바람에 수줍은 듯
내려앉다
맺힌 이슬
심연 속에
깊이깊이
네 영혼을 심다보면
하이얀
그 꽃잎 속으로
활짝 열린 진실의 길.
-최희선「연꽃」(시집『고독의 城』에서)
최근에 발간한 최희선 시인의 시조집 『고독의 城』에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작품은 한마디로 달빛처럼 곱다. 그리고 정직한 삶의 진실을 위해 다가가는 구도자처럼 보인다. 최시인의 작품의 소재는 식물성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식물성 속에서 시인은 인간의 속성을 그려내고 있다. 춘란이나 자귀나무, 장미, 백합, 들국화 등의 소재는 언어적으로는 섬세한 서정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최희선의 작품에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영혼에 대한 갈망이 절실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천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식물성 소재를 통해 생활 속의 조그만 부분까지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위 작품 연꽃은 앞의 설명과는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나 꽃을 통해 이슬과 영혼의 대비를 보여주는 그리움은 시인 내면의 삶의 진실을 위해 다가서는 대상의 길이다. 한마디로 여성성의 심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산여울 쓸어내려 오늘도 길 가는 강
가수리 수미마을 대충대충 짚어보며
좀생이 별하늘처럼 제멋대로 흩어졌다
자갈밭을 깔아두고 비단인 듯 흐르는 강
운치리 수동마을이 추억 속의 그림인지
산나물 이파리처럼 손 흔들며 살고 있다
물길 백리 길을 내고 내일도 흐를턴즉
문산리 논뜰마을이 성좌처럼 반짝이니
살아서 눈물나도록 서강 보태 흐른다.
-정정용「영월 동강-눈물난다 아름다운 강」(『시조세계』2000. 겨울호)
얼마전에 동강에 댐을 만든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환경단체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서 결사반대 하는 등 정부의 물관리 정책에 항의, 현재는 동강에 댐 건설을 보류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선조때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 생태계보전이냐 인간의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인위적 변화냐 하는 것은 아직도 논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동강은 우리가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그리고 생태계의 종횡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국내에선 손꼽히는 중요한 곳이다.
정정용 시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살아서 눈물나도록 비단처럼 흐르는 강이 바로 동강이다. 이렇듯 한 시인이 절창을 부를 수 있는 동강. 그 곳에는 우리들과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잠재해 있다. 위 시는 한국적 서정과 한 폭의 자연 그대로를 정감나게 그려냈다. 첫째수에서는 동강이 흐르는 모습을, 둘째, 세째수는 동화 속의 그림처럼 동강의 마을이 산마을 이파리처럼 손 흔들며 살고 있는 모습들이나 문산리 논뜰마을 이 성좌처럼 보이며 반짝이는 동강이 경겹다. 비록 서정으로 모든 것을 나타내면서도 그 속에 자연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현실과 연결된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참으로 좋은 시조다.
*이재창 /
1979년 시조문학 2회 천료,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거울論’ 당선, 1991년 심상 신인상 시 당선으로 문단 활동.
시조집 <거울論>, 시집 <달빛 누드>,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문학평론집 <아름다운 고뇌> 등이 있으며, 현재 광주매일신문 지역사회부장으로 있다.